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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유 ㅣ 자이언트 픽
김빵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1월
평점 :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안함을 전하고, 관계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으며, 생의 마지막을 다짐했을 때 꽉, 꽉, 꽉 안아줄 존재가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회복하고, 미지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엔솔로지. 『투 유』라는 제목처럼 누군가에게 보내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_P.50
라떼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다른 것도 꺼냈다. 미역, 안약, 해바라기씨. 뒤이어 나온 것들은 도통 결이 맞지 않아서 나는 수렁에 빠졌다. 뭐야, 뭔데.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데.
김빵, 『좀비 라떼』
_P.65
인간은 문제투성이지, 지호는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다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 각박한 사람과 관대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지호는 각박했고 수빈은 관대했다. 벌써 오래전 얘기다.
_P.78
또 봐요, 가서도 보자, 자주 올게, 바다 보러 갈게요, 하는 말이 늘 끝인사로 따라붙었지만 정말로 다시 본 것은 손에 꼽았다. 못 볼 걸 알면서도 보자고 말했고 안 올 걸 알면서도 언제든 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았다. 만나지 않으면서도 이어진 시간들. 기다리지 않으면서도 기다린다고 믿는 시간들.
김화진, 『시간과 자리』
_P.143
나는 망설이다가 양산을 내려놓고 하나를 어설프게 안았다. 그러자 하나는 이 정도로 안아달라는 듯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안았다. 내가 꽉 안으면 터질 것 같아 어설프게 끌어 안자 하나가 꽉, 꽉, 꽉 힘을 주었다. 그래서 나도 꽉, 꽉, 꽉 힘을 줬다.
김청귤,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_P.160
해마가 죽고 난 뒤 해마에게 가야 할 질문들은 목적지를 잃었다. 강윤의 마음 밑바닥에는 질문의 무덤이 생겼다. 질문은 계속 태어났지만, 답을 듣지 못하는 바람에 방치되었다. 시체는 계속해서 쌓여가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버려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_P.184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더 대단해. 충격은 흡수되어 전부 녹아 없어질 거야. 불행이 뱀처럼 달려들어도 우리의 늪 같은 마음은 그 뱀을 잠기게 만들어. 회복할 수 있어.“
구소현, 『투 유』
_P.262
-왜 그랬어?
-뭐가?
-그 시체, 왜 발로 찼냐고. 다른 시체에는 손도 안 대던데.
-그야, 세영이 네가 그 시체를 무서워하니까.
그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여자에게는 이 모든 말이 진실이었다. 세상에게는 그것이 거짓일지 몰라도, 호프의 신체 반응은 두려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불안할 정도로 빠르던 박동은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갔다.
(...)
진실을 속이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속여버린 게 그의 사랑이다.
명소정, 『이방인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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