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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천진난만한 악인이란.
그냥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 그 이름을 보면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집어 들게 되는 이사카 고타로의 <마리아 비틀>을 읽게 되었다. 이사카 고타로는 <골든 슬럼버> 이후 3년 만에 신작 장편을 써 내놓았다. 596쪽에 달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Mariabeetle
1. 무당벌레는 영어로는 레이디비틀(ladybeetle), 레이디버그(ladybug).
여기서 레이디는 성모마리아를 가리키는데 ‘레이디’ 자리에 ‘마리아’를 넣어 만든 단어.
2. 무당벌레는 항상 위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어 해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므로 천도충(天道蟲), 덴토무시라고도 부른다.
이 책 <마리아 비틀>은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 신칸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굉장히 독특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신칸센 안에 각기 다른 이유로 모여들어 있었다. 백화점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아직도 병원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아들 와타루의 복수를 위해 신칸센에 오른, 알코올 중독으로 망가진 인생을 살고 있던 전직 킬러 기무라 유이치, 맑고 순수한 얼굴을 갖고 있는 영리한 중학생이지만 그 영리함을 끝없는 악에만 사용하는 왕자 오우지 사토시,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쌍둥이 같은 콤비 청부업자, 미네기시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기차에 오른 밀감과 레몬, 가방을 훔치라는 의뢰를 받고 신칸센에 오른 불운의 사나이 나나오가 한 공간에서 서로 묘한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등장인물이 여럿인 만큼 이야기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 그래서 어느 누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밀감과 레몬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역시 이사카 고타로!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처음에 밀감과 레몬이 등장했을 때에는 과일을 의인화시킨 것이라는 착각에 잠시 빠져있기도 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차분하고 진지한 A형 밀감과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하는 B형 레몬은 서로 전혀 어울릴 수 없어 보이는데도 꽤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콤비였다. 그들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대화 덕분에 심각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그저 수리하면 고칠 수 있는 별 것 아닌 어떤 것쯤으로 인식되었다.
왕자 역시 보통 이상이었다. 우연히 범인 없는 살인 사건의 아무도 모르는 가해자가 됐었던 왕자는 그 일 이후 사람을 죽이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친구든, 선생님이든, 다른 어른들이든 가리지 않고 왕자의 실험의 대상이 되었고 갖고 놀 거리가 되었다. 왕자는 사람들의 약점을 잡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해왔다. 신칸센 안에서도 왕자는 심지어 킬러들까지도 자신 아래 두고 휘두르려 하였다. 그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라고 묻는 왕자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았다.
밀폐된 공간 신칸센 안에서의 사건들은 점점 왕자의 손바닥 안에서 왕자의 의도대로 놀려지는 듯하다가 기무라 유이치의 아버지, 어머니가 열차에 오르면서 급물살을 타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재미있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왕자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에게 100% 이상의 만족을 주었다.
이사카 고타로는 이 책에 그만의 유머와 엉뚱함을 잘 녹여 놓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서로 조밀하게 얽어두고 있었다. 아주 치밀한 구성은 읽으면서 감탄을 아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무거운 사건도 유쾌한 문장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철학적인 생각까지도 담아냈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안타까운 마음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팬이지만 아직도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한권씩 찾아 얼른 읽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