나는 평소 학생들에게 문학작품, 그것도 고전작품을 읽을 때는 세 가지 감각을 잃지 말라고 가르친다. 물질감, 인물감, 시대감이 그것이다. 물질감은 그 시대 사람의 감각을 알라는 것이며, 인물감은 등장인물의 사회적 위상과 다른 인물과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라는 것이고, 시대감은 당대의 이념과 관행, 그리고시각을 분명히 알고 그에 따라 대상을 판단하라는 것이다. - 6쪽
주상순조이 어렸을 때 이 일을 알고자 하시나, 정조께서 차마 자세히 이르지 못하시니 다른 사람이 누가 감히 말하리오. 또 뉘 능히 이 사건 을 잘 알아 말하리오. 내가 없으면 궐내에서도 알 이 없으니 마침내 아무도 이 일을 모르게 될 것이라. 자손이 되어 조상의 큰일을 까마득히 알지 못할까, 한번 전후사를 기록하여 주상께 보이고 글을 없앨까 하되, 내 차마 쓰지 못하여 세월만 흘려보내니라. 근년1801년 내 아우가 역적으로 몰려 죽고 또 딸마저 죽는 등 안팎의 참화를 첩첩이 겪은 후 목숨이 실 같아서 거의 끊어질 듯하니, 이 일을 주상이 모르게 하고 돌아가기가 실로 인정이 아니라. 죽기를 참고 참아 이리 기록하나, 차마 쓰지 못할 마디는 뺀 것이 많고 자잘한 것은 다 거두지 못하니라. -20쪽
왕위를 탐하여서가 아니라 마지못하여 나라를 위해 자리에 있었는 데, 1804년은 원자元子, 곧 순조의 나이 십오 세니 성인이라. 족히 왕위를 전할 만하니, 원자에게 왕위를 넘긴 후 처음 먹은 마음을 이루어, 마마를 모시고 화성으로 가 경모궁 일을 행치 못한 평생의 한을 풀 것이라. - 304~305쪽
『한중록』은 흔히, 궁중의 큰 어른이 된 혜경궁이 해질녘 궁궐 마루에서 동쪽에 있는 남편의 사당을 바라보며 무한한 회한에 잠겨 지나간 일을 회고한, 그런 작품 정도로 생각한 다. 하지만 실제로 『한중록』은 『동궁일기東宮日記』등 궁중의 공식적 일지류(日誌類)와 임금과 친정 식구들이 주고받은 편지 등을 기본 사료로 하여 철저히 고증된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책이다. 여기에다 혜경궁 자신의 기억을 더하여 사건을 재구성하였다. 『조선왕조실록처럼 다른 자료들을 서술의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기억으로 재구성했다. 는 점에서 정사(正史)와는 차이가 있다. -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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