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나무 (나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https://blog.naver.com/assilence</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9 Sep 2026 02:24:53 +0900</lastBuildDate><image><title>나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2558174318894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려 반세기 전 여성 노동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들의 어제와 오늘이라니! - [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 - 운동 좀 하던 할머니들의 현재진행형 인생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14351</link><pubDate>Sun, 13 Sep 2026 2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143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81&TPaperId=175143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47/coveroff/89323250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81&TPaperId=175143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 - 운동 좀 하던 할머니들의 현재진행형 인생 이야기</a><br/>변정정희 지음 / 현암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br>올해 초에 읽은 &lt;나, 블루칼라 여자&gt;가 좋았다. 그 전에 사무직 여성들을 대상으로 현재 여성 노동을 분석한 책을 읽으며, 사무직 이외의 다양한 직종의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도 궁금했는데, 그 책이 그 목소리들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육성을 담은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br><br> 그러다 이 책 &lt;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gt; 기사를 봤다. 정말 반가웠다. 작가 변정정희는 1970년대 여성 노동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던 여성들을 인터뷰해 이 책에 담았다. 50년, 무려 반세기 전 노동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들의 어제와 오늘이라니. 너무도 필요한, 각별한 기획이다. <br> <br>팝아트 같이 익살스러운 콜라주 표지에 마음을 턱 놓고 책을 펼쳤다가 바로 정신이 번쩍 들어 정자세로 읽게 된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한 방 먹었다. 멋진 언니들은 항상 이런 식이라니까. 무장해제 시켜놓고, 정곡을 찌른다니까. 그것도 너무도 무심하게,  너무도 단순한 언어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47/cover150/89323250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94736</link></image></item><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가을은 정말 성큼성큼 오는구나 갈 때도 그렇겠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9594</link><pubDate>Fri, 11 Sep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9594</guid><description><![CDATA[<br>정오의 산책이 쾌적했고&nbsp; &nbsp; &nbsp; &nbsp; &nbsp;&nbsp;<br>바흐의 계절들이 돌아오고<br>빵이 잘 구워졌고<br><br><br>어제 밤에는 간신히 묶을 수 있을 정도의 짧은 길이로&nbsp;싹둑 머리를 잘랐다.&nbsp;가위로 쓱싹쓱싹 자를 때의, 잘려나갈 때의 쾌감이라니.&nbsp;덕분에 오늘까지 상쾌하다.&nbsp;&nbsp;<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1/pimg_6392473662047831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9594</link></image></item><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통 불가능성을 통해 재사유하는 소통의 조건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4016</link><pubDate>Tue, 08 Sep 2026 2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40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5040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off/89364816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5040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a><br/>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08월<br/></td></tr></table><br/>3.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이 곤혹스러운 타자성을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라는 소통의 가능성을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192 <br>불통의 근원적인 원인은 ‘나도 나를 모른다’이다. 기득권자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성찰적 메타인지 자체가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약자는 애초에 이해 불가한 것을 이해해보려 애쓰느라, 자신과 협상하느라 항시 기진한 상태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인은 결핍과 필요, 욕망에 이끌려 무지막지한 습(習)의 구심력에 빨려들어 회전중이다. 여기에 다른 의미에서 ‘나’를 강조하는 현대의 매체 생태계는 나르시시스트를 양산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스트를 “자기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줌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직면할 기회”를 회피한다고 말한다.  <br>그러니 나를 직면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심리적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 이슈”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작 나 자신이야말로 나에게 피상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타인과 소통 한다? 넌센스다. 타인과의 어긋남을 통해 내 자신과의 어긋남을 알게 되는 것. 불통의 뜻밖의 효능이다. 저자가 소통을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라고 단언하는 이유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 등대마저 민영화되어 바닷가의 모든 등대가 자본의 의사대로 운영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58p<br><br>자기 이해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의 소통 창구인 플랫폼은 거대한 자본에 의해 동어반복의 상만을 비춘다. ‘더 많이 소비해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더 많이 노출하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서로를 비춰주던 자타의 거울은 광고판이 되었다. ​여기에 AI까지 등장해 소통에 합류(??)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느낀 글이 AI가 쓴 글이라면? 어떤 글을 쓴 주체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다면? 소통이 자본이 되는 시대에 소통의 의미와 모습은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 걸까. 자본의 동력으로 점멸하는 등대의 안내로 우리가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br>“인간은 단독자다. 인간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 66p<br> 혼자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이 유일한 진리라고 저자는 쓴다. 엄정한 이 앎이 몸을 통과해 삶을 변화시킬 때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도 열린다는 말이다. 자기 몸과 삶의 단독성에 대한 에누리 없는 앎. 이 성찰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확장된다. 저자가 말한 대로 타인을 설득하겠다는 오만은 내려놓고. 차이를 견디는 인내의 싹을 우리 안에 품게 한다.  <br><br>“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 안의 이방인’입니다.” 192p<br>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서 태어나 성장한다. 저마다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각자 다른 삶의 궤도를 돌고 있는 이방인이다. 그러니 타자를 만나면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고 묻기 전에, 정 궁금하다면,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습니까?’라고 속으로만 나직이 묻는 것이 낫다. 저자는 ‘타자성’과 ‘소외’라는 이방인의 감각을 어떻게 대면하고 다룰지에 대해 말한다. 자타를 낯설게 인식하는 이방인의 감각이야말로 자타를 재발견하게 한다는 것이다.  ​(3/4) <br>4.  이 책은 말하기와 듣기의 정치, 말하기와 듣기의 윤리에 관한 저자의 오랜 사유를 담았다. 공사의 말길은 누가 어떻게 지배하는가, 권력은 약자의 말길을 어떻게 지우고, 고통을 어떻게 은폐하는가. 약자의 말하기는 어떻게 의심받고 분열되는가, 절박하게 타전하는 약자의 발신을 수신하는 윤리적 듣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저자의 질문은 독자에게 사유와 실천이라는 응답을 요구한다. <br>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출신의 번역가이자 연구자인 알라 알카이시는 그의 책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에서 “나는 무엇이 ‘받아들일 만한’ 팔레스타인의 고통인지 결정하는 구조적 장벽들에 맞서 싸우고 있다.”라고 쓴다. 책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의심받는’ 참상을 ‘믿을 만한 것’으로 순화해야 하는, 그럼에도 ‘가해자’를 주어로, 가해를 능동태로 명시함으로써 서사적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여기에 더해 그것을 ‘지배자의 언어’로 세계에 증언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처한 다중의 모순과 고통을 통렬하게 기록하고 있다. ​<br><br>“그들의 경험을 호기심으로 소비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학술적 자료만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47p <br><br>책 속의 약자의 말하기와 청자의 윤리에 대한 글을 읽으며 알라 알카이시의 글이 겹쳐졌다. 정희진 작가가 말한 “경험한 자와 말하는 자 사이의 간극”을 조정하려 분투하는 글. 이 절박한 글들을 청자는 어떤 태도로 읽어야 할까. 알라 알카이시의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 전전긍긍했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마음이 무거웠고,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떨쳐지지 않았다. 정희진 작가는 말한다. “듣기 위해선 정말 큰 각오”가 필요하고, 청자의 응답은 태도의 갱신, 즉 책임이라고.  ​"말의 생사여탈권은 듣는 사람이 쥐고 있는 셈입니다.”155p <br><br>작가가 쓴 말의 생사를 결정하는 청자의 힘을 믿는다. 그러니 고통 당사자의 말을 듣기를 멈추지 않고, 세계에 전하는 것이 어쩌면 청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일지도 모르겠다. 목소리가 꺼지지 않게,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도록 아주 작은 불빛이나마 화력을 보태는 것. 그래서 지배적인 말길을 교란하고 지류의 말길이 힘차게 퍼지도록 힘을 보태는 것. 작가의 표현대로 “중구난방”으로, 시끄럽고 때로는 난잡하게, 막혔던 말길을 뚫는 작은 물살이 되는 것. ​<br>“각자의 고립된 자리에서 각자의 언어로 버티고 있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서늘한 인정의 지점에서 비로소, 우리 삶을 지탱할 작은 대화들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199p <br><br>언제나 그렇듯 정희진 작가의 글은 돌고 돌아 사유의 물길을 독자 자신에게 돌려놓는다. 소통의 조건을 찾아 밖으로 향했던 성찰의 방향은 독자 자신에게 되돌려 진다. 자기 이해와 태도의 부단한 갱신 없이는 타인과의 접점을 탐색할 인식의 지평이 확보될 수 없다고 작가는 전한다. 이런 대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공감과 각성, 두통과 웃음. 가느다란 빛줄기 같은 웃음. ​<br>“소통의 근원적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책과 이토록 내밀한 소통이라니. 소통 불가능성을 아는 이만이 소통의 조건을 재사유할 수 있다는 책의 논지를 책 자체로 증명하다니, 역시 대단한 내공이다. 작가는 우연한 조우가 선사하는 “작은 이해의 기적”을 말하지만, 독자는 오래도록 몸이 기억할 깊은 이해의 기적을 기쁘게 누린다. <br>PS.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br>1. 정상성 규범에 한 점 의심이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늘 ‘너는 왜?’라는 “부당한 질문”을 받고,    본인마저도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를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시는 분들.  2. 타고난 성정으로, 혹은 환경의 영향으로,   혹은 이 둘의 조합으로 자기 돌봄과 자기 보호라는 말이  언제나 어색하고 실천이 어려우신 분들 3. 세계 자체가 거대한 부조리로 여겨져    세계 자체와 싸움하느라 늘 탈진(탕진?) 상태인 분들.  4. 자기 자신이 거대한 부조리로 여겨져     자기 자신과 싸움하느라 늘 탈진(탕진?) 상태인 분들.     (1, 2 글들은 뒤에 있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150/89364816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57186</link></image></item><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말하기와 듣기의 정치, 말하기와 듣기의 윤리에 관한 사유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4009</link><pubDate>Tue, 08 Sep 2026 2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5040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5040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off/89364816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5040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a><br/>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08월<br/></td></tr></table><br/>2. ​대처 불가능한 언어들이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날아오는 말의 급습 (복싱의 펀치처럼, 그야말로 스트레이트로 훅하고 들어오는)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 취약성, 정치적 입장이 그 말들의 공략점이다. 기(氣)가 막힌다는 표현은 얼마나 정확한가. 기막힘은 정신을 방전시키고, 순간 입을 얼어붙게 한다. 지독하게 무신경하고 무례한 말의 수신자는 말문이 막힌다. 목울대의 불덩이와 수족냉증은 사후 증상이다.   <br>하지만 그 언어들은 정말로 대처 불가능했을까? 되감기가 반복된다. 왜 그때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했을까. 적절한 반응이 무엇이었을까. 내 삶의 방식에 관해 고해성사라도 해야 했을까. 복기와 자조와 이불킥의 연속. 발화자와 나 사이에 대양이 들어서고, 나는 이쪽 해안가에서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돌아선다.  <br> 내가 당한 말의 피습으로 시작했지만, 내가 뱉어낸 말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울화로 멍울져 있을 것이다. 고해사제의 얼굴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까. ‘어머! 왜?’라는 천진한 질문으로 상대를 당황케 한 적은 없었을까. ​<br> 어떤 선택이든 배경에는 삶의 맥락이 있고, 복잡한 삶의 인과는 본인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자주 문장 하나로 타인의 삶 위로 거대한 물음표를 그린다. (왜 아이가 없어? 왜 고기 안 먹어? 왜 혼자 살아? 왜 화장을 안 해? 왜 서울로 이사 오지 않아..... 왜, 그렇게 살아? 왜, 살아? ) 청자의 신경 회로는 하나로 집결한다. 왜!! 내가 그걸 당신에게 설명해야하는데!  <br>사적이든, 공적이든 대화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만남 전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만남 후에는 내가 한 말을 지나치게 복기하고 후회한다. 내 상황과 생각을 솔직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적절하게 응답하기도 어렵다. (불가능한 것이었다.)  <br>소통은 일대사이다. 인생의 많은 고(苦)가 타인과의 소통, 자신과의 소통 실패에서 온다. 빗나간 말로 누군가는 영원히 돌아서고, 명중한 말 한마디로 누군가는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 말, 들은 말 때문에 가슴에 바위를 얹고 평생 살아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창살 같은 말들의 틈입을 피해, 말이 들어올 틈새를 꽁꽁 틀어막고 칩거를 택한다. 말로 야기된 어떤 상황은 수습되지 않고 벌어진 상처 그대로 진행형으로 남는다. 생계와 생존이 위협받기도 한다.   <br>이 책은 사교와 처세, 공적 합의 수단의 영역에서 만능키로 제시되는 소통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해부한다. 저자는 공사의 영역에서 수행되는 말하기와 듣기의 정치성에 주목하고 말하는 주체와 듣는 대상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역학 관계, 맥락의 상이함을 파고든다. 강자의 말하기와 약자의 말하기, 강자의 듣기와 약자의 듣기가 어떻게 다른가? 소통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언어는 누가 어떻게 규정하고 전파하는가. 저자는 언어의 불완전성과 정치성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나아가 말하기와 듣기에 동반되는 윤리와 책임에 대해 숙고한다.   <br>저자가 분석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공사 영역을 막론하고 불균형한 권력 구도,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의 복잡한 함수, 삶의 지문이 다르게 새겨진 몸의 개별성, 오독과 오해의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언어의 한계, 선별적 듣기의 정치성. 여기에 자신을 늘 기득권자나 가해자가 아닌, 제3자나 피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습관적인 인식의 오류와 성찰의 태만까지. 저자는 사회적 권력 관계와 인식론적 한계로 소통이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미션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br> 그렇다면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약자는 소통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저자는 무익한 소통 전략의 반복 수행으로 자기 검열, 자기 분열로 나날이 소진되는 약자가 부조리한 현실을 재해석하고 돌파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인 사회적 약자가 받은 질문 자체를 거부하거나, 화자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자기를 지키고, 화자에게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전략들을 제안한다.  <br> 약자가 소통 불가능의 이유를 직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이해로 전복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갱신된 앎은 약자들이 전선을 재사유하고 재편할 수 있는 사유의 문을 연다. 불통의 틈새가 열린다. 저자가 일관되게 말해온 부조리한 세계에 관한 공부와 앎.  “약자의 인식론적 특권”은 약자의 자원이 된다. 이 앎을 바탕으로 약자는 생존을 도모함과 동시에 자기 돌봄, 자기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쓴다.  (2/4)​#당신과내가대화할수있을까#정희진#소통법#책추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150/89364816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57186</link></image></item><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약자는 말에 예민합니다.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473422</link><pubDate>Wed, 26 Aug 2026 1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4734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4734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off/89364816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4734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a><br/>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08월<br/></td></tr></table><br/>1.<br>“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약자는 말에 예민합니다” 12p<br>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살면서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해온 질문. 발언권 자체, 발언의 내용, 발언의 형식까지, 소통의 요건은 기득권자가 결정한다. 약자는 대화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과 협상한다. 무엇을 어디까지 내주어야 할까, 어떻게 전달할까. 이런 고민은 강자의 몫이 아니다. 이렇게 대화는 권력의 차이로  기울어진 링 위에서 오간다. ​​“인간 사이의 소통이 본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소통방식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인문학적 시도입니다.” 20p<br>그러니 현실의 대화와 소통은 긴장과 불안, 폭력을 동반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사적인 관계에서 순차적으로 소통의 불가능성을 몸으로 체득해간다. 그럼에도 대화와 소통, 두 단어는 평등한 상호성에 바탕을 둔 온정적인 아우라를 장착하고 ‘대화와 소통으로 해결하세요!’라는 빨간약을 여전히 해맑게 유통 중이다. ​<br>" 이 책은 소통 가능성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자기 돌봄의 외침에 가깝습니다.” 20p<br><br>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매번 다른 상황, 다른 상대지만 서늘하게 식은 저 질문만 오롯이 남는 불통의 절벽. 공사의 영역에서 맞닥뜨리는 이 불통 국면은 고해라는 인생의 멈추지 않는 파고다. 개소리(Bullshit, 개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인간은 죄 많은 종이다.)가 증폭되며 메아리치는 거대한 동굴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어떻게 귀와 입을 보호하고 단속할지, 어떻게 맑은 정신을 부여잡고 생존할지 늘 고민이다. <br>​“이 책이 제안하는 것은 소통의 포기나 소통 잘하는 법이 아니라 ‘소통에 관한 고민’,‘최소한의 소통’입니다.” 24p<br><br>유레카! 정희진 작가의 ‘소통의 불가능성’에 관한 강의를 듣다 안에서 탄성을 질렀다. 작가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서 ‘소통이란 무엇인가’로 질문을 이동시킨다. 발상의 전환은 현상의 본질을 드러내고, 드러난 본질은 달라진 대안을 내놓는다. 이거다! 그 강의에서 제안된 소통법을 듣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개소리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소통법들을 숙지했었다면, 그때 그 자리에서 수치심을 제 주인인 그 무례한 종자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었을 텐데!! <br>이 책은 앞서 말한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이라는 강의의 주제를 확장시켜 쓴 책이다. 아무리 집중해 들어도 강의의 내용은 많은 부분 휘발되기 마련이어서 몹시 아쉬웠는데, 이 주제에 관한 작가의 심도 있는 사유를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어 정희진 선생님의 오랜 독자로서 너무도 기쁘다. ​​<br>“저는 완벽한 소통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욕망, 환상을 걷어내고 소통 불가능성을 이해하는 일이 일종의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4p<br>책을 받자마자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 가슴이 벅차다. 불통의 절벽에서 뛰어내려, 면벽의 삶을 살고 있는 독자로서 이 주제로 작가를 만나게 되어 더 각별하다. 우선은 지속가능한 면벽의 삶을 위하여, 그리고 가끔 있을 소박한 외출을 대비하기 위하여 책장을 펼친다. <br>(1/4)<br><br>​<br>#정희진#당신과내가대화할수있을까#소통법#책추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150/89364816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57186</link></image></item><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시공을 뛰어넘어 울려퍼지는 여성 시인들의 메아리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392052</link><pubDate>Tue, 14 Jul 2026 2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3920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0907&TPaperId=173920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4/coveroff/k0521309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0907&TPaperId=173920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픔에게 언어를 주자</a><br/>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07월<br/></td></tr></table><br/>“슬픔이 슬픔에 맞닿을 수 있다면,"고통이 고통에 응답할 수 있다면, 어떤 연민이든 당신을 녹일 수 있다면, 지금 내게로 오십시오.”   79, 에밀리 브론테, 슬픔이 슬픔에 맞닿을 수 있다면   &nbsp;  어떤 책은 다정하다. 독자의 변덕스런 감정을 인내하며 한결같음으로 독자의 방문을 허락한다. 그&nbsp;책은 다정하다. 발을 헛디뎌 절룩거리는 독자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준다. 혼돈과 의심, 수치와 소외로 얼어붙은 독자를 재촉하지 않고 침묵 속에 기다려준다. 책에 숨겨진 촛불 하나로 길을 잃어 헤매는 독자에게 환한 통찰의 빛을 내어준다. 다정한 이 책은 삶에 기진해진 독자를 페이지를 길게 펼쳐 포옹해준다.    &nbsp;  <br>“이제 밤이 오면 잠 대신 고독이 찾아와  내 침대 머리맡에 앉는다.  지친 아이처럼 누워 그녀의 발소리를 기다리며,  나는 그녀가 조용히 불빛 끄는 것을 바라본다.” 177, 캐서린 맨서필드, 고독,   &nbsp;  &lt;슬픔에게 언어를 주자&gt;는 그 다정한 책이다. 이 책의 다정함은 조금 더 특별한데, 그것은 이 책의 목소리들이 모두 여성들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내 앞을 살다 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길어 올린 맑은 물 한 잔을 독자에게 권한다. 갈애와 갈증을 안다고, 열기와 냉기를 안다고. 고양과 추락을 안다고. 상실과 추방을 안다고. 그녀들은 고요히 말한다. 멀리서 당도한 시어들은 속삭인다. 안다고, 내가 당신을 안다고, 보았다고.   &nbsp;  <br>“내 가슴속에는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문을 닫아버린 곳. 당신의 얼굴을 기억 속에 가두고  열쇠를 가져가 버린 곳” 157, 래드클리프 홀, 기억,   &nbsp;  기원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공유한 경험과 감정들, 통찰과 지혜가 여성 시인들의 시어들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시에서 공명이 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성이라는 젠더가 통과해온 거시사와 미시사, 그리고 그 경험이 체득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여성의 앎이라는 특수한 상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젠더를 넘어 인간 조건에 관한 시들에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nbsp;    &nbsp;  “우리의 고통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남자는 없으니,그 산고를 당신들의 잔혹함을 막는 빗장으로 삼으라.” 41, 에밀리아 라니어, 여성을 위한 이브의 변론  &nbsp;  세계여성시선집이라는 기획 반가웠던 이유는 이 안도감 때문이었다. 어머니 젖가슴과 땀내에 대한 향수로 절절한 시구, 여성의 몸을 사물과 등치시키는 시구, 역사에 남성사를 의심 없이 합일시키는 시구, 폭력을 사랑으로 전도하는 시구, 가해를 자기 연민으로 연소시키는 시구, 진리의 담지자로 화한 자아 비대의 시구를 읽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감. 며칠 전에 본 영화의 도입부. 가정폭력으로 쉼터에 첫 방문한 여성에게, 현관문을 열어준 여자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여긴 안전해요.’ 물론 그 안에도 잡음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전’이라는 단어를 대번에 이해하고 안도하는 ... 우리에겐 아직 여성들만의 방이 필요하다. 이 시선집은 그 방 중 하나다.    &nbsp;    &nbsp;  “기묘한 신비여라, 말의 힘이란!그 속에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69, 레티샤 엘리자베스 랜던, 말의 힘  &nbsp;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이 시선집의 이름처럼, 의심받고 폄하되고 부정되었던 여성의 경험과 감정이 여성 시인들의 손끝에서 언어라는 몸을 갖추게 되자,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다. 이 책은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여성 시인들이 남긴 시 100선을 담고 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시가, 왼쪽 페이지에는 시인의 연대기가 소개된다. 시인들의 소개를 읽다보면 숙연해진다. 오랜 세월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이토록 혹독하고 고단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시로 남겼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숙연함. 전쟁과 혁명, 억압과 저항, 사랑과 이별, 외로움과 고독, 탄생과 죽음.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관문들을 통과하며 여성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의 파동이 이 책안에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nbsp;  <br>“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19, 술키피아,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nbsp;  저 공은 얼마나 저렇게 공중에 떠있었을까. 시선집 표지 위에는 두 명의 여성이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두 여성의 몸을 오간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여성 시인 술피키아가 뛰어 올린 둥근 마음 하나가 내게 도착한다. 나는 응답한다. 둥근 마음 하나 공중으로 뛰어 올린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4/cover150/k05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3467</link></image></item><item><author>나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삶이라는 야생의 책에 관한 은유로 가득한 책 - [야생의 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352154</link><pubDate>Wed, 24 Jun 2026 0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2558174/173521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9510&TPaperId=173521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7/22/coveroff/k61213951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9510&TPaperId=173521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야생의 책</a><br/>후안 비요로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일생의 숨박꼭질 대상이 있다면, 내게는 싱겁게도, 아니 거창하게도 책이다. 10대 시절, 대학생이던 10살 터울 친족의 책장 안 책들은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수많은 문들과 같았다. 책 한권을 빼 읽으면, 그 책이 있었던 빈 공간만큼 세계를 보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들뜸.(순진도 하지!!) 징글징글하게 몸과 마음에 든 습에 취약한 종인지라,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책에서 무언가를 찾는다.(순진도 하구나...) 책과 책 사이의 빈 공간에 눈을 대고 금붕어처럼 눈을 끔뻑인다. ​하지만 일생의 연애에도 권태는 찾아오는 법, 책과의 연애도 예외는 아니다. 책에게 무엇을 원하나(진리, 진실, 믿음, 웃음, 깃발, 장미, 빵, 나무, 기차, 바다, 생크림, 맥주, 소화제, 해열제.. 해독제...근육이완제....... 수면제, 박멸제,............ .... &amp;%$%&amp;........구원.......... ??), 너무 시끄러운 책(과잉), 너무 과묵한 책(결핍), 거추장스러운 책(다른 의미의 과잉과 부담), 찾을수록 꽁꽁 숨어버리는 책(밀고 당기고). 사랑의 연료라 할 수 있는 호기심이 말라붙어 만사(책사)가 심드렁해진 이때 이 책의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움직이고, 독자를 선택하는 책이라고?? 제목도 &lt;야생의 책&gt;. (제목을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야성의 엘자’, 동시에 사자의 포효가 울려 퍼진다. ..연식이...) ​제목으로 호기심에 기름을 붓는 &lt;야생의 책&gt;. 야생성을 간직한 책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혹적이다. 야생성이란 무엇인가? 길들여지지 않고, 제 본성대로 살아가는 성질이지 않은가. 책춘기, 책태기 중인 내가 찾던 책이 바로 이것 아닌가. 세련된 포장으로 무한 복제되는 동어 반복의 책이 아니라, 제 생명력으로 오래도록 살아남아 성질대로 으르렁대는 책. 그래서 펼쳤노라, 읽었노라.  <br>​과연 그랬다. 소년 후안, 소녀 까따리나가 탐험에 나선 띠또 삼촌의 도서관에 꽂힌 책들은 살아있을 뿐만이 아니라 본성대로 제 삶을 살고 있다. 그 책들은 각자 움직이고, 창조하고, 꿈꾸고, 찾아 나섰다. 동시에 서로 교류하고, 시샘하고, 상처주고, 충고하고, 위장하고, 훔치고, 달아나고, 협력한다. 후안과 까따리나는 이 기묘한 도서관에 머무는 동안 책들의 삶과 생태를 깊게 관찰한다. 소년이 내게 들려준 책의 생리와 생태는 이렇다.  ​<br>한 권의 책은 거울이자 호수이다. 책은 세상을 비춰 독자에게 길을 제시할 뿐만이 아니라 독자 자신을 비춰 자신을 직면하게 한다. 용기 있는 독자는 책의 수면에 투영된 자신을 받아들인다. 좋은 책일수록 수심이 깊다. 이런 책은 깊이 들어다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소리 없이 작동하는 모터”를 가진 “가장 훌륭한 교통수단”이다. 빛과 에너지를 가진 글자는 독자에게 삶의 심해를 탐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의 힘을 길러준다. 과거로, 미래로, 지하로, 대기권 밖으로 멀리, 멀리까지 오염 없이 데려간다.  <br>​훌륭한 책은 훌륭한 독자다. 이 놀라운 책들은 독자를 읽는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저마다 다른 삶과 마음을 가진 독자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알아보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길고 긴 대화를 나눈다. 책에는 저자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책과의 교분은 잠자는 책의 영혼과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약효를 얻기 위해 약병을 흔들 듯, 타인과의 만남과 성장을 위해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책은 시간이 합류해 소용돌이치는 장소다. 책은 “인류의 외부 기억장치, 즉 기억의 창고이다.” 동시에 책은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미래의 인큐베이터이다. 하지만 그 책을 지금 이 순간 펼치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현재로 끌어올 수 없다. 책을 읽는 행위는 기억의 과거와 희망의 미래를 현재라는 순간에 포개놓는다. 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책은 되어 진 세계와 되어 질 세계, 되어 진 나와 되어 질 나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조정해준다.   <br>하나의 책은 하나의 계단이다. 충성스러운 책들은 독자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를 향해 기꺼이 계단이 되어준다. 한 권의 책은 다른 한 권의 책을 부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호명된 책들이 모여 지상으로, 혹은 지하로 이어진 책의 계단이 만들어진다. 독자는 그 계단을 딛고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낯선 세계로 나아간다. 발밑에 내 눈길이 속속들이 닿은 지지대가 느껴지면 그 낯선 세계로의 모험이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br><br> 책의 삶은 함께 읽힐 때 더 풍요로워진다. “강물처럼” 책을 읽는 독자들은 서로의 독서 경험을 나눔으로써 책의 흐름을 계속 바꿔놓는다. “강물처럼” 책을 읽는다는 건 세계가 흘러가는 맥락을 책의 맥락에 이을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독자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맥락의 양과 질에 따라 한 권의 책은 다르게 독해된다. 하나의 책에 대한 저마다의 독해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그 책은 더 이상 한권의 책이 아니다. 함께 읽은 독자의 배수만큼 겹겹의 책을 품은 비옥한 책이 된다. ​신비한 도서관에 관한 소년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계속되는 책의 비밀들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이 책을 읽다보면 비유가 아닌, 진실로 도서관은 영혼의 숲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의 소리를 듣고, 다시 쓰여 지고, 잠자고, 침묵하고, 깨어나고, 말 걸고, 독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영혼들.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 책의 피부가 나무의 섬유로 만들어진 사실까지 얼마나 근사한가. 그래서 영혼의 숲, 도서관에서는 나무의 살결이 전하는 촉감과 향기로 책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br><br>​이 멋진 장소에서 진정한 독자는 진정한 저자가 된다. 영혼의 미로와도 같은 도서관은 보이지 않는 기억의 문신들로 빼곡하다. 그 문신들은 읽고자 하는 간절함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독자의 간절함이 텍스트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현재 진행형으로, 매 순간 쓰여 지기를 원하는 책. 그런 만큼 세계의 생생한 현실을 살아가며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점으로 해석할 지혜를 갖춘 독자, 자신을 간절하게 원하는 독자에게만 빈 페이지를 열어 보이는 책. 길들여지기보다는 차라리 사라지기를 선택하는 책. (성깔!!)  <br><br>​이 책이 소년이 그토록 찾아 헤맨 야생의 책이다. 만만치 않은 책은 만만치 않은 독자를 원한다. 고집스럽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것이 영락없이 삶과 닮았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읽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써야하는 빈 페이지들의 삶. 내 앞에 펼쳐진 빈 시간의 페이지. 이 책은 이렇게 책과 독서, 삶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책이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도착하듯, 후안의 동생 까르멘이 존재의 경계를 넘어 인형들과 대화하듯, 이 책은 책과 책, 책과 독자, 저자와 독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교란하고, 전복시킨다. 책과 독서, 삶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br><br> “내 생각에 우리는 좋아하는 책을 진심으로 열심히 찾는 지극히 평범한 독자일 뿐이었다.” 좋아하는 책의 내용이 무엇이든, 열심의 강도가 얼마이든, 관건은 ‘진심’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야생의 책을 알아본 것은 까르멘의 봉제 인형 토끼였다. 까르멘이 진심으로 믿은 인형의 생명이 이 탐험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이다. 야생의 책은 “글자 없는 책”이다.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소년도 나도, 이 탐험으로 배웠다. 내 삶의 최초 독자도 나, 최후 저자도 나이다. 괜히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빈 페이지들 앞에 전전긍긍하는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까. (없다고? 이 책을 펼쳐보시라. 여럿 만날 수 있다.)  ​​PS. 미래의 독자는 과거의 맛이 나는 짭짤한 쿠키와 미래의 맛이 나는 달콤한 쿠키, 오묘한 맛의 현재의 쿠키를 준비하고 책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은 입맛도 야생으로 돌려놓아 온갖 음식과 레시피로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7/22/cover150/k61213951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7222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