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컬링 (양장) - 2011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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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스위핑, 페블, 시트, 하우스, 브룸, 스톤.

이런 낱말과 연관되어 있는 운동 경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컬링"이다.

사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이 "컬링"이 그 컬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힌트가 다 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눈치 채지 못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가보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잠깐 컬링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와! 무슨 저렇게 재미 없는 경기가 다 있냐?' 싶었다.

한 사람이 맷돌 같은 돌을 던지자 두 사람이 열심히 대걸레 같은 것을 가지고 돌을 쫒아가면서 빙판을 문질러댔다.

한편으론 웃겼고, 한편으론 저런 게 무슨 운동 경기인가 싶어 금방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컬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완득이>이후 이렇게 열광한 청소년 소설은 처음이다. 

책을 읽고나서 운동 같지도 않게 느껴졌던 컬링이 참 철학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빙판 위의 체스"라는 별명을 가진 컬링이 궁금해져 경기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책 한 권이 이렇게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다니. 

작가는 참 위대한 사람 같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컬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료도 찾아 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도 해주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더불어 컬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음 좋겠다.

더 나아가

컬링 처럼 혹시 내 주변에 관심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컬링이 비인기 종목이고,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비주류 운동이듯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또한 그런 존재들이다.

이름 때문에 "으라랏차"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차을하를 비롯해서

며루치, 산적, 박카스 모두 그냥저냥하다.

작가 말대로 만년 후보 같은 아이들이다.

 

어느 날, 며루치와 산적이 을하에게 집적대며 컬링 이란 것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동계올림픽 중계 때 딱 한 번 스쳐가듯 경기를 구경한 것 뿐인데

그런 사람한테 컬링을 함께 해 보자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리고 왜 하필 나냐고? 라는 의문도 들었다.

넷이 하는 경기라면서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디서 조달하려고?

뭐? 강원도에 내려간 박카스라는 녀석이 있다고?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을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컬링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다.

 

학교나 집에서나 관심 받지 못하던 을하는

어느새 컬링에 빠져들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며루치와 산적이 왜 야구를 관두고 컬링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재능이 없어 이렇게 관심 받지 못하고 지내지만

산적처럼 뛰어난 재능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로 관둘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다 해봤지만 어느 것 하나 남다른 재능이 없어 

모두 관두고,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이류처럼 되어버린 을하.

반대로 동생 연화는 피겨 스케이트에 일찌감치 재능을 보인다.

이를 본 엄마는 연화에게 올인하고, 이 때부터 을하는 집에서도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맹모 삼천지교라고

엄마는 연화를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감행하고, 아버지만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가족이 된다.

 

을하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을 구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 견뎌내던 을하는 어느 날,

학교를 걸어나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웃 학교 야구부 연습 장면을 보게 된다.

그후로 매일 같이 야구 연습을 지켜보던 을하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한 명 있었다.

그게 바로 산적 " 강산" 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진짜 멋져 보였다.

그 강산이 하교 후에 흠씬 얻어맞고 있던 자신을 구해주던 "베어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산적은 왜 을하에게 컬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을까. 아무런 재능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 자신이 구해준 옆학교 비실비실한 남학생이 바로 을하하는 것을 산적은 알고 있을까. 

함께 컬링을 하며 친구 비스무레한 사이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산적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존재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또 을하 자신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아웃사이더였던  을하가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얻은 게 있다.

바로 친구다.

시종일관 말 많은 며루치, 자신을 구해줬던 은인 산적, 전지 훈련 장소를 제공해준 박카스.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연습하고 박카스가 있는 강원도 두메산골로 전지훈련하러 갔다오니 어느새 친하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온 이후, 늘 혼자였던 을하에게 친구가 생겼다. 컬링 덕분에 말이다. 

 

그 녀석들과 함께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 맞는 을하가 아니었다. 

을하는 산적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자

며루치와 합세하여 학교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정작 범인은 따로 있는데 교묘하게 산적을 엮어 산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들에 맞서는 둘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한편 학교라는 사회도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분노가 일었다.

을하는 산적을 위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용기와 정의감을 당당히 표출한다.

학주가 엄청 나게 폭력을 가해도 이에 굴하지 않았고,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라는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에 끝까지 저항하였다.

친구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컬링 팀을 향해 나도 몰래 " 힘내 화이팅 조금 더 버텨" 라며 간절히 응원했다.

 

을하가 안고 있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남다른 재능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그래서  무엇도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등.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을하 같은 아이들은 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을하에게도 재능이 있을지 모르는데

기존의 잣대로만 들여다보니 재능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재능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니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을하처럼 자존감을 잃고 더 헤매는 것은 아닐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을하는 그 해법을 "친구"에게서 찾았다.

그건 산적, 며루치, 박카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암흑 같은 세상을 버티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컬링 경기는 인생을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인생에 있어 곧은 길만 존재할까. 굽은 길은 없을까.

강한 직구로 던진다고 하여 하우스 안에 스톤이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을하가 처음 딜리버리 했을 때는 직구로 스톤을 던졌다가 보기 좋게 아웃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딜리버리 할 때는 을하가 던진 공이 컬링하여 하우스 근처로 간다.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일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린 지금, 컬링 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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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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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2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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