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랜드
서레이 워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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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창시절 누가 봐도 마른 몸을 가졌는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나도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나보다 훨씬 마른 친구들까지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50센티미터에 39킬로그램인 친구도, 163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인 친구도 자신이 너무 뚱뚱하다며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여자들이 모이면 어디서나 다이어트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교사부터 부모, 친구들까지 여자의 몸매를 품평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품평당하는 쪽도 그것이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면서 깡마른 몸이 여자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던 다이어트 공화국의 여자들이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고통스러운 다이어트를 의무라고 생각해 왔는가? 왜 의류회사는 여성복을 아동복보다 작게 만드는가? 왜 걸그룹 체형이 모든 여자들의 이상이 되어야 하며, 걸그룹은 왜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가? 왜 남자들의 뱃살은 인격이고 여자들의 뱃살은 자기관리 실패의 증거인가? 뚱뚱한 사람은 왜 놀림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은가? 뚱뚱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당연했던 것들이 죄다 이상한 것으로 바뀌었다. 

『다이어트랜드』의 주인공 플럼(얼리샤 케틀)의 체중은 13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다. 플럼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인 웨이스트 워처스 회원이며, 안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살을 빼고 나면 입을 작고 예쁜 옷들을 몰래 사서 모으고 있으며, 비만수술을 고려 중이다. 10대 타깃의 잡지 <데이지 체인>의 편집장 키티를 대신해 키티에게 오는 10대 여자들의 상담메일에 답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플럼은 독특한 차림새의 여자가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음을 눈치챈다. 그에게서 『다이어트랜드 대모험』이라는 책을 받게 되고, 그 책을 쓴 베레나 뱁티스트를 만나면서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나는 이미 뚱뚱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태였다. - 191쪽

플럼의 인생은 뚱뚱한 몸 때문에 괴로움과 자학으로 가득차 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해야 하고, 때로는 이유없이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연애도 꿈꿀 수 없다. 살만 빼면 인생에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효과도 없는 다이어트를 반복하고, 자괴감과 좌절감 속에서 허우적댄다. 137.9킬로그램이라는 플럼의 몸무게는 상상하기 힘든 수치다. 하지만 플럼이 겪는 고통에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날씬하고 더 섹시하고 더 가녀린 몸을 가져야 한다고, 그것이 여자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세뇌받으며 살았으니까. 이 책이 말하는 '다이어트랜드'는 가상의 왕국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자체다. 

하지만 『다이어트랜드』는 여자들을 옥죄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납치와 협박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 반라의 여자 사진으로 도배된 잡지 표지를 반라의 남자 사진으로 바꾸게 하는 데 성공한 '제니퍼'가 등장하면서 반격이 시작된다. 이 통쾌한 미러링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때부터 소설은 베레나의 지휘 아래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변화하는 플럼과,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제니퍼의 활약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불합리한 세상을 깨닫고 변해가면서 플럼은 제니퍼의 정체를 알게 된다. 

『다이어트랜드』는 재미있는 소설인 동시에 꼭 필요한 소설이다. 남자들이 주축이 되고 여자들은 배경밖에 못 되는 콘텐츠의 바다 속에서 여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는 놓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즐겨야 한다. 여자를 '섹시하고 화끈하고 떡치기 좋은' 대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대중문화는 여자가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데에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서 책, 영화, 만화, 드라마, 공연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다이어트랜드』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찾아서 봐야 한다.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연대하고, 갈등하고, 화합하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온갖 일들을 겪었음에도 겉으로는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변신을 거쳤다.  -319쪽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나 역시도 변신을 거쳤다. 나는 더이상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여성의 대상화에 불편을 느낀다. 그리고 더 많이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전하고 싶어졌다. 변신한 모습으로 세상 속에 뛰어든 플럼처럼,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이어트랜드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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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 왔니 5 - 완결
이윤희 지음 / 애니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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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애의 방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일상에 스며들면서 정형화된 사랑 표현법들이 일방적인 인내와 희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로맨스를 주제로 한 창작물을 보는 것이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처음 『우리집에 왜 왔니』를 추천받았을 때도 심드렁했다. 연애 만화는 예전부터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고, 창작물 속 연애의 모습도 진일보했음을 깨달았다.

아홉살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 항주에 한달간 머물게 된 재희는 그곳에서 호텔집 아들 버들이를 만난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즐거웠던 추억을 간직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 재희는 생존 최적형 어른으로 성장한다. 스물여덟살이 된 재희는 어느날 아버지로부터 버들이가 자신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는다. 재희는 지저분하고 촌스러운 버들이(연이)의 첫인상에 실망과 당황을 감추지 못하지만 결국 그를 집에 머물게 하고,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연이와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재희는 매사 갈등을 빚는다.



'쟤랑 얘기하면 피곤해. 묘하게 대화의 초점도 어긋나는 느낌이고... 혹시 이런 게 문화 차이인 걸까.
...나쁜 의도가 있어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열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걸.' - 1권 149쪽
가진 거라곤 당당함 하나뿐인 여자가 다 가졌으나 사랑받은 경험이 없는 남자를 만나 연애하는 (주로 일본) 만화가 지겹도록 나오던 시절 로맨스 만화에 질렸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순정만화 작가들은 일찌감치 다양한 방식의 러브스토리를 시도했다. 『우리집에 왜 왔니』는  그 완성형에 가깝다. 21세기 한국의 현실을 주재료로 판타지를 적절하게 양념한 수작이다. 사사건건 성희롱과 빈정거림을 일삼는 백과장, 젊은 여자가 택시나 타고 출근한다고 핀잔하는 택시기사, 칭찬이라고 생각해서 초면에 '미인이다'라는 인사부터 던지는 경태 같은 사람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여성혐오가 생활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희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예쁜 외모 덕분에 편하게 살았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 재희 같은 여성들의 고충이 연이의 말을 통해 잘 드러난다.

"경태의 말을 듣고 나니, 실제로 너는 겉모습이 무척 예쁘니까 오히려 사람들에게 칭찬이라는 이유로 쉽게 평가당하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겪어보지 못했고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라..." - 2권 41쪽



『우리집에 왜 왔니』가 묘사하는 현실에서 직장생활이 빠질 수 없다.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성희롱, 집까지 일을 끌고 들어와야 하는 현실에 분개하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는 재희의 모습은 곧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미래가 없는 계약직 생활을 버티고 있는 은경도 마찬가지다. 유지원 과장은 유니콘 같은 존재지만 유사모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매 장면마다 공감하며 봤다. 그에 반해 연이의 한국 생활은 너무 무난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연이가 단단한 멘탈로 평화로운 일상을 지탱하고 있었기에 재희는 그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있었고, 재희가 아득바득 살아가면서도 요령있게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했기에 연이가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재희가 대표하는 현실과 연이가 대표하는 판타지가 적당하게 혼합되어 있는 것이 만화로서 『우리집에 왜 왔니』가 가진 미덕이다.  

로맨스 묘사는 백점 만점에 백점이다. 남자의 박력으로 포장되는 폭력, 끈기있는 구애로 포장되는 스토킹, 여성의 선택권을 차단하는 가스라이팅, 현실감 없는 삼각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재희가 민망할 정도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애정행위에 동의를 구하는 연이의 모습은 기습키스나 포옹, 공개고백보다 훨씬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지점에서 연이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라는 설정은 적절하다. 연이는 한국어가 서툰 만큼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항상 확인받고 설명한다. 재희는 조금씩 방향이 어긋나는 연이의 말에 짜증을 내면서도 그의 말을 바로잡아주고 이해하려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더 섬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아이러니. 돌려 말하고, 어림짐작하고, 알아주려니 기대하고, 그렇지 않아서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연애가 과연 바람직한지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처럼 네게 힘든 일이 생기면 또 이유를 묻고 싶어질 거야. 내 멋대로 네가 내게 의지해주고 마음을 나눠줬으면 하고 바라게 될 거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너와 함께 지낼 수 있겠어?" - 4권 235~236쪽

'역시 나는 그앨 좋아하나봐. 좋아하니까... 그애가 귀여워 보이고 웃으면 설레고 찾아와주면 기쁘고 네 앞에서 자꾸 눈물이 나고 네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그래. 집에 가면 말하자. 문을 열자마자 말하자.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 5권 108~111쪽

연애가 주제지만 두 주인공이 각자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역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애틋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깊게 느끼게 한다. 재희의 친구 정인과 연이의 형 류준, 그밖의 조연들에게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해 작품의 세계를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 현실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우리집에 왜 왔니』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몇번을 읽어도 새롭고 설레는 좋은 만화다. '오랫동안 행복하게'라는 말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재희와 연이만큼은 정말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둘의 영원한 빌어본다. Happily ever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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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에게 장미를
시로다이라 교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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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1부와 감성적인 2부가 대조적이면서도 연결된다. 명탐정이 여자라서 좋고, 완벽하지 않아서 좋다. 여성혐오와 대상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소설. 2부의 반전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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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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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부에는 놀랍고도 위대한 잠재력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정적인 기회가 오지 않는 한 그 숨겨진 재능이 발휘되는 일은 거의 없다. 
- 서문에서 발췌

젊음과 늙음의 경계는 몇 살일까? 5년 전만 해도 '나 늙었나 봐'라는 말은 백 퍼센트 농담이었다. 내가 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체력도 기억력도 5년 전보다 눈에 띄게 저하되었지만 '늙었다'고 말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억울하다. TV를 켜면 내 또래 연예인들이 '적지 않은 나이' '중년'으로 불린다. 그런데 아직 젊다고 굳이 주장하는 것도 왠지 자존심 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늙었다는 증거인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인데 왜 늙는다는 것은 약점이 되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알래스카 극지방 유목민이 있다. 혹독한 겨울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부족에게는 돌봐야 할 두 늙은 여자도 있다. '칙디야크(Ch'idigyaak)'와 '사(Sa')'라는 이름의 두 여인은 늙었다는 것을 무기로 온갖 불평을 해대며 부족을 힘들게 한다. 그 때문에 부족에게(심지어 가족에게도) 버림받는다. 젊은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것이라 여기던 여든의 칙디야크와 일흔 다섯의 사는 날벼락 같은 상황이 닥치자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보기로 한다.

부족의 보호가 계속 이루어졌다면 불평과 어리광으로 말년을 장식했을 칙디야크와 사는 버림받음으로써 '위대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는다. 둘은 옛 기억을 되살려 사냥을 하고, 식량을 저장하고, 야영을 하며 정착할 곳을 찾아 나아간다. 작가 벨마 월리스는 칙디야크와 사가 생존을 위해 도전하고 조금씩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두 늙은 여자』의 건조한 문체는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만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장점도 있다. 200쪽도 되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분량은 독자에게 지루함을 안겨주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노인은 유목민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고령화 사회를 두려워하는 전세계적인 분위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젊음은 장점이고 늙음은 단점이라는 것이 옳은 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칙디야크와 사가 거친 자연을 헤치고 끝내 윤택한 생존에 성공하는 데 많은 나이는 그다지 약점이 되지 않는다. 긴 시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오히려 더 훌륭한 생존수단이 된다.

죽음이 가까워오는 나이는 무기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차피 곧 죽을 거 뭐라도 해보자는 각오를 하게 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도전은 젊은이의 전유물도 아니다. 스스로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살리는 두 늙은 여자의 생존기는 짧은 청춘에 집착하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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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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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애시대>는 젊은 부부가 아이를 잃은 고통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를 잃은 부부가 실제로 많이 헤어진다는 것을 이 드라마 때문에 처음 알았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이하 『당신의 별』)도 아이를 잃고 각자의 상처만 바라보느라 서로를 놓쳐버린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다른 점이라면 『당신의 별』의 부부는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별』은 시작부터 강렬한 전율을 선사한다. 불길하게 울리는 우진의 전화벨과 아내 혜인의 첫 마디.

"당신, 나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첫 여섯 페이지만으로 이 소설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독자를 빨아들인다. 혜인은 왜 이런 말을 남긴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우진과 함께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380쪽짜리 소설은 단숨에 목적지에 도달한다. 『당신의 별』은 장르소설답게 우진이 진범을 찾아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진짜 중요한 것은 진범의 정체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조금씩 파괴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면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먼저 우진의 딸 수정이가 죽임을 당한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범죄나 사고 피해자의 유족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은 이유를 모르면 남은 가족들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우진이 진범을 찾아나선 것도 바로 수정이가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고, 시간이 지나면 희미한 흔적으로 남는, 언젠가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이 아니다.(45~46쪽)

또 한 가지 『당신의 별』이 지적하는 문제는 갈 곳을 잃은 10대의 탈선이다. 가정과 학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결핍을 다른 이에 대한 폭력으로 표현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뉴스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윤기, 승찬, 재강은 가족의 무의미함과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그대로 반영한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성공한 부모를 둔 덕으로 잔혹한 범죄자가 가벼운 처벌을 받음으로써 결국 피해자의 고통만 키우는 우리 사회의 모순된 사법 제도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누가 봐도 좋은 아빠였지만 딸이 죽은 후에야 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음을 깨닫는 우진의 모습도 좋은 부모자식 관계란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당신의 별』은 딸을 죽인 진범을 찾아내는 추리극이기도 하고, 불시에 가족을 잃은 이들에 대한 위로의 기도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을 쓰던 도중 가족을 잃은 작가의 절절한 슬픔이 행간에 배어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단원고 학생의 빈방을 찍은 사진에서 시작된 작품이라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2014년 4월 16일의 진실이 모두 드러나기를 다시 한번 빌어본다.

하지만 '만약'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되돌리지도 못할 시간을 붙잡고 후회와 자책을 해봐야 남는 것은 더 깊은 우울뿐이다.(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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