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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어떤 글은 빨리 읽기가 가능하고, 어떤 글은 느긋한 읽기가 요구된다. 아니 에르노의 글들은 절대 빨리 감기로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녀의 글들은 한 폭의 유화그림과도 같다. 아니면 사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끊임없이 스스로 말하면서도 독자에게 질문하는 듯하다. 이번 아니 에르노의 책은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글쓰기의 최고봉에 위치해있는 듯하다. 그 기교면이 아니라 그 방법 면에서...
사실 소설은 왜 소설 그대로의 작법을 따라야 하는지, 왜 글쓰기가 정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아니 에르노의 실험적인 방법의 글쓰기는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찡하니 찌르는 구석이 있다. 절대 답은 없다는 것... 내가 정답을 만들어간다는 것... 그런 면에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오히려 요즘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글보다 훨씬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바깥 일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에르노의 글들은 외부를 향해있다. 스스로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치치 않고 오히려 바깥 세계에 대한 묘사에 집중한다. 그럴수록 스스로가 보인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이름 부르기와 비슷하다. 내 이름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름을 불림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인식한다. 남이 없는 나가 과연 존재?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바깥 없는 안이 과연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는 철저히 외부를 묘사하고 그것에 대해 관찰하고 있지만 실상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부각 시켜준다. 일기 앞 부분에 등장하는 노동자의 망가진 두 손과 후반에 등장하는 작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 반증이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걸인에 대한 짤막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걸인? 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도 깔끔한 외양을 갖추고 있으니... 아니, 걸인은 왜 꼭 깔끔하지 않아야 하나? (이것 또한 걸인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한다. 그가 세워둔 팻말을 읽어보고 돈을 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는 없었고,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구걸하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라고...
바깥에서 스스로를 찾는 것... 그녀의 글에 풍기는 없는 자들, 빈곤한 자들, 외로운 자들, 쓸쓸한 자들, 고독한 자들의 모든 모습들... 그 모습들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었다. 타인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이 숨어있다. 타인을 잘 관찰할수록 스스가 보인다면 우리 모두는 내면 일기에 못지않게 바깥 일기를 써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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