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평평한가요?
미래학자 롤프옌센의 새로운 예언, 르네상스 소사이어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난 아마도 로또번호를 제일 먼저 알고 싶다!) 얼마나 경제가 더 힘들어질지, 어떤 산업이 뜰지,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미래학은 이런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아주 과학적인 해결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앨빈 토플러(제3물결)가 이미 보여 주었듯 말이다. 물론 로또 번호가 몇 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진취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정말 더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미래학을 알 필요가 있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기고, 감성이 소비자를 지배하는 지금.
이 지금을 예측한 ‘롤프 옌센’이라는 미래학자가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2000)’로 미래를 예견했던 그는 ‘르네상스 소사이어티(36.5 펴냄 2014년)’로 다시 우리에게 예언을 들고 찾아왔다.
롤프 옌센, 미카 알토넨 지음 36.5 펴냄
물질을 지향하는 동양, 탈물질 사회로 가는 서양
사람들은 흔히 힌두교와 불교가 태어난 동양을 정신적 사회로, 그와 비교해 서양은 물질적 사회로 묘사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이런 오래된 도식은 탈물질적 서양과 물질을 지향하는 동양으로 바뀔지 모른다. 물론 이 상태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서양은 물론 동양도 물질적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GDP와 부富를 행복의 척도로 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51쪽)
롤프 옌센은 크게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질적인 꿈을 이룬 서양과 물질적인 꿈을 이루려는 동양. 서양은 이제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와 산업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꿈을 이룬 서양은 다가올 꿈과 꿈 사이에 갇혀 있는 상태라는 게 롤프 옌센의 설명이다. 다가올 꿈은 앞서 언급했듯이 비물질적인 어떤 것이 되리라. 우리로서는 더 좋은 기회다. 본보기 모델이 있다면 허점을 연구하고 보완할 시간이 남을 테니.
1인당 GDP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돈을 더 벌어도 행복감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돈이 아닌 인간관계 즉 가족, 친구, 타인에 대한 신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변화되는 욕구를 먼저 파악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필요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다. 이 책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위계질서가 무너진다.
중세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산업 혁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느린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권위의 붕괴다.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수평사회’를 향한 흐름을 가속화했다. (80쪽)
작가는 시종일관 ‘평평한’ 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앞으로의 미래는 ‘작고 평평한 조직’이 살아남아 ‘평평하고 자율적인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고 말이다. 더 이상 ‘수직사회’가 아닌 ‘수평사회’가 도래한다는 뜻이다. 덩치가 크면 결코 ‘수평’을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지난 세기의 “보다 더 크게”라는 구호는 “보다 더 작게”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1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1개의 상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3D 프린터의 등장으로 우리는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감성의 범위가 넓고 또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수제 유기농 비누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한정판 상품을 찾아 헤매는 이 일련의 모습들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욕구 속에서 ‘나’는 점점 커지는데, 그것을 만족시키기에 아디다스의 대량생산 가젤은 이미 너무 작다.
우리는 이점을 명심하고 산업구조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구조로서는 변화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너무도 낙후되어있기 때문이다.
원자 경제학에서 비트 경제학으로
물질세계인 원자 경제학에선 모든 것에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비트 경제학에선 완전히 새로운 기준이 통용된다. 디지털 세계인 비트 경제학에선 1차가격이 없거나 거의 영에 가깝다. (199쪽)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대부분의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셀 수 없는 건 가치가 없다던가, 측정할 수 없는 건 이용할 수 없다든가, 시장은 효율적이고 정부는 비효율적이라든가 등등) 유감스럽게도 이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 덕분에 지금의 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불황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앵그리 버드>와 <카카오톡>의 예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무료 서비스의 가치를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이 모든 산업은 모두 무료 비즈니스 로직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제는 가치의 시장이 도래했다. 새로운 경제와 문화는 돈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보여 주고 싶어 할 뿐이다. 예술가 앤디 워홀은 “미래엔 누구나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앤디 워홀이 미래학자는 아니었지만, SNS의 바다에서 우리는 그의 말이 명중했다는 것을 안다.
네이버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 수많은 콘텐츠들은 자발적인 사람들의 참여로 모두 만들어졌다. 오픈캐스트도, 블로그의 넘쳐나는 정보들도. 위키피디아의 그 거대한 정보들 또한 수십만 명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기고한 글들이 이루어 낸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참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공중에 외치지 않고, 침묵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우리는 그 표현을 어떻게 유용하고도 적절히 이용할 것인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세 개의 시나리오
르네상스 소사이어티
그린 소사이어티
리스크 소사이어티
누구나 꿈을 좇아 행동하게 될 르네상스 소사이어티,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환경의 그린 소사이어티, 너무나 안전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험 속에 내버려두는 리스크 소사이어티.
이 세 개의 시나리오 중에 미래가 어떤 시나리오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셋과 다른 무언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 앞에 분명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책은 말하고 있다. 그 어떤 시기보다, 정부나 기업 같은 거대한 정체가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우리는, 나는, 이제 세상에 맞설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잘 이용하고 예측하느냐를 항상 염두하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로또 번호를 몰라도 잘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