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있어 1
나나지 나가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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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척 보기에도 씩씩해 보이는 소녀가 돌담길을 힘차게 걷고 있다. 담 위에 올라 앉은 길냥이마저 소녀의 에너지에 자극받은 듯 눈빛에 힘이 들어가 있다. 『걷고 있어』의 표지 그림은 한 컷으로 주인공 쿠코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뒷표지를 보면 앞표지와 같은 그림에 세 명의 남자가 끼어든다. 쿠코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미소년은 쿠코의 소꿉친구인 혼혈아 키요. 스케치북을 들고 정면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키 큰 남자는 쿠코의 친한 오빠인 오우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통화를 하며 귀찮은 듯 걷고 있는 소년은 쿠코의 동네로 이사 온 뉴페이스이다. 이 세 남자는 평온하던 쿠코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캐릭터와 다수의 남자들이 엮이는 순정물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걷고 있어』는 얽히고설키는 사랑 이야기보다 쿠코의 성장 스토리에 더 무게를 두고 출발한다. 성장은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서 시작되고, 균열은 쿠코를 둘러싼 세 남자와의 관계가 변화함으로써 시작된다. 


키요


오우타


뉴페이스(아직 이름 나오지 않음)


동성친구보다 편했던 키요가 갑자기 진지하게 다가오고, 친한 오빠로만 여겼던 오우타에게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새로 이사 온 녀석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쿠코의 상처를 쿡쿡 찔러댄다. 쿠코는 이 모든 변화가 두렵고 어색해서 피하고만 싶다. 


쿠코, '일상'이나 '평범'이 무너지면 뭔가의 시작이야.


이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쿠코의 친구 '이부'의 존재이다. 이부는 작품 속에서 일종의 관찰자 역할을 맡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단순히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부로 인해서 독자들은 쿠코에게 감정이입하기보다 관객의 입장을 유지하며 쿠코의 행보를 상상하고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성숙해진 작품을 들고 돌아온 나나지 나가무. 이 작품을 통해 작가 또한 쿠코와 함께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행복하기를. 쿠코도, 그리고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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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군함 1
니시 케이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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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시 케이코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가진 작가이다. 일단 독특한 그림체가 눈에 띈다. 꽃잎처럼 여린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매력을 지닌 그림체는 니시 케이코만이 가진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또한 특이한 소재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작품이 물 흐르듯 읽기 편하다. 하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이 너무 무난하게 느껴진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랑과 군함』은 여중생과 중년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떠올리지는 말 것.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소녀 취향의 순정만화니까. 자상한 성격의 동안(童顔) 꽃중년을 짝사랑하는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귀여운(?) 작품이다. 그런데 이 수줍은 로맨스에 '군함'은 왜 등장하는 걸까?



주인공 카나는 할머니에게 맡겨져 시골에서 살고 있다. 군함 부품을 만들던 흔적이 곳곳에 남은 마을에서 소심한 카나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늘 외톨이로 지낸다. 카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짝사랑하는 미나토 면장님을 보며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미나토의 친구이자 에로만화가인 이리이치와 같은 반 친구이자 카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아키라가 끼어들면서 카나의 일상에는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전작 『남자의 일생』보다 업그레이드(?)된, 무려 스물여덟 살 차이 커플(아직 짝사랑이지만)이 등장하는 만큼 『사랑과 군함』의 결말은 예측하기 어렵다. 사랑 하나면 충분한 열세 살 철부지의 고백을 산전수전 다 겪었을 마흔 한 살의 남성이 받아줄지부터 의문이니 말이다. 게다가 단지 친구라고 하기에는 매우 미묘한 미나토와 이리이치의 관계, 카나를 자꾸 괴롭히는 아키라의 소꿉친구 요우의 존재는 카나의 사랑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낭만적인 연애를 꿈꾸는 순수 소녀 카나의 짝사랑은 과연 이루어질까? 미나토와 이리이치의 관계는 정말 친구일 뿐일까? 마을 여기저기에 보이는 군함의 잔해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궁금증만 잔뜩 남긴 채 끝나버린 1권은 다음 권에 대한 호기심을 100% 충전시켜 준다. 믿고 보는 니시 케이코니까 이번 작품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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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미궁 - 상 - 한국어판
오가와 히데하루 지음, 츠리마키 노도카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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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童話)'는 말 그대로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표지가 너덜너덜해지고 페이지마다 까맣게 때가 탈 만큼 읽고 또 읽던 동화책 한 권을 기억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 꿈과 희망의 원천이던 책의 원전이 사실은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로워하거나 환상이 깨져 슬퍼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동화 속의 왕자와 공주가 시련을 넘고 사랑을 이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않는 내용의 동화도 매우 많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니 밝고 행복한 내용의 동화보다는 신비롭고, 선과 악도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동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거의 대부분 '그림'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출판사에 따라, 나라에 따라, 버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달라지는 그림들은 동화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만화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클 수밖에 없다. 제목부터 신비로운 『동화미궁』은 판화 같기도 하고, 벽화 같기도 한 표지그림과 더불어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책이었다. 


아직도 일본의 동화는 조금 낯설지만 '미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어둡고 신비로우며 몽환적인 짧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은 조금 기묘했다. 공주님과 왕자님도 나오지 않고, 해님과 달님도 찾을 수 없다. 대신 지금 우리가 사는 곳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다.  



「영주님의 사발」이나 「달밤과 안경」은 매우 유쾌하다. 둘 다 겉모습으로 쉽게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역시 동화에는 교훈이 빠져선 안된다. 「어느 날 밤 별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작품이다. 역시 동화에는 감동도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모밀잣밤나무 열매」는 지극히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림을 너무 좋아하지만 작가로 살 수 없는 학생에 대해 얘기하는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꽃을 피우는 열매는 말이다. 정말 한줌뿐이란다"라는 말은 커다란 말뚝처럼 심장을 쿵 내려찍는다. 

 

알 수 없는 으스스함 속에 웃음과 감동과 따뜻함이 담긴 이야기들로 꽉 찬 작품 『동화미궁』. 한 번 입구로 들어가면 그 아름다운 환상에 빠져 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고 일상이 상상을 짓누르는 순간에 펼쳐보면 어떨까. 어쨌든 책에는 마지막 페이지가 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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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 버니 1
사카키바라 미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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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체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를 다시 잘 살펴보니 아니나다를까 캐릭터 원안과 히어로 디자인을 한 사람이 『제트맨』의 작가 카츠라 마사카즈이다. 그래서 조금 더 검색을 해봤더니 『TIGER&BUNNY』는 동명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만화화한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체와 히어로물이라는 점은 일단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제목이 타이거 앤드 버니? 호랑이와 토끼? 표지 그림에 비해서 너무 동화적인(?) 제목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제목의 비밀은 책을 읽으면서 이내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두 히어로의 이름(혹은 별명)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넥스트'라고 불리는, 초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히어로가 되어 범죄나 재해 현장에서 활약하는 가상의 시대이다. 「히어로 TV 라이브」는 넥스트들이 사건을 해결하거나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각 히어로에게 점수를 매겨 '킹 오브 히어로'를 뽑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던 예전 모습은 사라지고 히어로들은 점차 연예인화된다. 연예인처럼 자기관리를 하고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으려 노력하는 히어로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두 히어로가 바로 와일드 타이거와 버나비이다. 이 둘은 회사의 방침으로 히어로계 최초의 콤비가 된다. 둘은 콤비지만 성격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딴판이다. 타이거는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며 성격이 막무가내이고 능청스럽다. 반면 버나비는 쇼맨십이 뛰어난 전형적인 스타형 히어로로, 냉철하고 까다롭다. 



왼쪽이 버나비, 오른쪽이 타이거이다.


이 손발 안 맞는 콤비를 보니 콤비 영화의 전설(?) 「투캅스」가 떠올랐다. 적당주의자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선배 형사와 완벽주의자이고 냉정한 성격의 후배 형사가 콤비가 되어 활동하면서 점점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이다. 이 만화도 나중에는 그런 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했으니 결론이 같더라도 조금 더 참신한 전개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타이거와 버나비 외에도 많은 히어로가 등장하여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엄청난 힘을 지닌 '록 바이슨', 쿵푸 소녀 '드래곤 키드', 바람술사로 불리는 '스카이하이',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히어로계의 아이돌 '블루 로즈' 등 다양한 히어로들이 나오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응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설정은 바로 '회사'에 소속된 히어로들의 '국가'의 인정을 받아 범죄와 재해현장에 출동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민영화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히어로물에서 주인공들은 눈에 띄지 않게 경찰을 도와 범죄자를 잡거나, 오히려 경찰에 쫓기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런 히어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TIGER&BUNNY』의 히어로들이 참 낯설다.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힘쓰고, 자신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특별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활약하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활약하든 특별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에게 중요한 것은 '힘을 올바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히어로물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교훈이다. 『TIGER&BUNNY』는 타이거를 통해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친숙하지만, 그래서 진부할 수밖에 없는 주제가 이 만화 속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옷을 입고 새롭게 다시 태어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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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에덴 1
요시오카 리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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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모두가 나를 싫어할 거야.

마시로는 가족들의 압박 때문에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시달려 왔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언제나 공부만 하느라 친구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해 언제나 혼자였다. 그런 마시로의 소원은 어린 시절 마법의 사탕으로 자신을 위로해 준 소년을 다시 한 번 만나는 것이다.

넌 아주 착한 아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오빠가 사탕 줄게! 이건 진짜 굉장해. 소원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사탕이거든.

그러던 어느 날, 마시로는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서 '마법의 사탕'을 받고, 그 청년이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소년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그동안 아껴왔던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마시로는 처음으로 용기를 낸다.

변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한 걸음 더.

<하얀 에덴>은 평범한 한 명의 소녀와 세 명의 훈남이 얽힌 전형적인 소녀풍 로맨스 만화이다. 게다가 세 명의 훈남 중 두 명은 형제이고, 한 명은 소녀와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 사이여서 굉장히 복잡한 전개가 예상된다. 별볼일 없는 소녀에게 잘난 남자 여러 명이 대시하는 비현실적인 내용의 순정만화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만화에서 눈길을 끈 것은 '소녀의 성장'이다. 부모님을 위해 자신을 억눌러 온 마시로에게 '자기 의지'나 '자기 욕심'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늘 외롭고 힘들게 살던 소녀가 한 남자를 만난 후 드디어 자기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엄청난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을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하얀 에덴>은 보여준다.

 

그러나 마시로가 사랑하게 된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 다카노 아이는 사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째서 그렇게 마음을 닫고 살게 되었는지, 마시로와는 어떤 관계로 발전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바로 마시로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까 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용감한 첫걸음을 내디딘 소녀의 앞길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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