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일지매 전8권 세트 (MBC ‘돌아온 일지매’ 드라마 원작)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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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MBC 9시 뉴스데스크를 보는데, 생전의 고우영 선생님 인터뷰 자료화면이 나왔다.

뉴스가 끝나고나서 바로 '명품 사극 드라마'라고 MBC가 자부한다는 <돌아온 일지매>가 방영되니까 자사 드라마 홍보라고 돌을 던지는 분 혹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만화가가 아닌 고우영 화백, 그리고 고우영 화백의 작품 중 <일지매>를 다룬 뉴스였으니 그리 돌을 던지면 안 될 일이다. 뉴스가 나가는 지금의 때가 어떠하며, 뉴스에서 다루는 작품이 어떠한가를 보면 단순히 '드라마 홍보용 뉴스'라는 말은 못할 것이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은 30대 이후 세대에겐 참으로 친숙하다. 아니, 어찌보면 지금의 30대가 고우영 작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작가와 같은 숨을 쉰 마지막 세대라고 하는 게 맞겠다. 70년대 생인 지금의 30대 남성들은 고우영 화백에게 정서적 빚을 지고 있다 말해도 틀림이 없다. 예쁘게 커가는 토끼같은 아이와 자기만을 바라보는 여우같은 부인을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 하는 30대. 현재에는 효용가치가 높지만 몸값이 떨어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는 40대를 바로 눈앞에 둔 30대. 그러기에 정치와 경제가 돌아가는 판국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30대 남성이라면, 고우영 화백의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부모님은 IMF를 겪으셨다. 난 IMF를 피해 군대에 갔다. 군에서 2년 2개월을 보내면 좀 나아지려나 했다. 그닥 나아진 것은 없지만 아쉬우나마 조금씩 회복하는 듯했고,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도 보았다. 평생 야당만 할 것 같던 당이 정권을 잡아 10년의 호사를 누리는 것도 보았고, 10년 후 다시 '작아진 야당'으로 회귀하는 것도 목도했다. 그리고 또다시 IMF와 같은 끔찍한 불경기가 도래했다. 이십대 어릴 적엔 군대라는 도피처가 있었지만, 이제 난 가장이다. 도망갈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즐기기엔 쉽지가 않다, 지금의 상황이. 

아아, 고우영 화백의 만화가 연재되던 신문은 그 만화 하나만으로 신문의 판매부수가 좌지우지 될 지경이었다는데. 고우영 화백이 인기몰이를 하던 저 70년대와 내가, 30대 가장인 내가 살아가는 21C는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 9시 뉴스를 보니  <일지매>를 낸 출판사에선 당시의 검열 상황 때문에 삭제된 부분을 '복간'한 완전한 판본 출간에 큰 의미를 두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것인가. 집필진은 무시된 채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게 지금 세상 아니던가. 네티즌은 자판 하나 두드리기가 겁나고, 부동산 전문가나 경제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경제성장률과 시장 회복 예측을 눈치껏 상향발표, 무조건 '물이 반이나 차있다'고 말해야 하고, 무고한 시민이 불에 타 나가떨어져도 책임지는 이 없으니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울부짖을 일이 아닌가? 지금의 비정규직이 전태일 시절의 미싱 시다에 비해 과연 몇 보나 더 걸아나갔단 말인가? 그럼에도 비정규직 관련 악법은 더한 악으로 치닫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일터와 삶의 터에서 과연 30년 전보다 무엇이 더 나아졌다는 말인가? 고우영 화백의 만화가 왜 30년이 지난 지금에 재조명을 받고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MBC는, 방송 언론계에서 '바보회'로 자처하는 듯하다. 저 평화시장의 바보회가 그러하였듯, 요즘 MBC 앵커들은 클로징 멘트를 유독 다듬고 다듬어 때론 칼날처럼, 때론 항변처럼, 때론 한숨처럼 내뱉곤 한다.

그런 MBC가 '돌아가신 고우영 화백의 작품이 왜 30년 넘도록 사랑받을까욤?"하고 질문을 날려주고 계시다. 왜일까? 왜 30년 넘도록 사랑받을까? 컬러 만화와 3D 애니메이션, 총질 칼질에 쭉쭉빵빵 미녀는 세트로다가 출연해 주시는 자극적이며 신기하고 겁나게 웃긴 만화들이 판을 치는데, 글자도 많고 온통 흑백에다가 권수도 많아 한번에 세트로 장만하면 다음달 카드 결제일이 무서워지는 이 책들이 왜 30년 넘도록 사랑을 받는 것일까? 왜일까? 

고우영 화백의 대표작인 <삼국지>, <십팔사략>, <조선야사실록> 등은 기존의 고전인 나관중의 <삼국지>, 증선지의 <십팔사략>, 우리의 역사이자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고우영 화백 특유의 재치와 해학을 버무려 새롭게 엮은 것이다. 하지만 <일지매>는 극히 적은 사료에 고우영 화백의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살을 덧붙여 8권의 대작을 만들어낸 경우이다. <일지매>는 거의 전부를 창조한 경우이므로 그 어떤 작품, 어떤 대표작보다 더 고우영 화백의 세계관, 정치관을 깊이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당쟁과 자신의 부귀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는 지배계급을 그리는 것으로 70년대의 암흑의 삶을 풍자했다.
_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일지매> 평 중에서)


고우영 화백은 일지매를 참으로 암울한 시대에 던져놓았다. 청나라 첩자가 판을 치며, 나라의 녹을 먹는 고급 공무원은 제 잇속을 위해 나라를 야금야금 팔아먹는다. 이런 망할 간신배가 오히려 명줄은 징그럽게 질기고, 오히려 청렴하고 의로운, 게다가 로맨티스트이기도 한 어느 관리는 비참하고 억울한 최후를 맞는다. 도려내기도 힘들 정도로 썩어가는 세상이니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고 소설가 김훈이 읊조린 남한산성의 치욕은 어찌보면 역사의 필연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한 치욕의 필연은 썩은 세상과 썩은 관리가 불러온 게 분명하며, 조금 더 앞선 삶을 살다간 일지매는 그러한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니 <돌아온 일지매>라는 돈 좀 들인 듯한 자기네 드라마 시작하기 직전의 뉴스에 일지매가 어쩌니 저쩌니 들먹인다고 돌 던지지 마시라. <일지매>는 신필 고우영 화백이 가장 애정을 보인 작품이며, 30년 만에 무삭제 완전판으로 복간되자마자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된 도서이다. 고우영 화백은 군홧발에 자신의 자식 같은 지면이 짓밟힘에도 풍자의 펜을 굽히지 않았고, 치욕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지매라는 영웅을 통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
그리고 '일지매가 돌아왔다.' 1977년 12월 31일에 대미를 장식했던 일지매가 무삭제 완전판으로 돌아왔고, 드라마로 돌아왔다. 고우영 화백은 돌아가셨지만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다시 일지매를 불러내었다. 

우리는 1977년으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가? 우리 앞에 필연의 치욕이 웅크리고 있다가 혹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은 아닐까? 돌아온 일지매가, 다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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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문학동네 청소년 1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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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책에 '18금' 딱지를 붙이고 불온 도서로 지정하고 싶어 할지도...
_시사인 설 합병호 / '불온한 우리 시대를 가차 없이 질타하다' / 표정훈(출판평론가)

시사인, 참 사연 많은 매체다. 저 유명한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독립한 언론자유 수호의 투사들이 모인 곳 아니던가. 마치 동아일보에서 민주주의와 양심의 펜을 위해 독립한 저 한겨레처럼. 시사저널에서 펜의 날을 세운 유명한 지식노동자 김훈 역시,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지 않은가.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의 소설과 <강산무진>등의 주옥같은 소설집으로 유명세를 타고 덩달아 자전거까지 타며 전국을 유랑하는 한량 예술가 김훈도, 한때 몸담으며 치열한 젊음을 살랐던 정신적 고향 시사저널이라는 둥지를 잃었으니, 번주로부터 버림 받은 사무라이, 낭인 신세가 되었을 터. 칼이 꺾이고 펜이 꺾인 낭인의 눈물은 참으로 진하고 진하다 하겠다.   

그런 시사인에서, 참 시사인 스러운 책을 소개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아직 지각이 있는 이들이 교육계에 있어서인지, 다행히도 이 책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불온서적' 딱지를 하사받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혹 모를 일. 국방부로부터 수많은 사회과학 서적들이 '민간인'들은 모른 채 조용히 불온서적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얻지 않았던가. 이 책 역시 학부모 모르게 '불온서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교단에서 '금서'로 지정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 된다면 우선 사립학교 도서관에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일제고사 등등 성적지상주의의 사회로 변하였으니 학교에 도서관이 있으려나 모르겠고, 있다 한들 학생들이 찾을까 모르겠고, 그러므로 이 책은 수서 목록에 포함되기도 힘든 노릇일 것이다.

무규칙 이종소설가 박민규 님이 <지구영웅전설> 등에서 미쿡 히어로와 원숭이스러운 동양인 히어로를 등장시켜 사회를 비비 꼬아 밥말아 주시는 풍자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살짝 보여주었다지만, 우리 나라엔 제대로 된 풍자소설이 설 자리가 없다. 물론 최근의 용산 참사 등으로 눈물 젖은 서민의 삶을 다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재조명 받고 있다지만, 사회비판의 날을 세운 소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니, 리얼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운동권의 땀내 가득한 작품은 많았지만, 아닌척 능글능글하게 사회를 씹고, 뱉고, 주무르는 '풍자 소설'이 없다 하겠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어찌되었든 겉으로는 태평성대가 이어졌던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그 10년간 투쟁의 격함은 줄어들었으되 먹고사는 것 자체가 너무 바빠서 그랬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풍자 소설' 자체가 비주류 분야여서 그런 것일까.

지적 내공과 큰 시야를 확보해야 집필이 가능한 풍자소설은, 확실히 도전하기 어렵다. 책이 나와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입바른 소리했다고 잡아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선, 더더군다나 가망이 없다. 심폐소생술로 겨우 숨이나 살릴까 말까인 상황이 바로 요즘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요즘 같은 시기야말로 풍자소설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 국민 모두가 정치 논객이 되고 경제 논객이 되는 시대, 눈만 뜨면 판타지 같은 일들이 뻥뻥 터지는 게 바로 우리가 사는 오늘이 아니던가. 

그런 와중에 이 책, 참으로 시사인에서 소개할 법한 이 책이 나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청소년들이 꼭 읽어주었음 하는 이 책은, 문방구에서 천 원 주면 살 수 있는 촛불 하나로 여론마저 움직여버린 우리의 싱그러운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판타지의 꼴을 쓰고 있으나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닮아있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 책에서는 밤낮이 바뀌었다. 왜냐,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하는 저 초강대국의 시간을 세계 표준시로 삼아, 그 강대국와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밤낮을 바꿔버린 것이다. 아, 좋다. 간, 쓸개 다 빼준 덕에 비자 없이도 갈 수 있게 된 그 나라에, 이제는 00땡00으로 전화 걸 때 '혹 새벽잠 깨우는 거 아닐까?'라 걱정할 필요가 사라졌다. 학생들은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등교한다. 늦은 밤은 왕성하게 활동해야하는 '한낮'이 되었다. 아아, 진정한 글로벌이여, 우리는 초강대국의 시민과 함께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브랙퍼스트'를 먹는다네. '브랙퍼스트'냐 '블랙퍼스트'냐, 이 발음은 어떤 게 원어민에 가까운 것이더냐, 누가 지적 좀 해다오. 썸머 타임이 아니라 낮과 밤이 바뀌었구나. 생체리듬과 시계 또한 우리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는 세계에서 가장 쌈 잘하는 나라에 맞춰주자. 반대하는 이는 미개인, 빨갱이, 좌측 깜빡이 되시겠다.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과 정권을 강도 높은 소리로 비판한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에서 <고양이 학교>라는 판타지 동화로 앵코륍티블 상을 수상하였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상은, 프랑스 아이들의 인기투표와 마찬가지란다. 읽어봐서 가장 재밌고 가장 의미있는 작품을 수많은 아이들이 투표해서 선출하는 '가장 현실적이기에 권위있는' 상이라는데, 그저 <해리포터>나 알고 <반지의 제왕>이나 알아온 우리의 초등생들에게 <고양이 학교>는 국내 최초의 판타지 동화이자 뚜렷한 세계관을 보여준 우수한 판타지 동화였다. 판타지 하면 <퇴마록>이나 알고 있던 우리나라에 <고양이 학교>라는 무려 11권 짜리 판타지 동화로 모험을 시도한 작가가, <고양이 학교>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이 된 시점에 다시한번 뒤집어질 역사를 개척하고자 한다. 청소년들이여, 그대들이 희망이다. 그대들에게 짐을 지워준 것은 어른들이나, 오로지 그대들이, 그대들이 희망이다. 이 정도 상황까지 끌고온 어른들 중 하나로 정말 미안하지만, 그대들이 희망이다. 그리 얘기하고 있다.   

청소년 시점에서 씌여진 이 소설은 한국판 <1984>이다. 정녕 이런 세상이 오지 말아야겠지만, 이미 그 전초를 보이고 있으니 불안함을 어찌할까. 소설에서는 공포정치가 시행되고 입바른 말을 하는 이들은 '강화 학교'라는, 말이 학교이지 '수용소'나 다름 없는 곳으로 보내진다. 마침 오늘 미네르바가 기소된다는데, 그가 진짜 미네르바이든 아니든 네티즌은 자유를 잃었고 이미 철권 통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 특공대는 국민을 때려잡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고, 투쟁하는 서민은 '악의 축'이다. 그저 우리는 세금 더 내라면 내고, 물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살아야한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찍 소리 말고 키보드도 두들겨서는 안 된다.  

이 책이, 끝까지 소설로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27개월 된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급식으로 쇠고기를 먹고, 군대에 가서도 쇠고기를 먹어야하고,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창조성을 억누르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시계모자를 쓴 채 조종되는 것은 아닐지, 아빠로서 아들에게 미안하다. 세상이 이 따위로 굴러올 때까지 아무런 역할도 못한 어른으로서, 아빠는 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저, 이 책이 끝까지 소설로 남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덧붙임: 곧 설 명절인데, 내년엔 귀경전쟁 없이 배를 타고 가야겠습니다. 설렁설렁 관광도 하며 물길 따라 뱃놀이도 하고 막힐 리도 없으니 고향가는 길이 더욱 즐겁겠군요. 참! 이참에 주식사서 돈 번 다음 강 어귀에 휴게소라도 차려야겠습니다. 대박 아닐까요? 외국인도 많이 관광하러 올 테니 말입니다. 아니면 서울시 수상택시라도 임대해다가 장거리 뛰거나 대리운전이라도 뛰는 건 어떨까요? 물길 따라 가면 돈길도 보일테니 말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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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神신 엄마가 만든다 - 수학으로 서울대 간 공신 엄마가 전하는 수학 매니지먼트 노하우!
임미성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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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저랑은 극단의 대립점에 있는 책입니다. 나름 지역사회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다는 고등학교에 시험 치르고 입학했는데, 수학은 '미분과 적분'과 조우한 후 깔끔하게 포기했거든요. 문과도 아닌 이과생이 말입니다. ㅠㅠ

그저 주둥이로 먹고 살아온 인생인지라 말하기, 듣기에 능하여 국어 공부는 그닥 안 해도 상위권이었는데, 수학만큼은 저와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이더군요. 수학의 신은 엄마가 만든다는데,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국어와 그림에서는 신으로 만드셨는데 수학 쪽에선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남길 바라셨나 봅니다. ㅠㅠ

이 책은 아들에게 수학 공부에 대한 재미를 붙여준 후 결국 서울대에 진학시킨 어느 어머니가 쓴 책입니다. 그런데 머릿말부터 저랑 궁합이 안 맞더군요. 저랑 아내는 아들을 그저 튼튼하게, 열심히 놀면서 자기 할일 일찍 찾아 미친듯 재미를 느끼며 살게 하고 싶을 뿐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쓴, 수학의 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께서는, 저희 같은 부부를 '무책임한 부모'라고 질타하고 계시더군요. 그저 잘 키운다, 열린 교육한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뭐 그런 식으로 초등학교에 자녀교육에 관해 방관하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진도 맞추기에 급급해진다, 그렇게 방치했다가 뒷수습이 안 돼 자기한테 상담받으러 온 학부모 많다고 말씀하시네요.

뭐, 그런데 머릿말부터 공감이 안 되니 책을 읽는 내내 몰입이 어려웠습니다. 저나 친형님이나 방관하듯 풀어 키워진 편인데, 다들 사회에서 제 역할 다 하며 엄청나게 잘 살고 있거든요. 게다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 그러잖습니까. 공부 열심히 해 봐야 선생밖에 더 되냐고. 옛날 공부 죽어라 안 하던 놈들 지금 만나면 다 사장 되고 뭐 돼서 떵떵거리고 잘만 살더라고.

선생님을 폄하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공부보다는 인성, 그리고 리더쉽이라는 것이죠. 현재 직장에 스카이 출신부터 저 지방대 출신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인사고과는 학벌 순서가 아니더군요.

제 아이가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에 미친다면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겠지만, 아직은 세 살 된 아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니 무조건 많이, 즐겁게 놀게 할 생각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신이 되게 만들어야겠지요. 아들을 뜻하는대로 키웠으니 자신감이 충만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은 알겠지만, 다른 부모들의 철학이나 교육관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네요. 심한 말로, 서울대 수학교육과 우등생인데 나중에 고등학교 수학교사 되려고 그러느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무례한 말이잖습니까? 수학의 신을 만든다는 접근보다는, 아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미친듯이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주장하는 책이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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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 까마득한 이야기 1
편해문 글, 노은정 그림 / 소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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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확인한 후 알라딘에서 구매한다면 모르겠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 책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주의하셔야할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초등학생 용입니다. 저학년이 보기에도 조금 어려울 듯싶네요. 3,4학년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보여요.

저는 이 책을 선물받았는데, 모양은 꼭 그림책 같아서 책장을 열었더니 글씨가 정말 깨알같아요. 아들놈에게 책부터 보여줬다간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세살 된 아이가 이정도의 텍스트를 다 감당하지 못하기도 하겠지만, 이 정도의 분량을 읽어주다간 아빠가 먼저 나가떨어지겠지요. ^^;;;

삼신할머니의 역할이 결국 산파이므로, 임신과 출산 등에 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있는 아이들이 읽어야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미취학 아동들도 출산에 대해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이런 장문의 옛이야기보단 가볍고 짧은 은유와 설명, 친절한 그림을 덧붙인 그림책이 적당할 듯싶구요. 이 이야기는 산파의 역할과 함께 우리 옛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으므로 '옛이야기'를 소화 가능한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는 되어야 술술 읽힐 듯해요. 희랍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 옛 신화와 전설이 그러하듯, 우리 옛이야기의 남성상과 여성상도 현재의 남녀 위치와는 많이 다르므로, 그런 차이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아이가 독자라면 더욱 좋겠구요.

사실 그렇잖아요. 제우스는 엄청 바람둥이에다 뻔뻔한 철면피이고, 삼신할머니에 나오는 신들이란 존재도 인간의 욕망을 가장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집약한 존재들이잖아요. 가부장의 화신들이고, 여성성이란 것은 밟히거나 길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따위의 것들이고요. 옛이야기니까 삼신 할머니나 바리공주라는 캐릭터가 존재 가능하지, 21c 우리 아이들이라면 어디 가당키나 할까요? 딸은 없지만, 삼신 할머니나 바리공주처럼 희생이 미덕이라고 가르치진 않을 생각이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이 변했잖아요. 옛날과 지금은. 옛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옛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옛 것으로 새 것을 읽혀 배울 수 있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접하면 좋겠네요. 그저 이것은 옛이야기니까 읽어둬라, 라고, 고전이니까 필독서다, 라고 던져주는 것보단 아이와 이 내용이 맞는지 한번쯤은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표지는 팬시용품처럼 화사하고 밝고 예쁜데, 본문의 그림은 좀 아쉽네요. 색이 선명하지 않기도 하고, 옛이야기라는 테두리 안에 너무 갇힌 느낌이에요. 왜 옛이야기의 호랑이는 꼭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그리듯이요. 희화화되고 과장된, 옛이야기 특성에 맞게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그림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인물들이 표정이 없고 심심하네요. 캐릭터의 특성이 크게 부각된 인상도 적어서 누가 삼신 할머닌지, 누가 누군지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쉽구요.

시누이 잔소리하듯 조금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그건 더 좋은 책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이나 애원쯤으로 생각해 주세요. 사실 이 책, 잘 만든 책이거든요. 어린이 책 중 정말 북디자인이라는 개념도 없고 본문 편집 디자인 같은 거 나몰라라 하는 책들도 의외로 많은데, 이 책은 단단한 상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본문 그림의 임팩트가 약한 것에 비해 표지 그림의 인상은 참 좋구요. 별은 다섯 중 네 개 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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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아빌루 - 어부 나망이 사막 소녀 랄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화영 옮김, 조르주 르무안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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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문단에서 '살아있는 신화', '생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어를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쓴 그림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수상한 소설 <사막>중 소녀 랄라와 어부 나망의 대화 부분을 뽑아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번역은 프랑스 어 번역자 중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김화영 교수가 맡았다. 참고로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국내에 해적판 및 정식 계약판 등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는데,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판본이 원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발라아빌루'는 사랑에 빠진 청년의 이름이다. 청년은 공주를 사랑한다. 참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21C, 인터넷만 빠른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발라아빌루>와 같은 고전적이고 헌신하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사랑하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새로 변한 후 그저 평생을 공주 곁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하는 청년 '발라아빌루'의 외사랑을 담은 이 이야기는, 어찌보면 전래 동화와 닮은 구석이 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가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발라아빌루의 이야기는 슬픈 사랑의 인어공주와도 닮았다.

격정적인 사랑,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랑보다는, 끝없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차분히 헌신하는 사랑을 위한 이야기라 하겠다. 미취학 어린이에게 읽히기에는 텍스트가 많고, 초등학생을 위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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