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나긴 황금빛 하루 동안 나는 완벽하게 행복했기 때문에 여기서 한 걸음만더 나아가도 그 행복감은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한낮의 뜨거운 공기가부드럽게 식어가듯 차분한 마음으로 익숙한 가로수 길을 따라 부대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고 그저 감사하는마음으로 모든 것을 되새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작별을 고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어둑어둑해지는 들판과 검은 안개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바람은 나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순수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이 세상과 모든 사람들이 선량하고 감동적으로 느껴졌고, 나무 한 그루한 그루마다 껴안아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어루만지듯이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이처럼 혼자 담고 있기에는 가슴 벅찬 이야기들을 집주인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내 감정을 알리고, 표출하고, 아낌없이 쏟아내고 싶었다.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빨리 나눠주고 소진해버리고 싶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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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의 잔인한 퇴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심장이 조여왔다. 그녀가 어째서 남의 도움을 받거나휠체어를 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린 것이다. 에디트는 나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자신이 불구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절망감에서 나온 은밀한 복수심에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고통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하느님을 책망하는 대신에 건강한 우리를책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잔인하고도 도전적인 행동을 통해서나는 에디트가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새삼 느낄수 있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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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오늘날 한낱 자원에 불과한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고려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다음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것은 기계가 될 테고, 인간은 그저 일종의 부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난 전쟁 때에도 전쟁을 찬성한다거나 반대한다거나하는 분명한 의사를 가진 군인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개는 바람에 날려온 먼지처럼 전쟁 속으로 굴러 들어와 거친 소용돌이 속에 머무르면서마치 커다란 자루에 담긴 완두콩처럼 아무런 의지 없이 흔들리는 대로따라다닐 뿐이었다. 어쩌면 현실을 피해 전쟁 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수가 전쟁 밖으로 피해 나온 사람의 수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 P12

이 훈장 뒤에는 절대로 영웅이라고 할 수 없는, 그저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전쟁 속으로뛰어들어 간 사람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친 탈영병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입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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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일 년을 바쳤건만 그녀는 그것을 내팽개쳤다. 그는 대령이 평화롭게 눈을감을 수 있게 자신이 도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살아 있는 듯한 사람은 대령이었다. 이제껏 그는 그 집을 특별하게만드는 사람이 포레스터 부인이라고 믿어 왔었다. 그러나 대령이 죽은 이래 그 집은 삼촌 같은 옛벗들이 배신당하고내쳐지며, 저속한 무리가 자기들다운 짓을 하며 저속한 여자를 알아본 곳이었다. - P195

그녀의 눈이 웃으면서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는순간, 그 눈빛은 상대가 아직 세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강렬한 환희를 약속하는 것만 같았다. "난 그게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녀의 눈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보여 줄게요!" 엔돌의 무녀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낸 것처럼 그는젊은 포레스터 부인의 망령을 소환하여, 그 정열의 비밀을알려 달라고 요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끝없이피어나고 끝없이 타오르며 끝없이 전율하는 환희를 그녀는진정 찾았는지. 아니면 전부 감쪽같은 연기였는지. 아마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한 송이 꽃의 향기가 달콤한 봄을 연상시키듯.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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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엘린저 같은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의 기품은 전부 어떻게 하는지?
어디에 치워 두는지? 그리고 그것을 한번 치워 놓은 다음에 어떻게 다시 자신을 되찾아서, 사람들에게-심지어 그에게도-세상 누구와 맞서도 부러지지 않게 단조된 칼날 같은 굳건한 힘을 실어 주는지? - P117

그렇게 밤을 지새우는 그의 가슴속에는 충직한 사람들의 만족감이 충만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자신에게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던 구식 물건들 가운데 홀로 있는 것이 좋았다. 이것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의자였으며, 그의 눈에 빌헬름 텔의예배당’ 이나 ‘비극 시인의 집’보다 멋진 그림은 없었다. 돌로 만들어진 상판에 체스판 무늬로 모자이크가 세공된 낡은 테이블은 대령의 친구들이 나폴리에서 선물로 가져온것으로, 솔리테어를 하기에 최적의 카드 테이블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이 집을 대신할 집은 없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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