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면 어릴때의 기억부터 떠오른다. 그당시에는 직장으로 책 팜플렛을 가지고 오는 책 세일즈맨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세일즈맨으로부터  전집으로 된 세계명작동화, 고전문학 전집, 세계여행 관련 서적을 비롯하여 식물도감에 이르는 책들을 사오시곤 했다.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요즘도 길을 걷다가 앙상한 가지의 나무를 보면서 그 나무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고, 들판에 초라하게 돋아난 잡초를 보고도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것, 이렇게 하찮은 들풀까지 의미있게 마음에 담아 놓을 수 있는 것도 다 어린 시절의 책읽기에서 온 것이다.

그런 나에게 독서는 살아오는 날들 속에서 단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생활 습관이자 가장 큰 관심거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이광수, 김동리, 염상섭 등이 쓴 한국문학전집 등을 읽기 시작했고, 해외작가들의 단편 소설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헤르만 헤세, 펄벅 등의 불후의 명작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는 읽다가 읽지 못하고 접어 둔 책도 다수가 있다.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그당시의 나로서는 몇 번을 읽으려다가 읽지 못하고 책장 속에 꽂아 놓았던 책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으니, 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마침내 그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까지 맛 볼 수 있었다.

<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럴드 ㅣ 김영하 역 ㅣ 문학동네 ㅣ 2009>

'스콧 피츠 제럴드'의<위대한 개츠비>를 읽게 된 것은 작가 김영하의 영향이 크다. <여행자: 하이델베르그>를 읽은 후에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그의 작품들을 골라 읽기 되었고, 최근작인 <살인자의 기억버>까지 섭렵하다 보니 김영하의 번역본이라면 읽어 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번역자인 김영하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 이 소설은 능란하게 짜여진 플롯에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이 대결하는 흥미진진한 로맨스다. 문체는 절제돼 있지만 유머도 잃지 않는다. " (p. 228 - 번역자 김영하의 글 중에서) 

그러나, 책읽기는 중반부에 이르기까지는 몰입이 잘 안된다.  소설의 구성이 단순하다고 할까?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옆집에 사는 개츠비에 대한 항간의 루머들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빛나고 화려한 파티의 중심에 있는 개츠비. 그에게 쏟아지는 의혹의 눈길들.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더라.', ' 밀주나 석유, 도박, 주식 투기 등으로 돈을 번 졸부라고 하더라' 등...

개츠비를 둘러싸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별의별 황당한 루머들이 난무하다.

이 소설은 90여년 전인 1925년에 쓰여졌으니, 소설의 시대적 배경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이야기이다.  개츠비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를 못했지만 전쟁에 참전하고, 그를 계기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이 미국의 그당시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서 이룩된 나라인 미국, 미국의 보잘 것 없던 지위가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높아지면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과 개츠비의 인물이 가진 캐릭터는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개츠비는 신흥부자를 대변하는 뉴머니라고 할 수 있고, 그가 사랑하던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은 뉴잉글랜드의 명망있는 가문을 대변하는 올드 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은 책을 다 읽은 후에 번역을 한 김영하의 작품해설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들이다. 작품해설을 읽고 나니,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명확한  구도가 잡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책 뒷부분의 작품해설을 꼭 읽는다.

그런데, 개츠비가 사랑했던 데이지.  그녀는 상류 사회를 대변하는 여성으로, 한때 개츠비가 사랑했던 여자이지만, 개츠비가 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과정에서 헤어지게 된다. 그런 걸림돌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데이지는 충분히 개츠비를 배신할 여지를 가진 여자이다. 허영에 사로잡힌 화려함을 쫒는 여자이기에....

그걸 알았다면 개츠비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래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을 것이다. 개츠비의 사랑은 데이지를 향한 사랑이기는 하지만 또한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츠비가 축적한 부는 그의 사랑인 데이지를 찾는다면 완벽할 것만 같으니, 그녀를 찾기 위해 개츠비의 저택에서는 화려한 파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런데, 운명이란 개츠비의 편이 아니었던가. 그가 찾은 데이지는 이미 톰 뷰캐넌의 아내가 되었으니.

그래도 그들의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사랑을 되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일으킨 자동차 사고까지도 뒤짚어 쓴 개츠비를 남겨 놓고 데이지는 남편과 함께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개츠비의 사랑은 이처럼 허망하게 끝나 버리니...

개츠비는 사랑할 가치 조차 없는 여자를 사랑했던 것일까. 데이지는 개츠비의 화려함에 그를 사랑한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무책임한 여자였던 것이다.

개츠비가 열었던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여 왁자지껄 떠들고 취한던 그 많은 사람들은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정승댁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고,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는 우리의 속담이 생각난다.

"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우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p.p. 224~225)

그것만으로도 개츠비의 삶은 공허하였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닐까. 이건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의  부와 지위에 집착하는 허영에 찬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란 책 제목에 붙은 '위대한'이란 수식어는 과연 타당한 표현일까.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개츠비가 결코 위대한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무가치한 존재를 사랑한 개츠비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이 책의 초반부에는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시각에서 보게 되는 이야기들이 좀 낯설게 느껴졌고, 이야기의 내용도 단순하여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는데, 소설의 끝부분에 와서 그 모든 이야기들이 완결되는 과정에서 이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김영하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그의 작품해설에 힘입지 않았다면 결코 이번에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다 말 뻔한 소설이다.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ㅣ 이인규 역 ㅣ 문학동네 ㅣ 2012>

 

그리고  또 한 권의 읽다 만 책인 <노인과 바다>

고등학생이 내가 읽은  <노인과 바다>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별로 없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큰 물고기를 잡은 노인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인 것이다.

그 책은 너무도 지루하고 나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래서 읽던 중에 책을 덮어 버리고 지금까지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았다.

'헤밍웨이'하면 <노인과 바다>를 많이들 언급하지만, 나에겐 그저 지루하기만 했던 그 기억이 전부였다.

책읽기를 좋아해서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책에 빠져 있던 열 몇 살 소녀에게는 그 여름의 무더위가 <노인과 바다>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이후, 나는 이미 줄거리는 다 알고 있는 책이니, 구태여 <노인과 바다>를 다시 펼쳐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를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새로운 번역본으로 출간된 <노인과 바다>를 읽게 되었다.

까만 책표지를 접하는 순간,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읽다만 그 책이란 점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내 손길은 빨라졌고, 내 눈은 이미 책 속에 빠져들었으며, 내 가슴은 이미 깊은 감동으로 벅차 올랐다.

왜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를 불후의 명작이라고 이야기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출판 작품이기도 하고, 1953년에는 퓰리처 상을 받았고,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던 작품이 <노인과 바다>이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지구촌 여기 저기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짧지만, 그 느낌은 그 어떤 작품보다 깊이가 있었다.

 

♡ 노인과 소년의 서로에 대한 믿음.

소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아마도 우리의 어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노인이다.

젊은 시절에는 제법 물고기도 많이 잡고, 패기가 넘쳤었겠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늙고 기운이 없는.

더군다나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있는 외롭고 쓸쓸한 노인이다.

"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과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p.10)

여기에 노인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항상 챙겨주는 소년 마놀린.

노인에게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웠고, 함께 큰 고기를 잡았던 기억을 가진 소년이 있기에 이 소설은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노인이 먹을 저녁 끼니가 없지만, 노란 쌀밥이랑 생선 요리 한 냄비가 있다는 말을 믿는 척하면서 먹을 것을 챙겨 주는 마음.

그리고 비록 지금은 노인곁을 떠나 다른 배를 타지만 그 누구보다도 노인을 존경하고 보살펴 주는 그 마음이 푸근하다.

"물론, 유능한 어부들이 많을 테고 그중엔 훌륭한 어부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최고는 할아버지뿐이에요." (p.24)

노인과 소년의 친밀한 관계가 이 소설의 뒷부분에서 바다에서 사투끝에 돌아온 노인을 본 소년의 눈물이 그것을 더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제는 다시 노인과 함께 배를 타겠다는 소년의 마음은 노인에 대한 믿음이고, 그 믿음은 노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행동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노인이 바다 위에서 힘들 때마다 항상 독백처럼 읊조리는 한 마디의 말.

"그 애가 곁에 있으면, 그 애가 곁에 있기만 하다면" (p.86)

♧ 노인의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불굴의 의지

84일째 물고기를 낚지 못한 노인이 85일째 바다로 나간다. 노인에게 85는 행운의 숫자이다.

이미 87일째 고기를 잡지 못했던 최고의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행운의 숫자인 85일째의 날은 정말 행운이 따라주었다.

순식간에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무게감은 대단하다.노인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센 물고기. 줄을 등 뒤로 넘겨 걸치고 물고기와의 사투가 시작된다.

노인은 물고기의 심리상태를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늠해 본다. 언제 물 위로 뛰어 오를지, 언제 배 옆을 원을 그리며 돌 것인지....

얼마나 큰 물고기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줄을 당기고, 풀어주고.... 이틀 낮밤을 물고기와 신경전을 벌인다.

" 물고기야" 노인은 다정하게 , 하지만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죽을 때까지 네 놈과 함께 가겠다." 아마 저 놈도 나하고 끝까지 함께 가겠지, 노인은 생각했다. " (p. 54~ p.55)

이때의 노인은 노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성취감에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결코 물고기를 풀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 노인의 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

노인은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집에까지 가지고 가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마음 뒤에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흐른다.

그리고, 지나가는 휘파람 새에게 구태여 매의 존재를 말해주기 보다는 어차피 스스로 충분히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휘파람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작은 배에 잠시 앉았다가 가는 것을 바랄 따름이다.

"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게 말이다." (p. 57)

노인은 물고기와의 여러 차례의 힘겨루기끝에 자신이 잡은 청생치를 배옆에 묶어 둘 수 있게 된다. 코에서 꼬리까지 5.5미터, 무게 700 kg의 대단한 크기의 물고기를.

그러나, 그 물고기를 발견한 청상아리가 가장 맛있는 부위를 뜯어 먹고, 겨우 청상아리를 쫓아 내자, 물고기의 피냄새를 맡은 삽날코 상어, 갈라노 상어 들이 계속적으로 달겨든다.

한 부위, 한 부위 뜯겨져 나갈 때마다 노인의 마음도 뜯겨져 나가는 듯하다.

차라리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볼 수 없는 심정이 되는데...

" 이게 다 꿈이라면, 그래서 내가 저 물고기를 낚는 일이 아예 없었던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애당초 너를 낚은 게 잘못이었어." (p. 115)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만은 그 어떤 물고기도 잡을 정도로 강인했던 노인은 이처럼 자신이 잡은 물고기에 대한 미안함을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정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소설을 읽은 후의 전체적인 느낌

<노인과 바다>는 쿠바 연안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잡게 되는 노인의 이틀 낮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도 헤밍웨이가 쿠바의 아바나에서 바다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바다 풍경이나 고기잡이, 그밖에 바다 생물인 해파리, 바다거북, 새, 청상아리, 삽날코 상어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실감있게 표현되고 있다.

노인이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잡게 되면서 그 물고기의 무게에 의해서 배가 향하게 되는 배의 방향이나 움직임, 물고기의 상태 파악 등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문장 역시 짧은 내용의 이야기인 것을 생각할 때에 군더더기없는 간결한 문체가 돋보인다.

그런 전체적인 표현 속에 산티아고 노인의 독백이 잔잔하게 책 속에 깔리는 것이 노인의 강인한 도전 정신과 함께 부드러운 인간미가 넘쳐나가 하기도 한다.

만약에 이 소설 속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동행을 하는 구성이었다면 이처럼 노인의 늙고 외로운 모습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얀 마텔 ㅣ작가정신 ㅣ2004>에서 태평양 한 가운데 떠 있는 구명보트 안에서 호랑이와 사투를 벌여야만했던 소년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과도 같을 것이다.

물론, 산티아고 노인의 경우가 강도도 약하고, 기간도 훨씬 짧기는 하지만, 같은 류의 설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처럼 강한 감동을 주는 <노인과 바다>가 나에게는 그동안 지루한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다시 읽을 생각조차 하지를 않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제대로 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는데도 나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과 바다>처럼 이런 작품은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게 되는 청소년들은 이전의 나처럼 <노인과 바다>가 그저 바다 한 가운데에서 노인과 물고기와 벌이는 한바탕의 싸움이라는 생각 밖에 못 할 것이다.

노인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소년의 눈물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 유시민 ㅣ 웅진지식하우스 ㅣ2009>를 읽으면서 내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세계 문호들의 명작들이 배경지식없이 줄거리 위주로 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때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책들을 읽지 못하고 있다.

매일 매일 새로 출간되는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골라 읽다보니, 오래전부터 많은 독자들에게 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언젠가 읽었으니까 하면서 다시 읽게 되지를 않는다.

앞으로는 좀더 그런 책들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읽다가 덮어 버렸던 <노인과 바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읽으니, 그 감동은 배가 된 것 같다.

이래서 불후의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독자들의 손에 들려지게 되고,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의 마음에 더 깊은 감동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고전은 이야기의 내용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성향, 작가가 작품에서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들은 별로 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이 책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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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완간을 축하합니다. 바둑판 앞에는 오목을 둘 때만 앉아 본 나에게 이 책은 처음에는 좀 생경스러웠다. 그건 이 책의 배경으로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이 1989년 9월에 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최종국)의 기보 해설이 바탕이 된다. 이 대국이 어떤 대국이었는지, 녜웨이핑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둑을 둘 줄 안다면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겠지만, 바둑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미생(未生)이란 바둑에서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이 되는데, 두 집을 만들지 못한,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바둑 용어이다.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생>은 바둑의 세계에 직장생활을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니, 미생이란 책 제목 자체에서 직장생활의 애환이 묻어 나는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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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쪽을 향해 그 너른 강물이 흘러가듯이, 인생 역시 언젠가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로 접어든다. 거기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으리라. 그 경계선 너머의 일들에 대해서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눈을 뜨고 꾸는 꿈속의 일, 그러니까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때문에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내가 본 그 수많은 눈송이들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 빛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원더 보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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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생각의 궤적 /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출간될 때마다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로마의 역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님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사랑은 나에게도 전염이 되어서 로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주홍빛 베네치아>, <은빛 피렌체>, < 황금빛 로마>처럼 추리기법을 쓴 로마의 역사소설을 읽었고,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같은 로마의 멸망을 다룬 역사 서적까지 읽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에 시오노 나나미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십자군 이야기>까지 읽으면서 로마를 알게 되었다.

<생각의 궤적>은 시오노 나나미가 1975년부터 2012년까지 37년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발표했던 글들 중에서 뽑은 글들로 엮은 책이다.

 

 

 

2. 남자를 위하여 / 김형경 / 창비

 

나는 김형경의 친필 사인본이 담긴 <사람풍경>을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이 내가 읽은 김형경의 첫 책이고, 그후에 <천 개의 공감>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심리치유 에세이를 쓰는데, 이 책은 남자를 이해하기 위한 여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남자들도 잘 모르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형경의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글들이 남자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이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조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3.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이유경 / 다시봄

 

   소설을 통해서 여러 이야기를 전하는 에세이는 참 많이도 출간되었다. 이 책도 결국에는 책 이야기일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들에 담겨져 있는 의미까지도 찾아 본다. 물론, 저자 나름대로의 소설 읽기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부분이 더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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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의 책들 중에 <장기 비상시대>, <탐욕의 시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등을 읽었습니다. 다른 출판사의 책들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책들을 읽었지만, 그 내용은 그 어떤 책들 보다 알찼던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로 인문관련 책들을 읽었기에 마음의 양식도 많이 쌓였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갈라파고스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을 쌓을 수 있고, 읽은 후에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출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갈라파고사의 무궁한 발전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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