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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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말했습니다...

나는 물 속에서 살기에 당신에게는 내 눈물이 보이지 않아요."

왕쉬안 <물고기가 묻다>




아이에게는 울음은 강력한 자기 표현 수단이다. 생리적인 욕구부터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아이는 세찬 울음으로 쏟아낸다. 이런 울음에 어른들은 즉각적으로 응답해준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생리적인 욕구 때문에 남 앞에서 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슬픔과 분노도 홀로 삭혀야 한다. 마치 물 속의 물고기가 된 것처럼 우리의 눈물은 타인에게 가닿지 않는다.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는 한 남자의 성장담이다. 1975년 타이베이, 열일곱살이었던 예치우성은 그 해 두 번의 큰 죽음을 맞는다. 국부로 불리던 남자 장제스의 죽음, 그리고 자신을 너무나 아껴주던 할아버지 예준린의 죽음이다. 



국공내전 중 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가담했던 국민당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는 타이베이로 이주해 온 후 포목점을 운영해왔다. 포목점 운영은 순조로웠지만 전쟁 중 연을 맺은 의형제들과 그 가족, 고아들에게 퍼주느라 그의 가족들은 언제나 팍팍한 삶을 살아야했다. 할아버지는 전우의 아들을 양자로 삼고 피도 나누지 않은 삼촌 위우원을 자신의 친아들보다 예뻐했다. 그런 의리 있고 인심 좋은 할아버지가 살해 당했다. 원한에 의한 살해일 것이라는 추측이 오가고, 예치우성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할아버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나름 모범생 축에 속했던 예치우성의 삶도 죽마고우인 샤오잔 때문에 완전히 꼬여버린다. 대리 시험을 치다 퇴학을 당하고, 불량아들만 모아둔 고등학교로 울며 겨자먹기로 재입학한 그는 세상의 폭력에 완전히 노출되어 맞거나 때리거나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때부터 샤오잔과 멀리 하면 좋았겠지만, 의형제의 의리를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 할아버지를 닮은 탓인지 동네 조폭과 어울리는 샤오잔과 얽히다가 예치우성의 인생은 더욱 꼬여버린다.


주인공의 학창시절이 활극처럼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애틋한 첫사랑도 시작된다. 하지만 인생의 좌절과 실패, 이별은 금세 그를 찾아온다.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잃어가며 예치우성은 점차 마음 속 뜨거움이 사라져가는 어른이 되어간다. 



"할아버지든, 위우원 삼촌이든, 레이웨이든, 

사람이 죽을 때 마다 그 사람이 있던 세계가 사라진다. 

나는 그들 없이 살아야만 한다.

원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더 애매하고, 차갑고, 

무관심을 숨기려 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내 다리는 얼어붙는다.

따뜻한 외투가 하나씩 벗겨져 알몸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류> P474




할아버지 예준린 세대와 손자 예치우성 세대는 이어진 듯하면서 너무나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중국 대륙 본토를 자기들 땅으로 여기는 구 세대와 대만인으로 살아가는 신 세대. 언제든 전우들과 함께 전쟁에 다시 뛰어들 준비가 된, 모제린 권총을 소중히 품은 구 세대와 군대를 폭력이 난무하는 부조리의 온상이라 혐오하는 신 세대.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바다 같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토해내는 고통과 슬픔은 한낱 '물고기의 눈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저지른 죄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그땐 다 그랬어'라는 말로 잔인했던 과거를 외면하든지, 자신의 방식으로 속죄를 하며 살아가든지. 전쟁 상황에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육했던 할아버지 예준린 역시 나름의 속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떤 신념도 없이 어쩌다 국민당으로, 어쩌다 공산당으로 편이 갈려 서로를 죽이게 된 사람들. 대만 태생의 일본인 작가는 소수의 신념, 소수의 이익에 의해 발생한 전쟁이 가져올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을, 중국 국공내전을 소재로 풀어내면서 전쟁의 가해자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하면 <반딧불의 묘> 때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책 속에는 레이웨이란 캐릭터로 살짝 언급되었지만, 대만이란 나라 자체가 참 '물고기의 눈물' 같기도 하다. 줄곧 다른 나라의 침략과 통치 속에 살아온,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자주적인 국민이 되어본 적이 없는 본성인들. 과거에는 노골적으로 핍박 받았고, 본성인들이 세운 민진당이 집권한 뒤 사정은 나아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왜 '하나의 중국' 속에 자신들도 포함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이들의 외침은 보이지 않을 만큼 무력하기만 하다. 



50년에 가까운 시간차가 있지만 잠시 살았던 타이베이의 골목 곳곳을 재현한 생생한 문장이 좋았다. 게다가 어두운 시절이라도 청춘은 반짝 빛나듯 유쾌한 문장도 웃음을 자아냈다. 할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에 대한 집요한 추격은 없지만,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긴장과 반전의 묘미 역시 뛰어났다. 



아쉬운 점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주인공을 어린 시절부터 보호해주던 걸크러시 마오마오, 똑똑한 편집자 고모 샤오메이, 모든 과거를 품고 아내가 된 시야메이링 모두 너무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러, 남자 주인공 중심 서사의 한계가 보여서 안타깝다. 



하지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답게 재미 면에서는 탁월했다. 유쾌하면서도 거대한 이야기를 담은 <상실의 시대>라고 해야할까? 소중한 것을 잃으며 어른이 되지만, 소중한 것들이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인생은 그렇게 이어지는 거라고, 이 책의 마지막이 고독하기만 한 성장이 아니라 좋았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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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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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는 건 이제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다. 인류는 그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확장된 지식들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를 근거도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다룬 다큐를 봤는데 자신들이 '지구평면설'을 증명할 수 있다며 세운 가설로 실험을 해놓고, 전혀 증명되지 않는, 오히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지구평면설'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그저 신봉하는 종교가 되어버린 듯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마지막 저서이다. 이 책이 발간된 건 90년대,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기말 예언을 몇 해 앞둔 때, 세계는 얼마나 많은 미신과 반지성에 빠져 있었을까. 국내만 해도 어린 시절 과학잡지 같은데서 UFO나 네스호의 괴물 같은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미스터리는 당시 과학잡지의 단골 소재였다.) 과학은 문명을 몰라보게 발전시키고, 인류의 삶에 혁신을 가져왔지만, 우리의 삶은 미신과 유사과학에 더 닿아 있었다. 



우리는 칼 세이건을, 이제는 과학서의 고전으로 통하는 <코스모스>의 저자로 기억한다. <코스모스>는 다큐멘터리로 먼저 알려지고, 이후 책으로 발간되었는데 이는 모두 칼 세이건 자신이 직접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하고 실행한 결과물이다. 그는 본인이 직접 스튜디오를 차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PD를 섭외하고 송출할 방송사를 컨텍했다. 그만큼 과학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뿌리 내려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는 과학이 왜 보다 대중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강력한 바람이 담겨 있다.



90년대 미국사회는 과학 문맹이 95%에 달할 정도로 과학적 지식에 무지한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이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졌을 것 같지 않다. 빌게이츠, 오바마 등이 외계인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단체의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갔으니.)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분위기는 공교육에서 다윈의 진화론마저 부정하게 만든다. 칼 세이건은 미국사회에 만연해있는 미신과 유사과학, 음모론 등의 실체를 파헤치고, 종교가 지성의 눈을 가릴때 벌어진 끔찍한 만행들- 중세의 마녀사냥, 현대의 사이비 종교가 벌인 집단 범죄- 등을 거론하며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책 속에는 UFO, 외계인, 환각, 중세의 마녀사냥, 심령술, 사이비 종교 등 마치 영혼을 앗아가는 악령처럼 많은 사람들의 매혹시킨 미신과 유사과학의 사례가 흥미롭게 제시된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앞서 언급한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과 완전히 같았다. 자신들의 믿음 외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저자는 과학적 견지에서 이것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번쯤 혹했던 음모론들이고, 인간의 맹목성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서 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과학'을 보는 내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과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완벽한 도구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과학 그 자체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확실하게 밝혀 줄 수 있다.

(중략)

과학은 대안적 가설들을 먼저 머릿속에 만들어 보고 그중 어느 것이 사실과 가장 잘 부합하는지를 알아보라고 권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것이 아무리 이단적인 것이라고 해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든 기성의 지혜이든 간에 가장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며 회의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는, 매우 섬세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종류의 사고 방식은 변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55~56p



과학에게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 언제든 오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이를 증명해나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진보의 과정이다. 둘 다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깨어있는 구성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에게 과학은 너무 멀고 어려운 영역이다. 과학이 좀 더 민주주의에 가까울 수 있으려면, 과학이 대중화되어야 한다. 저자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깨어 있는 마음과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적인 방식에 관한 이해를 가진 시민'이라 말하며, 과학의 대중화를 거듭 강조한다. 교육에서부터 과학과 친해질 수 있어야 하고, 과학자들 역시 그들만의 리그 속에 갇혀서는 안된다.


"과학적 성향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문화에서든 늘 우리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생존의 수단이다.

그것은 우리의 천부적 소질이다.

무관심, 부주의, 무능력, 그리고 회의주의에 대한 불안 따위 때문에 우리가 어린이들을 과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로부터 인간으로서의 특권과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를 빼앗는 것이 되리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P468



이 책은 과학이 내 삶 속에 녹아들어가야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과학적 사고를 잃으면 우리는 쉽게 근거도 없이 확신만 가득한 유사과학과 미신에 의존하게 될 지 모른다. 



특히 19장 '쓸데없는 질문은 없다'가 육아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나 큰 울림을 주었는데, 물론 이 장에서 과학 낙제 국가 미국을 걱정하며 비교적 수학, 과학 영역에서 우수함을 보여주는 한국을 언급하고 있어 다소 묘한 마음이 되었다. 칼 세이건은 알까? 얼마나 많은 한국 학생들이 수포자, 과포자가 되는지를. 한국에도 그가 말하는 직접 체험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과학 수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내 아이가 발견의 기쁨과 경이에 가득찬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에서 권한대로 아이가 어떤 질문이든 용기있게 말할 수 있게, 설명하고 함께 탐구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답을 모르겠을때 해줄 수 있는 말도 너무 멋있다. "답을 모르겠구나. 아마 아무도 모를 거야. 네가 자라서 그것을 밝혀낸 최초의 사람이 되는 건 어떻겠니?" 이 말을 들은 아이가 자신이 던진 물음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흐뭇해진다.) 오늘의 운세에서 본 이야기에 하루종일 심신을 지배당하는 나약하고 반지성적인 인간이지만, 내 속의 악령을 몰아내고 과학의 촛불을 켜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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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네 살 넛지육아 - 뇌 과학자 아빠의 기발한 육아전략
알바로 빌바오 지음, 남진희 옮김 / 천문장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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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언제나 처음 겪어 당황스럽거나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맘카페를 매일 같이 드나들었다. 나보다 앞선 엄마들이 겪은 경험담은 묘한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이게 신뢰할만한 정보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날로 커져갔다. 뭔가 명확한 답을 찾고 싶은 나는 각종 육아서를 파고 들었다.



<세살 네살 넛지육아>는 스페인의 신경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알바로 빌바오가 세 아이를 키우며 겪은 육아경험을 녹여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아이 뇌에 대한 기초 지식'과 이를 육아에 어떻게 접목시킬지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래 7년 넘게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오르며 육아 바이블이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읽는 순간 직감했다. 이 남자 스페인의 오은영 박사네!



이 책은 서문에서 아이의 뇌가 완성되어가는 0~6세를 '아이 인생의 골든 타임'이라 부른다. 아이의 성격은 유전이 50%, 또래집단이 25% 정도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단 부모의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0~6세는 부모의 보호 하에 있는 시기, 이 때 부모가 주는 안정감은 아이의 정서 발달은 물론 두뇌 발달에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하지만 두뇌 발달이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교재와 교구가 아이의 삶 속에 개입되고 있나. 저자는 이런 선행학습과 조기교육은 오히려 아이를 스트레스로 몰고가 우울증, 행동장애 등의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두뇌 발달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 부모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전한다.



아이의 머릿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면 아이의 행동과 그 의미를 이해하며 좀 더 너그럽고 느긋한, 인내심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3개의 뇌로 이뤄져 있는데 갓 태어난 아기는 생존에 관련된 원초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만 기능한다. 그러다보니 생후 1년은 수면욕, 식욕 등 생리적은 욕구만 느끼며 이성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생후 1년이 넘어서면 '파충류의 뇌'와 '감정의 뇌'가 공존한다. 이때부터 아이는 애정과 안전과 같은 감정적인 욕구도 느끼며, 부모는 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안전을 위한 한계를 설정해줘야 한다. 3살쯤 되서야 아기는 '이성의 뇌'가 발달하는데 부모는 아이가 더욱 집중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책 속에는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성의 뇌'가 발달하는 시기, '미운 세살'로 불리는 자기 주장이 늘고 일명 '생떼'가 늘어나는 시기의 아이가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어떻게 대화를 건넬지, 지혜로운 대화법에 대한 내용을 예시와 함께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정말로 대화 지문까지 있어 실제 그 상황에 맞딱드렸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아이가 보이는 다소 미숙한 행동들을 이해하고, 아이가 느낄 다채로운 감정을 적극적으로 공감해주고, 동기를 유발하며 긍정적인 행동은 강화시켜주고, 아이가 살아가며 지켜야할 규범과 질서들은 한계를 설정해 단호하면서 다정하게 건네는 책 속의 대화들은 마치 오은영 박사가 육아 컨설팅 방송에서 했던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두뇌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은 새롭고도 새겨야할 중요한 포인트였다.



책에는 유대감, 자신감, 책임감, 행복감 등 아이가 감정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 대화도 있지만, 기억력과 주의력, 언어력, 자제력, 창의력 등 지성의 뇌를 개발할 수 있는 대화법도 소개하고 있다. 비싼 교재나 교구도 필요없이 부모의 행동과 대화로도 아이의 지능이 개발될 수 있다니.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을 수소문하고 다니고 있거나 엄청난 비용을 들여 영유아 사교육을 하려 했던 부모라면 이 부분을 유념해서 봐야할 것이다.



"성공적인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지나치게 폐쇄적인 방법론이나 원칙은 던져버리고, 이 순간을 진실되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부모, 가장 위대한 교육자는 언제나 꽉 막힌 방법론에 집착하거나 규범에 맹신적으로 얽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 순간 아이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고,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세살 네살 넛지육아> p269



'뇌 과학자 아빠의 기발한 육아 전략'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지만, 이 책의 육아 방향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아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부드러운 대화와 행동을 통해 아이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하지만 부모도 아직 미성숙한 인간인지라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때도 있고, 그래서 생떼를 부리는 아이 앞에서 짜증을 참지 못하고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을 늘 곁에 둬야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건 스스로를 더 좋은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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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네 살 넛지육아 - 뇌 과학자 아빠의 기발한 육아전략
알바로 빌바오 지음, 남진희 옮김 / 천문장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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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뇌발달을 이해하면 아이에게 상처주지 않고 잘 키울 수 있다는 지혜가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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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만이 살길 - 콘텐츠 전쟁에서 승리하는 27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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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PR의 이해'라는 강의에서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 브랜드 스토리를 꽤 인상깊게 들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스크림'의 이미지를 가진 이 브랜드는 히피였던 두 창업자 벤과 제리가 만들었다. 그들은 히피들의 귀농 공동체에서 깊은 영감을 받게 되고 지역에서 난 유기농 재료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기로 한다. 자본주의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던 시기에 그로인해 파괴된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브랜드의 탄생. 이 브랜드는 이익의 일부를 환경보호와 빈곤, 성소수자, 인종차별 등 약자를 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의 원료 역시 성장촉진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은 젖소로 부터 얻은 원유를 사용한다. 지금에야 ESG 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려는 브랜드 스토리를 가진 브랜드가 갓 주목을 받던 시기였고, 이 스토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처음 경험한 스토리의 힘이었다.



<스토리만이 살길>은 출판, 방송, 영화, 광고계를 망라하는 세계적인 스토리 컨설턴트 리사 크론이 밝히는 '콘텐츠 전쟁에서 승리하는 27가지 스토리 법칙'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부터 승객들의 불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항의 공사 안내 방송과 브라질 특유의 축구 열정을 장기 이식 캠페인으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킨 스토리를 대조해서 들려주며 스토리의 본질은 어떠해야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저자는 스토리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우리는 종종 객관적인 사실과 수량화된 데이터, 통계 등이 보다 정확한 정보 전달의 도구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정보를 접했을 때 우리 머리에 남는건 거의 없다. 진화론적으로 우리는 스토리에 끌리고, 스토리를 더욱 잘 기억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토리는 오래된 '가상세계'이다. 스토리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인지하게 만들어주고, 공동체에 소속감과 친밀감을 형성해주는 주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지적 무의식은 스토리에 더욱 반응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사실이란 결코 객관적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입장과 맥락에 따라 사고하기에 같은 정보도 받아 들이는 주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실만 관심을 갖는다. 특히 자기 믿음을 입증하는 사실에는 유난히 끌린다.


플라톤 이래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한 것처럼 여겨왔다는 점도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의사결정을 할 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감정'이라 말한다. 일단 느끼고 그 다음에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감정이 수반된 기억이 훨씬 오랫동안 우리 뇌리에 남는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설득하는 내용은 감정이 담긴 스토리여야 훨씬 효과적이다.



이 책은 뇌가 반응하는, 끌리는 스토리의 법칙들을 자주 회자된 성공한 광고 캠페인 등 실제 사례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저자가 정의하는 스토리란 '주인공의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 즉 '내적 투쟁으로 인한 깨달음'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잘못된 믿음을 진실로 인도하는 깨달음의 포인트를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스토리 타깃을 정하고, 상대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의 믿음을 바꾼다는 것은 꽤나 저항감을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 속을 파고들, 잘못된 믿음을 품게 된 이유를 건드릴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저자는 이건 논리적인 사실 설명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한다. 이 포인트는 간결해야하지만, 표현방법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긴장과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책 속에는 훌륭한 스토리를 만드는데 참고할 수 있는 풍성한 사례들과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게 실전 연습을 위한 질문도 마련되어 있다. 이를 따라 연습하다보면 보다 핵심에 다가서는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리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악용되면 가짜뉴스와 같은 잘못된 방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부디 현명한 활용을 당부한다. 그러고보니 대중을 선동시킨 많은 프로파간다가 사실보다는 대중이 듣고 싶었던, 잠재의식 속의 악랄하고 모순된 감정을 끄집어낸 스토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스토리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 우리를 즐겁게 할 유희거리쯤으로 가볍게 치부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상대를 설득하고 나아가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스토리는 뇌에 콕콕 박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메시지를 남긴다. 스토리의 힘을 실감시켜준 책, 그래서 스토리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의 법칙들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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