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시인 야마노구치 바쿠
오키나와의 시인, 가난의 시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야마노구치 바쿠의 시집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시집의 제목은 <잘난 척하는 것 같습니다만 나는 가난뱅이랍니다>인데, 번역하고 해설을 한 사람은 일문학 전문가 조문주 박사이다.
이 시집은 몇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바쿠의 시를 처음으로 소개했다는 점과 이 시집이 우리 문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바쿠의 시세계는 그간 보아왔던 우리나라 시인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라마다 시의 전통이 다르겠지만, 확연한 색채의 차이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 시집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 솔직함과 소박함에 있다. 시인으로서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시에서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시인은 늘 결혼을 꿈꾸지만 그것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지만 이번에는 가난이 문제가 된다. 전당포를 제 집 드나들듯이 하면서도 바쿠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솜털 같은 수풀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남자와 여자
벤치 위에 남자와 여자
여기저기에 남자와 여자
세상에나
남자와 여자가 유행하는 계절인 거야
친구야
우리는
자네 역시 남자고
나도 공교롭게 남자구나
-<산보 스케치>
빗줄기가 콩 껍질처럼 튀고 있다
바리캉 소리는 물처럼 무색(無色)이구나
머리들이 채소처럼 파래지는군
-<비와 이발소> 중에서
시 속에서 시인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두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시인이 오키나와라는 특수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 성장한 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바쿠는 1903년에 태어나서 1963년 5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다.
늘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시를 창작했던 시인의 작품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를 정갈한 언어로 번역한 조문주 박사의 힘이 크다. 놀라운 점은 이 시집은 바쿠의 것이지만, 실상은 절반 혹은 그 이상은 조박사의 것이다. 왜냐하면 번역과 해설 외에, 기획과 디자인을 하고 본인이 설립한 출판사에서 출판을 한 것이다. 수익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좋은 시를 널리 알리겠다는 일념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보인다.
나는 감히 이 시집을 과감하게 추천하고 싶다.
시를 쓰는 분들에게,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든 지성들에게 말이다.
2016년 봄 조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