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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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작가의 글에서는 확실히 남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속 깊은 곳의 디테일한 묘사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자의 심리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남자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남자의 시각이라는 한계를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여성작가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남녀의 심리묘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필력이 좋다. 상황을 집중시키는 임펙트있는 사건이 별로 없음에도 흥미진진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차츰 콩깍지가 벗겨지고, 권태기에 접어드는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아내의 갑작스런 실종이라는 설정 등이 식상하거나 익숙한 듯 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중간중간 늘어지는 부분이나, 마지막장을 덮고나서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개운하게 해소되지않는 개연성의 부족은 과연 이 작품을 미스테리나 스릴러라는 장르로 봐야 하는걸까 하는 망설임이 들게한다. 애초부터 작가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정교한 플롯을 구사하는 스타일은 아니며, 스릴넘치는 범죄에 촛점을 맞춰 구상한 작품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자들의 자잘한 수다에 어김없이 등장할 것 같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영원한 화두에 대해 독자들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면, 아마도 작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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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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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추천했다기에 별 생각없이 구매목록에 넣었던 책... 그의 지명도가 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어차피 출판사에서 댓가와 함께 간단한 추천사 정도 요청한게 전부였겠지만, 광고효과로는 상당히 영리하고 괜찮은 전략을 쓴 것 같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문고본 판형은 차치하더라도 큼직한 활자와 광활한 여백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그림까지... 만약 서점에서 잠깐 펼쳐볼 수 있는 기회만 있었더라면 절대로 구매하지 않았을, 내가 가장 기피하는 형태의 책을 선택한 셈이 되어버렸다. 일반적인 제본이라면 백페이지도 채우지 못할 단편소설을 이런 식의 페이지 늘리기신공으로 장편소설처럼 둔갑시키는 출판사의 상술에는 정말 화가 난다.

 

내용은 나쁘지않다. 작가의 내공이 결코 범상한 수준이 아니므로, 색다른 글읽기의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자신이 화자와 같은 사이코패스로 빙의가 된 느낌...

 

하지만 두어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고도 남을 이 책은 분명 단편소설이며, 작가의 실험적 소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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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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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 독일 스릴러. 이 책도 역시 스테디셀러라 할 만큼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물은 별로 선호하지않는 개인적 취향때문에 그동안 구매를 망설였는데, 결국 궁금증을 이기기는 힘들었나 보다. 많이 팔리는 책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스릴러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른 전형적이면서도 교과서적인 플롯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글솜씨도 평균이상이라 페이지도 잘 넘어간다.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접근방법이 정직하면서도 모범적이다. 하지만 평범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없다는 점 또한 언제나 그러하듯 상반되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기발한 반전따위에 승부를 걸지않는 이러한 전형적 스타일의 스릴러는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못지않게 반대편에 서있는 범죄자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디테일하게 준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작가는 범인의 트라우마까지 설정했음에도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있어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범인이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가에 대한 설득을 생략한 셈이다.

 

'백설공주...'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표지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납득하기 힘든 판매량과 예쁜 표지디자인 사이에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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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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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서부영화였던 것 같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녘 숲속을 덩치가 큰 인디언 여자가 홀로 걸어 들어간다. 한곳에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가 쓰러져있고... 여자는 그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조용히 움츠려 앉는다. 잠시 후 숨막히는 적막을 깨고 울러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끝까지 묵묵하게 아기를 품에 안고 걸어나오는 인디언 여자... 어릴적 TV에서 보았던 제목이 생각나지않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릿속 한곳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여자...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인함... 그리고 숭고함...


이 작품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스밀라라는 이름의 여자...


한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웃에 살던 스밀라가 그 원인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헤쳐간다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처럼 보이는데, 막상 한꺼풀 벗겨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내용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음에 놀라게 된다.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별다른 자각을 하지못했던 한 여자가 우연한 사건에 본능적으로 뛰어들면서 서서히 자신의 내면 속에 숨어있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렵다. 상당히 어렵게 읽히는 책이다. 챕터마다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인 서론들은 학술논문을 읽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패턴에 조금씩 적응이 되면 등장인물들의 격조있는 대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무심하게 펼쳐지는 차가운 얼음장같은 서스펜스에 전율하게 되고, 마지막장을 덮고나면 마침내 특별하면서도 묘한 여운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수리공이 스밀라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주던 특별한 음식처럼...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인 어머니와 덴마크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는 책의 제목 그대로 눈과 얼음에 관한 특별한 감각을 가진 여자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그린란드라는 거대한 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덴마크와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해진다. 덴마크의 자치령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으로 분류되어있는 그린란드란 대체 어떤 곳인가... 집에 있던 지구본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캐나다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그린란드. 저 거대한 땅이 어떻게해서 덴마크의 영토가 되었을까...


작가 피터 회는 1957년생이라 하니 1992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불과 30대 중반에 쓰여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든 학문적 깊이와, 마치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것 같은 전지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필력은 경이롭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다. 움베르토 에코라도 30대에 이런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 같다. 수학과 기하학,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 문화인류학, 거기에 항해학과 클래식과 째즈를 망라한 음악적 깊이까지...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허튼 소리가 없고, 함축적이며, 격조가 있다. 한마디의 대사를 내뱉기위한 인물의 심리상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독특한 서술방식은 그야말로 지적호기심을 극대화시켜 준다. 특히 중반부 스밀라와 수리공과의 성애묘사 부분에선 여자가 남자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식의 상상을 초월하는 표현법에 깜짝 놀랐는데, 작가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했던가...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여자의 또다른 일면일 뿐... 피터 회가 스밀라를 통해 보여주는 여자의 모습은 강하고도, 고귀하고, 숭고하다.



1997년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는 역시 덴마크의 명장 '빌 어거스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빌 어거스트...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를 석권한 '정복자 펠레'와 '최선의 의도'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부산에 살면서도 기어코 서울의 대한극장까지 찾아가서 감명깊게 보았던 '영혼의 집'이라는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이름만으로도 무한한 신뢰를 보낼만큼 훌륭한 감독이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 '센스 오브 스노우'는 그다지 인상깊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세세하게 영상으로 표현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보니 사건 위주로 축약을 한 탓에, 책을 읽지않고 영화만 보아서는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 소설은 겉으로 보여지는 사건보다 눈과 얼음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본질,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관한 심도깊은 묘사가 핵심이라는 반증이리라...


스밀라 역의 줄리아 오몬드는 '가을의 전설'과 '카멜롯의 전설' 등,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여배우다. 이 역할에 있어 다른 여배우는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소설 속 스밀라의 이미지와 비교적 잘 어울린다.


수많은 영화의 주조연으로 낯이 익은 분위기있는 배우 가브리엘 번이 수리공 역을 맡았는데,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거구의 체격에 우직스런 이미지가 아니라 그런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퇴어크 역의 리처드 해리스는 언제나 그러하듯 멋진 은발을 흩날리며 영화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보니 소설 속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사족> 추리소설로 분류하기에는 턱없이 난해한 문장으로 인해, 이 작품은 번역의 완성도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는 1996년에 처음으로 번역소개 되었다가 절판된 후, 2005년에 번역자가 바뀌어 새롭게 재출간된 것으로 나온다. 이 책의 번역가인 박현주씨도 작품의 무게감을 고려하여 상당히 공들여 작업한 듯한데, 그래도 명확하게 이해되지않는 표현들이 무수하다보니 다 읽고나서도 뒷맛이 그리 개운치가 않다. 아무래도 정영목씨가 번역했다는 구판을 구해서 한번은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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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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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중에서도 이번엔 스웨덴이다. 아바(ABBA)의 나라 스웨덴...

이 책을 쓴 작가는 2명인데 각각 기자와 전과자 출신이라는 프로필이 눈길을 끈다. 데뷔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면전환이나 대사, 심리묘사 등의 처리가 비교적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 소설작법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집필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이력상 사회문제에 집중하는 르포형식으로 흘러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드라마가 약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못해 평면적인 캐릭터로 남아버렸다. 초반에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던 교도관은 실컷 궁금증만 자아내다 중반 이후 흐지부지하게 퇴장하는 등, 별 의미없이 소모되는 캐릭터도 많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에서 묘사하는 노르웨이의 성에 대한 개방성과 문란함은 복지국가의 이면을 보는 듯 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자 이웃나라인 스웨덴이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선은 또다른 느낌을 준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북유럽 사람들의 성향이나 문화에 대해 아직 모르는 점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사족> 하얀 눈과 차가운 겨울의 북유럽만 연상하다보니,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무더운 여름은 적잖이 낯설다. 실제로 스웨덴의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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