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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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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최인호'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도 그 이름을 아는 것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무거울 것이다. 등단 후 약 50년 동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그는 힘든 투병 생활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천생 작가였다. 최인호가 그의 글만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전에 그의 마지막 글이 담긴 유고집 『눈물』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벗이여, 그대에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죽어 버린 제 육체의 거부할 수 없는 마지막 자백입니다."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는 순간 쉽사리 책장을 넘길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이 책이 천주교 신자로서의 최인호가 쓴 기록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다. 종교를 가져본 적도 없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무척 읽기 힘든 책이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기를 여러 번.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주님에게 바치는 한 천주교 신자의 고해성사'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한 작가의 절절한 고백'으로 이 글을 읽자고. 최인호가 이 원고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책은 나에게 조금씩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작가의 영적 고백은 여전히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파우스트』 『삼국유사』 『향연』 등 장르를 뛰어넘는 다양한 작품들 속의 종교적 코드를 자신의 생각과 매끄럽게 연결하는 솜씨는 감탄스러웠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펜을 놓고 싶지 않았던 작가의 고집은 페이지 곳곳에 스며있었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개로 글 자체의 매력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작가의 이런 뜨거운 열망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작가로 죽고 싶었던 고인의 길고 긴 기도였다. 병을 얻고, 신앙을 가짐으로써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떴을 작가가 스스로 죽음을 예견하고 쓴 글들이 가지고 있는 성찰의 깊이는 감히 파헤쳐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작가의 고통스럽지만 순결한 여정은 마치 한 편의 여행에세이처럼 사진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를 알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수많은 이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인 최인호의 최후의 글들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한 최인호를 만나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육체는 탁상 위 눈물자국처럼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지만 그 영혼만은 이렇게 글로 남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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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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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리움이라 말할 때 사라진 꿈들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었다.(226쪽)

나는 '김광석'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좋아하는 노래 몇 곡이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이 노래들이 김광석의 곡이라는 것을 안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김광석이 그만큼 좋은 노래를 많이 남긴 가수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그가 남긴 노래들은 편안하고 아늑하다. 사람들에게 미소와 눈물을 주는 노래 뒤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한 권의 시집 같은 느낌이었다. 단지 글이 짧아서가 아니다. 운율이 느껴지고, 마음을 울리고,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그래서 낙서 같은 글도 그냥 슥 읽고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그의 글을 읽으며 김광석은 솔직하지만 솔직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으리라 조심스럽게 상상해 봤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 김광석'과 관련된 네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첫번째가 '새로움', 두번째는 '삶과 사랑', 세번째는 '세상을 보는 시선', 마지막으로 '노래'이다. 


버릴 수 있는 자만이 새로움을 맛볼 수 있다.(49쪽) 

김광석은 새로움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익숙함에 안주하고픈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마음 중 한쪽이 승리하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지 않았나 싶다.  


삶이란 어떻게 보면 시종일관 기다림인 것만 같습니다.(60쪽) 

김광석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아프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고, 빠르고 급한 세상 속에서 '틈'과 '여유'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알고는 있어도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들을 그는 삶 속에서 조금씩이라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사람, 사람, 참 어리석은 동물이다.

스스로 함정을 파놓고 그 안에서 행복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민하는 답답한 생물(113쪽)

김광석은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너무 빠르게 변하고, 전통을 소중히 하지 않고, 획일화된 사람만을 선호하고,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을 바로잡을 힘이 없음을 인정하지만 적어도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꿈에서라 볼 수 없는 세상을 노래로 본다.(162쪽) 

사실 앞의 세 가지 키워드가 모두 '노래'로 수렴된다.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계기는 '어쩌다 보니'였지만 그는 역시 태생이 음유시인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들려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노래만큼이나 아름다운 글을 읽다 보니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작가로서 책도 몇 권 냈을 것 같다. 


김광석은 한없이 외로워했지만 그래도 '행복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기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이 하나하나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이다. 미처 완성되지 못한 그의 다섯번째 앨범에 실릴 예정이었던 노랫말들을 작게 소리내어 읽으며 그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아쉽고, 아쉽다. 김광석의 부재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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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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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소중한 것'이 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이란 일부러 끄집어내지 않으면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의 목적어』는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답한 '내게 소중한 것'을 집계하여 1위부터 44위까지 정리하고 순위 밖의 단어 6개를 추가해 총 50개의 단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카피라이터다운 독창성과 창의성을 십분 발휘하여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책 디자인도 무척 예쁘다. 가끔 억지스럽다 싶은 부분도, 너무 썰렁하다 싶은 구절도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꼽은 가장 소중한 것 1위는 '가족', 2위는 '사랑', 3위는 '나'였다는 결과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편 생각만큼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중한 것으로 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과 사랑과 나를 지키기에는 너무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분투하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기도 해서 마음 한켠이 쓸쓸해졌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식 뒤집기이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A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과감히 B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상식을 비틀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꿈'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먹고 살기 위해 꿈을 버릴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자조는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꿈에 대한 강요로 바뀌어 버렸다. 세상은 없는 꿈을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사람들을 닥달한다. 꿈조차 스펙이 되어버린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저자는 "꿈이 없"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꿈을 찾기 위해 조급해하지 말라고, "세상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 많지 않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반면 읽다가 가슴이 뜨끔해지는 구절도 있었다. 37위를 차지한 '일'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일을 찾지 못하고 방황만 하고 있는 내게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어 주저한다면 영원히 일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며 신랄하고 냉정한 한 마디를 던진다. 9위에 등극한 '믿음' 파트도 그렇다. "도대체 믿을 만한 구석 찾기 어려운 게 나라는 사람"이지만 "형편없었던 기억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폼 나는 기억 하나만 붙드는 것"이 자신을 믿는 길이라는 구절을 보며 나는 스스로를 너무 폄하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그림을 빼면 단어 하나당 2~3쪽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글들을 보며 나의 인생과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동시에 이 책에 나온 50가지 중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분명 '나'이다. 나를 소중히 하는 것이 곧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믿고 사랑하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나'라는 존재를 소중히 하고 싶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소중한 것'을 꼭 찾아보기를 바란다.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글귀 하나를 남기며 리뷰를 마친다. 

 

내 길을 가십시오. 내 길을 가는 사람에게 늦은 출발은 없습니다. 느린 속도도 없습니다. (346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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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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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의 심리에 대해 알려준다는 에세이는 어지간하면 읽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 호기심에 몇 권 읽어보았다가 실망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100명이면 100가지 성향이 있는 것인데 이런 에세이는 어쨌든 명료한 '답'을 내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편견에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비유될 정도이니 성별에 따른 눈에 띄는 차이점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존재할 리 없다. 그래서 『남자를 위하여』를 받아들었을 때도 걱정이 앞섰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조금 있었다. 

 

  일단 열린 마음으로 읽기로 결심하고 책을 펼쳤다. 그동안 남자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들이 다소 풀렸다. 예를 들면 남자는 '본능적으로 감정을 배제'하기 때문에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는 것, '자신의 감정언어가 폭력적'임을 알고 있다는 것, '대단히 사려 깊고 용기 있는 남자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등이다. 특히 남자의 폭력성에 대해 서술한 3부는 남자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폭력이 곧 범죄라고 인식하는 대신 죄가 되는 폭력과 죄가 되지 않는 폭력을 구분하려고 드는 남자들이 얼마나 여자들에게 위협이 되는지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남자들의 습관적인 폭력(육체적/감정적 폭력 모두)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공감이 갔다.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이 책 역시 다른 책들과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 단적인 예로 저자는 미혼모에 대한 남자들의 편견은 비판하면서 스스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여자에게도 소중한 물건이 있지만 그것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보석류, 명품 가방, 옷과 구두. 그것은 대체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물건들이다.(110쪽) 

  그럼 보석, 명품 가방, 옷, 구두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라는 건가. 내가 특이한 건지는 몰라도 내게 보석, 명품 가방, 옷, 구두는 큰 의미가 없는 물건들이다. 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외계생명체쯤 되는 걸까. 남자의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자를 고정관념에 밀어넣은 점은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용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한 페이지 이상이 인용문이다. 전체 책의 40% 정도는 인용문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다른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것은 좋으나 인용한 책의 신뢰도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모르겠다. 인용문 외의 근거는 저자 주변 남자들의 사례나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 정도이다. 남자가 아무리 단순하다고 해도 붕어빵처럼 틀에 넣어 찍어낸 존재가 아닌데 이렇게 미약한 근거로 남자를 설명하려 들다니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꿈꾸는 남자도, 남자가 꿈꾸는 여자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23쪽) 

  결국,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위의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독자의 자세이다.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스스로 판단해서 내 것으로 만들 부분과 버릴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성별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이다. 그러니 서로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고, 서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낮추고, 진심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배운 점은 이것이다. 좋은 점도 있는 책이지만 고백하건대,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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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 버니 1
사카키바라 미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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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체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를 다시 잘 살펴보니 아니나다를까 캐릭터 원안과 히어로 디자인을 한 사람이 『제트맨』의 작가 카츠라 마사카즈이다. 그래서 조금 더 검색을 해봤더니 『TIGER&BUNNY』는 동명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만화화한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체와 히어로물이라는 점은 일단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제목이 타이거 앤드 버니? 호랑이와 토끼? 표지 그림에 비해서 너무 동화적인(?) 제목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제목의 비밀은 책을 읽으면서 이내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두 히어로의 이름(혹은 별명)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넥스트'라고 불리는, 초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히어로가 되어 범죄나 재해 현장에서 활약하는 가상의 시대이다. 「히어로 TV 라이브」는 넥스트들이 사건을 해결하거나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각 히어로에게 점수를 매겨 '킹 오브 히어로'를 뽑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던 예전 모습은 사라지고 히어로들은 점차 연예인화된다. 연예인처럼 자기관리를 하고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으려 노력하는 히어로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두 히어로가 바로 와일드 타이거와 버나비이다. 이 둘은 회사의 방침으로 히어로계 최초의 콤비가 된다. 둘은 콤비지만 성격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딴판이다. 타이거는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며 성격이 막무가내이고 능청스럽다. 반면 버나비는 쇼맨십이 뛰어난 전형적인 스타형 히어로로, 냉철하고 까다롭다. 



왼쪽이 버나비, 오른쪽이 타이거이다.


이 손발 안 맞는 콤비를 보니 콤비 영화의 전설(?) 「투캅스」가 떠올랐다. 적당주의자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선배 형사와 완벽주의자이고 냉정한 성격의 후배 형사가 콤비가 되어 활동하면서 점점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이다. 이 만화도 나중에는 그런 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했으니 결론이 같더라도 조금 더 참신한 전개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타이거와 버나비 외에도 많은 히어로가 등장하여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엄청난 힘을 지닌 '록 바이슨', 쿵푸 소녀 '드래곤 키드', 바람술사로 불리는 '스카이하이',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히어로계의 아이돌 '블루 로즈' 등 다양한 히어로들이 나오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응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설정은 바로 '회사'에 소속된 히어로들의 '국가'의 인정을 받아 범죄와 재해현장에 출동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민영화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히어로물에서 주인공들은 눈에 띄지 않게 경찰을 도와 범죄자를 잡거나, 오히려 경찰에 쫓기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런 히어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TIGER&BUNNY』의 히어로들이 참 낯설다.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힘쓰고, 자신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특별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활약하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활약하든 특별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에게 중요한 것은 '힘을 올바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히어로물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교훈이다. 『TIGER&BUNNY』는 타이거를 통해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친숙하지만, 그래서 진부할 수밖에 없는 주제가 이 만화 속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옷을 입고 새롭게 다시 태어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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