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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 개정판
미레유 길리아노 지음, 최진성 옮김, 이다도시 감수 / 물푸레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

" The Main difference between Europe VS USA "


유럽판 다비드와 대조적인 미국판 다비드의 후덕함이 당혹스럽다. 이 합성 사진은 영문웹에 널리 퍼진 우스개로 OECD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 미국 (비만율 34.4%, OECD가입국 1위)을 꼬집고 있다. 하필 비교대상이 유럽인 이유는 비만율이 낮은 가입국들이 대거 유럽(스위스 7.7%, 노르웨이 9.0%,이탈리아 10.2%, 프랑스 11%) 에 포진해 있는 까닭. 때문에 미국에선 한 때 '프랜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가 큰 화제가 되었고 와인붐이 일었다. 프랜치 패러독스란 엥겔지수가 뒤집힐 정도로 식도락에 탐닉하지만 막상 비만인구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한 프랑스의 사정을 두고 만들어진 말이다. 먹어도 살안찌는 프랑스의 역설을 보고 미국은 이렇게 생각했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얘들은 매일같이 와인을 먹는다? 우리도 와인을 먹자? 그럼 우리도 날씬해질 것이다? 우와아앙!'  


그렇게 늘어난 와인소비는 비만의 수렁에서 미국을 건져주지 못했다. 프랜치 패러독스는 와인 한두잔 같은 단선적인 이유로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그 밑에는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촘촘히 자리하고있다. 이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책이 바로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하 프랑스 여자) 다. '프랑스 여자' 는 단순한 식이조절을 넘어서 생활습관 전반을 아우르는 행동변화를 강조한다. 저자 길리아노가 누차 힘주어 말하는 살빼기 비결은 단순히 프랑스 여자처럼 먹는 데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갈 때 진정한 건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사는 게 프랑스 여자처럼 사는 길일까? 스스로 프랑스 여자이기도 한 저자 길리아노의 삶을 들여다보자.





저자  Mireille Guiliano


길리아노는 프랑스 태생의 재미 기업인이었다. 뤼이비똥(LVMH)계열사인 샴페인 브랜드 뷔브 끌리꼬(Veuve Clicquot)가 설립된 1984년부터 20년 가까이 재직하며 대변인과 CEO를 연임했다. 그녀는 제법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직업적 성공 외에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면모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60줄의 나이(1946년생)에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정력과 건강이었다. 자연히 그녀의 주변엔 젊게 사는 비결이나 건강법을 물어오는 미국 여자들이 많았고 길리아노의 조언에 힘입어 환골탈태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2004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설파하는 책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책은 이내 곧 37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덕분에 지금 길리아노는 회사에서 물러나 방송과 강연에만 집중하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저자의 이력이 이러한 만큼 책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뚱뚱한 미국여자들에게 전하는 날씬한 프랑스 여자의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연 그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프랑스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이 건강법은 어떤 내용인가? 




1. 영양과 섭생


먼저 영양과 섭생에 관련된 부분부터 살펴보자. 건강관련 서적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 전공 서적 마냥 도표와 전문용어로 도배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 여자..' 는 정말로, 정말정말 쉽게 쓰여져있다. 대놓고 말하자면 전문성이 부족해 보일정도로 일상의 언어와 사례만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것이 겁 많고 끈기없는 대다수의 다이어터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여자는 헤어스타일과 샴페인 한 병, 그리고 아주 근사한 향수가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338p)" 와 같은 다소 뜬구름 잡는식의 문장들을 가지치기하면 아래와 같은 큰 줄기가 남는다. 



살찌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범인음식과 생활습관 탓이다


먼저 당신의 식단에서 살찌게 하는 범인음식을 찾아라


범인음식의 섭취를 줄이고 다음과 같이 먹는다


-가공식품, 청량음료, 패스트푸드 끊기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먹기

-폭식, 금식 피하기

-양은 줄이되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기

-자연산재료, 제철과일등을 이용해 직접 요리해서 먹기

-물을 많이 마시기


피트니스 클럽에 가는대신 생활 속 활동량 늘리기


스트레스 피하기


긍정적인 태도 가지기


자신감 있게 생활하기


이제 당신도 프랑스 여자처럼 살찌지 않는다!


이 원칙들을 기존의 영양학과 감량법에 비추어 해석해보자. 먼저 범인음식이라는 개념이다. 저자인 길레이유는 살아가면서 딱 한 번 '감자포대' 같은 뚱뚱보가 되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해 가족과 떨어져 미국과 빠리에서 유학했던 시절이다. 여기엔 크게 세가지 원인이 있었다. 먼저 탐욕과 소비의 땅 신대륙에 그녀 스스로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홈스테이 기간동안 길레이유 역시 미국인들처럼 정크푸드의 3대 영양소로 불리는 설탕,소금,전이지방을 만끽했다.


두 번째는 탄수화물이다. 미국에서 1년만에 뚱보가 되어 돌아온 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 부모를 뒤로하고 그녀는 대학입시를 위해 빠리로 떠난다. 독거와 자취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자취생인 그녀는 맛있고 편하다는 이유로 빵을 즐겨 먹었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빵이 주식이 되면서 길레이유의 몸매는 더욱 망가졌다.


마지막 세번째 이유는 위의 두가지 이유를 포괄한다. 미국과 빠리에 머물면서 그녀의 생활습관이 크게 변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총체적인 이유다. 이는 비단 프랑스 여자가 아니더라도 학업이나 취직등의 이유로 독거를 갓 시작한 젊은 여자라면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섭생과 건강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해본적 없다 하루아침에 스스로 식사를 책임지게 됐다. 이로인해 가정식이나 학교급식을 통해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지켜왔던 식사주기와 식사량이 깨진다. 금전적 이유나 편리함에 밀려 편식, 폭식, 금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 결과는 급격한 체중변화로 나타난다. 


이처럼 범인음식이란 '살찌기 쉬운 음식들' 의 또다른 이름이다. 덧붙여 범인음식을 즐기는 태도 또한 살을 찌우는 숨은 공신임을 알 수 있다. 


자 이랬던 길레이유는 고향에 돌아와 가족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살빼기에 성공했으며 그뒤로 줄곧 '프랑스 여자 답게' 살아왔단다. 그렇다면 이제 '프랑스 여자' 에서 제시된 '살을 빼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설탕, 소금, 전이지방' 으로 들어찬 가공식품, 청량음료, 패스트푸드를 끊어야 하는 필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상식이다. '프랑스 여자' 는 위와 같은 범인음식과 연을 끊고 대신 '리크스프(Leek Soup)'를 장복하도록 권한다. 다음은 리크스프에 대한 설명이다. 


'리크는 아주 영양가가 높은 음식으로 배뇨작용을 촉진하고48시간 정도 먹으면 입맛이 바뀌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2p)'.  






리크가 뭐냐고? 

짜잔 

~ 바로 이거란다

제이미 올리버가 들고 있는 저 '서양대파' 가 바로 리크다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는 '대파 우린 육수' 를 한사발씩 떠마시며 몸의 수분을 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째 낯이 익다. 세간에 여러차례 오르내린 이른바 '디톡스 다이어트' 와 같은 방법이라서다. 비슷한 방식인 일명 마녀스프(cabbage soup)가 몇 년전 대유행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참고로 우리가 마녀스프라고 부르는 음식 역시 '프랑스 여자'의 추천 레시피 가운데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책에는 '스프 오 레귐 드 마망 (엄마의 야채수프)' 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조리법은 영락없는 미네스트로니(마녀스프의 원조격인 이탈리아풍 야채스프)다.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먹기, 폭식이나 금식에 주의하며 천천히 먹기, 물을 많이 마시기 같은 지침도 수많은 다이어트들이 공유하는 상식적인 것들이다. 몸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씩 여러번에 나누어 먹는 것은 일정한 카타볼릭 상태를 유지하려는 보디빌딩 식단과 맥을 같이한다. 식이제한에서 오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가끔씩 초콜릿과 같은 범인음식도 즐기라는 지침은 뇌를 속이는 '치팅밀(Cheating Meal)' 과 같은 방법이다.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의 지침들은 기존의 다이어트 법들과 일맥상통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원푸드 다이어트로 시작하고 식사량을 줄여가는 것 때문에 자칫 영양 불균형을 걱정할 수도 있지만 길리아노는 제법 튼튼한 안전장치를 심어놓았다. 특히 생선과 요거트를 권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둘 다 고단백 식품으로 채소 중심 식단이 빠지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을 채워준다. 생선의 경우 불포화 지방 또한 풍부해 혈액순환에 좋다. 요거트는 발효과정에서 유당이 분해되기 때문에 우유를 못먹는 이들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또한 점성으로 인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양감(Body)이 느껴져 '먹는다' 는 보상심리를 채워준다. 우유와 영양 성분은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이어트에 유리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는 원리에 대한 설명은 부실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다.




2. 문제


그러나 '프랑스 여자' 가 훌륭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프랑스 여자' 는 거의 의도적으로 운동처방을 배제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여자는 헬스장에 가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도 낭비된다. 프랑스 여자는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이용하며 전철역까지 뛰어다니는 걸로 운동을 대신한다' 는 논리를 내세워 운동처방은 무시 당한다. 하릴없이 런닝머신위에서 소모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이들에겐 나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내세워 운동처방의 가치 자체를 폄훼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운동을 통한 체지방 연소는 식이조절을 통한 감량에 가속도를 붙여주는 기폭제다. 뿐만 아니라 근육량과 대사량을 늘리는 체질개선을 통해 요요현상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더욱 건강하고 활력있는 삶을 만들어준다. 특히 일상 생활속에서 육체활동 기회를 박탈당해가고 있는 사무직 여성들은 따로 시간을 내 스포츠 활동을 즐긴다면 감량과 건강에 큰 도움이된다.


책의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국내사정과 어긋나는 내용도 많다. '프랑스 여자' 에는 40여가지에 달하는 식이조절용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으나 한국땅에선 태반이 무용지물이다. 리크를 대파로 대체하는 등의 현지화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염소젖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 플래터' 같은 건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닭고기를 와인에 재워 졸이는 '꼬꼬뱅'이나 머랭을 카스타드 크림에 익혀내는 '일 플로따' 같은 요리가 프랑스인의 관점에선 가정식일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별식이다. 조금 더 말해보면 사실 레시피 설명 자체가 불친절하다. 크로아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파이지 3절 접기를 사진 한 장 없이 글로만 설명해 놓았는데 과연 제과제빵 경험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이게 무슨 소용일까?  입장바꿔 만일 내가 참고사진 한 장 없이 오직 텍스트로 설명된 김치 담는 법을 프랑스 인에게 내민다면 이 역시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 문제는 '프랑스 여자'에 적합한 레시피들만 따로 다룬 별도의 쿡북(Cookbook)을 출간해 해결한 듯 하지만 국내엔 번역되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프랑스의 재래시장 마르쉐


유럽과 동떨어진 사회구조 역시 한반도에서 이 책의 효용성을 떨어뜨린다. 마르쉐(재래시장)나 친지를 통해 신선한 제철재료를 수급하라는 지침은 우리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에서 재래시장을 보호관리하는 프랑스와 달리 대한민국의 재래시장은 벼랑끝에 몰려있다. 입지도 그렇거니와 상품구성 또한 신선식품과 로컬푸드를 찾아보기 힘들고 중국산 농산물이 활개치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 자급도가 100%에 육박하는 프랑스에서는 제철에 맞춘 자연산 과일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한반도다. 딸기는 무릇 여름이 제철이건만 이제 겨울이 아니면 장에서 딸기 구경조차 할 수 조차없다.


이렇듯 유럽과 거리가 먼 우리네 속사정 때문에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가라' 는 주문은 급기야 서글퍼지는 것이다.



3. 프랑스여자처럼 살기위하여


한국에서 프랑스 여자처럼 먹기란 어려운 일이다. 노력한다면 흉내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프랑스 여자처럼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에서 프랑스를 닮겠다며'프랑스 여자는 모두 고집이 세고, 단체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358p)'는 지침을 실천할 수 있는이 누가 있을까?


글머리를 OECD 통계로 열었으니 한 번 OECD 통계로 닫아보자. 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뚱뚱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가장 날씬한 나라는 어디일까? 프랑스가 아니다.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인구 비만율은 3.3%로 OECD에서 가장 낮다. 대한민국은 OECD에서 가장 날씬한 나라다. 그것만 일등이 아니다. 한국여자는 OECD에서 가장 많이 일한다. 여성 노동자 10명중 4명이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며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노동자의 62% 정도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는다.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할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아예 일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더 많다. 대한민국의 여성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에서 꼴지고 반대로 여성 자살률은 1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프랑스 여자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벌면서 훨씬 마른 한국 여자들에게 대뜸 프랑스 여자처럼 엣지있게 살라고 주문하는 건 마리앙투아네트 같은 짓이다. 


- 이상 한국 여성의 노동시간과 환경에 대한 자료는 "여성정책연구원, 'OECD 주요 통계로 본 한국 여성의 삶과 지위' 2009.7" 를 참조



한국적인 삶을 한 번 그려보자. 빡빡한 점심시간을 쪼개 식당가를 찾았다. 월급은 오른 적이 없건만 계속 오르는 물가에 매번 점심시간은 고민의 연속이다. 결국 오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오천원 백반집에 앉아 밥상을 기다린다. TV에선 앙상한 몰골의 걸그룹들이 연신 흐느적 거린다. 나도 저렇게 뼈다리는 못될 지언정 살은 빼야 할텐데, 작년에 산 스키니가 어째 뻑뻑하더라..관리를 받을까, 아니야 그것도 다 돈인데, 다이어트만 잘해도...하는 사이 밥 한공기 뚝딱 비워진다. 반찬이 많이 남았는데 한 공기 더 시킬까...그래 내가 무슨 다이어트를. 점심시간이 이렇게 끝나간다. 식후땡으로 자판기 커피라도 뽑아들고 광합성하려면 슬슬 일어나야한다. 그런데 이게 사는건가?


엥겔지수가 역전될 정도로 잘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프랜치 패러독스의 비밀은 와인이 아니라 생활습관에 있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주체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살이 안찐단다. 2,3분만에 나오는 패스트푸드 대신 두세시간에 걸쳐 서빙되는 '프랜치 다이닝' 을 느긋하게 음미할 여유가 있어서 살이 안찐다. 신선한 제철과일과 제대로된 쇼콜라를 흠향하는 지혜를 할머니에게서 전수 받았기 때문에 살이 안찐단다. 즉 프랑스 여자가 살찌지 않는 이유는 제1세계의 경제적 풍요와 안정된 사회시스템, 그리고 오랜시간 축적된 문화적 토양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말이된다. 사회복지와 경제적 안녕이 보장된 유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양한 미각 체험을 도와준 부모를 만난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걸 뒤집으면 미국 여자들이 살찔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쉽게 풀이된다. 신생 미합중국은 척박한 문화적 토양을 딛고 속도와 경쟁을 내세워 최강대국이 됐다. 부모들은 편리함을 내세워 농장보다 공장에서 나온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였다. 콜라, 햄버거, 감자튀김과 같이 싸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이 환영받았다.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코스트코와 월마트에 있다

농장에서 온 식품과 공장에서 온 제품 가운데 어느것이 건강할까?


결국 프랑스여자처럼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양과 요리에 대한 체험기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가족 공동체의 복구. 안정된 고용과 노동환경을 제공해주는 법적제도. 스트레스와 분노가 적은 사회 분위기 한마디로 유러피안 드림이다. '프랑스 여자'가 보이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다. 프랑스 여자가 살찌는 않는 가장 이유는 바로 프랑스에 살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를 순전히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양 설파한다니 얼마나 못된 희망고문인가. 특히 한국전쟁 이후 자유와 선진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틀을 이식받은 대한민국은 '속도와 경쟁' 이라는 면에서 미국에도 뒤쳐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프랑스처럼 식량 자급도 100%를 달성할 대지도, 안정된 고용과 노동을 돕는 제도도, 사회적 안정망과 복지제도도, 2시간 동안 정찬을 즐길 삶의 여유도, 샴페인도, 치즈도 없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내 누이들의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이와중에 신기하게도 비쩍 마르기까지 했다. 여기에 유러피안 드림을 은근슬쩍 내비치며 '날 따라하면 너희도 똑같이 될 수 있어' 라고 권하는 이 '프랑스 여자' 가 나는 너무도 얄밉다.  

 

총평을 하자면 '프랑스 여자' 는 꽤 잘 팔릴만한 내용을 담고있다. 운동처방 보다 식이조절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기호와 '프랑스' 라는 브랜드가 가져다 주는 막연한 동경이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인이 실천하기엔 이론과 실재 사이의 벽이 그 어떤 다이어트보다 크다. '프랑스 여자' 를 좇아 범인음식인 흰쌀밥을 체포하고 리크스프를 대신할 '대파국물' 한사발씩 들이키면 우리도 빠리지앵처럼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진짜 프랑스 여자처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빵을 달라.


첨언

성정치학적으로 봤을 때 '제1세계 변두리에 사는 동양인 남자' 가 '제1세계 중심부에 사는 백인 여자' 의 논리에 공감하기란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정량적인 분석과 기전에 대한 논리적 설명대신 개인적인 경험과 피상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방식도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이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를 통해 큰 도움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어찌됐든 그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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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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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옆사람과 재잘거리는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대화를 듣게 되기도 합니다. 대략 이런식의 대화들 말입니다.

 

" 그러니까 그 XX타워 총설계하고 감독했던 사람이 우리 언니 친구 동생의 남편이었던거야"


예전 같았으면 '아 몹시 유명한 건축가와 가까운 사이구나, 놀라운데' 했겠지만 이 책 '링크'의 출간으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언니네 친구 동생의 남편' 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님을 다들 알게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서너 단계가 건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사이고 전 세계 60억 인구로 외연을 넓혀봐도 '평균 6사람만 건너면 60억인구는 모두 지인' 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널리 알린 책이 바로 AL바리바시 교수의  링크(Linked : The New Science of Networks) 입니다.


출간당시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링크이론이 발표된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놀라워 다들 반신반의 했지만 SNS와 네트워크가 일상사가 되어버린 오늘날엔 마치 '물과공기'처럼 의식하지도 못하고 링크이론 속에서 살아가는 중 입니다.


이게 지금 10억짜리 전화번호부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의 한 장면 입니다. 경찰의 단속 강화로 불안해 하는 김판호(조진웅분)에게 최익현(최민식분)은 수첩을 하나 꺼내 보이며 호기롭게 소리칩니다. "이게 지금 10억짜리 전화번호부다!" 종친회, 동문회, 향우회 등으로 촘촘히 엮인 그물를 타고 연결된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 만든 연줄위를 줄타기하며 살아가는 최익현의 삶은 링크 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셈 입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친구의 친구를 타고 슥슥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데 까지 전달되는 네트워크의 위력은 SNS속에서 더욱 확연히 확인됩니다. '일촌' 이라는 개념으로 한국 고유정서를 파고들어 우뚝 선 싸이월드는 이제 이촌, 삼촌, 사촌으로 관계맺기 방식을 확장시켜 놨습니다. 나의 일촌들이 알지만 나는 모르는 이촌, 나의 이촌들은 알지만 내가 모르는 삼촌... 이런식으로 관계를 확장시키면 대략 4촌 이내에서 가입자 천만이 넘는 포탈사이트 회원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게 됩니다. '6단계 안에 60억 인구의 대다수가 연결된다" 는 바리바시의 링크이론이 SNS에 적용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등의 SNS들이 '친구추천' 기능 또한 이런 방식을 적용하고 있고 그 활용도가 높습니다.


이런 네트워크의 마술을 가능한 이유는 일종의 인맥 허브(HUB : 결절지. 평균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중개해 줄 수 있는 사람)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 덕택입니다. 이러한 허브나 커넥터들을 통해 타인과 나 사이는 비약적으로 단축됩니다. 트위터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운데 유명 아이돌, 작가, 정치인과 같이 많은 사람들과 '친구맺기' 를 하고 있는 트위터리안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용자들이 마치 감자뿌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허브들을 중심으로, 혹은 허브들의 중개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블로그들끼리 어느샌가 클러스터(Cluster: 집적체) 를 형성하게 됩니다.

 

 

 

 


클러스터

 

자 그렇다면 클러스터들은 고립된 섬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또 보여주는게 링크이론입니다. 클러스터 내에 커넥터라 할만한 대상이 있다면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집단들 사이에도 다리가 놓이게 됩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상의 사용자들은 각자 자기들의 성향에 따라 일종의 고립된 섬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선거, 연예인 스캔들, 뉴스속보같은 사건이 터지면 리트윗, 스크랩, 리플을 따라 순식간에 전파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바리바시 박사가 제안한 네트워크의 모식도

 


SNS는 커녕 인터넷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0여년 전에 출간된 책 링크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의 생활속에 착 맞아떨어지는 모습은 전율에 가까울 정도 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는 사실 입니다. 수십 수만, 수억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의 무시무시한 전달속도와 파급력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 넘게 됩니다. 인터넷의 탄생부터 소련의 핵전쟁에 대비한 미 국방성의 연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가 네트워크의 괴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앙집중형이나 탈집중형의 "조직구도" 는 거점이나 수뇌부가 무너지는 순간 붕괴되고 맙니다. 여기에 반해 분산형을 갖춘 거미줄 구도의 네트웍의 생명력은 질기고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요.인터넷과 정보통신이라는 21세기의 총아들은 이 네트워크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뉴스가 랜선을 타고 RT되고 스크랩 되는 현실을 상기시켜 봅시다. 책 링크속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고 곧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가 됩니다.

 

 

 

 


 

 네트워크이 세가지 형태 분산이 힘이 세다!

 

 

결과적으로 바리바시 박사는 아마 이런 말이 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제는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의 시대입니다. 수직적 구조가 지배하는 관료형 집단이나 기업의 문제점들이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사회운동에 있어서도 'XX회 XX지부' 처럼 계단형 구조를 갖춘 조직들의 문제를 이미 여러 사람들이 숱하게 지적해 왔지요. 그 대안으로 제시된 '의로운 개인주의자들의 느슨한 연대' 가 바로 이 링크이론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아도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의 힘은 강합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쉽게 뿌리 뽑을 수 없고 함부로 통제할 수 없는 네트워크의 역동성, 폐색된 조직이 갖추지 못한 최대의 강점 입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의 시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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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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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살기"는 굉장히 슬픈 책이다. 참여정부 끝머리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MB정부 마무리 즈음에 다시 읽어도 그렇다. 아니 그래서 슬픔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불혹을 한참 넘긴 나이에 나는 무엇인가에 홀려있었다."로 시작되는 머릿말을 읽다가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고종석의 글을 읽어왔던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차렸겠지만 그가 나이 40을 넘겨서 홀렸던 그것은, 좁게는 대통령 노무현이었고 크게는 그 주변에서 참여정부를 구성한 486중심의 민주화 운동 세력을 뜻한다. 16대 대선 전까지 [좋아하는 정치인은 노무현과 추미애]라는 자기소개를 책 날개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고종석이 이 문장을 게워내면서 달랬을 아픔을 나는 알 것 같다.

 

그 날이 기억난다. 노무현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소용돌이를 뚫고 대통령 당선자가 됐다. 호남에서는 영남사람인 그에게 기적에 가까운 지지율로 응원을 보냈다. 민노당 지지자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자신들의 후보에게 보내려던 표를 잠시 양보했다. 재벌들에게서 사과박스로 떼어온 선거자금 대신 동전으로 가득찬 돼지저금통이 쌓여갔다. 그렇게 해방이 후 늘 밀리고 핍박받아왔던 '정치적 소수자' 들의 선택을 받은 그는 "민주주의의 적자이자 구시대의 고리를 끊어줄 희망의 증거"가 된 듯했다. 그래서 정말 그 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뭔가가 이루어진것 같은 환상속에서 황홀해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이 된 것이라는 불길한 말이 점차 현실이 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새시대의 맏형이 아닌 구시대의 막내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우던 아스팔트위의 변호사는 대통령이되자 공무원 노조 설립을 저지했다. 여전히 노동현장에선 크레인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나왔고 FTA와 이라크 파병이 척척 진행되고 있엇다. 훗날 삼성을 생각하다를 통해 밝혀진 참여정부와 삼성사이의 밀월관계가 시작된 것도 이즈음 이었다. 지지자들이 소망을 담아 마련해준 소중한 시간을 참여정부는 고종석이 '신성동맹'이라고 표현한 "자본을 매개로 한, 반동 정치세력과 반동 언론권력 사이의 강고한 동맹"의 눈에 들기위한 아양과 교태로 허비했다. "지역갈등과 계층간 불화 종식"이라는 미명아래 말이다. 그리고 남은건 여전히 그를 왕좌에 오른 무지렁이 정도로 얕잡아보는 신성동맹의 싸늘한 눈초리와 그에게서 실망을 넘어서 절망한 지지자들의 분노였다. 

 

노무현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면서 임기내내 "건강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으로 노무현을 조목조목 비판해온 고종석의 올곧음이 돋보이는 책이다. 내가 변한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변한것이라는 말이 진실성을 담고 있을때는 바로 고종석의 입에서 나왔을때 정도이리라. 하지만 더욱 참담한 것은, 바로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굳이 이 자리를 빌려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5년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느꼈던 것은 허탈함과 실망 그리고 슬픔정도 였다. 지금은 다시 읽고 나면 어떤 기분이들까? 신성동맹은 여전히 강고하며 흔들리지 않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들 발 아래에 무릎꿇게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신성동맹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늘 우리 주변에 있어왔고 고종석 같은 이가 염려해왔던 일들이다. 시계가 점차 거꾸로 돌고 있다. 노무현 시대의 어둠을 기록한 책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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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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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언론에 대서특필된 집단 따돌림 소식을 접하는 순간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악의(惡意)”가 떠올랐습니다. 특히 ‘왕따는 당하는 쪽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 는 말을 너무도 당연한 듯 입에 올리는 이들이 많아 그랬나 봅니다.


추리소설답게 ‘악의’ 역시 살인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명망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구니히코가 살해당합니다. 해외이민을 앞두고 한창 이삿짐을 정리하던 그는 자신의 서재에서 둔기에 맞고 교살당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살해당한 작가의 주변에서 소위 강력범죄의 3대동기라는 원한, 치정, 금전 문제의 기색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곤란해하는 경찰이 얼굴 모르는 제3자의 우발적 범행으로 규정할 찰나, 히가시노 게이고 세계의 셜록 홈즈, 가가형사가 등장합니다. 냉철하고 명민한 그는 등장과 동시에 최초의 목격자이며 구니히코의 친구였던 오사무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집니다. 


마치 선물 포장지를 벗기듯 차례차례 오사무의 알리바이와 자기방어 논리를 무너뜨리는 가가형사. 급기야 100여 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가가는 오사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살해에 이용된 트릭까지 완벽하게 간파해 선언합니다. 독자들은 여전히 두툼하게 남겨진 페이지들을 보며 ‘어라, 뭔가 이상한데? 진범이 나중에 따로 밝혀지는 걸까나?’ 라고 의문을 가질 법 합니다만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구니히코 작가를 살해한 범인은 오사무가 맞고 가가형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시작과 동시에 범인과 트릭이 모두 밝혀지는 추리소설이 대체 무슨 재미가 있겠냐는 반문이 이어지겠지요. 바로 이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가 다른 추리소설과 남다른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마따나 악의는 애초에 ‘어떻게’ 죽였느냐가 아니라 ‘왜’ 죽였느냐를 밝히기 위해 쓰여진 소설 입니다. 범인이 누구였는지,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살해했는지 드러나는 순간 독자들은 더 큰 수수께끼인 ‘그렇다면 도대체 왜 죽였을까?’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범인인 오사무는 중학시절부터 피해자와 구니히코와 같은 반이었던 죽마고우였습니다. 고교진학 이후 연락이 끊겼지만 구니히코가 작가로 등단하며 오사무와 다시 연락이 닿아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교직과 아마추어 작가 생활을 병행하던 오사무는 이미 상업적으로 대성한 구니히코의 도움으로 등단해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뒤로 자주 내왕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두 사람. 겉보기엔 구니히코에게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아온 오사무가 살의를 품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살해 동기를 밝히기는 살해 방식을 밝히는 것보다 더한 난제가 됩니다. 갑갑한 독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극중의 탐정 가가형사는 사실상 수사의 2라운드에 착수하고 속속들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 나가는데 바로 이 과정이 밀실트릭이나 얼음송곳과는 다른 차원의 놀라움을 선사해 주는 것입니다. 구니히코가 오사무의 작품을 가로챘다는 혐의에서부터 오사무가 구니히코의 전처와 내연관계였다는 것까지 서로 물고물리는 악연을 이어왔던 두 사람. 가가형사의 뒤를 따라 이 두 사람의 과거를 파내려 가다보면 마침내 수 십 년 전인 중학시절에 까지 닿게 됩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전모를 드러내는 거대한 악의 앞에 몸서리치겠지요. 이것이야 말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준비한 진정한 반전이 되겠습니다.


트릭과 범인의 정체가 너무나 빤해 악의는 얼핏 시시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초반부는 마치 차 포 떼고 시작하는 장기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큽니다.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쥐락펴락 하며 범인의 뒷모습만 비춰주는 전형적인 서스펜스 문법에 길들여진 독자분들에겐 자칫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생소한 기법의 추리소설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어떻게’ 가 아닌 ‘왜’를 묻고 있기 때문에 악의는 단순한 장르문학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장르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 때우기에 좋은 유희거리 정도로 취급하거나 오락성이 목적이지 교훈이나 감동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고 읽는다는 자칭 매니아들 또한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선입견들을 종식시켜줄 만한 힘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악의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드러낸 소설입니다. 그렇기에 ‘범인은 왜 그랬을까?’ 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었던 겁니다. 이 답을 알게 된다면 시중에 넘쳐나는 속칭 ‘반전소설’ 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아름답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고 도덕적인 존재는 더더욱 결코 아니라는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된 분들이라면 지금 당장 악의를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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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데 - 고양이 추리소설
아키프 피린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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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문학 사상 가장 작고 섹시한 탐정의 탄생





추리문학 사상 가장 섹시한 탐정을 꼽으라면 과연 누구일까? 대부분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3대 탐정 가운데서 답을 찾으려 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살펴보면 영 마뜩찮다. 먼저 홈즈. 골방에 틀어박혀 밤새 화학실험에 몰두하는 오타쿠. 평생 연애한 번 못 해볼 관상이다. 라이벌 뤼팽은 어떤가? 홈즈에게 부족한 그 무언가는 있지만 그게 또 넘쳐서 문제다. 덧붙여 매번 ‘그녀’를 갈아치우는 바람기까지 감안하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스 마플? 연령 제한을 가지고 꼬장꼬장하게 구는 대기업 공채는 아니지만 섹시함을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연식이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이 3대 명탐정들은 물론이고 추리문학계 속 그 어떤 탐정도 갖추지 못한 매력을 갖춘 이가 있다. 잘빠진데다 유연하기까지 한 허리, 주먹만 한 얼굴에 정반대로 크고 선명한 눈망울, 그 속엔 눈자위를 꽉 채울 정도로 새까만 눈동자. 이 모든 걸 가진 탐정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이다. 펠리데(Felidae)의 주인공이자 사상 초유의 고양이 탐정 프란시스는 이 모든 걸 갖추고 있다.


펠리데(Felidae)는 고양이과를 부르는 라틴어 학명이자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어다. 사건을 추적하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피살자, 정보 제공자, 조력자, 범인까지 모두 고양이다. 당연히 범행동기 또한 고양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주인을 따라 이사 온 집고양이 프란시스는 이사와 동시에 새 집 마당에서 의문의 변사체(물론 고양이의 변사체다)를 발견한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 연쇄 살묘(!)사건은 하루가 멀게 느껴질 정도로 이어지고 범인의 실체를 쫓는 프란시스는 점차 거대한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빠져들어 간다. 이처럼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고양이의 추리 소설답게 펠리데는 기존의 동일 장르문학과는 전혀 다른 면모들을 보여 준다.




독일내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펠리대는 일찌감치 애니메이션화 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프란시스는 냄새 맡고 네 발로 달려 범인을 쫓는다. 기존의 탐정들에게서 볼 수 없던 감각적인 면모다. 프란시스가 수집한 정보를 모으고 추론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면모 역시 남다르다. 주로 꿈을 통해 일종의 계시처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키워본 이들이라면 절로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대목이다. 고양이는 육감이라는 말로 밖에 달리 표현되기 어려울 정도로 눈치가 빠른 생물이다. 고양이를 키워 본 애묘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어조와 억양의 변화만 가지고도 귀신같이 주인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처신하는 존재들이다. 반대로 고양이를 키운 적 없는 이들이라면 잘 몰랐겠지만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도 꿈을 꾼다. 잠꼬대를 하면서 먹이를 먹는 시늉을 하거나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하는 고양이들이 방송에 출연한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꿈꾸며 육감적인 수사를 하는 네발달린 탐정.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이루어져 왔던 추리소설계에도 이만큼 대담하고 전복적인 시도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펠리데는 추리소설 애호가들보다 애묘인들에게 더욱 반가운 소설일지도 모른다. 유달리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국내 정서에 비춰보면 그렇다. 스스로가 상당한 고양이 애호가라는 저자 아키프 프린지는 고양이의 행태와 습성을 적극 반영해 사실적인 묘사로 고양이 탐정의 매력을 십분 발휘해 놓았다. 냄새를 단순히 맡는 것을 넘어 맛보는 것에 가깝게 느끼는 민감함, 육식 동물다운 기민함, 명석한 두뇌를 가진 생물이 바로 고양이들이다. 작중에 묘사된 프란시스의 ‘육감수사’ 는 고양이의 이러한 특성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걔 중에서도 압권은 속칭 ‘고양이 집회’를 작가의 방식대로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성자 클라우단두스교(敎)의 집회’다.


고양이들은 천성적으로 무리생활을 하지 않는 영역동물이다. 각자의 영역이 확고해 이를 침범하면 서로 싸우기 마련이다. 힘에 따른 우열관계는 있지만 늑대나 개처럼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종종 야생화된 이른바 길고양이들이 건물옥상이나 골목 등지에 무리지어 우는 모습이 관찰되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고양이 집회’라 부르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이유는 동물행동 학자들조차 모른다. 소설보다 이 리뷰를 먼저 읽을 이들을 위해 소상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이 고양이 집회는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어 사건의 열쇠로 작중에 등장한다. 역시 고양이에 대한 작가의 면밀한 관찰과 이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초속5cm의 감독으로 유명한 신카이마코토의 단편 고양이집회【猫の集會】



이런 연유로 이 소설을 가장 권해주고 싶은 이들은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가져왔던 이들이다.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이래로 불길함의 대명사였던 고양이가 추리사상 가장 독특한 탐정으로 다가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소설 펠리데는 절묘한 트릭과 치밀한 두뇌 싸움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자칫 장르문학 본연의 임무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기 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추리사상 다시없을 작고 섹시한 탐정을 만나볼 경험은 흔치 않은 기회다. 추리 매니아를 자부하는 이들에겐 일독을 권하며 우리집 고양이가 키보드 위를 지나며 남긴 메시지를 전한다.


‘23@#$%56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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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12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너무 깔끔하고 멋진 리뷰어요.
이런 리뷰를 이제서야 보다니... 참으로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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