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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우광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작년, 엄마랑 영화관에 가서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엄마가 ‘그 영화 좋다더라.’, 해서 간 거였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누가 등장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상은 처음 보는 어떤 남자가 노래 부르는 모습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고, 이금희 아나운서가 내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뭐야, 영화가 아니라 인간극장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관에 온 것을 후회하며 영상을 지켜보았다. 영화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그 곳에서 사랑으로 봉사하며 살았던 한 남자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바로 이태석 신부님이었다. 이태석 신부님의 얼굴은 처음 보았지만 그가 보여준 사랑 덕분에 금방 친근하게 느껴졌고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이태석 신부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결국 이태석 신부는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 저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톤즈 마을 사람들은 용맹한 부족이라 절대 울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아버지를 잃고 우는 모습에 그만 나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엉엉 울어버렸다. 아직도 그 영상을 떠올리면 가슴이 울컥하는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엄마랑 나는, 그리고 영화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쉽게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많은 여운을 남기며 영화관을 나와야했다.
크리스마스 즈음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었고, 연말에 상을 탄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이름의 책으로도 다시 세상에 나왔다. 2010년 1월, 48세 나이로 이태석 신부는 세상을 떠났다. 7년 간 톤즈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의 사랑은 아직도 그곳 톤즈에 온전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톤즈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태석 신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를 그리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태석 신부는 공부를 잘했었고, 의대를 졸업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어 탄탄대로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지금까지 누렸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부가 되었다. 그러고는 아프리카 톤즈로 떠났다. 한 여자의 남편이 되는 것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그는, 톤즈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공부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도 재능을 보였던 이태석은 그의 모든 것을 톤즈에 쏟아 부었다. 전기가 없어 밤이면 깜깜해지는 마을에 전기를 설치했고, 물이 없었던 곳에 우물을 파냈고, 작지만 병원을 지어 사람들을 치료했고, 학교도 세웠다. 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게 뭐든 톤즈에서 이루어냈다.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가 되는 것을 자처했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다. 이태석은 그곳에서 진정한 영웅이고 신이고 아버지였다.
모금활동을 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그때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앞으로 얼마만큼의 삶이 남았는지 알면서도 이태석 신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보기 좋았던 이태석 신부의 얼굴과 몸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누가 도둑질이라도 해간 마냥 살이란 살이 모두 빠져나갔다. 머리가 모두 빠져 모자를 쓰고 있는 이태석 신부의 사진에서 이제 더 이상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희미하게라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게 더 가슴이 아팠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엔, 그는 너무 아름답고 고귀하고 아까운 사람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 또 있을까.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는 사람이 살면서, 종교와 상관없이 꼭 한번은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디까지 헌신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남을 위해서 살 수 있는지를 잘 보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나만을 위해 살았고 베풀 줄 모르며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랄 것도 없는 아주 작은 도움을 주고는, 마치 내 목숨을 내어준 것 마냥 보람차했었던 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워졌다.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을 늦게나마 알았다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