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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널 위한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힘겨운 어제들

나를 지켜주던 너의 가슴

이렇게 내 마음이 서글퍼질때면

또다시 살아와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 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장필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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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여성> 3권 3호, 193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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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 위에서 그녀가 사막을 걷고 있다 

징과 장구 소리에 놀란 원혼을 달래기 위해

한바탕 진혼 굿을 벌여야

산 자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몸 짓,

더 이상 이 곳은 머무를 곳이 못된다는

절정을 노래해야 무녀의 위엄을 자랑할 수 있는

칼 위를 걷는 여자,

굿판을 벌인 핏줄들에게서 부지런히

노잣돈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사막을 걷는다

집에 두고 온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물이 쏟아진다

원혼의 슬픈 눈물 앞에 구겨진 지폐는 쌓이기 시작하고

슬픔의 절정,

그녀는 물 위를 걷고 있다



<몽상의 시학>


작두 위에서 사막을 걷는 여자가 있다. 시퍼런 칼날 위를 걷는 무녀는 징과 장구 소리에 놀란 원혼을 달래기 위해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사막을 걷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한바탕 진혼 굿을 벌여야 산 자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몸 짓이라고 말한다. 


무녀는 원혼들에게 더 이상 이 곳은 머무를 곳이 못된다는 절정을 노래해야 무녀의 위엄을 자랑할 수 있기에,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시퍼런 칼날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굿판을 벌인 핏줄들에게 부지런히 노잣돈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사막을 걷는다고 시적 자아는 발설하고 있다. 가냘픈 몸매를 가진 무녀가 시퍼런 칼날을 걷고 사막을 걷는 것은 아마도 집에 두고 온 아이 때문은 아닐까라고 시적 진술은 고백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칼위를 걷는 굿판을 벌이고 있는 무녀의 행위를 지극한 모성으로 형상화하고 슬픔의 의미를 증폭시키고 있다. 아이를 생각하는 지극한 모성의 눈물이 원혼의 눈물로 전이되고 원혼의 핏줄들은 가장 슬픈 원혼의 눈물에 사로잡혀 원혼의 눈물 앞에서 구겨진 지폐로 저승길 노잣돈으로 원혼을 달래는 것이다.


원혼의 슬픔을 달래는 눈물이 슬픔의 절정에 이르면 구겨진 지폐는 쌓이고 무녀는 산자의 고통과 원혼의 슬픔을 치유하는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적진술은 산 자의 고통이라는 사막의 현실을 반전시키면서 가장 슬픈 눈물로 진혼 굿은 시작되고 무녀의 위엄은 칼 위를 걷는 원혼의 슬픔이 되고, 원혼의 핏줄들의 슬픔으로 의미가 확장되는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여자의 슬픔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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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은 나를 버리고 나는 세상을 버렸다

우리가 만난 곳은 불신이 창궐하는 세속적 정원이었다

     

2. 

     

그윽한 물살이여~ 네게 이르노니 물신의 그림자로 슬픈 정원을

만들지 말며.. 

     

3.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4.


바다를 보았나요

아뇨, 바다는 죽었습니다

바다가 살해되었나요

바다만 알 뿐입니다

한 사람이 바다로 간다

신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혼자 물속을 걷고 있다

     

5.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그 무엇도 아닌~

     

6.

     

그녀의 꿈이 나의 꿈이 되었을 때

우리들의 식탁, 우리들의 정원은

하나가 되었다





<몽상의 시학>



사랑, 꿈, 식탁과 정원은 그녀의 꿈이자 나의 꿈이다. 세상은 나를 버리고 나는 세상을 버렸다는 시적 진술에서 버림과 버려짐의 권력 관계가 대칭적임을 암시하고 있다. 니체는 누군가에게 버림을 당했을 때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것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하였다. 버려짐에 대한 부정적인 힘을 극복하지 못하고 반응적으로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니체는 주인의 도덕은 무엇에 반응하여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상실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살아가는 노예적 삶을 극복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을 주인의 도덕이라고 한다. 


하여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나도 세상을 버리는 대칭적인 권력 관계를 통해서 버려짐에 대한 억울함,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저주의 부정적인 힘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세상을 버리면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주인 도덕의 담지자로서 니체가 말하는 자신을 극복하려는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라고 한다.


내가 가치 없는 세상이라면 세상 또한 나에게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 없는 것에 노예적으로 메달려 부정적인 파토스에 휩싸여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바다는 말과 사물의 권력 관계만 있는 에로스적 생명충동이 존재하지 않는 죽음충동이 지배적인 오염된 바다이다. 


하여 한 사람이 바다로 간다. 


바다가 살해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시적 자아는 진술을 하고 있다. 거기에서 그윽한 물살로 은유되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 무엇도 아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꿈꾼다. 그녀의 꿈이 나의 꿈이 되었을 때 비로소 바다는 생명을 얻고 식탁이 되고 정원이 된다. 온갖 진귀한 것들을 바다는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꿈이 그녀의 꿈이 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충동을 느끼면서 하나의 식탁, 하나의 정원이 된 바다에서 그녀와 나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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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외로운 전화를 걸고 있는 그녀의 은밀한 시선을

엿보다가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를 응시하며 강박충동에 사로잡혀 환상

도로를 횡단한다.


2.


지구의 극지, 툰트라에서 꿈도 없이 내리는 폭설이거나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열대성 저기압의 고비 사막이거나

아니면 시베리아 벌판에서 혹한을 애인처럼 동반한 찬바람이거나


3.


머나먼 쏭바 강*을 걷고 있는 이방인에게는


그녀의 펑퍼짐한 엉덩이는 적도의 열풍, 뼈마저 타오르는 적도의 열풍,

오늘도 뭇 사내의 눈길을 받으며 날마다 팜므파탈로 변신하는 그녀의 환

상도로에서 잠시 쉬고 있다보면


아~ 배암이 생각난다 독사의 독기를 한껏 품고 있는 꿈틀 꿈틀 몸부림치

고 있는 그 배암이 생각난다


그 옛날 이브를 유혹했던 그 배암~



* 베트남의 정글을 가로지르는 강





<몽상의 시학>


이방인에게 환상도로는 무엇일까? 환상도로를 횡단하면서 이방인은 무슨 환상에 빠졌을까? 도로는 속도의 함수이다. 질주하는 도로는 속도에 뒤쳐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방인은 도로의 속도를 위반하는 타자의 모습이 아닐까? 이방인은 도로를 응시하다가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외로운 전화를 걸고 있는 그녀의 은밀한 시선을 엿본다. 


하여 강박충동에 사로잡혀 환상도로를 횡단한다. 환상을 횡단하면서 문명의 타자가 된 이방인은 도로의 저편을 응시하다가 그녀의 은밀한 시선과 마주친다. 

환상도로는 도로의 바깥, 문명의 외부를 의미하는 하나의 은유다. 그래서 꿈도 없이 내리는 폭설이거나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열대성 저기압이거나 시베리아 벌판에서 혹한을 애인처럼 동반한 찬바람이거나, 어쨌든 환상도로는 시적 진술에서 문명의 외부, 질서가 지배적인 도로 문명의 바깥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외로운 전화를 걸고 있는 혹한을 애인처럼 동반했으니..


환상도로에서 그녀의 시선을 몰래 엿보다가 시적 자아는 환상을 횡단하고 머나먼 쏭바강이 흐르는 문명의 바깥으로 외출을 한다. 정글 속에서 본 그녀의 은밀한 시선은 적도의 열풍, 뼈마저 타로르는 적도의 열풍이 되어 질주하는 환상도로의 속도는 의미가 증폭된다. 정념의 강밀도는 환상도로에서 가속화되는 것이다. 하여 정념이 사라지면 혹한이 불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혹한을 애인처럼 동반하고 머나먼 쏭바강을 이방인이 되어 걷고 있는 것이다. 역설의 미학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환상도로는 환상적이다. 날마다 팜므파탈로 변신하는 그녀의 정념으로 가득 찬 환상도로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독사의 독기를 한껏 품고 있는 꿑틀 꿈틀 몸부림 치고 있는 원죄 의식이 생각난다.  


그 옛날 아담을 유혹한 이브를 유혹했던 그 배암이 생각난다. 혹한을 애인처럼 동반한 도로의 문명에서 타자가 된 이방인은 쏭바강이 흐르는 정글에서 환상도로의 원죄를 누설한다. 차들이 질주하는 환상도로에서 머너먼 쏭바강의 환상을 횡단하면서 은밀한 환상을 누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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