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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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여운 여고생 두 명이 사이좋게 머리를 빗겨주는 표지 그림(다소 괴상한 형태의 물건도 보이지만 크게 신경쓰지 말자) 위에 핫핑크색으로 박힌 제목 <제7여자회 방황>. '제7여자회 방황'이라니? 제목을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만화를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끝까지 읽어보아도 제목의 뜻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만화를 읽고 나니 '제7여자회 방황'의 뜻을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 싶어졌다.



'카네양'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네무라와 그녀의 친구 타카기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여고생으로 보이지만 둘의 일상은 눈에 띄게 특이하다. 카네양의 방은 핵 셸터이고, 그녀들이 사는 시대에는 죽은 사람의 마음을 데이터로 추출하여 디지털 천국에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만두 등 온갖 음식의 맛이 나는 껌도 있다. 시대적 배경이 현재인지 미래인지 아니면 4차원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또한 뭐 어떠랴. 



핵 셸터에 살면서 디지털 천국을 통해 죽은 친구를 만나고, 외계인이나 괴물까지 출몰하는 일상이 평범하다니... 오히려 해저 콜로니 쪽이 훨씬 더 평범해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웃자고 그린 만화에 대고 밀리미터 단위까지 진지하게 따지고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이나 <할시온 런치> 같은 만화에서 논리를 찾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이 만화를 그냥 웃고만 넘기기도 어려운 것이, 중간중간 촌철살인과도 같은 대사들이 튀어나온다. 얼척없어서 웃음이 터지는 개그만화에서 순간순간 진지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나온다는 말이다.  

하긴 뭔지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는 많으니 일일이 다 상관할 수는 없어.

카네양의 무심한 이 한마디라든가, 

왠지... 나는 부모님 마음대로 살려두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가짜 천국에서 급히 부활해버려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 이건 정말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

죽은 친구가 디지털 천국에서 타카기에게 남긴 이 대사를 보고 있으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연연하거나 고인을 억지로 현실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결국 인간의 헛된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7여자회 방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친구'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는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입학과 동시에 '친구 선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단짝을 만든다는 설정이 나온다. 성적표에도 '친구'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이다. 카네양과 타카기도 입학 후 친구 선정 시에 똑같이 '7번'을 뽑아 친구로 엮인 케이스이다. 비인간적인 제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규정만 없을 뿐이지 무한경쟁의 칼바람 속에서 순수하게 친구를 사귀는 일마저 사치가 된 요즘 10대들의 현실이 이보다 크게 나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카네양과 타카기는 서로를 이해하며 진짜 단짝친구가 된다. 성적을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의 눈치를 보아서도 아니다. 카네양은 친구 선정 제도에 불만이 있었지만 타카기의 장점을 발견하면서 정말로 호감을 느끼게 되고, 카네양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만 살피던 타카기도 카네양을 좀 더 편하게 대하게 된다. 비록 시작은 타의였지만 카네양과 타카기는 자신들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제7여자회'를 결성(?)한 것이다. 

 

우연 같은 필연으로 만난 단짝친구 카네양과 타카기의 황당한 일상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독자의 상상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어 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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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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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문화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으로 화제가 된 1997년 작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조차 2003년에야 정식으로 극장에서 개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사람들은 다 봤다고 하는 것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었다. 나 역시도 1997년 당시 <모노노케 히메>를 정말 보고 싶어서 영어판 비디오를 구했다. 영어도 일어도 짧아 주인공 이름 외에는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몇 번씩 보고 또 보았다. 지금도 내게 있어 미야자키 감독 최고의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이다.


비록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나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적잖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띠지 속에서 자신이 만든 캐릭터 '토토로'와 똑 닮은 얼굴로 지그시 미소짓고 있는 수염 할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가 소개한 50권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번역서가 나와있는 것으로 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것이라는 편견과 미야자키 하야오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은 잠시 덮어두고, 그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고른 이와나미 소년문고 50권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이루어진 제1부와 책과 그림, 자신의 일에 대한 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제2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50권 중 첫번째 책으로 <어린 왕자>를 꼽았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처음 읽은 후로 2~3년에 한 번씩 다시 읽는 책이라서 무척 반가웠다. 그의 말대로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소개된 책 중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 많은 요리점>. 이미 유명한 책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개글을 보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파를 심은 사람>이라는 한국 민화 모음집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웃 나라 사람에 의해 우리나라의 책을 알게 되는 기분은 무척 기묘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 속에서 한결같이 평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해 온 감독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은 예술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과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꿋꿋이 만들어 온 장인이다. 그래서 그의 창조 기반에 어린이책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책은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가 책 읽기를 정말 즐길 수 있게 된 계기가 어린이책이었던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의 말처럼 '살아남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니까. 그는 자신에게 재미있는 책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작품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감독답게 그는 책의 표지와 일러스트에도 관심이 많다. 어린이책에 실린 유럽 작가들의 정교한 일러스트에 감탄하는 것을 보면 그의 지독한 장인정신과 순수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아름답고 섬세한 배경으로 유명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바탕이 그의 이런 성격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책에 대한 그의 생각에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단 한 권만 있으면' 되는 책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평생 다 읽지 못한다는 것이 꼭 안타깝지는 않다. 죽는 순간까지 내게는 열리지 않은 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설레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무척 낭만적일 거라 생각한다. 좋은 책이 많은 곳에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래도 '나만의 책 한 권'은 가지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내게는 최고인 책, 마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애인 같은 책 한 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책 읽는 법을 깨닫고, 좋아하는 책을 찾고, 자신만의 책 한 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억에 남는 책이 수학 참고서나 영어사전이 되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무도 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 시대에서 '종말'을 보고 있지만 어린이들에게서 '미래'를 보고 있다. 빠르고 쉽게 소비하며 금방 잊어버리고, 왜곡된 현실과 진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다시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어린이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해서도 그가 권하는 50권의 책들은 의미가 있다. 


책 읽기의 즐거움도 잊은 지 오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도 잃은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이 책에 소개된 어린이책들로 다시 독서를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뽑은 책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이 아주 많다고 말해주며 사람좋게 웃는, 어린이책을 무척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권하는 책이라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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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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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라고 하면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나 영화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처럼 화려하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무의식적으로 정원은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나서 정원은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풀과 꽃이 자라는 평화와 안식의 장소'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외할머니의 꽃밭이 떠올랐다. 시골에 있었던 외갓집의 넓은 마당에 외할머니는 키 큰 꽃들을 많이 심으셨다. 외갓집에 놀러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외할머니는 크고 튼튼한 꽃들을 한아름 따서 내 품에 안겨주시곤 했는데, 그 꽃들은 하도 탐스러워 절대 시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 후 힘들게 사셨다는 외할머니는 꽃들을 돌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51쪽)
독일을 대표하는 대작가 헤르만 헤세가 밀짚모자를 덮어쓴 채 땀을 흘리며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쓴 헤르만 헤세가 동명이인 아닐까 잠시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작가이기 이전에 우리 외할머니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에게 정원은 생명이고, 여유이고, 휴식이며, 마침내 인간이 머물러야 할 곳이었다. 

헤세는 '정원을 가꾸면서 마치 자신이 창조자가 된 듯한 즐거움과 우월감(17쪽)'을 즐겼다. 이것이 바로 정원이 가진 힘이다. 작은 식물 하나라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하나하나 늘어나고, 키가 커지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을 보고 있자면 이런 생명체를 키워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당연하게도 헤세는 공업의 발전에 무척 부정적이었다. 문명은 태고의 견고한 형태를 '어설프며 새로울 뿐 무의미하고 유희적인(27쪽)' 형태로 대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랫동안 공들인 것에 애정을 쏟기보다는 빨리빨리 새 것으로 바꾸기에만 열중하는 요즘의 경향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정작 모르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은 헤세의 마음에 무엇보다 큰 상처를 남겼다. 그에게 전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나게 추악한 짓(115쪽)'이며 '아무에게도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115쪽)'이었다. 이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소설 <어제>에서 묘사한 전쟁의 모습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람의 인생을 한순간에 왜곡시켜버리는 끔찍한 일 말이다. 

반면 헤세는 '죽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는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96쪽)'이라고 말하며,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96쪽)'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체념이나 삶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며 탄생에서 소멸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모든 생명의 단계는 맹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184쪽)
책을 덮을 때쯤에는 나도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냥 작은 화분 하나라도, 아니, 실체가 없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정원이라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그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법을 터득한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진지해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157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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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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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 나는 헌책방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를 좋아했다. 빳빳한 종이와 잉크가 어우러진 새 책의 냄새와는 달리 헌책방의 손때 탄 책들은 왠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헌책 냄새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사람'을 담아서 나는 체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헌책방이라는 정겨운 이름보다는 '중고서점'이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리는, 깔끔한 인테리어와 그만큼 깨끗한 헌책들을 구비한 곳들이 눈에 더 많이 띈다. 새 책 같은 헌책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중고서점에서는 헌책방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정감어린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 이제는 거의 없다. 

헌책방은 책이 여행하는 곳이다. 책이 여행한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은 그 놀라운 사실 앞에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진다.(149쪽) 
깨끗한 중고서점에서는 책 속표지에 편지나 메모가 쓰여진 책을 만날 수 없다. 그런 책들은 아예 매입이 안되기도 하거니와 내 이야기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읽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분 좋지만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각박한 세상이라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책 속표지에 깨알같이 편지가 쓰여진 책을 선물받거나 선물한 적도 많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책 안쪽에 편지나 메모를 쓰는 대신 포스트잇을 사용한다. 

손으로 쓴 글씨는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109쪽)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반가웠다. 주로 1970~1990년대에 쓰여진 책 속 글들은 마치 인쇄한 것처럼 바르고 정갈하게 쓴 것도 있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듯 휘갈겨쓴 것도 있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이름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버거웠던 시절, 책을 읽고 한 생각과 삶에 대한 고민과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한 글자 한 글자에 빼곡히 담겨 있다. 

글뿐만이 아니다. 책갈피에 납작하게 숨어있는 네잎클로버나 빛바랜 편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심지어는 대여학자금 신청서까지. 나도 헌책 속에서 바삭하게 마른 작은 은행잎이나 단풍잎을 발견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소소한 마음 혹은 소원을 담고 있을 그 작은 잎들은 잊고 살았던 감성을 되살려주는 선물 같아서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청춘(靑春)은 말 그대로 푸른 봄 같은 시절이다. 그러나 "정말 푸름은 푸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르게 하는 것에 있(73쪽)"다. 20~30년 전의 젊은이들은 아마도 이것을 무척이나 고민했던 것 같다. 그들은 "문학을 토론하고, 역사를 보는 눈을 닦아 현재의 의미를 성찰하며, 자신의 존재 또는 사유의 근거를 철학에서 찾으려 노력(139쪽)"했다. 그 근본이 바로 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트 한 귀퉁이에, 아끼는 책 한 켠에 자작시 몇 줄쯤 부끄러움 없이 끄적일 줄 알았다(181쪽)." 지금의 청춘들은 더 풍요로운 시절을 살면서 그 푸름을 잃어가고 있음을 이 책은 아쉬워하고 있는 것도 같다.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생생한 당시의 현실을 보여주는 책 속 글씨들. 그 글을 쓴 사람들은 아파하고 고민하면서도 작은 메모에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부러웠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점점 치열한 낭만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이 암담하긴 마찬가지이고, 청춘은 여전히 청춘인데 과연 변한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 젊은이들은 그때의 젊은이들처럼 책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할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속의 글씨들은 내게 추억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말을 걸어왔다. 왜 그때처럼 책 속에 글을 쓰지 않지? 왜 책으로 마음을 전하지 않지? 왜 책을 읽고 울고 웃고 생각하지 않지?라면서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헌책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소중한 마음을 담은 이 책들은 왜 주인의 품이 아니라 헌책방에 오게 되었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나타난 것은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답을 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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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2 - 오월(吳越)격돌
이지청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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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2권에서는 오나라와 초나라의 본격적인 대결이 벌어진다. 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손자병법'의 전술들이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손무의 책략들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이 전략들이 빛을 발하며 오나라는 승승장구한다. 

 

싸움은 곧 속임수다. 소신은 불 속에서 밤을 꺼낼 때 기쁨을 느낍니다. 난제야말로 소신의 재능을 한껏 드러나게 해주니까요. 


전쟁이 시작되면서 2권은 1권과는 완전히 다른 속도감을 선사한다. 빠른 전개와 묵직하고 호쾌한 액션, 혀를 내두르게 하는 머리싸움이 어지럽게 펼쳐지면서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새로운 인물들도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의 머리도 한층 어지러워진다.  


 

2권의 백미는 고작 6만 명의 연합군으로 수십만의 병력을 보유한 초나라에게 '이길' 생각을 하고 전쟁을 계획하는 손무의 대담함이다. 그는 자신만만한 동시에 신중하고, 이기기 위해서 속임수도 사용하지만 결코 비열하지 않다.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승리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장군, '죽는다'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담지 마십시오. 살아있기에 승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은 병법서답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을 쓴 책이다. 하지만 손무는 어떻게 하면 많은 적병을 죽일 것인가를 연구한 것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손자병법> 2권에는 당대의 대학자 '공자'가 등장한다. 그의 대사를 보면 손무가 '손자병법'을 통해서 추구한 목적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이론은 내 '인의예지'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 손무와 공자가 꿈꾼 평화로운 세상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저 '유토피아'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세상은 점점 더 잔혹하고 냉정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손자병법' 속에서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만이 아니라 손무가 이 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진짜 목적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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