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
오래된 밤나무를 패서 때던 저녁이 있었다.
태풍이 핥고 간 밭가에서 바람의 혀를 물고 마르는 데꼬박 일년이 걸렸다.
두발 지게에 실려 밤나무가 나뭇간을 덮던 날그 저녁 네칸집은 삼백일장 나무의 상여였다.
취한 별들이 지붕에 문상객처럼 둘러앉았다.
캄캄한 방고래를 지나며 나무는 제 둥치의 모양을 마지막 연기로 그려보고 있었다.
밥물이 밤꽃처럼 흘러넘치는 저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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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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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자국 안남기려고 플래그를 붙이며 읽다가 버티지 못하고 결국 연필을 들었다. 내가 서성인 골목에서 나를 닮은 문장마다 밑줄을 긋는다. 숫눈 위 발자국 찍는 아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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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마지막에 합창제관은 제례문을 읊는다. 미로 알 수 없는 것에 신들이 통로를 내주는 내용이다.
아도케톤(adoketon,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위한 통로(poros, 미세한 구멍)가 있음이 여기서 암시된다.
털갈이 계절 숫염소 희생제를 치르기 전 봄의 서막에 반원 극장에 와 앉아 시민-관객들이 응시하는 시간의 존재가 이런 것이다.
아포리(aporie, 난점)를 위한 통로가 있는 것이다.
 신들은 인간들이 예견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시간은 인간편이 아니라 용출(溶出) 편이다.
탈선적 분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휙 지나간다.
인간 사회는 예측한 것의 귀환을 확신하지 못한다. 신들은 계설들보다 더 다형이다. 미래는 모른다. 오로지 신들만이 그 바닥없음(심연)에서, 그 정한 데 없음(아오리스트)에서, 그 보이지음(하데스)에서 돌연을 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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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간관은 "무의식의 주체‘라는 이름으로 드러납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이성이 신에 버금갈 정도로 만능의 힘을 갖는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가 끝나자 인간의 종언이 운위되고, 비인간적인 것이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캉은 서로다른 이러한 두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인간관을 고안함으로써 이에 대응합니다. 이는 인간을 만능이 아니라, 스스로를알지도 못하고 능동적이지도 자율적이지도 않은 인간으로, 한마디로 말해서 근본적으로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도 분명히 "주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즉 인간은 어떤 것의 효과‘가 아니라 ‘원인‘으로 존재하는 겁니다. 인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는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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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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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이 없는자가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싸움밖에 없었다.
가진 것이 없는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진자는 그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가진 것이 없는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가진 자가 자기 것의 일부를 내주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가진 것이 없는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이 없는 채로 살게 된다는 것을 그의경험이 가르쳤다. 그러니까 가진 것이 없는 자가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가진 자가 하지 않는,
할 필요가 없는, 치열한, 치사한, 때로 공허한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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