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이었다.
가까운 마트에서 장을 좀 보고 더운 날씨 때문에 헉헉 대며 걷고 있었다.
반대편 쪽에서 초딩 남자 2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짝 아이를 따라왔다.
나란히 두 사람이 걸으면 꽉 차는 좁은 인도였다.
아이들이 수다 떨며 걷느라 속도가 느리자
다짜고자 아이들한테 버럭 화를 내며
두 아이의 가운데로 홍해를 가르듯이 밀치며 지나간다.
두 아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노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좋은 말로 해도 충분할 것을.
앞에 가는 사람이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짜증을 내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보며
참 씁쓸했다.
 
'난 나이 들어도 저런 안하무인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나이 들면 그 나이답게 아량이 커지고, 이해가 넓어지고 혜안이 생겨야 하거늘!
아이들이 무엇을 본받을까 싶다.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중에 고현정 씨가 나오는
" 디어 마이 프렌드" 가 있다.
고현정과 늙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참 잘 그려내고 있다.
역시 노희경 작가 답다는 생각을 하며 감탄하며 보고 있다.
너무 현실적이다 못해 너무 우울하다.
그 드라마 볼 때마다 
울 아버지 생각 나서 운다.
이제는 연락이 두절된 친구 생각도 나고.
요즘 자꾸 외로움을 느끼는 게 다 이 드라마 때문이다.
 
거기서 신구 씨가 하는 역할이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이다.
난 그런 남편이랑과는 하루도 같이 못 살 것 같다.
오늘 내가 본 그 할아버지도 그 캐릭터와 똑같지 않나 싶다.
곱게 나이 드는 것, 쉽지 않다.
아집만 세어지고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나이가 무슨 벼슬도 아니고
무조건 나이로 상대방을 제압하려 들고 말이다.
정말 그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거친 말이 나오려고 한다.
저렇게 안하무인인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만났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지 않듯이
나이 든다고 해서 아량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마침 내가 목격한 그 할아버지의 행태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아 옮겨 적어 본다.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그 할아버지 또한 젊은 노인의 한 사람인 셈이다.
숲을 보기 보다 나무에 집착하고
혜안보다는 불안함 때문에 버럭 화부터 내는 그런 안하무인.
앞으로 이런 젊은 노인이 정말 많아질텐데 참 걱정이다 싶다.
 
곱게 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노인은 지혜의 숲. 그러니까 전체를 보는 데 있다. 시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질수록 전체 맥락을 볼 수 있는 지혜가 더 확대된다는 것이 노인학의 일관된 연구결과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자아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는 ' 젊은 노인' 들이 많아질수록 전체를 보고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이 사라진다. 불안한 젊은이들은 나무를 보고, 불안한 젊은 노인들도 나무를 본다. 
 
중략
 
불안한 젊은 노인들이 보수의 이름으로 젊은 세대와 대립한다는 내 주장에 불쾌해하며 버럭 화부터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꾸 버럭 화부터 내는 것도 다 불안해서 그런 거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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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1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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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7 1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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