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홈스토랑 - 보통의 일상을 특별하게 해주는 계절의 요리
이혜영(루루흐) 지음 / 책밥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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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족스러운 한끼를 먹는게 이토록 간절한 꿈이 될 줄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상상도 못했다. 참을성 20분이 최대인 아이와 함께하는 외식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극한의 경험이었다. 그러니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챙겨주는 코스 요리는 상상도 못할 도전이다.


게다가 제철 재료로 건강하게 정성껏 준비하는 아이의 밥과 달리 엄마의 한끼는 빠르게 대충 떼운다는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간절했다.



<사계절 홈스토랑>은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근사하게 차려낸 계절 요리들을 담고 있다. 책을 펼치기만해도 눈이 힐링 될 정도로 알록달록한 채소와 과일의 색감과 감각적인 푸드 스타일링,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가득하다. 



저자 이혜영은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에서 가공식품을 만들다가 텃밭을 가꾸게 되며 사계절이 담긴 요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텃밭에서 난 냉이로 된장찌개를 뚝딱 만들어내고, 제철이라 더 달큰한 맛이 든 당근으로 아이를 위한 스프를 끓이는 손이 뭔가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을 전해주었다.



책도 이런 유튜브 채널과 다르지 않았다. 제철에 우리가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근사하게 차려낸 식탁이 책의 부제처럼 '보통의 일상을 특별하게' 해준다. 책에서 더 강화된 점이라면 '눈으로 먹는 재미'. 재료가 돋보이는 샐러드와 같은 음식들은 마치 야생화가 가득한 영국식 정원을 보는 듯 싱그럽고 다채롭다. 파스타나 스테이크와 같은 메인 요리들은 레스토랑에 온 것 같이 고급스럽게 연출해낸다. 



책에는 우선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소스들을 소개하고, 각 계절의 제철 재료와 계절에 차려낼 홈스토랑의 코스 메뉴를 보여준다. 에피타이저-메인메뉴-사이드메뉴-드링크&디저트로 구성된 코스요리는 하나 하나 평범한 집밥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요리들이다. 부추, 토마토, 버섯 등 식재료는 특별할 게 없는데 결과물은 환상적이었다. 레스토랑처럼 즐길 수 있는 추천 세트메뉴도 덧붙여 소개하고 있다. 



책을 보다보면 나 같은 똥손이 과연 이런걸 해낼 수 있을까 주눅이 들긴 하지만 더없이 건강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보다보면 나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방울토마토가 집에 가득 있어서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 떡볶이에 도전해보려 했는데, 반나절 이상 숙성해야한다는 말에 꼬리를 내렸지만, 타코라이스 같이 금세 뚝딱 만들어내면서 제대로 차려먹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요리도 있다. 이 토마토들로는 3가지 맛 토마토 마리네이드에 도전해봐야겠다.



사실 요리책의 진가는 직접 시도해서 맛까지 평가하는데 있는데, 여전히 물에 밥 말아 후루룩 한끼 떼우고 아이를 봐야하는 육아에 요리를 위해 짬을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주말, 내 일상을 좀 더 특별하게 해줄 수 있는 이 홈스토랑을 꼭 한번 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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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홈메이커입니다
크리스티나 피카라이넌 지음 / SISO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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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는 한때 내 꿈의 직장이었다. 지원했던 수 많은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갈망하던 직장인이 되었지만 숨막히는 조직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나는 줄곧 집으로 취직하길 바랐다. 백수가 가장 적성에 맞는데 경제력은 없고, 그러자니 전업주부가 그에 가장 가까운 모습처럼 보였달까. 전업주부의 실체도 모르고 떠올린 허무맹랑한 생각은 실제 전업주부가 되어서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당사자가 아닌 시선에서 전업주부는 프리라이더처럼 보일 수도 있다.(특히 아이가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집안일에 전문성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육아는 어떤가. 돌봄의 노동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아 언제나 무가치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막상 전업주부가 되고 나니 한때 나도 가졌던 세상의 이런 시선에 주눅 들고,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아이가 없다면 당장 이 우울의 늪을 뛰쳐나와 일을 통해 내 자아를 다시 찾아보겠는데, 양가 어디에도 맡길 수 없는 독박 육아 전업주부는 그저 이 시간을 울화를 품고 버티기만 했다.




그런 나날 중에 <나는 홈메이커입니다>라는 책을 만난 건 새로운 사고 전환의 기회였다. 미국에서는 전업주부를 'home maker'라고 부른다고 한다. house가 아니라 home인 이유는 home이란 단어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에 돌아와 안락함과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홈메이커는 이런 집의 분위기를 만드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저자 크리스타 피카라이넌 역시 나처럼 처음부터 홈메이커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학위를 가질 정도로 지적인 열의가 대단했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해왔다. 그러다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풀타임 홈메이커로 살아가게 되었다. 정신 없는 육아 중에 여느 엄마들처럼 우울도 겪고 자아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던 그녀는 생각을 달리 하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을 선사하려면 홈메이커인 자신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스스로 행복해지려면 가족을 위해 당연한듯 희생하고,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개입하느라 잠식당하고 있는 전업주부의 삶을 단단하게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저자는 자신을 채우는 자기계발들을 추천한다.   



저자가 꼽는 최고의 투자는 '독서'와 '운동'. 안과 밖이 모두 단단해지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루틴을 만들어줘 하루가 더 활기차질 것이다. 독서와 운동의 효용은 경험해본 사람은 알고 있지만 시간이나 마음가짐 등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조언들은 나약해져가는 마음을 다시 굳건하게 다지게 만들어주었다. 



어떤 일이든 근무 종료시간이 있듯 홈메이커의 일에도 하루의 끝맺음이 있어야하고,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즉 홈메이커를 전문적인 직업처럼 대하며 일에서 빠져나와 엄마로서의 개인적 삶과 분리하는 시간도 가지라는 것. 특히 집으로 출근해서 주부의 일을 해낸다는 마인드를 갖기 위해 복장부터 다시 살펴보자는 조언은 꽤나 솔깃했다. 자고 일어난 그대로 어쩔땐 세수조차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내 삶을 어떻게 소중하게 대하고 있다 말할 수 있겠는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제 역할을 담당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참고할만 했다. 이제 막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며 기저귀 버리기나 빨래 수거함에 넣기 등을 시작한 아이가 앞으로 가정에서 자기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잘 인지하고 제대로 해나갈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이 밖에도 책 속에는 다양한 팁들이 담겨 있는데, 10년 간 저자가 실생활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들이라 너무나 공감이 갔다. 힘이 나는 문장들도 여럿 있어서 지칠 때마다 책을 꺼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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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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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몹시도 막막했다. 나에게 일을 가르쳐 줄 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입사하게 된 작은 회사였는데, 그 회사에서도 처음 시도해보는 일을 나에게 맡겼다. 상사가 있긴 했지만 거래처와의 관계를 위해 데려다 놓은 사람으로 실무를 하나도 몰랐다. 모르는 건 인터넷을 찾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내 앞에 산재한 일들을 헤쳐나갔다. 



대학을 졸업해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일이라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이게 나의 첫 단추라 생각하니 잘못 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도한 열정은 너무 빠르게 타오르고, 빠르게 재가 되었다. 한 두달 매일 같이 야근을 하며 일에만 매달렸는데도 진척이 없었고, 여전히 나는 미로 속을 헤매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일 생각만해도 울컥하는 답답함이 올라왔고 매일 아침 눈을 떠서 회사를 가야한다는 사실이 겁이 났다. 결국 반년만에 나는 포기를 했다. 좀 더 큰 조직으로 이직을 했고, 스타트업에 대한 공포도 생겼다.



아마 그때 나에게 방향을 알려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시 나에겐 차고 넘치는 열정이 있었으니 뭔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일을 통해 성장하는 기분을 오롯이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가와카미 데쓰야의 소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는 사회 초년생의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다. 책 표지는 마치 서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다룬 힐링류 소설인 줄 알았는데, 웬걸... 스펜서 존슨의 초 베스트셀러 <선물>을 깨달음을 주는 자기계발서였다. 




오모리 리카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가 알 법한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했다. 하지만 자신은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출판유통에 대해 흥미조차 없었다. 연수가 끝나고 처음 배치 받은 곳은 오사카 지점. 도쿄에서 나고 자라 생활권을 벗어난 적이 없는 리카에게는 충격적인 전개였다. 마치 '팔려가는 송아지'가 된 심정으로 오사카에 도착한 그녀는 상사와 거래처를 만날 수록 자괴감에 빠져든다. 안그래도 없었던 자신감은 더욱 바닥을 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상사에게 울분을 터트리는데, 상사는 이런 리카의 모습을 보고 '고바야시 서점'에 다녀올 것을 제안한다.



흔한 동네 골목에 있는 작디 작은 책방 '고바야시 서점'으로 간 리카는 그 곳에서 열정이 넘치는 주인 유미코를 만난다. 유미코는 가게가 가진 단점을 특유의 성실함과 신뢰, 인간관계로 극복한 사람이다. 책을 좋아했기에 깊이 있게 책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사람들을 제 발로 찾아가 영업하는 방식으로 작은 서점이지만 시내의 큰 서점, 게다가 글로벌 체인망을 가진 온라인 서점보다 더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그녀. 유미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카는 서툰 자신을 다독이며 힘차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책과 전혀 가깝지 않은 삶을 살았던 리카가 이런 단점을 역으로 활용해 다양한 기획을 내며 책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얻어가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낯선 곳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책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 교류하며 일상의 활기를 되찾았던 경험이 있어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서점들도 이런 이벤트들을 풍성하게 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획안이 나올 수 있게 방향을 잡아준 유미코의 일화들은 그저 놀라웠다. 책방을 살리기 위해 우산장사를 해야했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매출 순위가 높아 출판사의 초청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우산을 판매하고, 작은 서점에 자리 잡고 있다. 팔다보니 우산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고, 자신을 신뢰하고 찾아주는 고객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유미코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이라는 우노 다카시가 쓴 <장사의 신>이 떠올랐다. 같은 물건이라도 꼭 필요한 순간을 캐치해 제시하고, 작은 점포의 한계를 뛰어넘어 효율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비법이 너무나 닮았다. 고바야시 서점 이야기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니 역시 장사의 신들의 비법은 어쩌면 통하는게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섬에 있는 서점> 같은 책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결이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재밌고 의미있는 독서였다. 장사를 준비하는 자영업자들은 물론, 사회 초년생들에게 첫 발을 내딛을 용기를 줄 만한, 마인드 셋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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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사전 - 작가를 위한 갈등 설정 가이드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
안젤라 애커만.베카 푸글리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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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웹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아 강의를 찾아 들었다. 지금 MZ세대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웹소설을 분석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다른 콘텐츠보다 유난히 독자들의 니즈와 만족감이 글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웹소설. 독자들이 웹소설을 보는 목적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기 때문에 주인공의 고난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갈등이 안나오는 것은 스토리 자체에 생명력이 없으니, 사이다 전개 속에 갈등을 솜씨 좋게 삽입해야하는 것이다. 정말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윌북에서 창작자들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아주 두툼하고 기특한 책을 펴냈다.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글쓰기 강사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가 펴낸 <딜레마 사전>은 이야기 속에 발생할 수 있는 캐릭터의 내적, 외적 갈등 110가지를 담았다. 정말이지 책 날개에 쓰인 '인간이 느끼는 딜레마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역경을 좋아하지 않고 대개 피하려 노력하지만, 사실 그것을 극복하는 행위는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p16) 




갈등을 겪고 투쟁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여러가지 감정을 겪는다. 두려움,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갈등을 끝내 극복해내는 캐릭터의 모습에 삶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용기를 얻기도 한다. 갈등 없이 변화는 없다. 그러니 갈등 없는 성장도 없다. 



저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갈등의 구조로 6가지 고유한 플롯 형식에 귀속된다고 단언한다. 절망을 벗어난 상승, 꾸준한 추락, 추락-상승, 상승-추락, 상승-추락-부활, 추락-상승-추락. 아마도 지금 인기 있는 웹소설의 구조는 꾸준한 상승의 구조이거나 추락-상승의 구조를 띤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중심 갈등 역시 심플하게 정리 된다. 캐릭터끼리의 갈등, 캐릭터와 사회의 갈등, 캐릭터와 자연의 갈등, 캐릭터와 테크놀로지의 갈등, 캐릭터와 초자연적 존재의 갈등, 캐릭터와 자아의 갈등. 창작자는 이런 갈등을 통해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갈등은 캐릭터가 어떻게 나아갈 지 목적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장치이기에 이야기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갈등의 구조와 속성, 그리고 이야기에 맞는 갈등을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가이드한 서론이 끝나면 본격적인 사전형식을 띤 갈등 목록들이 펼쳐진다. 갈등 유형의 카테고리는 '관계상의 갈등', '실패와 실수', '도덕적 딜레마와 유혹', '의무와 책임', '압력 증가와 시간 압박', '승산 없는 시나리오' 이렇게 크게 6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 분류 안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 목록들이 열거되고, 해당 사건들에 대해 가능할 수 있는 전개들을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당 사건들의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부터, 사건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사소한 문제', 그리고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결과', '생길 수 있는 감정', '생길 수 있는 내적 갈등',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부정적인 특성', '기본 욕구에 미치는 영향', '대체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특성'과 그 결과가 서술되어 있다.   



목록만 보아도 창작자의 시름을 덜어줄만큼 아이디어가 넘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책 속 방대한 갈등 목록들은 실제하는 스토리들의 원형 같은 구성을 정리한 것일테다. 



그래서 다소 아쉬운 부분은 너무 목록 위주라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 자체가 창작자가 갈등을 구성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뒤적이는 참고서 같은 것이여서 그 목적에는 분명 충실한 책이지만, 읽는 재미면에서는 아쉬움이 든다. 어떤 이야기들이 이런 갈등을 보여주는지 사례들이 기존에 실제하는 스토리를 가져왔다면 읽는 재미가 좀 더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려는 창작자에게는 기존 이야기를 베끼는 꼴처럼 보여 좋지만은 않겠다. 책의 제목 자체가 '사전'이니 사전의 역할을 충실히하면 되는 것이지 뭐.



소설의 3요소인 인물, 배경, 사건 중 '사건'에 집중했다면 인물과 배경을 다룬 사전도 이미 윌북을 통해 출간되어 있었다. 캐릭터 창조를 위한 가이드인 '트라우마 사전'과 '캐릭터 직업 사전', 그리고 배경 연출 가이드인 '디테일 사전- 도시편'과 '디테일 사전- 시골편'. 데이터베이스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만끽했으니 나머지 책들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창작자를 꿈꾼다면 생각이 꽉 막힐 때 필요한 뚫어뻥처럼 한 권쯤 구비해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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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고수 - 신 변호사의 법조 인사이드 스토리
신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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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법에 푹 빠져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우영우. AI처럼 법률과 각종 판례를 다 꿰고 있어 남들이 보지 못한 시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통쾌함이 살아있는 드라마다. 특히 우영우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떠올릴 때 바다 위로 솟구치는 돌고래들을 볼 때면 찌는 더위에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신 듯 청량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생각도 던지는 묵직함도 있는 이 드라마를 보면, 작가는 대체 저런 장면들을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새삼 궁금했다. 문지원 작가의 전작 역시 법정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 <증인>이라 나는 작가가 변호사 출신이거나 법을 공부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모두 다 법을 소재로 한 관계자들의 책을 참고했다고. 그 중 하나가 신주영 변호사의 에세이 <법정의 고수>다. 



이 책의 5장에서 7장을 채우고 있는 '높고 단단한 벽, 그리고 계란들'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2회 분량으로 비중 있게 다뤄졌던 '소덕동 이야기'의 원작 에피소드다. 파주 신도시 건설과 함께 신도시 주민들의 교통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까지 연결되는 제2자유로 건설 계획이 수립되고, 이 노선이 고양시 덕양구 일대 마을 두동강 내며 마을 주민들이 소송을 건 것이 실제 일화이다. 



드라마에서는 우영우의 친모인 법무법인 태산의 대표 태수미와 정면 대결을 펼치는 사건으로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신주영 변호사가 마을 주민들을 대변하는 원고 측 변호사가 되어, 정말 열정적으로 사건에 임한다. 사실 승소 가능성이 너무 희박해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려 했던 신 변호사는 마을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에 직접 마을을 찾았다가 마을이 입을 심각한 피해에 공감하게 되고, 사건을 맡게 된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런 낭만적인 호소를 할 수는 없다. 드라마에서도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의 대사로 언급되지만 이런 사건은 주민들이 승소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삼권 분립이 철저한 우리나라에서 행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사법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는 것이 대단히 껄끄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백한 위법 행위를 찾아야만 승소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 



사건은 드라마와 거의 유사하게 흘러간다. 신 변호사는 사전환경영향평가 시기가 노선 확정 이후에 진행된 점을 이유로 절차적 위법을 주장하고,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무시한 것과 주민들이 입을 환경적 피해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변론한다. 상대 측도 변호사를 한차례 바꿔가면서까지 팽팽히 맞선다. 



책을 읽으면 드라마보다 더 깊게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신 변호사는 단순히 주민들이 입을 피해가 아니라 향수 도시가 처할 미래를 염려하며 무분별한 개발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신 변호사가 믿는 소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뜻 밖의 인물이 등장해 변론을 돕는다. 바로 도시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읽고 설계하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다. 



일산이 고향이고, 덕양구가 처했던 현실과 유사한 사례를 보스턴에서 유학했을 당시 경험했던 유현준 교수는 도로가 마을을 어떻게 단절시킬지, 환경적으로 어떤 피해를 가져올지, 위성 도시 일산의 미래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과 대안까지 제시하며 신 변호사에게 힘을 싣는다.



이때 신 변호사와 유현준 교수가 변론으로 준비했던 논리는 타당함은 물론, 드라마적 서사까지 있어서 이 소재가 매력적이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래서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레퍼런스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드라마와는 전개가 다소 다르지만, 너무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변론이었다. 결론적으로는 패소했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은 정부의 불통적 태도와 오만함 때문에 맺혔던 가슴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주택공사 사람들이 변론에 밀리지 않으려고 쩔쩔 매는 모습이 통쾌했고, 개발에만 치우쳐 외면 당하는 무수히 많은 가치들이 신 변호사를 통해 회복된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팽나무가 문화재로 등록되며 끝까지 마을을 지켜낸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10년 후 공사 진행 과정에서 덕양구 일대에 고대 유물들이 대거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가!



법정 에세이를 처음 접해봤는데, 논리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저자의 변론 솜씨만큼 물 흐르듯 유려한 문장에 글이 술술 읽혔다. 사실 기사나 자료로만 접했으면 이렇게 재미있게 법적 논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더 나은 미래, 더 소중한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변호사의 열정도 감동을 자아낸다. 부디 신 변호사가 거대한 시스템의 벽 앞에서 고통받고 좌절하는 개개인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계란이 되어주길 바란다.



드라마와 비교하는 재미는 물론, 그 자체로도 너무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



※ 컬처블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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