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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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소재나 주제로 한 작품들은 셀 수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장편소설 '예수'의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에 단지 '예수'라는 고유명사만을 은유적으로 차용한 어떤 소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라는 책제목만으로도 어쩌면 민감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제이기에 장편소설의 책제목이라는 것 자체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접하고 보니, 성경을 근간으로 하여 쓰여진 예수의 일대기였다.
글쓴이는 "이 책은 예수의 일대기를 적은 것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픽션이며, 기독교인에겐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p4)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
  예수의 말씀과 나의 첫 만남은 언제였을까?
아주 먼~~~ , 초등학교 4학년 시절에 어머니가 집사로 계신 장로교회의 전도사의 권유(?)로 크리스마스때에 처음으로 교회를 찾았던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행사로 어린이 극이 있었는데, 교회를 나간지 며칠밖에 안되는 나는 1인 2역을 맡게 되었다. 제사장과 여인숙 주인역이었다. 신도들로 꽉 찬 무대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보여주었던 크리스마스 연극.
그후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안다니다가, 다니다가 를 반복하면서 지금은 아무런 종교를 갖지 않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 느끼는 마음중에 하나가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한 사건, 한 사건으로 들을 때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그 말씀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만, 혼자 성경책을 읽노라면 서술방법에서부터,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언어적 기술 방법이 웬만한 신앙심이 없다면 그냥 책을 덮어야 할 정도로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배경과 지리적 환경도 상당히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점에서 글쓴이가 말하듯이, 나는 한때는 기독교인의 무리속에 있어 보았기에 이 책을 논픽션으로 읽을 수도 있고, 책을 좋아하는 문학적 사람이기에 한 편의 작품으로 본다면 픽션으로 읽을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책을 접했다고 볼 수 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장면에서부터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무덤이 열리고 부활하시는 예수의 일대기가 그대로 쓰여져 있다.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쓰여졌다고 하는 편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어떤 상상력이나 허구적 문장을 찾아 보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느껴지던 글들이 현대의 사람들이 읽기 편하도록 다듬어졌다고나 할까..... 
어쩌면, 대중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나, 제자들과 나누는 문답식 이야기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지혜로운 말씀들이고, 그가 행한 많은 기적들은 그것이 기적이라는 것이상의 의미있는 사건이며,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셨던 한 성인의 이야기, 또는 하나님(신)이라는 개념의 예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책속에는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로 이 책의 어떤 부분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일치한다 하는 논란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세벽의 '예수'는 한 편의 장편소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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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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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칼럼 매캔'은 아일랜드태생으로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는 그의 5번째 작품인데, 2009년 아마존이 선정한 '최고의 책' 1위, 아마존 베스트 셀러 소설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처음에 이 책을 접할 당시만해도  뉴욕 쌍둥이 빌딩을 줄 하나로 건넜다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이상의 많은 내용의 글들이 실려 있었고, 그것은 다만 이 글의 소재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70년대 여름, 뉴욕이다. 1974년 8/7일에 필리프 프티는 세계무역센터 빌딩 110층 꼭대기, 지상에서 400 미터 높이에서 두 건물 사이에 줄을 걸고 건넜는데 이 사건이 이 소설의 소재로 쓰인 것이다. 이 사건은 '20세기 예술적 범죄'라고 불리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니 첫 페이지부터 숨막히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냥 줄을 건너는 것도 아니고, 춤을 추듯이, 때론 깡충 뛰기도 하며, 때론 뒤로 회전도 하면서,무릎을 끓기도 하고, 눕기도 하면서....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하나의 모티브가 될 뿐이고, 이 이야기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이 소재와 얽혀서 여럿 소개되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날줄과 씨줄이 얽혀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느낌이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떤 소설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첫 이야기인 쌍둥이 빌딩을 걷는 사람의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아일랜드 출신 형과 아우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약간의 혼란이 왔다.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의 창녀를 도와주는 코리건과 그의 형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뉴욕 펜트하우스에 사는 판사 부인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부인의 아침 모임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아들을 둔 여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전혀 상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그래서 목차를 다시 훑어보면서 이 소설이 장편소설이 아니라, 중단편의 모음집인가 하는 착각을 해보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러니, '칼럼 매캔'의 소설쓰기가 얼마나 남다른지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이야기이지만 여럿의 이야기를 모은듯한....
쌍둥이 빌딩을 줄을 타고 건너는 사람을 땅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것을 바라보던 사람들과 얽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아일랜드로 건너와서 세상에서 소외된 창녀들의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고통을 대면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코리건과 얽힌 사람들. 베트남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소더버그 부인의 고통과 그녀와 얽힌 사람들. 코리건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는 창녀 재즐린과 얽힌 사람들. 그리고 그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람.
전혀 연관이 없을 듯한 사람들이 한 소설에서 각각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삶이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을 걷는 사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그녀는 알았다. 그 하늘을 걷는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깨달음이 그녀 깊은 곳에서 세게 울리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천사도 악마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예수도, 개선된 공간도. 인간과 매체와의 만남도, 자연을 넘어서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가 그 높은 곳에 있었던 것은 일종의 외로움에서였다. 그이 정신이 한 행위는,그의 몸이 한 행위는, 외로움에서였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P195~196)

모든 것에는 목적이, 신호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줄이 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와 줄. 210 피트와 그 줄이 있는 거리. (P277)

미래도 과거도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줄타기에 즉각적인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삶을 한쪽 끝에서 다른끝으로 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 이 모든 일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름다움이었다. 줄을 걷는다는 것은 신성한 기쁨이었다. 그가 그곳 하늘에 있을 때 모든 것이 다시 쓰였다. 인간은 새로운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것. 평형을 유지하는 그 이상의 것을 해냈다는 것. 그는 잠시 그의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느꼈다. 새로운 종류의 깨어남 (P208~281)
희망과 아름다움, 도전과 용기를 보여준 목숨을 건 20세기 최고의 예술 범죄라고 하는 하늘을 걸어다니는 사람의 이야기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도시인 뉴욕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맞추기 힘든 퍼즐처럼 얽혀서 한 편의 소설이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고귀한 곳의이야기도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인종, 종교, 빈부의 격차, 범죄, 마약, 죽음 등의 각종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섬세한 필체와 정서적 묘사력까지 동원하여 독자들에게 들려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나이에 의해서 거대한 지구는 돌려지고 있음을.... 그것은 갖가지 사연을 가진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고, 화해가 될 수도 있고, 도전과 용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돈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계속 나아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시계, 선풍기, 바람, 돌고 있는 세상. (P586)
한 편의 소설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이야기한다.
문학은 우리에게 모든 삶이 이미 다 쓰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아직도 해야할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P592)


 
 뉴욕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기에 맑고 밝고 깔끔한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색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얽히는 모습들이 특색있게 느껴지면서,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돌고 도는 세상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가져다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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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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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소설은 출간될 때마다 관심이 갑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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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스위트 대디 마음이 자라는 나무 23
카제노 우시오 지음, 고향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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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특별한 가족이야기이다. 25살 드럼을 치는 아빠와 11살 딸의 이야기이다. 과연 이런 가족 구성원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데, 사연은 딸인 후키코의 엄마와 아빠인 마사미는 15살 차이가 나는 재혼부부였던 것이다. 갑작스런 엄마의 교통사고로 남게 된 부녀지간이다. 건축가로 활동하는 친 아빠가 있지만 후키코는 변변한 직업도 없는 마사미와 사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요? 나도 딱 꼬집어 언제라고 말할 순 없어요. 그런데, 남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어덯게 알겠어요? 행복의 기준이란 것도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 그러니까.... 싫었던 것이 갑자기 좋아지기도 하고, 남들 눈에는 불행하게 보인다 해도 정작 자신은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p89~90)
후키코의 이웃인 다이치, 신지, 그리고 다이치 부부와 함께 펼쳐나가는 이야기가 풋풋하면서도 훈훈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후키코를 자신의 딸로, 또는 친구처럼 돌보아 주는 마사미의
마음과 행동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정답게 느껴지듯이, 서로의 가정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모습도 정겹게 그려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아빠이지만, 그의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꿈인 음악을 향해서 도전하는 열정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기에 그들의 가정에는 항상 행복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록 현재는 남들보다 좀 뒤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만의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마사미는 드러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다이치의 엄마는 젊은 날의 꿈인 만화가를 꿈꾸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귀염둥이인 신지 역시 무엇이든 느리고 힘든 학교 생활을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저마다 다양한 삶이 있고, 그것을 일반적인 잣대를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25살 아빠와 11살 딸이라는 획기적인 주인공들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걸 꿈이라고 누가 말했나? 손에 잡히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니면 되는 거지./ 그래, 내가 정했어!/바라는 건 모두 바람 속에 있고, 생각도 무도 바람이 전해주지./ 희망의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에서 /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찾을거야 (초등학교 종업식날 공연에서 들려주는 음악의 가사)
(...) 그것은 마 군을 잘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따뜻한 희망의 바람을 실어다 주었다. 꿈은 현실이 되는 것일까. 끊임없이 찾으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그 누구도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p26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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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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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시인 김수영의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난 그 작품을 읽어보지 못해서 이 제목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는 없다. 인간의 속성중에 두드러지면서도 혐오스러운 것이 '속물'근성이 아닐까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듯이 속물근성 역시 나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처첨 느껴지고 때론 남들에게 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지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런 속물근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흉을 보고 혐오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본 제목의 '거룩한'이 나타내는 의미는 반어법적인 강조의 뜻이며,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의 제사날 모인 식구들이 할아버지의 재산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고, 그 가족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는가를 부각시키고 싶어하고,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엘리트 과정을 밟고 있느냐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본질을 떠나버린 가족 모임.
내가 사귀는 남자 친구가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 학벌은 어떠한지, 가정환경은 어떠한지를 그의 성격이나 취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대생들.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기에 해야하는 도시락 봉사활동이 하나의 과정일뿐이지 어떤 마음에서 우려나온 행동이 아닌 행동이라는 것.
친구는 그저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한 사람일뿐이고, 그들이 걸친 옷과 성형수술, 사귀는 남자 친구의 배경만이 관심이 되고, 친구의 빈티나는  행동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것뿐인 관계라는 것.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속물근성이 담뿍 담긴 3명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대학을 졸업해도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어디인 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
그러나, 속물스러운 그들도 결국에는 자신들이 가야할 길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이 소설은 원래는 '문학웹진 뿔'에서 연재되던 소설인데,  평균 조회 수 5천여 건, 평균 추천 수 100건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속물적 습성에 젖어 있었던 자신들의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잣대를 남에게 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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