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崖飛瀑있지도 않을 일들에 대한 변명을 고민하다 보니 나뭇잎마다 구멍 뚫리고 여름이 끝났다. 나는 여전히 변명과 아포리즘을 구분하지 못하고, 늙고 있고, 늙어 망해 가고, 생활로 인한 비겁과 생활로 인한 긍휼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머뭇머뭇,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데, 일주일 전, 딸아이가 꺾어 온 꽃은 시들지 않는다. 그렇게 이상하게도 비참은 멀지만 불행은 여전하다. 가을 모기를 죽이다가도 화장실 구석 거미줄을 치우다가도 너무 빨리 말해진 예언처럼마음이 허깨비 같아, 몸이 미로 같아, 秋崖飛瀑, 秋崖飛瀑눌러 써 보다가도 눌러 지우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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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말 신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느라 이름의 더위를 다 써버다.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니를 구하기 위하서 안개가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아침이었다.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기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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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어느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의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꼭 한발씩 내 머리를 나눠 딛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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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
오래된 밤나무를 패서 때던 저녁이 있었다.
태풍이 핥고 간 밭가에서 바람의 혀를 물고 마르는 데꼬박 일년이 걸렸다.
두발 지게에 실려 밤나무가 나뭇간을 덮던 날그 저녁 네칸집은 삼백일장 나무의 상여였다.
취한 별들이 지붕에 문상객처럼 둘러앉았다.
캄캄한 방고래를 지나며 나무는 제 둥치의 모양을 마지막 연기로 그려보고 있었다.
밥물이 밤꽃처럼 흘러넘치는 저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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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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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자국 안남기려고 플래그를 붙이며 읽다가 버티지 못하고 결국 연필을 들었다. 내가 서성인 골목에서 나를 닮은 문장마다 밑줄을 긋는다. 숫눈 위 발자국 찍는 아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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