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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염소 새끼 ㅣ 우리시 그림책 15
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 / 창비 / 2014년 9월
평점 :
1. 권정생 선생님의 시에 김병하 작가의 그림이 잘 어울리는 그림책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열다섯 살 즈음에 쓴 시라고 하니, 한국전쟁 당시에 썼겠네요.
"제트기가 숨었다가
갑자기 호통치며 나왔다."
전쟁 중이라는 것을,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이지만 세상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저녁 때가 되고 마을 집집마다 뿌연 연기가 오르는 것이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배경이 되는 마을은 권정생 선생님이 생전에 사시던 마을입니다.
경상북도 안동 조탑동 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글을 쓰셨던 권정생 선생님은 늘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합니다.
2. 강아지가 새끼 염소를 귀찮게 합니다.
염소는 밧줄을 떼려고 기를 쓰지만 쉽지 않습니다.
강아지는 더 얄밉게 염소를 놀립니다.
염소는 말뚝을 머리로 박기도 하고 줄을 당기기도 합니다.
새끼 염소는 엄청 화가 났겠지요?
그러다 말뚝이 땅에서 빠졌습니다.
이제 염소는 강아지를 쫓을 수 있습니다.
둘은 동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처음부터 귀찮아 하는 표정, 골난 표정으로 일관하던 새끼 염소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강아지와 뛰어다니는 게 좋은 모양입니다.
앞다리 뒷다리를 쭉 뻗어 달리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이네요.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짜증이 다 사라진 듯합니다.
함께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게 대단한 일이다 싶습니다.
게다가 제트기 소리에 깜짝 놀라서, 둘은 싸웠던 것도 잊은 듯이 함께 뭉쳐 있습니다.
3. "골대가리 다 잊어버렸다."
골난 대가리, 화난 대가리, 화난 머리.
오래 전에 쓴 것이라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끔 나옵니다.
어감상 이해가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낯설은 느낌이 들기는 하네요.
그래도 의태어, 의성어가 정겹습니다.
냐금냐금, 콱 떠받았지, 살짝꽁, 날름 비키지, 나알름 패앨짝, 엠엠 내젓고, 쐬-ㅇ우르르릉, 깨갱 깽.
당시 새끼 염소와 강아지는 지금보다 더 친근하고 살가웠을 것 같습니다.
4. "다 잊어버렸다."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원래 시에서는 한 번만 나오네요.
그림책으로 만들면서 왜 세 번이나 이 말을 썼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트기 소리에 깜짝 놀란 새끼 염소와 강아지는 둘이 다퉜던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내기를 하고, 밭을 갈고, 밥을 합니다.
전쟁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합니다.
염소와 강아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평화롭게 보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독자에게도 잊어버릴 것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과 싸우려고 했던 마음.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려고 했던 마음.
다른 이들을 놀리기도 하고 시기, 질투했던 마음.
그런 마음들은 마을이 어둠 속에 묻히듯 그렇게 잊어버려야 하겠죠.
잊어야 할 것들을 잘 잊어야, 삶을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망각은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