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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 토마스 만 : 1875년 북독일 Hansa 도시 뤼베크에서 출생, 195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 20세기 초반의 가장 위대한 독일 소설가.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891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짐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에 심취했으며 1898년 <키 작은 프리데만씨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섬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인 1918년에 논문집 <비정치적인 사람의 관찰>이라는 600쪽이 넘는 논문에서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으나 이후에는 민주주의와 시민계급을 옹호하게 됨
1933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이라는 해외 강연 중 히틀러의 집권으로 신변 위협을 느껴 귀국을 포기하였으며 1936년에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38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함
1952년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으며 1955년 취리히에서 사망함.
* 하인리히 만 : 토마스 만의 형, 1971년 뤼베크에서 출생,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
<어느 가정에서>로 작가 활동을 시작, 보수 성향의 월간지 발행, 1933년 3월 베를린을 떠나 니스로 향한 후에 독일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치 독일이 유대계이며 좌파인사였던 그의 시민권 박탈,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스페인으로 피신했다가 리스본을 거쳐서 미국으로 망명
동생인 토마스 만과는 정치성향이 달랐으며, 하인리히 만은 에밀 졸라에 관한 에세이를 쓰면서 동생의 정치관을 조롱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형제간의 사이는 안 좋았으나 나중에 하인리히 만이 병에 걸리자 토마스 만이 문병을 오면서 형제간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하인리히 만은 토마스 만의 자녀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히했다. 그 이유는 토마스 만의 성격이 내성적이고 치밀한데 반하여 하인리히 만의 성격은 활발하여 인맥이 넓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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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대표작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기 위해서 구입한 책이 민음사의 <토니오 크뢰커, 트리스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다.
이 책에는 토마스 만의 작품 8편이 실려 있다.
그중의 첫 번째 단편인 <토니오 크뢰커>는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토니오의 아버지는 공직을 겸한 대상인으로 도시 전체에서 가장 훌륭한 저택을 가졌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했으나 아버지의 사망 후에 남미 출신의 어머니는 재혼을 하고 아들 곁을 떠나면서 고독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다.
토니오가 사랑하는 친구로는 한스 한젠이 있다. 목재 적재장을 소유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승마와 수영을 즐기는 우등생이다. 토니오는 시를 쓰고 바이올린을 켜지만 이미 그의 집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몰락했다.
거기에 의사 딸인 잉에브르크 홀름은 의사 딸로 토니오가 16살에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할 정도이지만 그에게 다가가지는 못한다. 한스와 잉에브르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의식이 강한 토니오는 더 이상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를 못한다. 시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 사이더가 된다. 그래서 토니오는 고향을 떠난다.
고향에서의 삶은 부유한 계층의 화려함이 있으나 현재의 토니오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ㅓ 토니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길을 택한다. 그에게 작가란 소외된 자아이며 고독한 예술가의 숙명이다.
토니오는 그곳에서도 어떤 예술인 그룹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외톨이가 된다. 화가인 리자베타에게 '길 잃은 시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날, 토니오는 리자베타의 곁을 떠나 1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저택이 있던 곳을 돌아보기도 하고, 다시 코펜하겐으로 헬싱키로~~~
어느날, 한스와 잉에브르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결코 없었다! 너 한스도 잊은 적이 없고, 너 금발의 잉에도 결코 잊은 적이 없어! 정말이지 내가 작품을 써서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너희들이었어. 그리고 내가 박수 갈채를 받을 때, 난 남몰래 내 주위를 살펴보곤 했지, 그중에 너희들이 참석해 있나 하고, 한스 한젠, 네 집 정원 문 앞에서 약속한 대로 이제 <돈 카를로스>를 읽었니? 읽지 마라! 난 너한테 그것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한테 무슨 상관이겠니? 넌 우울한 시 나부랭이를 보다가 네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장 뒤에는 사랑했던 잉에에게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절절히 이어진다. 아마도 토니오의 속마음이 여기에서 폭발하는 듯하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속 마음을 내뱉는 토니오는 자신의 정체석의 혼란으로 부터 해답을 얻게 되고 리자베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은 이제 시민적 사랑을 지닌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 시민적 예술가의 모습을.
"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리자베타. 나는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약속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바다의 물결 소리가 내게까지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있는 한 세계가 들여다 보입니다. 그 세계는 나한테서 질서와 형상을 부여받고 싶어 안달입니다. " (p. 117)<토니오 크뢰커>와 함께 '삶과 죽음, 시민과 예술가, 정신과 삶이라는 이원성을 거듭 대결시킴과 동시에 조화를 모색하는 작품으로는 <트리스탄>이 있다.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인데, <토니오 크뢰커>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라면 <트리스탄>은 시민성과 예술성의 또 다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시민적 인간과 예술적 인간의 특징을 객관적이고도 반어적으로 묘사했다. 두 작품 모두, 토마스 만의 시민적 세계와 관능적,예술적 세계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 소설들이다.
<타락>은 토마스 만이 아버지의 사망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가족들이 뮌헨으로 이주를 한다. 거기에서 토마스 만은 보험회사에 근무하게 되는데, 그당시 19살에 쓴 최초의 단편소설이다.
여성 라우베, 의학 박사 젤텐, 마이젠베르크, 나. 이 네 사람이 모인 가운데, 젤텐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준다. 자신이 이 정도는 소설로도 쓸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하자면, 소설 속의 소설, 액자소설 형태이다. 순진무구한 의대생이 여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겨 첫사랑을 하게 되는데, 그의 순수한 마음과는 달리 그녀에게 늙은 애인이자 후원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황당함이 의대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주 진부한 이야기같으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엿보이는 사랑 이야기.
"청년 작가 토마스 만의 반어적 기법이 돋보이며, 후일 토마스 만의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에로틱한 요소도 이 작품에서 이미 그 싹이 엿보이고 있다. " (p.583)<행복에의 의지>
몸이 약한 화가 파올로는 사랑하는 아다에게 청혼을 하지만 그녀의 부모가 파올로의 건강을 이유로 청혼을 거절한다. 홀연히 떠난 파올로에게 아다는 자신이 그를 기다릴 것이라는 뜻을 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이미 아다의 마음을 알고 있던 파올로는 아다와의 결혼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신혼 첫 날 밤에 파올로는 죽는다. 그동안 파올로는 몸은 약하지만 정신력으로 죽음을 눌러 왔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죽음을 눌러 놓을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의지, 행복에의 의지, 오로지 그 힘때문이 아니었을까? 행복에의 의지가 충족되었을 때 그는 투쟁도, 저항도 할 수 없이 죽어야만 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구실이 없었던 것이다. " (p.p. 284~285)
<키 작은 프레더만 씨>
프레더만은 생후 한 달이 채 안 돼서 기형아가 된다. 보모가 술에 취해서 프레더만을 아기 탁자에서 떨어 뜨렸기 때문이다. 곱사등이가 된 프레더만은 16살에 연정을 품은 소녀가 있었으나 그녀가 어떤 청년가 있는 것을 본 이후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 이런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과 기쁨을 베풀지만, 내게는 언제나 원한과 고통만 안겨 줄 뿐이야 " (p. 291)
그는 자신만의 행복을 음악을 사랑하고, 시를 음미하고 소설이 지닌 분위기에 심취하고 연극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행복과 교양을 쌓아간다.
" 이제 30년이 지났군. 아마 아직도 한 10년이 남았겠지, 아니 20년이 남았는지도 모르지, 하느님만이 아실거야. 다가오는 날들도 흘러간 세월이 그랬던 것처럼 고요하게 와서는 소리 없이 흘러가겠지, 난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고 있어." (p. 296)
그러던 어느날 그 지방에 육군 대령 폰 린링엔이 부임하게 되는데, 린링엔 부인의 거만한 모습....
그녀의 가족 초대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절제된 삶을 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찾아가게 된다. 프리데만은 그동안 절제되어 왔던 감정을 린링엔 부인에게만은 과감하게 풀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프레더만의 착각이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길을 택한다.
이 소설은 초기의 작품이지만 프리데만의 내면을 선명하게 묘사라고 있다. 아웃사이더의 슬픈 체념, 그리고 체념한 자의 금욕적 평화가 잘 그려져 있다. 마지막의 린링엔 부인에게 향하는 마음도,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부끄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더욱 마음 아픈 작품이다.
<어릿광대>
이 작품은 1897년,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1898년 작품으로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의 성향을 엿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예술가 기질을 희화해 놓은 작품으로 자전적 요소가 여과없이 많이 들어 간 작품이다.
토마스 만의 작품에서 주요 설정인 부유한 대상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사망으로 몰락하게 되는 것, 청년 시절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다, 주인공은 예술적 교양을 쌓는 것에 비중을 많이 두지만 그 이외의 인물들은 물욕을 더 중시한다 등의 설정이다. 이런 요소들은 토마스 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려운 건 내가 계속해서 살고 먹고 자고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점차로 바보처럼 '불행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 이라는 것에 익숙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맙소사, 누가 이것을 생각이나 했을까, '어릿광대'로 태어난 것이 이처럼 절망적인 숙명이며 불행이라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p. 379)
<트리스탄>은 '아인프리트 요양원'에서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 요양원은 폐질환 전문병원이면서 부유층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날 클뢰터얀 부인은 기관지 질환으로 입원을 하게 된다. 그의 남편은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부유한 상인이다. 작가 슈피넬도 요양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름다운 여인인 클뢰터얀 부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슈피넬은 클뢰터얀 부인이 자신의 이름도 남편 이름을 따르고 결혼 전에는 피아노도 치고 예술적인 생활을 했는데, 현재는 남편의 부르조아 욕망에 갇혀 사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슈피넬은 평소에 진정한 삶의 의미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예술적 활동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날, 요양원 사람들이 눈썰매 놀이를 가게 되면서 몇 사람만이 요양원에 남게 된다.
그날, 슈피넬과 클뢰터얀 부인이 단 둘이 남게 되는데, 대화를 하던 중에 부인은 예전에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자신은 피아노를 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슈피넬이 피아노 연주를 부탁하자 거절하던 클뢰터얀 부인은 피아노를 치게 되는데, 피아노 위에 있던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그리고 연거푸 몇 곡의 연주가 계속된다.
슈피넬과 클뢰터얀은 예술적 교감을 하게 된다. 슈피넬은 예술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클뢰터얀 부인이 남편의 속물적인 돈에 대한 욕망으로 억압당하고 그로 인하여 시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편지로 써서 보낸다.
그리고 그 편지를 들고 나타난 클뢰터얀과 슈피넬은 격론을 벌이게 되는데....
갑작스러운 병의 악화로 아름다웠던 클뢰터얀 부인은 세상을 떠난다.
현실적이고 무력하지만 예술적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 슈피넬
예술과는 상관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야비하지만 당당한 클뢰터얀
이 두 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토마스 만의 소설의 특징이기도 한 시민적인 세계와 관능적, 예술적 세계와의 갈등이 잘 나타난 단편소설이다.
아마도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이 존경하는 음악가가 바그너였기에 그의 작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생각된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베네치아에서 구스타프 말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주인공 이름은 구스타프 아셴바흐이다. 그는 '프리드히의 소설'의 작가로 귀족의 칭호를 받은 명예로운 시민 계급이다.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결혼생활은 시한부의 짧은 행복이었다.
결혼한 딸이 있는 성공한 노년의 작가이다. 그는 어떤 활력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뮌헨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여행길에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발생하지만 그는 미지에 대한 동경과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해방되고자 했던 충동을 여행지에서 만끽하고자 한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미소년 타치오를 보게 된다. 그의 여행은 타치오를 쫒아 다닌다. 플라톤적인 사랑?, 동성애?
아마도 구스타프 말러의 동성애적 성향 그리고 토마스 만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동성애 그런 감정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베네치아에는 이상한 소문들이 돌게 된다. 전염병이 돌고 있으나 당국에서는 이를 비밀에 부치고...
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를 떠나지만 구스타프 아셴바흐는 타치오의 모습을 찾아 해변을, 호텔을 서성거린다. 결국에는 해변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타치오를 바라보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 소개하지 않은 작품으로는 <마리오와 마술사>가 있다. 이렇게 토마스 만의 단편 8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나, 이런 고전을 읽지 않는 독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요즘 작가들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에 비하여 토마스 만을 비롯한 19~20세기 초중반의 작가들은 내면적인 묘사 또는 유려한 문장에 집중하는 경향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전적 설정이 이 작품 저 작품에 나오는 것도 AI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