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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4년 9월
평점 :
송재이는 벌써 일곱 번째 죽음과 출생을 반복하고 있다.
여섯 번이나 죽는 동안 한 번도 어른이 된 적이 없다.
재이는 언제 어떻게 죽든 2005년 5월 3일 아침 9시 5분에 엄마 김은혜 씨에게서 태어난다. 체중 3.45킬로그램, 키 51센티미터, 혈액형은 A형으로.
전생의 기억을 가진 송재가 아무리 당부해도 부모들은 벌써 여섯 번이나 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 탓에 재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그들의 세상도 돌연사했다.
"재이는 무병장수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딱 한 번만 어른이 되어보고 싶다."
부모가 아이가 환생이라는 것을 안다는 설정이 좀 특별했다. 주인공 혼자만 비밀을 간직한 채 미래를 바꿔보려 고군분투하는 식의 설정이 일반적인데···.
생후 26개월 2주 차의 아이가 유창하게 전생을 털어놓았다는 장면에서 엄마 은혜는 충격과 당혹감에 눈물이 쏟아지고 속이 메슥거려 끝내 토사물을 게워낸다. 아빠 유진은 현실감을 잃고 “은혜야, 괜찮아, 이거 꿈이야. 우리 조금 더 자자.”라고 말한다.
나라도 아마 유진과 같은 반응을 했을 것 같다. 어떻게 현실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재이는 이 환생 시스템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게
매번, 매 순간이 선명하다는 거였다.”
인생 2회 차에 만난 상담 센터 선생 소영은 조금 무서웠다. 소영은 재이의 죽음이 만든 종말의 생존자였다. 정소영은 재이의 유일한 조력자이다. 재이는 인생 2회 차에 엄마 때문에 익사한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소설에서 제일 불쌍한 인물은 소영이다. 헌 몸으로 다시 스물아홉 살로 다시 태어나는 참담함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소영은 재이를 만날 명분을 갖기 위해 석사 논문을 쓰고, 안티에이징을 하며 부모의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소영의 인생은 재이라는 동그라미를 훌라후프처럼 허리에 두른 직선이었다. 세상이 박살 났다 재조립되는 동안 그녀 홀로 머나먼 어딘가를 향해 뚜벅뚜벅 늙어갔다.”
매회 차마다 빌런도 바뀌고, 죽음의 시기와 방식도 바뀌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살아 봤고, 똑같은 환경과 비슷한 상황에 놓임에도 상황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이상하게도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재이의 세상이고 당연히 재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소영이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회를 거듭할수록 혼자만 늙어가기 때문에 재이를 원망할 법도 한데 소영은 그러지 않는다.
계속 주어진 삶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재이가 마지막 삶에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소영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지막 말에서 시련과 좌절에서 번번이 나를 일으켜 세운 건 한때 소녀였던 J들이었다고 말한다.
나의 곁에도 소영과 같이 나를 어른으로 키워내기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한 소영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누군가의 소영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