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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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소설 속 [최후 비밀]은 무엇일까? [아무]는 또 무엇일까? 아무가 알려주리라는 최후 비밀, 그 마지막 절대적 진실은 무엇일까? 뇌 2의 흡입력은 참으로 놀랍다. 1에서 풀리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비로소 2에서 진실을 드러낸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사뮈엘 핀처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던 뤼크레스는 성 마르그리트 병원과 그 죽음의 관계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최종적인 차이, 즉 동기의 유무에 대해서 알게 된다. 유일하게 병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던 뱃사공 움베르토...모두가 갈망한 최후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과연 사뮈엘의 죽음은 인공지능과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쾌감이 지나치면 고통이 된다. 맞는 말이다. 지나친 쾌락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다. 고통의 다른 말일뿐이다. 흔히들 행복감과 쾌락을 구분 지어서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행복은 긍정적 표용감이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는 반면 쾌락은 한번 그 시점이 지나가면 끝인 것이다. 예를 들어 놀이 기구를 탈 때 처음에는 그 시작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후 낯선 느낌과 황홀감에 소리를 지르지만 이내 몇 번 반복되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쾌락이란 절대로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끝을 모르는 존재들이다. 그 끝을 알고 제임스 올즈는 놀라운 발견을 하고서도 비밀에 부쳤건만 뇌 클리닉 센터의 실험에 참가한 체르니엔코는 그 발견을 이용하게 된다. 그 결과 놀라운 철학자들의 이름을 따서 생쥐들을 명명하고 실험을 하고, 급기야는 결국 그 최종 실험체는 사람이었다.

절대 동기란 무엇일까? 오직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동기의 유무라고 한다면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게 되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인간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면 인공 지능은 기꺼이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동기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서 인류에게 경고를 했다.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기후 위기나 핵위기가 아니라 인공지능에 있다고 말이다. 인류의 놀라운 발견을 어떻게 쓸지는 앞으로의 인류에게 달렸다. 그것을 스스로의 멸망을 위해서 쓸지, 아니면 지구촌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해서 사용할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뇌]에서 앞으로 도달할지도 모를 인류의 미래를 그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음 그의 글들을, 소설들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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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 - 배신과 왜곡이 야기한 우리가 모르는 진짜 세계사
나타샤 티드 지음, 박선령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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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

나타샤 티드 (지음) | 박선령 (옮김) | 타인의사유 (펴냄)​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역사는 진실의 기록인가? 아니면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혹은 후대에 있을 비난을 피하기 위해 왜곡되거나 오도되기도 하는 것일까?

최근 회자되는 드라마 [연인]은 병자호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다.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와 그 당시 암울했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는 역사 드라마였다. 그 당시 조선은 사대주의 나라, 명을 섬기는 나라로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행위는 상당히 치명적이라는 것이 많은 역사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의 많은 남녀들이 포로로 청나라에 잡혀갔으며 다시 돌아올때는 여자는 화냥년이란 부르며(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지만 오랑캐가 묻은 여자, 즉 절개를 잃은 상징으로 표현됨) 업신여겼다고 한다. 실로 인간이 살기가 심히 어려웠던, 힘들었던 시기가 틀림없다.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상 픽션이지만) 포로들을 역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모의가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상당히 흥미로웠던 장면은 그 당시의 이야기들을 자신의 관점(유리한 관점)에서 이야기로 써서 남기는 점이었다. 그것은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직 그 상황을 넘기고 무마시키기위한, 스스로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여기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에서도 수많은 역사적 사실의 은폐가 나온다. 흑사병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이야기(흑사병에 투입된 의사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돌팔이였다는 것, 위생의 관념을 노스트라다무스가 도입했다는 것),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치의 상징으로 포장된 일(마리 앙투아네트는 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잔느라는 배신자의 영향 등으로 여론감정은 악화일로였다.)보어전쟁과 강제수용소에 대한 일(흑인 수용소의 경우는 최소 2만 명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 등 등

시민이 눈을 감고 침묵을 택하면 역사는 스스로 가진자에 의해 왜곡되고 변화된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은 전쟁 중이다. 가자 지구는 인터넷이 두절되어 그곳이 참상이 어떤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가자 지구에 가려서 얼마나 참혹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을 지 모른다. 또 미얀마는 어떠한가?

왠지 세상이 일촉즉발에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도대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일까? 거대한 역사적 흐름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꿈틀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그 행방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지난 역사로부터 배워야한다. 결국 진실은 언제고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두 눈을 가리고 두 귀를 막는 자에게 진실은 닿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진실이라는 무기는 갈고 닦아야한다. 그래야 원석이 보석이 되듯이 진실 역시 날카롭게 벼려질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도 진실 규명이 요구되는 일들이 많다. 천안함,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등 불과 한해 전에 일어난 일들도 진실규명을 하지 못하고 책임자들이 마땅히 스스로의 책임을 못 지는 상황에서 수년 전의 모든 일들은 과연 어떠할지.... 그래도 잊지 말아야한다. 잊지 않음이 바로 진실의 커다란 힘이니까, 그래야 더 벼리고 뾰족해질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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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바깥 일기 + 밖의 삶 - 전2권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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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는 옳다. 그녀의 글쓰기는 옳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올곧이 소설로 에세이로 사진으로 녹여내는 그녀의 방식은 놀랍도록 신선하고 고개를 끄덕여지게 한다. 자신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를 보는 듯하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는 그녀가 만든 또 하나의 우주다.

당신은 어떤 우주를 만들고 있는가? 그녀가 묻는 듯하다. 나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는? 스스로가 경험한 하루 하루가 마음과 몸에 새겨진다. 우리는 경험한대로 느낀대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결국 스스로의 모습이다. 경험한 것 이외에는 알 수없다.

에르노를 통해 나를 본다. 우주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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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6
소포클레스 지음,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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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소포클레스 (지음) |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 여기 누구보다 늠름하고 현명하면서 정의로운 영웅이 있다. 그는 오이디푸스이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영웅적 기질을 갖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영웅이더라도 타고난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너무도 비극적인 운명의 구덩이는 실로 영웅이 태어나기도 전에 깊고도 깊은 구멍을 미리 준비해놓았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다. 테바이의 왕이었던 라이오스 왕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신탁을 듣는다. 그리하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라이오스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사람을 시켜 갓난아기를 버린다. 다행히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되고 코린토스의 왕인 폴리보스에게로 입양된다. 후에 그는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신탁을 구하고자 델포이에 갔다 오는 길에서 라이오스를 만나서 서로 시비가 붙게 된다. 이에 아버지가 죽게 된다. 그는 코린토스로 돌아가는 대신 테바이를 택한다. 테바이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게 되고 죽은 왕의 자리에 왕으로 추대된다. 결국 신탁은 현실이 되었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곧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아무리 발버둥 쳐서 살아내 봤자 결국 죽음이라는 운명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신탁을 타고 태어났다. 이미 그 신탁이 불변한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인간이란 너무도 욕심이 많은 존재인가? 끊임없이 욕심내고 부정하고 더 가지려고 하고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처럼 남의 생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비극인 것이다.

안티고네는 한층 더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티고네 이야기는 시기적으로 테바이 3부작에 앞서지만 오이디푸스 사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권을 두고 다투게 되고 이때 에테오클레스가 폴리네이케스를 추방한다. 추방당한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가서 결혼하고 이후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서로를 겨눈 창날에 둘은 목숨을 잃는다. 이어 왕위를 차지한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지만 그의 누이 안티고네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결심으로 포고령을 무시하고 폴리네이케스를 묻어준다. 이에 격분한 크레온은 그녀를 동굴에 가둬 죽이고자 한다. 아버지 크레온의 결정에 분노한 아들 하이몬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어머니이자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어리석은 왕의 결정은 모든 인간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심지어 그 자체마저도 말이다. 여기서 소포클레스는 코러스를 인용하여 노년의 현명함에 대해 강조한다. 나이 들면 우리는 잔인함 대신 관용과 현명함을 갖추어야 하는데 여기 크레온은 자신이 만든 규정과 법령에 스스로 갇혀 모두를 파멸시켜버렸다. 결국 파멸 후 후회해 봤자 아무것도 건질 것은 없다. 스스로의 한숨밖에는...

고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현재를 다시 읽어야 한다. 노년의 현명함을 잃어버린 누군가를 경계해야 한다.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기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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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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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 정혜용 (옮김) | 열린 책들 (펴냄)​

아니 에르노의 밖의 삶은 외면 일기의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의 묘사 하나하나는 내면 일기보다 더 심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에르노는 그녀 자신의 주변 밖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덤덤한 시선으로 다룬다. 지하철역에서, 클럽 도서전에서, 길거리에서, 고속도로에서, 심지어 한 줄의 기사에서, 텔레비전 속에서 등등... 그곳들에서 들려오는 모습 혹은 소리들을 아니 에르노는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래서인지 아니 에르노가 느낀 밖의 삶은 왠지 독자의 삶과 다르지 않게 여겨진다. 우리 모두의 눈은 안을 향하지 않는다. 밖을 향해 펼쳐진다. 두 눈이 그러하고, 두 귀가 그러하고 입, 콧구멍 역시 밖을 향해 뚫려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오감으로 읽힌다. 덤덤하고 무심한 듯한 글쓰기가 이어지지만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화룡점정처럼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면서도 예리하게 표현한다. 즐거움을 거저 주고 싶다거나, 생물학적인 순수한 시간에 불과하다거나, 종말처럼 기차를 기다린다거나... 그녀의 일기처럼 쓰인 글들에는 그녀의 내면의 모습이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외면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사회적 모순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저 할 일은 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듯이 그런 울분 혹은 분노는 곳곳의 단락 속에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분노는 결코 분노 그 자체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분노일 수밖에 없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과 허무가 짙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오랜 여운이 남는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쓸쓸함, 허무, 여운... 그녀의 글들은 한 장의 스냅사진과도 같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카메라의 렌즈이고 책 속에 쓰여진 글들은 인화된 결과물이다. 결국 그녀의 밖의 삶은 그녀가 열심히 찍은 삶의 결과물과도 같다.

우리 모두의 밖의 삶은 어떠한가?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저 멀리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이다. 지구촌에서 현재 벌어지는 상흔들... 그것들은 결국 우리 모두의 내면에 남을 것이다. 그 사실은 어쩌면 너무 끔찍하기도 하고, 삶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리라는 사실... 명백하면서도 두려운 밖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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