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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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짝은 한쪽 손이 의수(義手)였다. 피부색과는 확연히 다른 노란색의 움직이지 않는 기묘한 손은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폭력적이고 성격이 거친 내 짝을 함부로 놀리는 아이들은 없었다. 나 역시도 언제나 긴소매 옷을 입고 화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아이가 싫고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아이의 거친 언행과 차가운 표정은 남들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순수하다. 순수하다는 말은 대체로 좋은 의미로 해석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은 오히려 잔인함과 통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왜 나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는 행위를 진심으로 즐거워하곤 한다. '다르다'는 것을 따돌림과 괴롭힘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교육 탓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마음은 해맑아서 더 잔인하다. 


쇼야도 그랬다. 점점 현실에 눈뜨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이 불안했다. 따분함을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인 쇼야에게 있어 함께 놀 친구가 없어지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따분함을 떨쳐내야 했다. 그래서 귀가 들리지 않는 신기한 생물(!)인 쇼코에게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목소리를 듣는다는 당연한 행위가 불가능한 쇼코는 쇼야에게 도와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장난감이었다. 그는 순수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이다. 과녁을 심하게 빗나가버린 화살은 결국 그대로 쇼야에게 돌아와 꽂히고 만다. 순수해서 잔인한 것은 쇼야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되돌리려고 애써도 이미 때는 늦었고, 쇼야는 스스로 결론을 지어야만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은 쇼야의 삶을 의외의 방향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시작'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고, 내일을 미리 알 수 없다. 그래서 종말이라 생각했던 것이 때로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혼자서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보일지도 모른다. '목소리의 형태'가. 그 형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끝'인 줄만 알았던 삶이 가슴 벅차게 다시 시작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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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시키 1
오쿠 히로야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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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스스로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돈도 권력도 없고 마음껏 기대거나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주머니를 털어 산 맥주 한 모금과 갈 곳을 잃은 무의미한 한탄 말고는 내일을 또 버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초능력이 생겨 나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복수하거나, 약자를 구원하는 멋진 히어로가 되는 꿈을 꾼다. 망상이면 어떤가. 그렇게라도 속에 쌓인 울분과 땅끝까지 떨어져버린 자존감을 추스를 수 있다면 나쁠 것도 없다.



이누야시키 이치로는 평범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한 가장이다. 죽도록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지만 가족들은 누구 하나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외모로 소심하고 자신감 없이 한평생을 산 이누야시키는 어느날 시한부 판정까지 받고 만다.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대던 이누야시키는 결국 공터에서 반려견 하나코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때 갑자기 허공에서 빛이 번쩍 하더니 원인모를 폭발이 일어난다. 그 이후 이누야시키는 상상도 못했던 '힘'을 얻게 된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간을 넘어선 힘을 가지게 된 존재는 과연 인간인가 아닌가, 다른 하나는 초인적인 힘을 얻었을 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뤄졌던 해묵은 주제이지만, 여전히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이다. 작가인 오쿠 히로야는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설정을 통해 진부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독자에게 던진다. 


불의를 보면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힘이 없어 늘 손해만 보던 이누야시키는 자신에게 생긴 '힘'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기 시작한다.  이누야시키는 힘을 얻음으로써 가족과 직장이라는 굴레를 벗고 비로소 스스로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공터에 우연히 함께 있다가 이누야시키와 같은 힘을 얻게 된 소년 시시가미 히로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한 사람이 선(善)을 택하고 다른 약속 악(惡)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누야시키도 시시가미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본다고 해도 앞에서 말한 두 질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도,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고 답을 구하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해 사유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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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우스 1
나카타 하루히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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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우스』를 주목하게 된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강렬한 표지 이미지, 둘째는 '레비우스'라는 주인공의 이름, 가장 중요한 셋째는 「IKKI」 연재작이라는 것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만화잡지 「IKKI」가 어느새 발행작 띠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오노 나츠메나 이가라시 다이스케 등 「IKKI」를 통해 좋아하게 된 작가들이 유독 많다 보니 이 작품에 끌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타일리시'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레비우스』는 거침과 정교함을 동시에 지닌 작화가 매력적이다.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대신 인물은 더욱 세밀하게 표현하여 집중도를 높이고, 격투 장면의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담긴 메시지 또한 무겁다. 인간의 싸움과 죽음을 오락거리로 삼던 로마 시대 잔혹성의 상징인 콜로세움을 미래로 끌어와 변하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곧 디스토피아의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배경은 미래지만 인간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거나 평화로워지지 않은 모습이다. 


어두운 미래를 비추는 희망은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람들 앞에서 싸우는 투사들의 삶이다.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내지르는 그들의 주먹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첨단화된 몸으로 가장 원초적인 싸움을 하는, 미래와 과거가 기묘하게 결합된 기관권투에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탐욕과 너무 많이 변해버린 바깥세상의 부조화가 담겨 있다. 


전쟁의 상처로 마음이 얼어버린 레비우스는 그 부조화의 가장 큰 희생양일 것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비정상적인 강함,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야수의 본능을 가진 레비우스는 오로지 자신의 목표 하나만을 위해 전진하는 외로운 전사다. 기관권투의 세계에서 위를 향해 돌진하면서 그가 찾는 것은 무엇일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갈지 무척 궁금해진다.


매력적인 주인공과 묵직한 스토리, 안정된 연출이 돋보이는 『레비우스』는 독자에게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람보다 돈과 권력이 중요해진 세상에서 문명의 발전과 대의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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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닥 한끼
오카야 이즈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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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는 끼니를 챙겨먹는 행위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재료를 구해서 요리를 하고, 먹고 뒷정리하는 과정을 세 번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한끼를 먹기 위해 하루의 1/3을 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끼니를 챙긴다는 행위는 이토록 어렵다. 일분일초를 아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슬로우라이프는 어쩌면 불필요한 환상에 불과하다. 돈만 있다면 끼니를 때우는 것은 간단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과연 먹는다는 것은 그저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족한지 말이다.


『후다닥 한끼』는 제목 그대로 혼자 후다닥 먹기 좋은 레시피를 소개하는 작품이다. 읽다 보면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도,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충분히 '풍성한' 한끼라는 생각이 든다.
먹을 것이 풍부해진 요즘 사회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생존의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취미이자 즐거움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는 무엇을 먹든 즐겁지만 혼자 하는 식사가 즐거움이 되려면 만들기는 간단하지만 맛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로 베리에이션이 가능한 핫케이크나 양 많은 반찬을 활용할 수 있는 장아찌 볶음밥 등이 작품에 등장하는 좋은 예다. 


심플하면서도 몽실몽실한 그림체는 『후다닥 한끼』를 좀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디테일이 과감하게 생략된 간단요리의 비주얼은 '후다닥 한끼'라는 제목과 무척 잘 어울린다. 게다가 맛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해서 '먹는 것'이 이 만화의 전부는 아니다. 원초적인 '먹는' 행위를 통해 '혼자 사는 싱글녀'의 일상을 보여준다. 혼자 사는 여자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먹고 싶지만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음식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 기억이라든가 이유없는 산책이 좀 켕긴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취향에 따라 첨가하는 향신료처럼 작품을 향기롭게 만들어 준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지만 잘 먹는 것은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의 끌어올리는 중요한 조건이다. 혼자여도 바빠도 '잘' 먹자. 슬로우 푸드가 아니어도, 웰빙이 아니어도, 후다닥 만들어 후다닥 먹어도 즐거운 나만의 한끼를 즐겨보자.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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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라 1
히우라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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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육지. 나는 섬이 가진 탁 트인 분위기와 어딘지 원시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좋아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섬에서 살고 싶기도 하다. 몇 번을 가도 아름다운 영원한 파라다이스 제주도, 마음속 깊이 흠모하는 분의 고향이라 더 특별한 거문도, 친구와의 첫 해외여행에서 진짜 휴식을 경험하게 해 준 태국의 꼬창까지, 섬은 마치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경이로운 새로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현실의 찌질함은 바다에 모두 던져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친구가 살고 있는 우란시라스 섬(이하 '우라라')으로 무작정 떠난 미네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인생의 리셋 버튼을 꾹 누르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하면 더 나은 삶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 말이다.

나한텐 이제 소중한 게 아무것도 없어.


도망치듯 온 우라라에서 미네는 조금씩 상처를 딛고 새로운 기운을 얻기 시작한다. 그리고 순정만화에서 빠질 수 없는 꽃미남들과의 인연도 시작된다. 친구 나츠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우라라 키친'의 까칠한 셰프 하마자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외모를 가진 뛰어난 수완가 쿠보가 바로 그들이다. 배신당한 상처로 다시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미네에게 이들과의 미묘한 줄다리기는 활력과 동시에 새로운 고민을 심어준다.


근데 여기 있으면 '뭔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런 느낌은 없거든.(중략) 여기로 돌아왔을 때 '아아, 살아갈 수는 있겠다' 싶더라. 왠지 안심이 된달까....
쿠보의 이 말은 '우라라'의 의미, 나아가서 '섬'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나아가기는커녕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허락되는 곳, 그것이 곧 이상적인 장소이다. 생존이 보장될 때 새롭게 시작할 여유와 용기도 샘솟는 것이니까 말이다.


변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늘 떠나기만 할 수는 없다. 떠나고 정착하고 다시 떠나고 정착하며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떠날 때마다 많은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채우면서 말이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없기에 욕심을 버리게 되는 곳, 우라라로 떠나자. 그곳에서 삶은 더 충만해질 것이다.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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