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백수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가난한 집의 장남의 역할을 그대로 담아내는 인물인데, 아쉽게도 월남전에서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말하자면 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사라졌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 백수의 장남의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 만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수룩하고 두뇌는 형제 중에서 가장 뒤떨어지지만 인간미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가정에서 해야할 역할을 잘 아는 인물이지요. 물론,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존재가치를 알릴 수 있지 않은 투명인간과 같은 인물이지만 가장 정이 가는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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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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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성석제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작가의 초창기의 작품은 읽지를 않았지만 문학지를 통해서는 수상작품이나 심사위원, 추천작가의 작품으로는 몇 편을 읽었었다.

그런데, 1996년에 출간되었다가 재간행된 <왕을 찾아서/ 성석제 ㅣ 문학동네ㅣ 2011>를 읽은 후에 작가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몇 권의 장편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투명인간>은 그 중에서 가장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읽는 도중에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부모 세대 또는 독자 자신이 살았던 가까운 과거이다. 대략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에서 현재까지의 우리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또뽑기', '불주사', ' 혼분식', '곡식이삭 주워오기',' 잔디시 훑어오기', '새마을 운동', '월남전', '구로공단', '우골탑',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등을 기억한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 온 어떤 시점의 이야기임을 상기시키면서 빙그레 웃을 수도 있고, 쓴 웃음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치 희미하고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활동사진 속의 한 장면을, 또는 컴코더로 찍어 놓은 동영상을 돌려 보면서 이 글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잊혀졌던 기억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이 소설 속에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독자들의 인생 중의 어떤 한 부분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세밀한 묘사를 읽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시작은 마포대교. 걸어 본 적이 없기에 그 다리 곳곳에 씌여져 있다는 글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자살 방지를 위한 그 글들과 함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수, 그러나 만수의 이야기인가 하고 읽다 보면 어느새 화자는 만수의 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하고, 만수의 형인 백수가 되기도 하고....

이 소설의 화자는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이 아닌 모두가 화자이다. 한, 두 페이지를 읽다보면 슬그머니 화자가 바뀌어 있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화자로 넘어가서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수 할아버지는 큰 부잣집의 3대 독자였다. 박식한 선비 할아버지에 비하면 가세가 기운 탓인지 만수의 아버지는 무식하고 무기력한 농사꾼이다. 어머니는 화전민의 딸이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3남 3녀의 자녀가 있다.

가난한 시골에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장남은 그 집안을 살릴 수 있는 존재이니,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 그 집안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똑똑한 장남을 위해서 나머지 형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백수는 이런 장남이기에 서울 유학까지 가지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막노동까지 하다가 월남전에 가게 되고, 고엽제 때문에 세상을 뜨게 된다.

둘째 아들 만수가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인데, 태어날 때부터 머리만 유난히 크지 팔다리는 쇠꼬챙이 같으니.... 매사에 자신이 없고, 경재에 뒤처지고, 동생인 석수나 친구 등에게 이용만 당한다.

백수가 있을 때는 장남이기에 그 짊을 벗을 수 있었지만 그가 죽자 장남의 역할을 만수가 하게 된다. 공고출신으로 공장의 관리직 평사원이 되지만 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접어야 할 정도로. 조카까지 자신의 아들로 키워야 할 정도로.

이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범한 서민이라고 하기에는 비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가까운 과거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들의 삶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잘났다고 세상을 주름잡는 사람들에 묻혀서 어느 한 구석에 찌그러져서 살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이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의 누추하고 너절하고 지린내만 나고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닌 그것.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지만 나는 나대로 행복한 상태.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의 나는 괴롭고 짜증하고 화가 나고 외로운데 아무도 내가 그렇다는 걸 알아주지 않았다. 힘들었다. 견딜 수 없었다. 소리치고 울고 신음소리를 내고 나뒹굴어도 나쁜 내 상황을 어쩌지를 못했다. 이제는 더 못 참겠다. 정말 죽고만 싶다. 지진, 홍수, 천둥 벼락, 무너지는 건물, 꺼지는 다리, 폭발, 침몰, 추락, 화재, 사고, 뭐든 좋으니 내 생명을. 삶을 없던 걸로 해줬으면, 지우개로 싹 지워줬으면 하고 간절히 소리치며 신음하며 몸부림치며 울며 울며 울며 울며 바라고 있을 때. " (p.347)

 

" - 이렇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 보면 훨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난, 난..." (p. 367)

 

<투명인간>을 읽는내내 우리 사회는 시끌벅적했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여기에서 파생된 많은 문제점, 그리고 정치권의 인사청문, 여당의 당대표 선출, 재보선 공천....

가난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했던 어느 가정의 3대에 걸친 이야기는 이런 혼탁한 세태에서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물질만능, 권위주의, 학벌주의 등으로 치닫다 보니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욕망으로 가득찬 사회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편법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얼핏 보면 만수네 가족사인 것 처럼 생각 할 수 있지만 우리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게 해 준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한다. 존재는 하지만 존재 가치가 없는 듯이 살아가는 투명인간.

"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 (p.11)

성석제는 그의 소설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심도있게 다룬다. 그런데 그 바탕에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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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황금가지 입니다 :)


36년 만에 출간된 『샤이닝』의 후속작,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3억 독자를 둔 세계적인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의 최신작!

스티븐 킹 신간도서『닥터슬립(Doctor Sleep)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어서와 황금가지 온라인 서점 서평단은 처음이지..?!!)



▶ 도서소개 


광기 어린 아버지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포가 아닌 치유를 보여주는 작품, 『닥터 슬립』 출간!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잭 니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샤이닝』의 후속작으로서, 36년 만에 출간된 속편 『닥터 슬립』(전2권).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브람 스토커 상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 


『샤이닝』에서 살아남은 소년 대니가 중년이 된 후를 그리는 『닥터 슬립』은 기존의 '공포'에서 탈피하여 초능력을 가진 소녀와 그녀를 죽여 영생의 기운을 받으려는 괴집단과의 쫓고 쫓기는 스릴을 담는 한편,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의 끝에 섰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시녀 이야기』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닥터 슬립』에 대해 "스티븐 킹의 여러 걸작에서 드러난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극찬하면서,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는 너대니얼 호손과 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이어진 미국 호러 문학의 본질이라고 평했다.



 

 

 


 


▶ 줄거리


어린시절 오버룩 호텔에서 겪은 악몽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댄(대니)은 작은 마을에서 호스피스 일을 한다. 그의 특별한 능력 '샤이닝'은 임종을 앞둔 이들이 편안하게 눈감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닥터 슬립'이라 불리운다. 그러던 어느날 오래 전부터 그의 주변을 맴돌던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며, 도움을 요청한다. 


전국을 떠돌며 샤이닝을 가진 어린 아이를 고문하고 죽여 거기서 나온 기력을 먹고 사는 괴집단 '트루 낫'이 다음 목표로 소녀를 선택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샤이닝을 가진 소녀의 목숨과 영혼을 구하기 위해 댄은 초능력자 집단인 '트루 낫'과 생존을 위한 전쟁에 나서게 된다. 



▶ 『닥터슬립』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해당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7월 16일(수)~2014년 07월 20일(일) 5일간 입니다.


셋,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당첨자 발표일은 2014년 07월 21일 (월) 오후 입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7.24(목)~08.03(일) 10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 『닥터슬립』 서평단 발표 페이지에

온라인 서점 블로그와 개인 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도서는 닥터슬립 1,2권 모두 발송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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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속삭여 줄게 / 정혜윤 ㅣ 푸른숲 ㅣ2009 >- 진정한 교양인을 위한 여행 에세이

 

 

 

 

 

 

 

 

 

 

 

 

 

 

 

정혜윤의 글은 독특하다.그건 그녀에게서 책은 삶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필요불가분의 존재이기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책과의 연관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미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 푸른숲, 2008>를 통하여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등 11 명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책과의 이야기를 인터뷰하였었다.
저자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순간들에 만나던 책과의 인연.
그 이야기 속에는 정혜윤의 독서 이야기도 한 몫을 하였던 것이다.

<런던을 속삭여 줄게>는 여행 에세이지만,
여행이 그렇듯 여행 중에 만나는 곳들에 대한 문학과 역사, 심지어는 과학이 어우러진 에세이라고 해야 될 듯싶다.
정혜윤에게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 등이 곧 책 속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다.
풀어도 풀어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오는 이야기들.
그녀는 진정한 교양인인 것이다.
이 책의 '런던 여행을 마치며'의 나오는 고흐와 고갱을 헷갈리는 어떤 아버지가 아닌 진정한 교양인.
그녀의 해박한 지식은 런던을 곳곳을 둘러 보면서 이어진다.
" 이야기들도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고 추억은 또 다른 추억을.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품고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
이 책은 한 장의 런던 지도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독자들은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비단 런던만을 위한 여행서가 아니라는 것을.
런던이 될 수도 있고, 파리가 될 수도 있고, 도쿄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런던 다음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지도를 따라 런던의 곳곳을 이야기한다.
웨스트민스터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 그린니치 천문대.

 


이곳들은 런던의 여행자라면 그 누구라도 가는 곳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바이런, 셀리, 키츠 뉴턴,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등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서  그렇게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으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문호들의 책 속의 글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는 넬슨 제독과 화가 터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로제타석, 사자의 서, 그리고 미노스의 꽃 화병 등을 보면서 또 이야기를 이어간다.
700 만점 유물을 통해 유물너머의 어마어마한 문명과 도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악명높은 피의 역사를 간직한 런던탑는 그 모습만큼이나 음울한 이야기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런던탑에 갇혔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헨리 5세, 에드워드 5세와 그 동생, 천 일의 앤 블린, 캐서린 하워드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불붙었다가 불꽃처럼 사그라진 앤 블린.
그녀의 목표였던 '최고로 행복한 여자가 되자'는 생각은 마지막 불꽃처럼 사라졌다.

여행에세이는 같은 도시를 이야기여도, 책을 쓴 저자들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만약에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변종모, 달, 2009>의 저자인 변종모가 런던을 속삭여 준다면 안개 속의 런던만큼이나 짙은 외로움을 분위기있는 사진과 함께 이야기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정태남,21세기북스, 2011 >의 저자 정태남이 런던을 속삭여 준다면 음악이 흐르고, 공연이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정태남만의 프레임에 잡힌 독특한 사진이 실렸을 것이다.
<송동훈의 그랜드 투어/ 송동훈, 김영사, 2010>의 저자 송동훈이 런던을 속삭여 준다면 근세의 유럽 문화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런던의 사진과 함께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 에세이는 같은 곳이지만 어떤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서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역시 정혜윤의 런던은 책이 있고, 문인이 있고, 역사적 인물이 있는 그런 런던을 속삭여 준다.
언제 읽어도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읽으면 진정한 교양인이 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저자는 그렇게 런던을 속삭여 준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 ㅣ 푸른숲 ㅣ2008>- 정혜윤이 만난 독서광들.

 

 

 

 

 

 

 

 

 

 

 

 

 

정혜윤의 독서력은 대단하다. 어릴적 읽은 책에서 부터 수많은 책들의 구석구석에 쓰여져 있던 글들까지도 모두 가슴에 담아 두고 되새김질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교보문고를 처음 와보고서 그 많은 책들에 놀라서 눈물을 흘렀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고, 나중에 그 책들사이에 자신의 책이 한 권쯤 끼어 있기를 바랐다고 하는데, 벌써 그녀의 책은 몇 권이 교보문고의 책꽂이에 놓여 있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가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인 것처럼 작가가 만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11명의 사람들은 책을 너무도 사랑하고 그들의 인생에 책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삶에서 책이 차지한 부분이 너무도 크고, 책이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계기가 된 경우를 이야기해 준다.

인터뷰와 독서 에세이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으면 다른 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독특하고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진중권 _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정이현 _불안으로 가득한 삶 안에 숨어 있는 열정
공지영 _세상과 자신 사이의 화해, 나는 살기 위해서 읽었다
김탁환 _한 권의 책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
임순례 _어떤 인물도 딱히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은희경 _읽었던 것들의 지혜가 끝나는 순간의 새로운 깨달음
이진경 _저는 내면이 없는 인간이에요.
변영주 _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신경숙 _한 시절의 순수를 찾아서 자기 자신을 소모해버린 끝의 긍정
문소리 _빛은 내부에서 온다
박노자 _불교와 장자에 심취한 사회주의자

목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작가, 영화인,교수, 사회비평을 주로 많이 하는 사람,영화 감독 등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책이라는 주제앞에서는 책과의 인연, 독서의 즐거움을 추억에 담아 내뺃어 주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난독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아마도 주인공들의 책과 얽힌 전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년시기부터 지금까지의 독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려 준다.

특히, 작가는 이들의 독서 이야기를 듣고,인터뷰의 주인공들이 읽은 책과 그들의 저서를 비교해 가면서 책이 이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분석해 주기도 한다.

나도 어릴적에 어떤 출판사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재미있는 위인이야기'로 시작하는 거의 100권이 넘는 책으로 부터 독서가 시작되었고,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그 책들을 읽고 또 읽고 했었다. 매일 배달되는 '소년한국일보'를 구독했고, '어깨동무'(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학원'이라는 잡지책을 읽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점심시간마다 대출을 받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면서 빨강 책표지의 탐정소설들을 탐닉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읽을 책만 있으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고 보면, 독서는 어릴적의 습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은 성인이 된 아들의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선물은 꼭 책이었으니....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을 읽다보면 한 사람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정혜윤, 인터뷰 내용.그리고 책이라는 3갈래의 이야기가 합쳐져 있다. 

그리고,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 등장하는 책 소개이다.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던 책들이 과연 어떤 책인지를 알 수 있고, 그 책들의 내용의 일부도 소개되기때문에 관심있게 훑어보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그 책을 읽어본다면 이 책에 나왔던 이야기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인터뷰이들의 삶을 바꾼 책들을 통해 그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 너머에 있는 책을 만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소설과 시를 비롯해 고전과 인문서, 베스트셀러 등 국내외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깊은 책 읽기를 선보이지만, 이번 책에서는 사적인 독서 체험을 확장시켜 소통으로 가는 길을 모색했다.

 

<삶을 바꾸는 책읽기 / 정혜윤 ㅣ 민음사 ㅣ 2012> - 정혜윤의 책읽기

 

 

 

 

 

 

 

 

 

 

 

 

 

 

 저자가 쓴 책들을 보면, 쉴새없이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책들에서 인용된 문구들이 발췌되어 실려 있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이야기마다 거기에 적확한 책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독서광이다.

그래서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되지만, 저자의 생각과 더불어 다른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은 그동안 정혜윤이 독서 관련 모임이나 독서 관련 강의를 하던 중에 사람들에게 많이 받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가끔은 책읽기에 관련되어서 궁금했던 질문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8가지 질문은 보편적인 질문들이기도 하고,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여야 할 질문들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독서를 하기에 그녀에게 " 왜 책을 읽으시나요?" 하는 질문을 많이 하는가 보다.

어떻게 생각하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질문인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습관이고, 삶의 한 자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 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책은 저에게 그저 고향같은 존재라고 대답합니다. " (p. 63)

" 책은 우리에게 대놓고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도, 위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책은 자꾸 자신을 만나게 합니다. 돌아보게 합니다. (...) 하지만 바로 돌아봄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 (p. 100)

책은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 (p. 125)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 어떤 책의 경우는 읽으면서 나와 빗대어 생각하게 되기에 책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습관처럼 읽곤 하던 책. 물론, 책읽기는 달콤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기에 나에겐 참 좋은 벗이다.

저자는 서평쓰기에 대해서,

" 우리는 꼭 문학 평론가나 학자가 되려고 읽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데 도움을 받고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읽고 쓰는 겁니다. 서평은 자기 생각을 써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진실된 마음이 담겨 있으면 됩니다. 서평은 자기 자신입니다. " (p. 167)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에게 있어서의 서평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나는 읽는 책들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그 이전에는 책읽기로 끝냈으나 2009년 어느날부터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가끔 작가의 신간 서적이 나올 경우에 전에 읽었던 그 작가의 책에 대한 서평을 다시 읽어 보는 경우가 있다.

'아니, 그때 내가 이런 생각으로 그 책을 읽었었구나 ! ' 가끔은 정말 내가 쓴 서평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롭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저자가 많이 받는 질문 중에 "제가 읽을 책의 리스트를 작성해 주세요" 하는 질문받게 된다.

첫째로,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 작성은 첫째로, 자신의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방법,

둘째로, 책 속의 책을 따라가는 방법,

세째로, 세상에 대한 관심에 따라 책을 찾아 읽는 방법을 소개한다.

둘째 방법은 책을 읽다가 그 책 속에 소개되는 책의 이야기를 읽고 관심이 가서 읽게 되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가 종종 있으니, 책은 또 다른 책을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고전을 많이 읽는다. 그것도 문학이나 논술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10대 후반, 인생을 알까?, 사랑을 알까? 이별을 알까? 죽음을 알까? 정치를 알까?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읽게 되는 고전은 지루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세계적인 문호들의 그 좋은 작품을 왜 그때 읽어야 했을까?

고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생각, 어설프게나마 한 번은 읽었다는 그 때 시절에 읽었던 고전들은 다시 접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올해 초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너무도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땐가 필독 도서에 나와 있던 책을 읽다가 너무도 지루하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덮어 버렸던 책.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인생의 연륜이 쌓이니, <노인과 바다>를 재평가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한다. 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었을 때의 경험을...

이 책 속에는 책이야기, 그리고 사람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읽기에 대한 생각들을 되짚어 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여행, 혹은 여행처럼 / 정혜윤 ㅣ 난다 ㅣ 2011> -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

 

 

 

 

 



 

 

 

 

 

 

저자가 대단한 독서광이라는 것도, 여행을 즐긴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들이기에, 그녀에게 여행, 독서, 삶이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곁에 다가올까 참 궁금하기도 했다.

역시, 이 책도 나에게는 기대이상, 그 이상을 가져다 준 책이다.
여행과 삶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우리는 여행에서 어떤 깨달음을 갖게 될까.
그런 깨달음을 삶에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까.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들도 차분하게 되짚어 보게 되는 시간이다.
여행은 일상의 탈출이 아니라, 일상의 연속이 아닐까.
여행은 삶은 참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또 여행은 삶에서는 행하지 못하는 그 이상의, 아니 그 반대의 행동을 가능하게도 해주는 것이다.

 " 오로지 익숙하고 낯익은 것에만 머무르려하지 않음, 낯선 것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두려 함, 도리어 차이에서 어떤 가치를 끌어내려 함, 일상에 돌아올 우리가 여행에서 바로 이런 간절함을 배운다면 우리는 길을 물어보는 낯선 사람, 우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더 친절할 수 있을지 모른다. " (p99)
여행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삶에서도 여행의 이런 점을 배운다면 우리는 덜 과시적이고, 덜 속물적이고, 덜 불행해질 것이다.
물론, 저자의 생각을 옮겨 놓은 것이지만, 나 역시 그런 생각이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가끔 이런 절박함을 갖는다. 내가 언제 또 이 도시를 찾을 것인가? 그 여행은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 또 이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 갈 것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 " (P192)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여행과 삶의 연관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여행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들을 어떻게 삶에 적용시키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저자는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지만, 그것은 독자들을 향한 목소리인 것이다.
이 책의 첫부분에는 저자의 부모가 어떻게 만나서 자신이 태어났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에 대한 이야기가 책 이야기와 함께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저자 자신에 대한 여행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행을 떠나듯이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이야기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다.
그것 역시 독자들을 향한 또다른 목소리인 것이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했다>처럼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군대에 간 남편이 보내오는 편지를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지만, 꼬박꼬박 편지를 보내오던 남편에게 뒤늦게 답장을 보낼 수 있게 된 시골 할머니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이제는 한글을 배우고, 노인들을 위한 시창작반에서 시까지 쓰신다는 할머니의 <무식한 시인>이란 시를 비롯한 몇 편의 시는 시골 할머니의 시라고 보기에는 순수하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그밖에 캄보디아를 매년 찾아간다는 사진작가 임종진, 버마에서 온 이주노동자 소모뚜, 인생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기막힌 사연인 시인 송경동, 나무를 세다 보니 어느덧 나무 박사가 된 강판권, 그리고 진드기와 진딧물도 구별 못하던 진딧물 박사 김효중, 지도를 만드는 송규봉 박사, 라틴어를 따라 여행을 다니는 교수 안재원 등의 인생 이야기를 정혜윤 PD는 인터뷰하고, 그 속에서 여행과 인생, 그리고 독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이다.

책 첫부분에 나오는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파리의 오스카 와일드 무덤을 찾아온 더블린의 부부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오로지 동화 '행복한 왕자'를 읽고 작가의 무덤을 찾겠다고 돈을 모으고, 그날을 기다리던 그 부부의 이야기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여행은 바로 이런 것이고, 이것이 인생이고, 이런 것들에서 우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011년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책들 중에서 그 어떤 사람에게 추천을 해 주어도 좋을 듯한 책.
책 속에 여행이 있고,
책 속에 책이 있고,
책 속에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
그 책은 <여행, 혹은 여행처럼>이다.

 

<마술 라디오 / 정혜윤 ㅣ 한계레출판 ㅣ 2014>- 정혜윤이 들려주는 14편의 이야기

 

 

 

 

 

 

 

 

 

 

 

 

 

 

 

그동안 정혜윤 PD의 책에 매료되었던 것은 책 속에서 또 다른 책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과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바로 그녀가 읽었던 책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 책의 문장들이 술술 실타래에서 풀려나올 수 있을 정도의 독서가이기에 그렇게 다져진 필력이 마음에 공감을 주곤 했다.  

정혜윤이 쓴 다수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녀의 독서 이야기, 여행 이야기, 인터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마술 라디오>는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책들에 비해서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우선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듯 씌여진 '~ 했어'라는 구어체 문장인데, 때에  따라서는 친근감있게 다가오기도 하겠지만, 이런 문장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책을 읽는내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라디오 PD로서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서 취재하는 과정에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방송 이야기 등의 취재파일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서 들려주는 작업이라는 생각에서 한 시도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가볍고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준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프로롤그가 책의 9쪽에서  56쪽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작가 역시 이런 점이 편집자에게 지적 사항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에 대한 해명을, " 실험 정신이죠, 일종의 형식파괴예요." 라는 말로 대신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시도이다.

CBS 라디오 PD인 정혜윤은 그동안 시사적인 국내외 다큐멘터리 다수 제작을 했다. 그녀에게 '라디오 PD'란 이란 질문을 한다면, '듣고 묻는 자'라고 답한다.

" 라디오 피디의 최고 권력 행사는, 바로 물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이야. 그렇게 묻고 들으면서 끝없이 살 방법을 찾아 헤매는 사람, 수많은 삶의 형태를 전하는 사람, 이게 라디오 피디라고 나는 생각해." ( p. 48)

우리에게 라디오란 흘러간 아련한 추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라디오란 몇 십 년 동안 내 스스로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은 고물과 같은 존재이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에 우연히 가끔 들었던 기억이 날 정도로 우리들에게서 멀어진 매체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빛바랜 라디오가 한 대 씩은 들어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라디오 PD인 정혜윤의 가슴 속에는 그 누구 보다도 더 크고 귀중한 라디오 한 대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방송을 위해서 취재를 했던 그 이야기가 담겨 있는 라디오가 그녀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론 가끔씩 생각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생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이야기 이기도 하고, 가장 후회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꿈과 소망을 담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들을 작가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의 목소리로 들려주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모두 14 편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짙은 노란색 종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츰 옅어지다가 나중에는 흰색 종이 위에 풀어 놓는다.

책 속의 이야기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인 '빠삐용의 아버지'이다. 제주에서 만난 낚시꾼 아버지는 3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그 중의 둘째 아들은 자폐아로 틈만 나면 큰 도로로 걸어나가서 없어지곤 한다. 빠삐용처럼 집에서 탈출을 한다. 그 아들을 수없이 찾아 나서야 했던 아버지, 그런데 첫째 아들도 둘째 보다는 정도는 약하지만 자폐아이다.

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 저는 요, 내 아이들도 축복받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 (p. 89)

그 아버지를 통해서 '그냥 받아들인다' 는 의미를 되짚어 보게 헤 준다.

" 우리는 일상이 자신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서 괴로워하지. 일상의 소소함이 더 큰 무엇인가로 이끌어주지 않아서 괴로워하지. 행복이란 상상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높은 곳에 있는 내가 모르는 남들의 시선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지상, 식탁, 책상, 잠자리, 산책길, 자전거, 책 속에 있겠지. " (p.88)

그리고 열세 번째 이야기인 '제일 부러운 사람'에서는 딱딱한 현실에서 피어나는 표고버섯과 같다고 해서 '표고버섯 아저씨'라 불리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표고버섯, 팽이버섯, 새송이 버섯, 느타리 버섯, 양송이 버섯, 광이 버섯 등이 자라는 환경, 배양 방법 등이 다르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 인생은 딱 이거야. 어떻게 살아왔냐야. 행복, 최후의 순간에 말하는 거야. 인생은 다 살고 끝에 가서 말하는 거야. " (p. 268)

이렇게 14편의 이야기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처럼 각가지 사연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들이 고전문학과 음악 등의 이야기와함께 라디오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청취자들이 같은 라디오 방송을 들더라도 그 이야기를 어떤 관점에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른 반응을 가져 올 수 있듯이, 이 책 속의 이야기들도 독자들에게 여러 형태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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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 2016-02-06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혜윤 님의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읽지 못한 이 책을 리뷰를 통해 읽게 되었어요. 역시 전 정혜윤 님의 책이 좋더라구요~

라일락 2016-02-07 21:19   좋아요 0 | URL
저도 정혜윤의 책을 좋아합니다~~
 
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살면서 몇 번인가 내 어릴 적에 자랐던 동네를 찾았던 적이 있다. 돌이 지날 무렵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기에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다.

어느날 하루코스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옛 추억에 잠겨 보았었는데, 동네는 시간을 멈춘듯 그리 변한 것이 없었지만 내가 살던 집은 다세대 주택으로 변해 있었다.

등교길에 오르내리던 언덕길도 걸어보고, 초등학교에 가 보기도 하고, 근처 시장을 돌기도 하고, 어릴 적의 친구집도 찾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때는 높고 크게만 느꼈던 것들이 지금에 되돌아 보니 너무도 작고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높은(지금은 그리 높지 않은) 담벼락에 있던 얼룩을 보고 고양이가 그곳에서 떨어져 죽으면서 남긴 흔적이라고 하면서 그 곁을 지날 때는 무서움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허둥지둥 뛰어 가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어릴 때에는 크게 만 느껴지고,두렵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오솔길 끝 바다>는 나의 이런 경험처럼 어릴 적에 마음에 남겨진 상처가 때로는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 되짚어 보게 해주는 시간여행을 이 소설을 독자와 함께 떠난다.

우리나라 소설에도 이런 설정이 많이 등장하는데, 어른이 되어서 고향을 찾게 되는 계기가 고향에 남아 있는 친지나 친구의 장례식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40대 남자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고향을 찾게 된다. 그는 7살 적의 현실 속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환상 속의 이야기인지 희미한 기억이 되살려 자신이 살았던 집을 찾아 간다.

자신이 살았던 집은 이미 그곳을 떠날 때에 옛 모습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오솔길 맨 끝의 농장까지 가게 된다. 11살 소녀 레티의 가족이 살았던 햄스톡 농가.

그런데, 그곳에는 레티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당시 그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한 명의 친구도 오지 않을 정도로 책읽기에만 몰두하는 외톨이였는데, 지금도 역시 이혼남에 자녀들은 이미 성장을 한 상태인 누군가와 교류가 별로 없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다.

흐릿했던 옛 추억은 차츰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나는데....

7살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고양이를 사고로 잃게 된다. 사고를 낸 오팔 광부는 도박을 하던끝에 자신의 집 자동차에서 자살을 한다.

  

그리고 집에 들어온 가정부인 어슐러 몽턴은 아버지와 불륜 관계를 갖게 되면서 그를 다락방에 가두는 등의 학대를 일삼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가정부는 괴물이자 마녀이고 소름끼치는 그 무엇 보다 더 두려운 존재이다. 그래서 도망을 치게 되는 곳이 레티의 집이었고. 레티는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그를 보호해주게 된다.

이런 사건들 속에서 레티의 집안의 초자연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어린 나이에도 감지를 하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그 존재를 확인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진위여부 조차도...

40년 후에 그 때의 일들을 캐묻게 되지만 어릴적의 이야기는 다분히 환상적이 요소가 가미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 각각의 사람들은 사건을 모두 다르게 기억해.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어도 그것을 똑같이 기억하지 않을 거다. 그 사람들이 같은 곳에 있었던 아니든 말이야. 서로 바로 옆에 서 있는 두 사람도,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륙만큼 떨어져 있을 수 있지." (p. 278)

작가인 '닐 게이먼'은 어렸을 때에 부모님이 출근길에 도서관에 데려다 주면 그곳에서 책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독서는 '도서관에서 자란 우울한 아이'를 만들었다. 책과 함께 하면서 얻은 것도 물론 많겠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 속의 7살 아이처럼.

그래서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섞여진 이야기라고 한다. 책 속에서 얻은 상상력은 이 소설처럼 판타지 소설이 될 수 있었다.

<오솔길 끝 바다>는 현실 속의 세계와 환상 속의 세계가 공존하는 어른들이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어른을 위한 판타지 소설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오래도록 그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게 되면 인격형성에도 큰 작용을 함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과거 속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 교육에 대해서 깊이있는 생각을 다듬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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