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하게 같은 단편집을 나눠 낸 것 뿐인데도 <체체파리의 비법>보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돼지제국>을 읽다가 무심코 책날개를 다시 펴 보았다. 대체 왜 이런 미인이, 추녀가 짓밟히고 이용당하면서도 이용하고 마침내 다른 세계에서 위안과 죽음을 얻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다루는 것일까? '여자'라는 정체성 자체를 분리해서 우주 어딘가로 보내 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명랑한 희생자와 명랑한 살인자를 그린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과 '스노우'도 좋았다. 그 두 가지 페르소나가 열정적으로 합쳐진 듯한 작품이 맨 마지막의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이다. 젤라즈니의 '프로스트와 베타'가 보여주는, 천천히 자라나 신이 되어가는 지성과 개성의 경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그러나 정해진 운명의 철로 위를 달리는 모가디트에게서는 개별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본능과 그럼으로써 지속되는 종의 대조가 아름답고 가슴아프게 묘사된다. 


사실 읽다보면 '이게 왜 SF지?' 하고 갸웃하게 되는 작품들도 많다. 레이 브레드버리의 책을 읽을 때처럼 그냥 '좋은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선'으로 보는 게 좋다. 그래도 충분히 감동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다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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