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기록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목에 끌렸다.
  
  책에서 제목이 주는 힘은 어디까지 일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글들의 목차를 세세히 살필 수 없기 때문에 제목이 주는 끌림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생각의 폭도 깊지 않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아 글을 쓰는 일이 두렵다. 작문에 관한 글을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기에,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더 나아진 모습을 찾으러 애쓴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라는 제목에 끌려서 집어든 책이었다. 새벽녘에 발길이 드문 계곡을 고요히 흐르는 암반수처럼 맑고 깨끗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기대에 차 있었다. 욕심이 더해져, 나의 글쓰는 솜씨를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한 걸음에 정상까지 오르게 하는 비법을 얻을 수 있다는 바램도 스며있었다.
 
  책을 받자마자 한 번 읽고, 내 기대와는 다른 글에 눈길을 두지 않고 한쪽에 놓아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마음이 진정이 되자, 작은 마음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누군가를 좋아하다 상처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내 맘에 든 아이는 뭘 해도 예뻤고, 행동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다 내 생각과 다른 행동과 모습을 보게 된 후 실망감에 상심이 컸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저 내 스스로 내 마음에 맞는 행동을 할 거라 기대하고, 욕심내고 바랬던 마음이 나에게 그대로 상처로 돌아왔다. 기대와 욕심은..  만족을 내 마음속 공간에서 내쫓고 항상 편견에 빠지게 한다.

  마음 속 욕심과 기대를 벗어두고, 다시 책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글 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마자, 옛 선배들의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글을 적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붓과 벼루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 많은 자기검열과 세간의 평판도 무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옛 그림에서 보았던 선비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글을 하나 하나 소리내어 읽어나갔다.

 
# 비법은 없다. 지식의 알갱이를 차곡차곡 쌓은 후 생각의 틀에 걸러 표현하는 방법이 좋다.

    다산 선생이 지은 '문장이란 무엇인가?'으로 시작한 글들은 짤막하게 조선 지식인들의 글을 하나씩 모아두었다. 3분을 넘지 않는 짧은 글들이 모여있고, 순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글 쓸때의 마음가짐과 글을 쓰는 이가 경계해야 하는 태도에 관한 글들이 듬뿍 담겨있었다.

    비법을 기대하는 내게, 일침을 가하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다산 시문집에서 발췌한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문장이 이루어지겠는가?'에서 이민영에게 한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리 와 앉아보게. 내 자네에게 한 마디 하겠네.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뱃속에 가득 차면 피부가 윤택해지고,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얼굴에 붉은 빛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갑자기 문장을 이룰 수 있겠는가? 온화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도와 우애로 본성을 닦아 공경과 성실을 한결같이 실천해야 하네. . 

......중간 생략......

   마음속에 가득 쌓아둔 경험과 지식이 파도를 치듯 거세게 소용돌이쳐 천하 만세의 웅장한 광경으로 세상에 남겨 놓고 싶어질 것이네. 그런 의지와 욕구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네.

....중간 생략..

  나는 이러한 이치로 자신을 표현한 글만을 참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하네. 어찌 풀을 헤쳐 바람을 맞이하려는 듯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문장을 붙잡고 삼킬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문장학(文章學)은 올바른 진리를 해치는 좀벌레라네. 내가 말한 문장의 이치와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네. 그러나 한발 물러서 문장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문과 길이 있고 기운과 혈맥이 있는 법이네.

....이하 생략......

  사랑을 하는 것도 밥을 하는 것처럼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글이 생각났다. 밥솥에 밥을 앉히자 마자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마음에 안달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초조함에 많은 걸 놓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포스트 잇에 적고 수첩에 붙였다.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만,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읽으면 계속 기억할 수 있다. 초조한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연암집에 실린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달렸고, 글에 대한 평가는 다른 이에게 달렸다'와 '글쓰기는 병법의 이치와 같다' 어우야담에 실린 '왜 시간이 흐른 뒤 글을 고치는가', 지봉유설 '문장 文'에 담긴 '글을 쉽게 쓰는 세 가지 방법', 수여연필을 지은 홍길주 선생의 '훌륭한 글은 평범한 속에 나타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항상 글 쓰는 재료를 모아라.' '제목이 신선하지 않다고 내용까지 신선하지 않겠는가', '글의 문체에는 모두 나름의 색깔이 있다' '옛 사람의 글쓰기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 다선 선생의 '글을 스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의 글귀가 나에게 와 닿는 부분이었다.

 
# 조선 지식인의 '성품'과 '글'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

  옛 성인들은 하늘의 맑은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면서 학문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과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보다 큰 철학과 이상이 담긴 관념론이나 비현실적 담론이 많았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비들의 하루 일과표를 본 기억이 난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고, 하인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로써 다스리려고 노력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끊임없이 배움과 실천에 애쓰는 모습이 떠올랐다. 

  진정한 '선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나 고려의 한국의 옛 성현들의 글보다 서양의 옛 사상가와 그들의 글과 생각, 문화에 대해서 더 많이 접할 수 있고, 더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나라를 망하게 했지만 옛 선인들에게 찾아야 할 좋은 점도 있을텐데.. 한 쪽에 치우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P.S '전략적 책읽기'의 소제목 중 하나가 생각난다.

      '서평에 100% 의존하기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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