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줄리언 반스'의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ㅣ 다산책방 ㅣ2014 >를 읽었다.

저자가 자신의 아내와 사별한 후의 상실과 고통에 관한 5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 속에 나오는 3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비상의 죄'는 하늘을, 두 번째 이야기인 '평지에서'는 '땅'을, 세 번째 이야기인
'깊이의 상실'은 '지하'를 의미하며 이 세 주제는 하늘, 땅, 지하의 수직적인 층위를 이루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저자와 아내의 이야기는 세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데, '비상의 죄', '평지에서', '깊이의 상실'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다르'는 자신의 이상을 열기구와 사진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더 이상 날아 오를 수
없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프레드 버나비'는 '베르나르'와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맺음을 한다.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세 번째
이야기인 자신의 이야기는 아내와의 사별로 인하여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의 깊이로 떨어지게 된다. 전설 속의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지하세계로 들어가지만 실패한 것처럼 '반스' 자신도 상실의 지하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단순히 우리들이 생각하는 에세이에서는 읽을 수 없는 깊이있는 질문과 그 해답을 찾아내야하는 쉽지 않은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 지적 수준이 충만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책이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TV 프로그램 <TV 책을 보다>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관심이 가던 소설이기에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 대한 딱 하나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읽게 된다'는 말이었다.
작가도 역시 이 책의 원고는 150 페이지이지만, ' 나는 이 작품이 3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아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결론 부터 말하자면 나도 역시 이 책을 2번 읽게 되었다. 한 번은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자 하는 부분들에 대한 내용이 이
책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고, 어떻게 숨겨져 있었는가를 알기 위해서. 아니, 작가는 그 부분들을 일부러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나름대로 기억하고, 추측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줄리언 반스'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독자도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황당한 반전을 결코 생각 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p. 11)
여기에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스쳐간 순간들, 사건들이 과연 내가 생각했던 믿고자 했던 것들에 의해서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토니의 선생님인 '존 헌트'가 수업시간을 통해서 말했던 구절이 스쳐간다.
"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 (p.
34)
이 소설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학창시절의 이야기, 2부는 40년을 훌쩍 뛰어 넘어서 60대 노년의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20대나 60대나 별로 변할 것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학창시절,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사랑이야기이다. 1인칭 화자인 토니 웹스터에게는 앨릭스와 콜린이란 친구가 있다.
에이드리언 핀이 전학을 오게 됨에 따라서 3 친구와의 관계는 4친구의 관계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토니의 학창시절에 더 깊숙이 파고드는 인물은
에이드리언이다.
그는 전학생이지만 이내 학교 안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지성과 겸양을 갖춘 학생으로 진지하고 학구적이며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전학
오자마자 역사선생님인 조 헌트와 나누는 토론은 다른 학생의 사유와는 깊이가 다를 정도로 뛰어나다. 역사, 철학, 문학 등 다방면에 뛰어난
우등생인 에이드리언에 비하면 토니는 한참 뒤떨어지는 학생이다. 학업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생활면에서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에이드리이기에 토니가 상식에 적용하는 지점에 있다면, 에이드리언은 논리를 적용하는
지점에 있을 정도이다.
토니는 베로니카를 사귀게 되고, 그녀를 친구들에게 소개시키게 되는 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그리고 에이드리언은 토니에게 베로니카와 사귀려고 한다는 편지를 보내는데....
얼마후,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 (...)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론
부분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논지가 타당함을 알리고자하는 내용이었다. (...)" (p. 88)
그리고 세월은 흘러 60년대에 접어든 토니에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5백 파운드와 편지 2통을 남겼음을 알게 된다. 그 편지에
동봉되었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베로니카가 가지고 주기를 꺼려하기에 그녀를 여러 번 만나게 된다. 그 마음에는 혹시나 다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속마음을 가지고....
왜? 왜? 왜?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토니에게 유산과 편지를 남겼을까. 40년 전의 기억으로 되돌아 가서 생각하면 아마도 베로니카의 집에
갔었을 때에 가족들의 냉대에 대한 보상일까?
아니면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면서 받은 토니의 상처에 대한 보상일까?
작가가 아주 정교하게 짜 놓았던 플롯을 아무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 독자들이 책을 읽은 후에 또다시 읽게 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 머리속의 선입견이 그렇지도 않은 사실을 그렇다고 생각해 버리는 오류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를 범하는 인물로 토니를 빼놓으면
안된다.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사귐이 자신의 패배라고 생각하고, 굴욕감을 느꼈으며, 두 친구를 멸시하고 저주의 편지를 보냈으니...
40년이 흐른 후에도 변하지 않은 토니, 그래서 그의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지 못한 것이아닐까.
먼훗날 만난 베로니키의 입에서 거듭 나오는 말의 의미 조차 파악을 하지 못하는 토니였으니.
"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 " (p. 246)
40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고 그러니 베로니카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 인생은 단순히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다. 상실의, 혹은 실패의 축적과 곱셈이다. "
(p. 181)
마지막 반전은 '줄이언 반스' 말고는 어떤 독자도 예감을 할 수 없었으리라.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머리는 뽕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하다. 읽었던 페이지를 몇 페이지 다시 넘겨 자세하게 다시 읽어 본다. 분명 잘못 읽은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가 무섭게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간다. 분명 어떤 반전이 있을 것을 예감했기에 그리도 꼼꼼하게 읽었건만, '줄리언 반스'의 반전 포인트를
놓치고야 만 것이다.
'줄리언 반스'는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기 넘치는 작가'로 평가를 받는다. 해박한 식견과 사유의 무게가 그의 작품 속에
흐른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많은 부분들은 줄거리 위주로 읽는 독자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억이란 어느 정도만이 우리에게 남겨진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 마저도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선입견에 의해서 축적된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반스는 기억의 문제 외에도 인간의 조건과 장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삶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연의 연속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주 젼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 한 인간과 그 주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에이드리언은 인생을 ' 바란 적이 없었던 선물'이라 단언하며 '인생을
직시하고, 또 책임을 가진 사유하는 개인이라면 '거부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우리의 기억, 우리가 믿고 있었던 기억, 그것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볼 때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진실일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