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러시아
시베리카코 지음, 김진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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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음식은 한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여행 다녔던 나라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곳에서 먹은 음식이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일수록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풍경이나 유적, 사람들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음식만큼 한 나라에 대한 호불호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라는,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상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의 이름이 『맛있는 러시아』의 매력포인트다. 먹어본 러시아 음식이라고는 보드카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건 음식이라기엔 그렇고, 영국의 피시앤칩스나 미국의 핫도그나 일본의 오꼬노미야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러시아 음식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춥고 황량한 이미지를 가진 거대한 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음식을 먹을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책을 펼쳤다. 

작가 시베리카코는 일본인이다. 일본에 유학 온 러시아인 P씨에게 길을 알려준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 후 P씨의 제안으로 그의 고향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년간 살게 되는데, 그때의 경험을 담은 책이 『맛있는 러시아』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지명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예르미타시 박물관전'을 본 후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광명소로 예르미타시가 소개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낯설고 신기한 러시아의 풍습이나 생활상도 흥미롭지만 주제는 누가 뭐래도 러시아의 음식이다. 


러시아까지 와서 굳이 쌀을 챙겨 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을 먹는 게 제일 맛있지 않을까요?

150쪽밖에 안 되는 짧은 만화지만 군침을 삼키다 지칠 만큼 다양한 러시아 음식이 소개되어 있다. 소고기와 양파를 사워크림에 푹 졸인 비프 스트로가노프, 러시아식 양배추롤 골룹지, 크레페와 비슷한 블리니, 비트의 빨간색이 특징인 수프 보르시 등이 대표적이다. 각 챕터의 마지막에 친절한 레시피가 나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대부분의 요리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 요리를 거의 하지 않던 나도 가장 쉬워 보이는 시르니키에 도전해보았다. 

밀가루, 설탕, 소금, 계란 등 평범한 재료만으로 만들 수 있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코티지치즈였다. 먹어본 적도 없고, 어디서 살 수 있는지도 몰라서 검색을 하다 보니 우유와 레몬즙, 소금만으로 집에서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당장 시도해보았다. 결과는 제법 괜찮았다. 제대로 된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맛있으니까. 그리고 이 코티지치즈로 시르니키를 구웠다. 시르니키도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비슷한 맛을 냈는지는 모르겠다. 팬케이크와 비슷하지만 훨씬 담백하고, 밀가루가 적게 들어가서 퍽퍽하지 않은 맛이 매력적이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잼이나 다른 음식을 곁들여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만들어본 것은 시르니키지만 정말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모피 코트를 입은 청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샐러드였다. 색도 예쁘고 모양도 케이크 같아서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청어 초절임이라는 낯선 재료 때문에 만드는 것은 포기했다. 또 한 가지, '스메타나'! 러시아의 사워크림이라고 하는데 『맛있는 러시아』의 첫 음식이었던 보르시부터 골룹지, 비프 스트로가노프, 케이크, 블리니, 오크로슈카(크바스에 채소를 넣은 수프) 등 국물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러시아 사람들은 거의 모든 음식에 스메타나를 넣어서 먹는지 꼭 알고 싶어졌다. 다행히도 플레인 요거트와 생크림으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조만간 도전해봐야겠다.    

세상이 아무리 좁아졌다고는 해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세상 모든 나라를 다 가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국에 간다 해도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음식을 먹어볼 수도 없다. 그럴 때 『맛있는 러시아』 같은 책이 얼마나 고마운지. 익숙한 재료로 색다른 외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 나라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게 하니까. 『맛있는 러시아』는 알록달록한 마트료시카처럼 알수록 신기한 러시아의 매력과 볼수록 먹고 싶은 음식들이 끝없이 튀어나오는 즐거운 만화다. 언젠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게 된다면 가이드북으로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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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빙의 숲
이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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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두 번 읽고 싶은 소설을 만났다. 참혹하고 쓸쓸한 이야기지만 읽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아름다운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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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 별을 떠날 때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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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한 작품. 연재로 미리 만나봤지만 책이 나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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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시가 되어 창비청소년시선 17
김민기 외 지음, 김이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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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을 다루는 출판사의 저작권 인식이 이렇게 바닥이라니 정말 독자의 돈을 받고 책을 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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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랜드
서레이 워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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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누가 봐도 마른 몸을 가졌는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나도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나보다 훨씬 마른 친구들까지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50센티미터에 39킬로그램인 친구도, 163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인 친구도 자신이 너무 뚱뚱하다며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여자들이 모이면 어디서나 다이어트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교사부터 부모, 친구들까지 여자의 몸매를 품평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품평당하는 쪽도 그것이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면서 깡마른 몸이 여자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던 다이어트 공화국의 여자들이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고통스러운 다이어트를 의무라고 생각해 왔는가? 왜 의류회사는 여성복을 아동복보다 작게 만드는가? 왜 걸그룹 체형이 모든 여자들의 이상이 되어야 하며, 걸그룹은 왜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가? 왜 남자들의 뱃살은 인격이고 여자들의 뱃살은 자기관리 실패의 증거인가? 뚱뚱한 사람은 왜 놀림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은가? 뚱뚱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당연했던 것들이 죄다 이상한 것으로 바뀌었다. 

『다이어트랜드』의 주인공 플럼(얼리샤 케틀)의 체중은 13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다. 플럼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인 웨이스트 워처스 회원이며, 안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살을 빼고 나면 입을 작고 예쁜 옷들을 몰래 사서 모으고 있으며, 비만수술을 고려 중이다. 10대 타깃의 잡지 <데이지 체인>의 편집장 키티를 대신해 키티에게 오는 10대 여자들의 상담메일에 답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플럼은 독특한 차림새의 여자가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음을 눈치챈다. 그에게서 『다이어트랜드 대모험』이라는 책을 받게 되고, 그 책을 쓴 베레나 뱁티스트를 만나면서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나는 이미 뚱뚱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태였다. - 191쪽

플럼의 인생은 뚱뚱한 몸 때문에 괴로움과 자학으로 가득차 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해야 하고, 때로는 이유없이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연애도 꿈꿀 수 없다. 살만 빼면 인생에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효과도 없는 다이어트를 반복하고, 자괴감과 좌절감 속에서 허우적댄다. 137.9킬로그램이라는 플럼의 몸무게는 상상하기 힘든 수치다. 하지만 플럼이 겪는 고통에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날씬하고 더 섹시하고 더 가녀린 몸을 가져야 한다고, 그것이 여자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세뇌받으며 살았으니까. 이 책이 말하는 '다이어트랜드'는 가상의 왕국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자체다. 

하지만 『다이어트랜드』는 여자들을 옥죄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납치와 협박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 반라의 여자 사진으로 도배된 잡지 표지를 반라의 남자 사진으로 바꾸게 하는 데 성공한 '제니퍼'가 등장하면서 반격이 시작된다. 이 통쾌한 미러링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때부터 소설은 베레나의 지휘 아래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변화하는 플럼과,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제니퍼의 활약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불합리한 세상을 깨닫고 변해가면서 플럼은 제니퍼의 정체를 알게 된다. 

『다이어트랜드』는 재미있는 소설인 동시에 꼭 필요한 소설이다. 남자들이 주축이 되고 여자들은 배경밖에 못 되는 콘텐츠의 바다 속에서 여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는 놓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즐겨야 한다. 여자를 '섹시하고 화끈하고 떡치기 좋은' 대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대중문화는 여자가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데에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서 책, 영화, 만화, 드라마, 공연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다이어트랜드』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찾아서 봐야 한다.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연대하고, 갈등하고, 화합하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온갖 일들을 겪었음에도 겉으로는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변신을 거쳤다.  -319쪽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나 역시도 변신을 거쳤다. 나는 더이상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여성의 대상화에 불편을 느낀다. 그리고 더 많이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전하고 싶어졌다. 변신한 모습으로 세상 속에 뛰어든 플럼처럼,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이어트랜드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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