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매
다니구치 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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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대륙 선주민(인디언)은 문명의 잔악함을 뼈아프게 겪은 민족이다. 한때 창작물이 사랑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21세기가 되면서 많이 잊혀진 듯했다. 『하늘의 매』는 오랜만에 인디언을 다룬 작품이기도 하지만 거장 타니구치 지로의 이름 때문에 기대감이 높았다. 인디언을 다루지만 인디언이 아니라 일본 무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흥미로웠다. 


전(前) 아이즈 번사 히코사부로와 만조는 고향 일본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온다. 꿈을 안고 온 미국에서 다시 좌절을 겪은 둘은 우연히 아기를 출산한 인디언 여인을 구조한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오글라라 수 족의 일원이 되어 인디언의 영토를 침식해 들어오는 미국 정부군에 대항한다. 

타니구치 지로는 일상 에세이부터 SF까지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는 작가이다. 『하늘의 매』는 역사물이면서 히어로물이다. 뛰어난 실력과 기발한 전략으로 적을 무찌르는 히코와 만조의 활약은 인디언과 정부군의 전투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스토리에 만화로서의 재미를 부여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백인은 악(惡), 인디언은 선(善)으로 선악을 단순하게 설정한 것이다. 히코와 만조를 통해 사무라이가 곧 정의인 것처럼 미화한 점도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많은 삶을 파괴했는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얼마나 추악한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다시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짓 약속을 거듭하는 미국 정부에 농락당하는 인디언의 모습이 힘없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져 마냥 남의 이야기로 읽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난 이따금... 내가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묘연해지곤 해. 언제까지고 처단해야 할 적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질 않아. 이대로 걷잡을 수 없이 검은 구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가고 있는 것 같아.


역사가 스포일러라서 결말은 예측 가능하지만 '하늘의 매' 히코와 '바람의 늑대' 만조가 이후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상상해보면 즐거울 것 같다. 이 기회에 아메리칸 대륙 선주민의 역사를 좀더 공부해봐도 좋겠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며 얻은 편리함에 다시 삶을 파괴당하는 우리에게 그들의 삶과 역사는 미래를 위한 지침이 될 것이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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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아버지 2
네코마키 지음, 오경화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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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타마와 다이키치 할아버지가 함께 보낸 사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1년으로 끝나기엔 아쉬웠던 할아버지와 타마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또 한 권의 책으로 돌아온 것이 기쁘다. 다이키치 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은 여전히 한적하고, 이웃들은 시끌벅적하지만 평화롭다. 타마와 할아버지가 공유한 할머니의 추억도 변함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피로 연결된 가족이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고, 함께 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이키치 할아버지도 그렇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타마와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챙기고 걱정하는 아들이 있다. 떨어져 살다 보니 아들은 휴대전화를 잘 받지 않는 할아버지를 타박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할아버지는 휴대전화가 귀찮다. 


하지만 늘 곁에 있던 타마가 사라지면 다이키치 할아버지도 애가 탄다. 알아서 오겠지 하고 기다리다가도 평소보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열일 제치고 찾아나선다. 그런 할아버지 앞에 사흘만에 아무일 없었다는 듯 불쑥 나타나 선물을 내미는 타마의 모습을 보며 다이키치 할아버지는 말한다. 

약속해주지 않으련? 만약의 순간이 오더라도 제발 혼자선 떠나지 말아다오. 우리는 동지 아니냐. 끝까지 함께 가는 거야.


가족이란 무엇일까. 1인 가구와 한부모 가정 등 여러 형태의 가족이 생겨나면서 사전에서 말하는 '가족'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같은 집에 살지 않는 가족도 많고,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가족으로 살기도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이키치 할아버지와 아들 츠요시처럼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안부가 가장 궁금한 관계, 할아버지와 타마처럼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의 일상을 꾸려나가는 관계가 좋은 가족이 아닐까. 가족구성원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할 때 행복한 것들도 찾아나가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상과 개념도 변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현대화될수록 가족의 의미가 사라져간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옳았던 것이 틀린 것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의 의미가 변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가족은 '무엇이든 함께' 하는 친족이 아니라 '따로 또 함께' 삶을 살아나가는 동지이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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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에게 바친다 1
야마모토 사호 지음, 정은서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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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부모들이 꺼리는 친구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고물상이었다. 어머니는 없었고 내 기억으로는 형제도 없었다. 친구의 집은 어마어마한 양의 고물이 널려있는 고물상 구석의 한 칸짜리 방이었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물의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장소였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위험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그곳에 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우리집은 고물상과 가까웠다. 엄마는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매일같이 고물상에 놀러갔다. 나는 그곳이 좋았다. 비록 낡았지만 장난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좋아했던 것은 누군가 버린 마론인형이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하고 머리카락도 군데군데 잘려있었지만 내게는 로망이었다. 전학을 가게 되면서 그 친구와도 더이상 만날 수 없었지만 그때의 마론인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친구의 얼굴도, 고물상의 위치도 이제는 떠올릴 수 없는데 말이다. 오카자키에게 바친다를 읽으며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야마모토가 좋아했던 오카자키의 집처럼 마론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친구네 고물상은 내게 특별한 장소였다.


 

어릴 때는 어린아이 나름대로 즐거운 일도 많고 아픈 일도 많았겠지만 기억 속 과거는 모두 필터를 씌운 사진처럼 흐릿하다. 그저 마론인형처럼 단편적인 사물이나 장면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또렷하게 떠올려(가공되거나 상상력을 첨가한 부분도 있겠지만) 만화로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기억력이 새삼 부러웠다.


 

요즘처럼 과거를 그리워하고 되살려내려고 모두가 안간힘을 쓴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80~90년대를 추억하며 그때가 좋았지, 아름다웠지, 따뜻했지,라고 할 만큼 우리는 힘들고, 추하고, 차가운 시대를 살고 있나보다. 작품의 재미나 의미와는 별개로 자꾸만 과거를,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를 끄집어내어 공감을 얻는 현상 자체는 조금 슬프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나이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계획보다는 과거에 대한 환상과 향수가 더 큰 기쁨이 된다니 말이다. 벗어나고 싶었던 과거가 이제는 돌아가고픈 고향이 되었다.


 

하지만 환상일지라도 과거는 소중하다. 과거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살벌한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함께 했던 친구들과 즐거웠던 기억들이 무거운 한 발을 내일로 내디딜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과거를 돌아보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시간의 에너지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오카자키도 작가에게 그런 의미의 친구일 것이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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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아버지 1
네코마키 지음, 오경화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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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 만화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가 바닷가에서 주운 깨끗한 핑크빛 조개껍질처럼 귀한 아이템이었던 수년 전과 지금은 너무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고양이 만화는 흔하디 흔한 모래알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와 할아버지리뷰 요청을 받았을 때 내심 기뻤다. 연필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단순하고 동글동글한 선으로 그려진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너무 귀여웠다.


 

고양이 타마와 다이키치 할아버지는 한적한 바닷마을에 살고 있다. 할머니가 데려온 새끼 길고양이였던 타마는 할머니가 죽은 후 할아버지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타마와 다이키치 할아버지의 '별일 없는' 1년을 계절별로 보여준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별일 없는 만화라서 좋았다.


 

한달에 단 하루만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쉬고 싶지만 일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불안하고 삭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바짝 마른 일상의 틈새로 버터처럼 스며드는 고양이 만화는 여전히 훌륭한 치유제다. 남보다 덜 자야 하고, 바빠야 하고, 많은 것을 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보란듯이 여유롭게 마이웨이를 실천하는 고양이. 그네들의 삶이 부러워 다음 생에는 꼭 고양이로 태어나 좋은 집사를 만나고 싶다는 황당한 꿈도 꿔본다.


 

고양이 만화는 비슷비슷한데도 각각 매력적이다.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특히 할아버지와 타마가 나누는 대화가 귀엽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라는 게 이런 거겠지. 고양이는 언제나 인간에게 신비로운 존재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한 가족으로서의 고양이라면 분명 신비로운 텔레파시가 통할 것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만화 고양이와 할아버지. 특이할 것 하나 없는 이 만화가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역시 고양이 만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가 나오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가 나오고, 그들의 일상이 평화롭고 애틋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타마와 다이키치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함께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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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1
마유즈키 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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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을 읽다가 이 질문이 떠올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흔하게 보고 듣던 질문이다. SNS에도, TV 프로그램에도 클리셰처럼 등장하던 이 질문이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새벽녘 감성에 젖은 이들이 적어올리는 사랑에 대한 글들도 통 보이지 않는다. 모 에어컨 CF에서 '청춘이 사랑을 멈출 수 있'냐고 할 때마다 탄식 섞인 헛웃음이 나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까, 시대가 사랑을 가치없게 만들어서일까. 무엇보다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슬펐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하라 히데노리가 떠올랐다. 『겨울 이야기』 『내 집으로 와요』 등 현실적인 커플의 일상사를 그린 연애물로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이다. 너무 남성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이다. 이 작품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를 떠올린 이유는 멋지지 않은 45세 아저씨를 좋아하는 17세 여자아이라는 설정이 남성의 판타지를 반영한 것으로 느껴져서다. 어딘지 고전적인 그림체도 그런 느낌에 한몫을 했다. 


 

시작부터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는 이 묘한 사랑 이야기가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사랑이 '오글오글한 사치'나 쟁취해서 전시하는 전리품 정도로 여겨지는 세상에 사람들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코다마 유키의 『백조 액추얼리』를 보면서 순수한 사랑이란 이제 픽션에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씁쓸해졌다. 인간이 가진 가장 평등하고 소중한 감정인 사랑이 언제부터 이렇게 가 닿기 부끄러운 감정이 되었을까.



비슷한 교육과 경제 수준을 지닌 사람을 찾아 남들 다 하는 데이트를 하며 적당한 때 적당한 조건을 골라 결혼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로지 '사람' 하나만 보고 끌리는 마음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랑도 비정상일 수는 없다. 남들이 다 싫어하는 조건을 가졌어도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그게 사랑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깔끔하고 스타일 좋은 비슷한 나이대의 훈남이 아니라 '머리가 좀 떴거나, 가끔씩 바지 지퍼가 열려 있거나, 스트레스로 머리에 10엔 동전만한 땜빵이 있거나, 큰 소리로 재채기하고 그러는 사람'을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타치바나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그런 사랑이 당연한 세상이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나이를 먹고 삶이 힘들고 연애가 사치여도 '사랑'은 그런 것이면 좋겠다. 비처럼 젖어들어 햇살처럼 퍼지는 사랑에 공감하며 살고 싶다.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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