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게임 마니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6
선자은 지음, 고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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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니또에게서 한 통의 쪽지가 도착한다. ˝ 죽어버려˝ 라고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증오를 받을 만큼 잘못한 일이 있는 걸까! 도대체 누가 이런 협박을 하는 걸까! 이제 더이상 즐거운 마니또 게임이 아니다. 아이들의 세계 또한 위험한 마니또 게임 같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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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새싹 인물전 35
김은미 지음, 홍선주 그림 / 비룡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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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권의 책을 읽기도 힘든데 유배 기간 동안 그 많은 책을 집필한 다산 정약용 이야기이다. 호가 왜 다산이 되었는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거중기를 만들었는지, 왜 수맣은 책을 썼는지 그 이유를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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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새싹 인물전 11
김선희 지음, 한지선 그림 / 비룡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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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편리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어릴 때 부터 책벌레였던 그는 눈이 아플 정도로 책을 봤단다. 너무 책을 봐서 아버지인 태종이 책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책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듯. 세종의 어린 시절, 왕이 되기까지, 왕이 된 후의 모습을 쉽게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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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새싹 인물전 35
김은미 지음, 홍선주 그림 / 비룡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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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장소는 남양주 마재.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자라고, 생을 마감한 곳이다.

실학 박물관도 구경하고, 다산 생가와 묘도 보고, 고구마도 캐고, 두부도 만들고 알찬 하루였다.


현장학습을 가기 전, 다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가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듯하여

새싹 인물전 <정약용>을 읽어줬다.

지난 번 혼자 읽어주다 머리가 핑핑 돈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나만큼 잘 읽어주는 여자 아이를 한 명 섭외하여 절반씩 읽어줬다.

훨씬 체력이 비축되어 좋았다.

이 아이는 내가 1학년 때도 담임한 아이인데 책을 아주 실감 나게 잘 읽어줘서

2년 전 그 때도 종종 나를 대신해서 책을 읽어주던 수제자이다.


남양주 마재에서 태어난 정약용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아 눈썹에 작은 흉터가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눈썹이 3개 인 듯해 보여 "삼미자" 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9살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자애로운 새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은 약용을 친모처럼 잘 돌봤다고 한다.

정약용은 성균관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며 정조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

정약용과 정조는 이 때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주고자 거중기를 개발하고,

배다리를 만드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실학자답게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있도록 여러 가지 방면에서 탐구하고 이를 알리고자 책을 펴냈다.

정조가 너무 총애한 탓이었을까!

정약용을 시기 질투하는 무리가 생겨나고 이들은 호시탐탐 그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마침 정약용 형을 비롯해 친척들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빌미로

정약용 또한 천주쟁이로 내몰려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강진으로 유배를 당한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떠나는 날, 

형제는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까 싶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한다. 


당파 싸움으로 혼란하던 시기에 태어난 정약용은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개혁 의지가 강한 정조를 도와 참 많은 일을 이룩하였다. 

무엇보다

강진에서 18년 귀양 생활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썼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탐구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학자 중의 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인품 또한 훌륭해 보인다.

모함을 받아 유배를 왔으니 그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였을까!

나 같으면 억울해서 화 병으로 책이 손에 잡히질 않았을 듯하다.

정약용은 원통해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듯하다.

오로지 백성을 위하는 마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그의 그런 온화한 인품 때문이었을까!

모진 고문과 오랜 유배생활에도 불구하고 75세로 장수하였다.

특이한 것은 회혼(결혼 6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과 제자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축복을 받을 만한 큰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실학 박물관을 구경하며

우리 반 아이들이 

"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어디 있어요?" 물어보자

안내하시는 분이 깜짝 놀라셨다.

"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하시자

" 우리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한다. ㅎㅎㅎ

역시 공부를 하고 가길 잘했다 싶다.

다산 생태 공원을 거닐면서도 다산의 일대기가 쭉 써져 있는데

우리 반은 어제 예습을 다한 거라 훨씬 이해를 잘했다.

책에 사회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지명도 나오고- 강진도 찾아봤다-

요즘 한창 상영하고 있는 영화 <사도>와 관련된 정조도 나오고 하니

여러모로 배경 지식이 넓어진 듯하다. 

이런 책은 혼자 읽는 것보다 부모나 교사가 배경 설명해 주면서 읽어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유적지로 현장학습을 갈 때는 이렇게 책을 한 번 함께 읽어보고 가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다.


아! 책을 읽고 알게 된 정약용 호의 의미는 이렇다. 

"다산" 이란 호는 강진에 유배갔을 때 뒷산에 차 밭이 많아서 다산이라고 지은 것이란다.

"여유당" 이란 호는 벼슬을 관두고 마재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산 스스로 집이름을  "여유당" 이라 지었다고 한다.

"여유"라는 의미가 참 멋지다.

겨울에 살얼음판을 건너듯이 조심 또 조심하고 두려워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사진을 보니 인상도 참 좋다. 고매한 인격이 보인다고 할까!


다산의 책 중에 가장 유명한  "목민심서"를 아직 읽어보지 못 했다.

외국에서도 관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의 지침서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언제가는 꼭 도전해 보리라. 

아이들과 어제 계산해 보니 18년 동안 500여 권을 책을 썼다면 평균적으로

한 달에 2권 정도 책을 쓴 셈이다. 

애들도 나도 놀랐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책 읽기 좋은 날들이다. 분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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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10-14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스러운 제 조상님이세요^^
그 당시 75세는 참으로 대단한 장수네요.
500여권을 집필하면서도 스트레스는 전혀 안받으셨나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이들이 얼마나 신났을까요?
흐뭇한 풍경입니다~~~~~

수퍼남매맘 2015-10-14 07:17   좋아요 0 | URL
어머나! 세실 님 조상이시군요.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집필하면서 화와 스트레스를 삭히지 않았을까 저 혼자 짐작해 봅니다. ㅋㅋㅋ

날씨도 정말 좋고, 정약용 생가 쪽이 조용하고 고즈넉하니 참 좋더라고요.
현장학습 가면 바글바글 해서 제대로 구경 못 하는데 여긴 그렇지 않아 좋았어요.
그야말로 슬로 시티!!!

2015-10-14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4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종대왕 새싹 인물전 11
김선희 지음, 한지선 그림 / 비룡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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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569돌 맞은 한글날이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가보니

"한글 큰잔치"를 하고 있어 좋은 구경을 했다.

그 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중고등 여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거였다.

딸 말을 들어보니 요즘 유행이란다.

그런 유행이라면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니 적극 찬성이다.

나머지 하나는 한글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들이었다.

대상은 자음을 이용해 동물을 꾸민 것이었는데

친근한 동물 곳곳에 자음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딸도 출품해 보라고 할 걸...

시내에 나가니 한글날 기분이 오롯이 느껴졌다.

 

한글날 하루 전이었다.

아이들이

 " 선생님, 내일 쉬는 날이죠?" 하길래

" 쉬는 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글날인 게 중요한 거야" 라고 말해주며

60분 이상 걸려 새싹 인물전 <세종대왕>을 끝까지 다 읽어주었다.

 

다 읽고나니 완전 방전되어 오후에는 내내 해롱해롱했다.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몇 시간 동안 음독했을까!

새삼 선조들이 존경스러웠다.

보통 때는 10-20분 정도만 읽어주고 끝내는데

다음날이 한글날인데다

책을 읽다 멈출 수가 없어 끝까지 읽다보니 나중에는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읽는 내내 

남자애들은 적절한 리액션을 하며  관심을 보이는데

여자애들은 내용이 어려운지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인지 딴 행동을 하는 아이가 몇 있었다.

보편적으로 여자애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자보다 늦게 생기는 듯하다.

역사는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답이 없는 듯하다.

부모가 아이들과 사극도 함께보고, 역사책도 읽어주면서 서서히 흥미를 이끌어 주는 법이 좋을 것 같다.

 

마침 국어 시간에 듣고 요약하기, 보고 요약하기 등 메모의 중요성과 메모 방법을 공부하고 있는 터라

들으면서 중요한 내용을 적당히 메모하라고 하였다.

어차피 독서 일기도 써야하고 말이다.

 

이야기는 태종의 아내, 즉 세종의 어머니가 꾼 태몽부터 시작된다.

태양을 꿀꺽 삼킨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왕비의 품에 들어오는 꿈이었다.

열 달 뒤,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태어난다.

태종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첫째 양녕대군은 시도 잘 짓고 글도 잘 썼으나 아버지처럼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좋아했다.

둘째 효령대군은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이며 부끄러움이 많아 나랏일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셋째 충녕대군은 책을 좋아하여 한 번 본 것을 외울 정도로 총명하며 마음이 어질고 착했다.

넷째 성녕대군은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알다시피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이 된 무서운 사람이다. 

하여 그는 자신을 이을 다음 왕의 조건으로 어질고 착한 것을 꼽았다고 한다.

거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 바로 셋째 충녕대군이었다.

이렇게 충녕은 스무 살 남짓된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조선은 태평성대를 누리는데....

 

책에서는 세종과 함께 했던 신하가 여럿 등장한다.

음악가 박연,

천문학자 이순지,

육진을 완성한 김종서,

과학자 장영실, 

그리고 집현전 학자들.

 

좋은 리더는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재능을 잘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여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 할 때

세종은 그러한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세종과 함께했던 사람을 보면 단박에 그걸 알 수 있다.

신분, 나이 등을 떠나 그 사람의 재능과 됨됨이를 보고 그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왕으로서 도와준 덕분에

태평성대를 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종이 다스렸던 30년 동안

문화, 예술, 정치, 학문, 과학 등 모든 분야가 발전했다는 게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세종이 신하를 향하여 크게 노하는 일화도 실려 있다.

세종하면 온화한 모습만 떠올리곤 하였는데

불의한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일화 하나를 소개해본다.

어떤 대감이 길을 가다 노비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사정을 물어보니 권채 라는 양반이 노비를 저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궁에 돌아온 대신은 이를 세종에게 아뢴다.

이에 세종은 권채를 당장 잡아들여 죄를 묻는다.

권채는 노비가 도망가서 법대로 했을 뿐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다고 한다.

권채는 바로 집현전 학자였다.

세종이 느꼈을 배신감....

세종은 권채의 이런 행동을 보고 더 노발대발하여

양반이라 할지라도 노비를 자기 맘대로 벌 주지 못 하는 법을 만들도록 한다.

 

또 하나 세종이 두 아들과 한글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대신들은 세종을 반대하기에 이른다.

중국의 것을 최고로 치던 그들에게 우리나라 글을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반대는 매우 극심하였다.

이에 세종은 대신들에게 또 한 번 분노한다.

"그대들은 언제까지 중국의 눈치만 볼 것인가?

중국이 큰 나라인 것은 사실이나, 중국의 말과 우리말이 다른데

우리말을 적을 글자를 만드는 게 어째서 잘못이란 말인가!"

이 부분 읽을 때 통쾌하였다.

중화 사상에 찌들어 있던 대신들을 꾸짖는 세종의 카리스마, 멋지다.

전에 봤던 사극 <뿌리 깊은 나무>도 생각나고 말이다.

신하들의 엉청난 반대에도 세종은 한글 창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두 가지 일화를 통해 세종이 온화함 속에 조용한 카리스마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백성의 아픔을 공감하는 리더,

아랫 사람의 잘못을 따끔하게 야단칠 수 있는 리더,

재능을 알아보고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리더,

옳은 일이라 생각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리더,

반대 의견이라 할지라도 힘으로 제압하지 않는 리더,

항상 공부하고 노력하는 리더,

그의 리더십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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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3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4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