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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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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이름만으로 작품을 읽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가. 처음으로 본 쥐스킨트의 작품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감명깊게 읽은 작품으로 남아있는 좀머씨 이야기』는 짧지만 그만큼 인상이 강했다. 좀머씨 이야기』를 읽은 후 가장 읽고 싶었던 쥐스킨트의 작품이 바로 『향수』. 평이한 제목이지만 쥐스킨트의 이름이 붙는 순간 일반명사 향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냄새 혹은 향기.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체취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향수 냄새이든, 화장품 냄새이든, 담배 냄새이든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냄새는 상대방에게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는다. 사람이라면 굳이 가지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풍기는 냄새. 그르누이는 그것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냄새를 가지고 싶었다. 남들과 똑같은 인간이고 싶었다. 그렇지 못할 바에야 모든 인간들을 지배해버리고 싶었다.

그는 아름다운 향기만을 찾아다녔다. 자신의 냄새가 없는 대신 기막힌 후각을 지니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고 구분할 수 있는,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능으로 그는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향수를 만들었다.

그는 지칠 줄 몰랐다. 그가 진정 만들고 싶은 향수를 위해 그는 금단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꽃보다도, 풀보다도, 현존하는 어떤 향수보다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여인들을 찾아 그녀들의 향기를 모았다. 그렇게 스무 명이 넘는 꽃같은 여인들이 그의 향수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르누이가 가진 악마적 재능이 불러온 결과는 엄청났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조건 대신 악마 혹은 신에게 선사받은 재능을 가졌던 그르누이는 잠시동안 왕이었고 신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대단한 상상력을 지닌 작가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마저 갖춘 작가다. 그르누이가 사람들을 자신의 향수의 노예로 만든 것처럼, 쥐스킨트는 독자들을 자신의 작품에 자꾸만 매달리게 만드는 재능을 지녔다. 향수』가 주는 재미, 충격, 놀라움은 소름돋을 만큼 새롭고 기발하다. 

향수라는 우아한 물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그르누이의 끊임없는, 게다가 악의마저 찾을 수 없는 살인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르누이가 스무 명이 넘는 여인들의 목숨을 희생시켜 만들어낸 그 향수의 향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잔인한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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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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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판타지를 정말로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뻔한 판타지는 싫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세계 3대 판타지 문학 중의 하나로 불린다는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게 된 계기가 3대 판타지 문학 중의 하나라서는 아니다. 단지 정말 기대했던 애니메이션 <게드전기>의 원작이기 때문에 본 것이었다(정작 애니메이션에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러나 이런 것을 바로 '발견'이라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 속 상상의 창고 자물쇠가 큰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를 모두 읽고, 영화까지도 섭렵한 상황에서 만났음에도 이 책은 앞의 두 작품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반지의 제왕』의 무대가 광활한 대륙이고 나니아 연대기』의 무대가 세계와 이세계(異世界)라면, 『어스시의 마법사』의 무대는 넓고, 넓고, 한없이 넓은 바다이다. 어마어마한 세계관을 가진 이 작품은 단번에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거대한 스케일에 반해 읽기 시작했지만 진짜 끌린 이유는 따로 있다. 후에 대현자가 되는 마법사 '게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1권은 이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름이라는 것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주제이다. 진짜 이름을 알면 그 사물이나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것. 무시무시하면서도 매력적인 사상이다. '진짜 이름'이라는 주제는 작가 르 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신념인 것 같다(그의 다른 작품 '어둠의 왼손'에서도 이름은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CLAMP의 만화 『xxxholic』'에서도 이름은 한 사람을 말해주는 중요한 데이터베이스이다. 내가 얻으려 노력하지 않지만 어느새 내 것인 이름. 내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 나라는 존재보다 늦게 생겨나지만 어느새 내 존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사람들은 처음 만나 서로의 이름을 알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상대방에게 각인시킨다.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을 대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름이다. 이름은 곧 나이고, 나는 곧 이름이다. 흔하고 당연한 '이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넓은 세계보다도, 신비하고 위력적인 마법보다도 더 이 작품에 매달리게 만든 것은 '이름'이 가진 힘이 주는 경외감이었다.

다양한 종족, 강한 마법, 멋진 무기, 끊임없는 모험이 판타지의 전부라 여겼던 내게 '이름'이라는 진지한 충격을 안겨준 이 작품. 내게는 최고의 판타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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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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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소울(soul)을 얻는 것이라고."


영화 <플라이 대디>를 통해 알게 된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전편인 『레벌루션 No.3』.  이 책의 저자인 가네시로 카즈키는 재일교포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다른 일본 소설보다 마음에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배경은 일본의 한 삼류고등학교. 문제아가 득실대는, 그야말로 '어른들이 싫어하는'  학교의 표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우리가 꿈꾸던 삶의 출발점을 볼 수 있다. 정말 사고다운 사고만 치고 다니는 '더 좀비스'. 그들은 유치하지도, 허세를 부리지도, 소심하지도 않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할 줄 아는 진짜 인간들이다.


늘 부딪히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서 자신의 자유와 소망을 성취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가슴벅차도록 화끈하고 통쾌하다. 이미 낡아빠진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신선하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그들의 모습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을 가눌 길 없음을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아직 어리지만 소신과 신념과 의리와 꿈으로 가득 찬 좀비들의 좌충우돌 성장기. 그들은 소위 문제아이지만 절대 잘못되고 허무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좀비들의 중심에 한 한국인이 있다. 이름은 박순신. 재일교포이고, 대단한 싸움고수에 책벌레이다. 교포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순신은 그동안의 내공으로 다져진 대단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박순신이라는 캐릭터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는 힘드니 주의할 것!!!


그렇지만 순신을 제외하고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가 와글와글하다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미덕이다. 자, 이제 매력적인 좀비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우리도 한 번 따라가보자.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 아주 강한 소울(soul)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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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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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는 C일보 연재소설로 처음 접한 작품이다. 신문 연재 소설이라니 오랜만에 신선한 걸, 게다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씨의 삽화 때문에 정말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온 소설이다.


막 30대에 들어선 세 친구들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현대를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들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이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의 트렌드가 그대로 반영되어 쉽게 공감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다운 이상적 분위기는 완전히 걷히지 않는다. 판타지가 없다면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 되겠지만.


오랜 친구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 여자의 이야기에 때론 공감하고, 때론 속이 터지고, 때론 응원을 아끼지 않고, 때론 화를 내고, 때론 부러워하고, 때론 열정을 불태웠다. 이제 곧 다가올 나의 30대를 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더 흥분했는지도 모른다.


개성있는 모던한 문체와 가볍지만 진지하고 성실한 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지만, 주인공 은수의 고민에 100% 공감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젊고 잘생긴 애인, 비밀이 많지만 성실하고 흠잡을 데 없는 선 본 남자, 능력은 없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친구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30대의 평범한 여자. 이런 TV 드라마 같은 설정은 노땡큐라는 말이다. 물론 결론마저 TV 드라마처럼 뻔하게 나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30대 직장여성들의 사랑과 꿈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요새 자주 접하지 못했던 이 도시적인 소설은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 아직도 꿈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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