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읽어보는 최신작 추리소설이다. 일본에서는 바로 지난해인 22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지난달 번역출간되어 아직 나온지 채 한달도 지나지않은 책인데 나오자마자 추리소설 부문에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마도 일본 현지의 각종 미스터리 관련 차트를 석권했다는 정보와 더불어 '스포 절대 금지'라든지 '미친 반전'같은 자극적인 광고문구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많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반전'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작년에 발표된 최신작이라는 점에서 최근 일본 추리물의 수준과 트렌드를 대충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매를 결정했다.


혹시나해서 구글로 검색을 좀 해봤는데, 일본 미스터리 무슨 차트 1위니 4위니 하는 수상 결과라든지 동료 작가나 평론가들의 추천사도 과장없이 비교적 있는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절대로 작품의 완성도를 보증하는 바로미터는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만 일본의 호들갑은 워낙 유별나서...


작가는 유키 하루오인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1993년생이니까 지금 딱 30살이다. 노련미보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이 더 많이 발휘될 나이로 보이는데 이건 어차피 글을 읽어보면 답이 나오는 부분이다.


이렇게 반전에 올인하는 작품들이 의외로 속빈 강정인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하도 미친 반전이니 뭐니 하면서 새책은 비닐로 밀봉까지 되어있길래 혹시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칠까봐 처음부터 정말 신중하게 읽어나갔는데...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럴 필요도 없었고, 여러가지 의미로 참 대단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필력이 뛰어나면 어떤 환경이라도 저절로 집중이 되고 잡생각 따위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갈수록 정신이 산만해지는 희한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이유는 다른거 없다. 그냥 작가의 필력이 형편없고 개연성이 엉망진창이라서 그렇다.


이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100년전인 1930~40년대의 고전추리 작법을 그대로 차용했다.


특히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레퍼런스로 한 흔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전체적인 구성과 진행 등이 크리스티의 스타일과 너무나 유사하다. 심지어 마지막에 탐정 역할을 하던 인물이 용의자들 쭉 불러 모아놓고 사건개요를 구구절절 설명한 후에 범인지목하는 것도 딱 엘큘 포와로가 하던 방식 그대로다.


물론 크리스티의 창작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거나 응용해서 더 나은 작품을 만들면 된다.


개인적으로 고전 추리물들에 단점이 있다면 바로 '문학성'이라고 생각한다. 범인찾기와 범행수법에 골몰하느라 캐릭터와 서사가 거의 죽어있으며 등장인물 대부분이 희생자 아니면 용의자 역할이기 때문에 사건을 구성하는 필수요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극도로 기능적이고 제한적인 용도로만 소모되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캐릭터의 서사와 생명력이 약하다보니까 감정이입 또한 약해지고, 그래서 누군가가 잔인하게 살해되어도 끔찍하다는 느낌이 별로 없고, 누가 어떻게 죽였을까 하는 퍼즐게임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고전 추리물의 단점을 아주 극한까지 끌어올린 결정체에 가깝다. 이 작가는 그저 장기판의 장기말에 불과한 용도로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등장인물들은 캐릭터가 아예 완전히 죽어있다.


각각의 캐릭터에 서사가 전혀 없으니까 어떤 인물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웬만한 소설들은 읽다보면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외모가 대충이라도 그려지고 특정 배우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하게되는데,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심지어 외모조차도 전혀 짐작이 안된다.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각자의 이름과 직업 뿐이다.


그래서 중간에 누가 목이 잘려 죽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어차피 생명력이 없던 인물이라 독자의 입장에선 별다른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퍼즐 진행을 위해 다음 장기말이 쓰러졌구나 하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일 뿐...

 

사실 아가사 크리스티도 이 정도까지 캐릭터를 허술하게 다루진 않았다.


그런데 이 작가는 제한된 공간이라는 밀실과 그 안에 갇힌 한정된 인원의 사람들... 그리고 한정된 시간 안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빠져나갈 수 밖에 없는 특수한 조건과 그 와중에 살인이 벌어지고 살인자를 찾아야만 하는 더 특수한 조건... 이런 기본적인 설정들과 마지막 반전만 구상한 채 나머지는 모조리 여기에 억지로 끼워맞춰 그야말로 간신히 '소설'의 형태를 만들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솔직히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그냥 '시놉시스'에 불과하다. 이러이러한 설정에 이러이러한 캐릭터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면서 대충 뼈대가 되는 줄거리에 약간의 근육 정도만 붙인 수준인 것이다.



도입부 창세기의 구절은 제목이 방주니까 뭔가 있어보이려고 넣은 것일 뿐, 산속의 방주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당연히 성서와의 연결고리 따위도 없다. 작가에겐 그저 출입구가 두 군데 존재하는 밀실 구조물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의 우연적 상황부터 현실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주먹구구식 설정인데, 개연성 없고 말도 안되는 살인동기와 살해방식이 납득될 리가 없다. 그냥 그 타이밍에 살인사건이 필요해서 집어넣은 작가의 진행수순에 불과하다.


게다가 등산동아리 대학 동기란 설정이면 오랜기간 친구처럼 알고지낸 사이일텐데 좀전까지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살해당해도 별로 놀라거나 슬퍼하지도 않는다. 명색이 소설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서사와 설득력도 없는 것이다.


문장들은 인물들의 행동과 배경이 되는 지형지물만 기계적으로 묘사하고, 대사들도 영혼이 거의 없이 사건 브리핑 위주로 너무나 재미없게 이루어져 있다. 프로작가다운 문학적인 감성이나 문장의 테크닉은 눈씻고 찾아봐도 단 한군데도 없다.


그 와중에 일본소설 특유의 고질적인 나쁜 버릇은 어디서 또 충실하게 배웠는지 분명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전지적 작가 시점의 부연설명 모드가 수시로 끼어들어 시점이 애매모호하게 오락가락하는 것도 상당히 거슬리는데... 이것 역시 작가의 필력이 수준 이하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책은 약 350페이지 분량이니까 명목상으로는 분명히 장편소설이 맞지만, 실제 체감상으로는 200페이지도 안되는 중편으로 느껴질 정도로 내용이 빈약하다. 판형과 활자의 크기도 페이지수를 늘리기 위해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데 거기에다 이 책은 상당히 기이하고 신박한 방식을 쓴 꼼수로 페이지를 굉장히 많이 부풀렸다.



문단의 줄바꿈을 아예 기준이 없을 정도로 무진장 집어넣은 것이다. 이렇게 줄을 계속 바꾸게 되면 여백이 늘어나고 페이지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더 황당한건 대사 지문에도 줄바꿈을 수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나는 대사에서까지 이렇게 줄바꿈을 쓴 편집 방식은 난생 처음 봤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이 책을 순식간에 읽었다면, 그 이유는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분량이 적어서 빨리 읽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소설 자체의 완성도가 이렇게 형편없는데... 헛웃음 나오는 그 미친 반전이란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NQcGPzOB9UQ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045452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번에 '무소유'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주목하게 된 사실이 있었다. 법정 스님은 '어린 왕자'를 너무너무 사랑하셨던 분이라는 거... 살아생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기꺼이 책을 사서 나눠주기도 하셨고, 심지어 이 책을 읽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신 자신과는 결이 맞지않는 사람이라고까지 단호하게 말씀하셨을 정도로 사람의 성품을 판단하는 본인만의 척도이자 관문의 역할로 활용하셨던 것 같다.



나야 법정 스님이 지금 살아계신다 해도 각자 살아가는 세계가 달라서 굳이 그 분께 좋은 이미지로 비춰져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입장임에도 그 구절을 읽었을 때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살짝 찔리는 느낌을 받긴 했다. 사실 내게 있어 어린 왕자는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된 책이라는 핑계가 있다고 해도 겨우 초반부 보아뱀 모자 그림에 관한 에피소드 부분만 기억에 남아있는 정도의 솔직히 그렇게 특별하고 강렬한 감동이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님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감흥을 간직하지 못한 것이 무슨 죄는 아니겠지만 이게 뭐라고...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무소유' 덕분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려고 마음먹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마음에 드는 번역본을 딱 한 권만 골라서 책장에 나란히 함께 소장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 어린 왕자를 검색하면 거의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본이 나온다. 외국소설들 중에 이만큼 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고 심지어는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애린 왕자'라는 희한한 번역도 나와있는 상태다. 그래도 출판사의 지명도와 번역가의 명성에 의한 독자들의 선호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판매량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인기도와 판매량에서 종합 10위권 이내에 올라있는 번역본들 중에서 미리보기 서비스의 도움도 받으면서 심사숙고한 끝에 총 4권을 최종 선택하여 구매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어린 왕자'하면 가장 먼저 거론이 되고 압도적인 선호도로 제일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판본은 황현산 번역의 열린책들 버전이라고 판단이 되고, 그 다음은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판이 많이 팔리는 것 같다. 열린책들과 문학동네 이 두 버전이 전통있는 빅2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별 고민없이 이 2권은 제일 먼저 골랐고... 오리지널 초판본의 표지디자인을 사용한 더스토리 버전은 최근 KBS 방송프로그램에 노출되면서 갑자기 판매량이 급증한 것 같은데 어쨌든 검증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 다음으로 포함을 시켰다.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판이다. 이 책은 부동의 1위를 지키고있는 황현산 번역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번역이라는 추천사에 이끌려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 새움출판사의 이정서 번역판도 구매여부를 살짝 고민했었는데 미리보기 서비스로 앞부분을 읽어보니까 바로 판단이 되어서 제외시켰다. 이정서씨는 카뮈의 '이방인' 논란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번역가인데 기존의 번역이 심각한 오역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어그로를 끄는 것에 비해 그에 걸맞는 결과물은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사람 번역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리뷰에서 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비록 판매량이 높다고 해도 이번 시간에는 포함시킬 가치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몇년 전에 애들 보라고 별 생각없이 골라서 급하게 샀던 책이 있는데 더클래식에서 나온 한글 영문 합본판이다. 이미 가지고있던 책이라 이번 번역비교에 당연히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가가 베스트트랜스라는 번역팀이라서 번역가 개인의 개성과 특징을 논할 수 없기에 역시 제외시켰다. 그래도 내친 김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읽기는 다 읽었고 함께 포함된 영문판도 이번 기회에 의외로 아주 요긴하게 활용을 했다.



일단 책의 제본 스타일은 문예출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3권 모두 하드커버 양장본이며, 열린책들의 판형만 어린이용으로 좀 큼직하게 제작한 신국판 사이즈이고 나머지는 4X6판의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이다. 작품설명이나 후기, 작가연표를 제외한 본문 페이지는 각각 열린책들 120페이지, 문학동네 140페이지, 더스토리 140페이지, 문예출판사 123페이지로 거의 비슷한데 삽화의 크기와 배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원작자인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삽입되어 내용을 구체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다른건 몰라도 초반부 1장의 보아뱀 그림과 2장의 양 그림 만큼은 이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림배치에 신경을 쓴 쪽에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1장에서 '나의 제1호 그림은 이것이다' '제2호 그림은 이것이다' 하는 장면에서 각각의 그림으로 딱 끝내는 페이지 구성을 보여주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한데 이 부분에서 의외로 더스토리 버전만이 아주 정확하게 편집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머지 책들은 모두 페이지 구분없이 그림을 배치해서 극적 효과가 떨어진다.



2장에서도 마지막에 아무렇게나 그려서 툭 던져주었다는 문장을 끝으로 페이지가 바뀌면서 상자 그림이 딱 나와야 극적 효과가 가장 극대화된다. 역시 이 부분도 더스토리의 버전만 정확하게 살려주고 있고 나머지 책들은 신경을 전혀 쓰지않은 모습이다.



나는 원작자 역시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그림이 삽입되길 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나해서 영문판도 살펴봤는데 페이지에 여백이 생기는 것에 상관없이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극적 효과를 살리는 구성으로 삽화를 배치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삽화의 배치 만큼은 뜻밖에도 더스토리 출판사의 완승이다.


본격적으로 번역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보면...


지난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비교편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나는 번역을 평가할 때 외국어 원문과 대조하면서 분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차피 외국어 실력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능력도 없고... 그래서 오로지 한국어로 번역된 최종 결과물만 놓고 판단을 한다. 나는 번역가의 능력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외국어보다 한글 구사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쪽이기 때문에 단어의 적절한 선택과 어휘의 기교, 문장의 문학적 감성 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잘 구현하고 있는 지에 집중한다.


이번 어린 왕자 역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에 포인트를 두고 읽었다. 이 작품은 총 27장의 단락으로 구성된 100여페이지 분량의 중편소설 수준인데 페이지당 활자의 수가 적고 삽입된 삽화들이 많아서 실제 내용은 훨씬 더 짧다. 그만큼 문장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기때문에 사소한 단어 선택 하나에도 번역가의 고심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판매량에서 부동의 1위인 열린책들의 황현산 번역가는 1945년생으로 2018년에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으며 고려대 불문과를 나오셨고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셨던 분으로 나온다. 보들레르를 비롯한 프랑스 문학의 번역서들이 꽤 많다. 이 책은 2015년에 처음 나왔으니까 돌아가시기 3년전인 70세에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가는 1941년생이니까 현재 80세로 가장 원로이시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이고 알베르 카뮈의 독보적인 권위자로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다. 번역가의 경력과 지명도에서 거의 넘사벽 수준이라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다. 2007년에 처음 발매되었으니까 역시 60대 중후반에 번역을 하신 걸로 보인다.



더스토리의 김미정 번역가는 이화여대 불문과 출신이란 점 이외에는 출판사의 소개란에도 별다른 정보가 없고 인터넷 검색을 해도 나오는게 없다. TV 노출을 통해 버프를 받는 이런 책들은 그냥 직접 읽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가 역시 서울대 불문과 출신인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몇몇 기사를 통해 겨우 짐작할 수 있었던 점은 현재 이 분도 70대 이상의 원로 번역가란 점이었다.



이 작품은 분량이 짧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본적인 의미전달에 있어 번역에 따른 변별력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개떡같이 번역한다 해도 정말 심각한 오역이 아닌 이상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오직 마음으로 봐야한다는 여우의 입을 통해 아예 대놓고 얘기해주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메세지를 비롯하여 중간중간 마음을 울리는 굵직굵직한 포인트들은 절대로 놓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어떤 번역판을 읽어도 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막상 따지고보면 또 그런 의견에 일견 수긍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해도 그 따뜻함에는 엄연히 온도차이가 존재하듯이 4권의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번역에 따른 각각의 느낌은 미묘하게 달랐다. 지구 외딴 곳에서 절대순수를 상징하는 미지의 아이와 조우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작품 전반에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항상 은은하게 깔려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어린 왕자의 말투는 기본적으로 반말을 쓰는게 어울린다. 중간에 다른 별에 사는 왕을 만나서 얘기할 때 등 몇몇 장면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들과 전혀 어울린 적이 없는 순진무구함은 반말로 표현해야 느낌이 산다. 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했던 더클래식의 베스트트랜스 번역판은 어린 왕자가 시종일관 높임말을 쓰고있기 때문에 어차피 탈락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4장에 보면 화자인 내가 이 이야기를 동화처럼 쓰지않은 것은 내 글이 가볍게 읽히는게 싫어서였다고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 사용되는 문체도 경어체보다 평어체가 어울린다. 잠깐 고민했던 새움출판사의 이정서 번역을 바로 탈락시켰던 이유도 이것이다. 이정서씨는 어른이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듯 경어체로 번역하고 있는데 원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번역비교에 선택된 4종류의 책들은 모두 평어체를 쓰면서 어린 왕자의 말투도 반말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합격이다.



이 작품은 어린 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하는 첫 대사와 함께 화자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설렘 가득한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먼저 비교해보겠다.



황현산은 뭔가 모르게 좀 무뚝뚝한 느낌이 들고 너무 간결해서 삭막한 느낌도 살짝 드는 반면, 김화영의 번역은 가장 따뜻한 느낌이 강한 번역이고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더스토리의 김미정은 역시 너무 불쑥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표현이 딱딱하고, 전성자는 유일하게 양 한마리'만'이 아니고 양 한마리'를'이라고 했는데 어감상 '를'보다는 '만'이 더 낫고 역시나 좀 삭막한 느낌이다. 사실 여기에서 벌써 김화영의 번역에 개인적으로 호감도가 많이 올라가버렸다.


4장에서 터키의 천문학자가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을 발견했는데 그가 입은 옷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도 문학동네의 김화영만 유일하게 그냥 옷이 아니라 '민속의상'이라고 표기해서 바로 이해되도록 번역하고 있다.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쌓여서 번역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5장 초반부에는 어린 왕자가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작은 나무를 황현산과 김미정은 '작은 떨기나무'라고 번역했고 김화영과 전성자는 그냥 '작은 나무'라고만 표현했다. 떨기나무라는 명칭이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특정 나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역시나 작은 관목류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부분은 굳이 떨기나무라는 고유명사로 표현해서 불필요하게 주목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에는 장미꽃과 바오바브나무에 대한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참고로 바오바브와 바오밥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마치 자장면과 짜장면 정도의 차이라서...



어쨌든 별 의미없는 단어를 떨기나무라고 특정지으니까 괜한 혼란을 불러온다. 떨기나무는 성경에서 모세와 하나님이 만나는 장면에 등장해서 제법 알려졌을 뿐 일반인들은 대부분 모르고 실생활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다. 영문판에서도 little bushes라고 되어있고 bush는 그냥 덤불이나 관목을 의미한다. 황현산씨가 그냥 잡목을 왜 굳이 떨기나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이 단어 때문에 어린 왕자를 괜히 성경과 연관지어서 확대해석하거나 상징 운운하며 엉터리 의미부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떨기나무가 결코 좋은 번역이 아님에도 김미정씨가 똑같이 번역한 것이 재미있는데, 내 생각에는 황현산의 번역이 1등이니까 별 생각없이 그냥 따라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bush를 무난한 선택지인 덤불, 관목, 잡목 다 놔두고 굳이 떨기나무로 번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화자가 독자를 향해 경험담을 얘기해주는 형식인데 유일하게 독자가 아닌 어린 왕자에게 직접 편지하듯이 말하는 단락이 있다. 바로 6장인데 화자가 회상을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린 왕자가 지금 지구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착각해서 말한 부분에 대해서 황현산은 '그렇다' 하면서 문장을 이어간다. 어린 왕자가 아닌 화자 스스로를 향한 독백에 가깝고 역시나 톤이 좀 딱딱하다.



김화영은 '그럴 수 있겠지'라고 또 한번 가장 매끄러운 흐름을 보여준다. 어린 왕자를 향한 독백으로 6장 전체의 서술 형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미정은 '그 말은 사실이었다'로 여전히 독자에게 말하는 화법 그대로여서 6장 전체가 화자가 얘기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걸 아예 인지하지 못한 느낌이다. 김미정의 번역은 여기서 점수를 굉장히 많이 깍아먹었다.



전성자도 '실제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로 번역했는데 역시나 독자를 향한 말이고 그 전까지 어린 왕자를 향해 잘 말해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니 일관성이 무너지면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연결을 보인다.



7장에서는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이 귀찮다는 반응에 어린 왕자가 대응하는 장면인데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하자 그 말을 한번 따라한다.



황현산은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서 느낌표를 넣었는데 여기서는 분위기상 되묻는 식으로 물음표를 넣는게 훨씬 깔끔하고 자연스럽다. 김미정과 전성자의 번역은 모두 물음표로 처리했다. 하지만 김화영은 갑자기 '심각한 일이라고!' 하면서 이상한 번역을 했다. 되묻는 물음표도 아닌 느낌표를 쓰면서 상대방 대사와 전혀 호응이 안되는 엉뚱한 단어를 사용한 대답인데 아마도 착각이나 실수를 심각하게 한 것 같다.


10장에서 13장에 걸쳐서 어린 왕자는 어른들과 헤어지면서 한 마다씩 던진다. 어른들은 이상하다는 식의 푸념인데 반복되면서 표현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고 미묘하게 조금씩 강해지는 표현에서 잔잔한 유머가 느껴진다. 



황현산은 뭔가 일관성이나 점진적인 느낌이 좀 떨어지는데 반해, 김화영은 비슷한 느낌으로 점차 강도를 올려준다. 이 부분의 포인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센스있게 살려내려는 시도를 했다고 느꼈다. 김미정은 역시나 점진적 반복 따위에는 별로 신경 안 쓴 모습이고 전성자는 약간 애매하면서도 가장 어색한 단어의 조합으로 처리하고 있다.


13장 사업가 에피소드에서는 숫자들이 계속 나오는데 황현산과 김미정 번역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했고 김화영과 전성자는 그냥 한글로 처리했다.



여기에서는 사업가가 그저 숫자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숫자 자체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아라비아 숫자보다는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한글로 표현하는게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미꽃은 어린 왕자와 8장에서 처음 만나고 9장에서는 이별을 하게된다.


황현산, 김화영, 전성자 이 3명의 번역에서는 모두 8장에서 서로 존댓말을 하지만 9장에서는 갑자기 서로 말을 놓는다. 8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 왕자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인데, 이것을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디테일한 설정으로 처리한 점이 돋보인다. 그런데 더스토리의 김미정만 8장과 9장 모두 변화없이 서로에게 반말을 한다.



확실히 이 부분은 번역가의 연륜에 의한 관록의 차이라 느껴진다. 세 분 모두 6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번역을 하신 거라 너무 올드하면 어쩌나 하고 처음에는 약간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인데 이 부분을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섬세하고 노련하게 처리하신 것을 보고 과연 '프로는 프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정말 감탄을 많이 했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너무 길어지니 이쯤에서 전체적인 총평을 해보자면...


먼저 열린책들의 황현산 번역은 의외로 문장이 좀 딱딱하다는 느낌과 함께 단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확실히 약간 올드하면서도 튀는 느낌이 있다. 떨기나무도 그렇지만 해가 지는 걸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이 분은 유일하게 '해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소설에서 해넘이라는 순우리말은 입에 잘 붙지도 않고 어색하다. 그리고 다른 번역가들은 모두 꽃을 위한 울타리나 보호막 정도로 처리한 것을 이 분은 또 굳이 '갑옷'이라는 생뚱맞고 튀는 단어로 선택했다. 여우와 길들인다는 것에 관해 얘기할 때에도 다른 번역가들은 모두 '의식'이라고 했지만 이 분만 유독 '의례'라고 한다. 바오바브나무에 관련한 에피소드에서도 '도덕 선생 같은 말투'라고 한 걸 보면 이 분의 번역은 확실히 나이가 어린 연령층를 겨냥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어린이용 번역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해서 좀 혼란스럽다. 어쨌든 판매량과 인기도 1등이라는 점의 기대감에 비해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의 선택이나 대사를 포함한 문장을 구성하는 테크닉에서 깊은 내공이 묻어나오고 원작자의 의도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중간중간 아쉽거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도 더러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밸런스가 좋으면서 일관된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작품의 분위기를 시종일관 따뜻한 느낌으로 감싸고 있는 점이 좋았다.


더스토리의 김미정 번역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무난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음식점으로 비유하자면 본인만의 노하우를 가진 수십년 전통의 맛집이 아니라 그때 그때 유행에 따라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은 역시 연륜에서 오는 내공이 느껴진다. 이번 리뷰를 위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더스토리 버전이고 그 다음 두번째 읽은 책이 이 분 번역인데 딱 초반부 읽자마자 수준이 다르다는 걸 바로 느꼈다. 너무 미묘한 느낌적인 부분이라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고 애매하기는 한데 오랜 경력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어떤 깊이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다만 중반부 이후에는 왠지 모르게 몰입감이 떨어져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 



이번 번역 비교를 통해 '어린 왕자'라는 너무나 훌륭한 책을 다시 알게되었고 문장 하나하나 정말 제대로 음미하고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특히 노장 번역가들의 관록이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점도 의미가 있었고... 각각의 번역판들은 장점과 단점들이 모두 다 골고루 들어있기 때문에 특정한 책이 월등하게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판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최종적으로 이 한 권만 소장하려고 한다. 양장본에 사이즈도 딱 맞아서 법정 스님 옆에 나란히 진열하니 보기도 좋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Bp9teHgFAck&t=151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29036919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워낙 유명한 책이라 작품 내용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두 판본의 번역을 비교해보려고 한다.


원제목은 'ノルウェイの森', 글자 그대로 '노르웨이의 숲'이고 1987년작이다. 우리나라에는 1989년에 '상실의 시대'라는 번안제목으로 나오면서 대박이 났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문학사상사판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당시 대학생때 이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번역가는 유유정씨라는 분이고 여자 이름같지만 사실은 남자분이라고 하며 1922년생이면 아마도 지금은 작고하셨을 것 같은데 검색을 해봐도 이 분에 대해서 더이상 자세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고 어느덧 고전으로 자리잡은 만큼 2013년에 스타급 번역가인 양억관씨를 내세운 민음사판이 나오면서 비로소 지금의 양강구도가 이루어졌다. 양억관씨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고 역시 유명 번역가인 김난주씨와 부부지간이기도 하다.



현재 이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틀림없이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와 민음사의 '노르웨이의 숲', 이 두 가지 번역본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전부터 품어왔던 개인적인 궁금증도 해소할 목적으로 겸사겸사해서 시작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별 고민할 가치도 없는 싱거운 결과가 나와버렸다.


이번 번역 비교를 위해 거의 30년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은 다음,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새로 구매한 '노르웨이의 숲'을 한번 더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먼저 두 출판사의 인쇄 스타일부터 체크하고 넘어가자. 번역 외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독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마도 본인이 중간중간 특별히 포인트를 주고싶은 단어나 문장은 다른 활자와 구분이 되도록 원서에서도 간단하게 어떤 표시를 해두었던 것 같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이것을 글자 위에 점을 찍어서 구분이 되도록 했고, '노르웨이의 숲'은 명조체에서 고딕체로 글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처리했다. 당연히 점을 찍은게 눈에 바로 띄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에 비해 글자체 변경은 정말 눈여겨보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무심코 그냥 지나칠 것 같다.



또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쓴 편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이 자주 등장하는데 '상실의 시대'에서는 글자체와 굵기를 모두 다르게 해서 확실히 구분이 된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글자 크기만 살짝 줄인 정도라서 역시나 뚜렷하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주석 부분도 확실히 '상실의 시대' 쪽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필요한 부분을 잘 찾아서 과하거나 부족함없이 적절하게 들어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되면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감이 왔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문 번역에 대한 비교에 들어가면...



각각 굵은 글씨와 글자체의 변경으로 특별히 강조를 하고있을 정도로 화자인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한 초반부의 중요한 문장이다. 한눈에 봐도 '삶의 반대편'이라고 풀어서 해석한 유유정씨의 번역이 월등히 매끄러운 가독성과 함께 그 의미심장한 느낌까지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양억관씨가 사용한 '대극'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원문에 쓰여진 '対極'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일본에서는 '반대편에 위치하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흔하게 쓰는 지는 몰라도 우리는 살면서 거의 쓰지않는 단어라 어색하고 입에 잘 붙지를 않는다.


아무리 직역이 원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해도, 원작자가 특별히 강조까지 한 문장인데 이렇게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작가가 원래 의도했던 느낌에서 오히려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물론 일부러 좀 난해한 표현방식을 구사한 책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 만큼은 매우 쉽고 대중적인 화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양억관씨도 직역보다는 의역을 많이 사용하는 스타일로 알고있는데 굳이 이렇게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의 직역을 사용한 것은 기존의 번역과 차별성을 주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작가만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져서 참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문장인데 열여덟 살 다음에는 열아홉 살, 다음에는 또 열여덟 살로 돌아가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아름답게 전달하는 유유정 번역과는 달리, 양억관 번역은 '이해가 간다'는 전혀 맥락에 맞지않는 생뚱맞은 표현으로 독자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허무하게 그냥 날려버리고 있다. 이것은 작품이 가진 정서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할 문제다.



초반부 주인공이 기거하던 대학교 기숙사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역시 유유정 번역의 '상실의 시대'가 노래가사와 맞물려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훨씬 매끄럽게 잘 다듬어서 번역하고 있어서 가독성이 좋다.


1인칭 화자이면서 와타나베라는 이름을 가진 이 책의 주인공은 단 몇마디로는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작가 스스로가 자전적인 소설이라 했으니 하루키 본인의 성격과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내성적이면서 조용하고 냉소적이지만 때론 따뜻함과 유머가 있고,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하면서도 눈치 보지않고 할 말은 똑바로 하는 단호함도 있고... 책을 읽다보면 이런 주인공의 다양한 측면에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것은 행동보다는 주로 대사와 말투에서 대부분 표현이 되고있다.



이 대사는 주인공이 자신의 룸메이트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하는 농담이다. 유유정에 비해 양억관의 번역이 좀더 거칠고 천박한 표현을 쓰고있다. 분명히 같은 내용의 문장임에도 인물의 성격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주인공이 좀 싸가지없는 말투를 쓴다는 느낌이다. 이렇게되면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나 감정이입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오코에 대한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내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는지' 알게되었다는 유유정의 번역에 비해 내가 얼마나 너를 '갈구하는지' 알게되었다는 양억관의 번역은 주인공을 다소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게 특정 단어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는게 번역의 위력이다.



나가사와라는 학교 선배와 나누는 대화인데 각각 '이상한 사람'과 '색다른 사람', 그리고 '제대로 된 인간'과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단어의 차이가 있다. 대화의 전후 맥락을 고려하면 '상실의 시대' 쪽의 티키타카가 더 자연스럽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쓴소리한 것을 들킨 장면인데 유유정의 '당연하잖아요'는 약간 미안한 마음을 섞은 능청스러움이 들어간 표현이라면 양억관의 '당연하죠'는 거리낄 것 없는 단호함과 냉정함이 묻어나온다. 주인공의 성격과 그전까지 쌓아온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역시 유유정의 번역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는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내겐 아까운 여자'보다 '나한테 과분한 여자'가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인 '지당하신 말씀이다'가 완전히 망쳐버렸다. 작품의 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촐싹대는 느낌인데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정말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미도리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특이한 말투나 유머감각에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표시한다. 말투가 험프리 보가트를 닮았다는 둥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같다는 둥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얘기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 특이하다는 말투의 느낌이 어느 정도 와닿아야 한다.



두 번역판을 가만히 비교해보면 굉장히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 말투의 특이한 느낌을 살리기위해 분명히 신경을 쓰고있으나, '노르웨이의 숲'은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일반적인 말투와 거의 차이가 없는 느낌으로 평범하게 처리하고 있다. 심지어 미도리가 주인공의 말투를 따라하는 대사라는 점도 유유정은 '되뇌었다'라고 확실하게 알려주고있는 반면, 양억관은 그냥 '말했다'로 처리해버리니 이 장면의 잔재미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여기도 역시 미도리가 주인공 말투를 따라하며 호감을 표시하는 장면이다. 미묘하지만 유유정의 번역이 말투의 특이함과 함께 두 사람의 귀여운 티키타카를 훨씬 따뜻하게 살려내고 있다.



이런 부분도 번역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어서 두 사람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하루키가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묘사를 정말 섬세하게 그리고있기 때문에 번역이 이런 부분을 잘 살려주지 않으면 숨어있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 힘들다.



나오코의 편지에 쓰여진 표현도 양억관이 선택한 '뒤틀림'이라는 단어보다는 유유정의 '일그러짐'이나 '비뚤어짐'이라는 단어가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나가사와 선배에 대해 나오코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특이한 사람인 모양이야' '이상한 사람이지' '그렇지만 좋아하는 거지?'라는 마치 상대방의 말에 호응을 안해주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듯한 다소 맥이 끊기는 느낌의 양억관 번역에 비해 '좀 이상한 사람 같네' '그래, 좀 이상한 남자야' '그래도 좋아?'라는 유유정이 번역한 대화의 흐름이 훨씬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그리고 여기는 나오코와 연락이 끊겨 마음이 심란한 시기를 묘사한 부분인데 '상실의 시대'는 각각의 행동에 쉼표를 넣어서 당시 주인공의 행동 패턴이 반복적으로 줄곧 그런 식이었음을 보여주고있는데 반해 '노르웨이의 숲'은 한 문장으로 이어져있어 마치 일회성 행동처럼 느껴진다. 쉼표가 있고없음으로 인해서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는 느낌이다.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문장의 특성상 아마도 원문에는 쉼표가 없었을 거다. 바로 이런 부분이 번역가의 재량이자 센스가 발휘된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나는 당연히 쉼표가 들어간 것이 원작의 의도와 일치하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또 선배에게 인생의 행동규범이 뭐냐고 물었을 때 신사여야 한다고 대답하자 '상실의 시대'는 '신사 숙녀 할 때의 그 신사'냐고 정확하게 이해를 돕는데 반해 '노르웨이의 숲'은 막연하게 '그 신사'라고만 하니 바로 알아듣기가 힘들다. 물론 이것도 '신사 숙녀' 부분은 원문에 없었는데 유유정 번역가가 임의로 추가한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라면 양억관씨가 원래 있었던 단어를 삭제했다는 말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신사 숙녀라는 말이 들어가는게 훨씬 가독성이 높다.



여기에도 양억관은 그냥 한명이라고 갑작스럽게 앞뒤 맥락없이 말을 던지지만, 유유정은 한사람 밖에 자본 적이 없다는 식으로 바로 이해가 되도록 표현하고 있다. 이것 역시 매끄러운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보강한 문장이라 짐작한다.


필요에 따라 원문에 없는 단어나 문장, 또는 쉼표나 부호를 만들어 넣는 것도 분명히 의역에 해당하고 독자의 입장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오로지 직역만이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직접 비교해보니 의역이 단순히 가독성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직역보다 훨씬 더 작가가 원래 의도했던 느낌에 가까운 결과물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이건 내가 오역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앞선 대화에서 죽은지 30년이 지난 작가만 인정하겠다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2년 정도의 오차가 되려면 28년이 맞다. 양억관 번역의 '스물두 해'는 명백한 오역이다.



이 부분도 누구 올 사람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정황상 '고개를 저었다'가 맞는 번역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도 안 와'라는 부정의 대답은 이상하지 않나... 양억관씨는 '앉아도 될까?'라는 앞의 질문 때문에 끄덕였다고 한 것 같은데, 나는 이런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오역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번역판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분량관계상 특정 부분만 발췌해서 비교했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봤을 때 정말 비교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양억관의 번역이 낫다고 느껴진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고, 게다가 유유정이 번역한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아주 미묘하고 잔잔한 재미와 감동 포인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좀 충격적이었고 그만큼 답이 너무 쉽게 나와버려서 약간 허무하기도 했다.


번역에 대해서만 얘기하려고 했는데 작품에 대해서 조금만 첨언하자면... 이 작품은 읽다보면 인상깊은 문장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인생은 비스킷 통이어서 좋아하는 것만 먼저 먹어버리면 나중에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된다는 대사도 기억에 남고...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초콜릿 통에 관한 대사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참고로 이 책이 훨씬 먼저 나왔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구분과 판단은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봄날의 곰만큼 좋다'고 표현하는 와타나베의 유머감각도 미도리와 같은 마음으로 미소짓게 만든다.



이 작가는 또 성적인 표현에 주저함이 없다. 섹스가 젊은 날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점은 틀림없지만 의외로 작품에서 이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이다. 책을 읽다보면 공교롭게도 주인공의 전공과목과 관련해서 '데우스엑스마키나'라는 말도 나오는데 농담을 살짝 섞어서 표현하자면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마치 섹스를 데우스엑스마키나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유일하게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기도 한데, 역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리라...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하여 하루키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과 작가들... 그리고 팝, 재즈, 클래식을 망라하는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책에 나오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과 헨리 맨시니의 '디어 하트'를 한번 들어보려고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다가 이 곡의 댓글들에서 '나오코가 좋아하는 곡'이라든지 무라카미 하루키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서양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세계적인 작가였구나...하고...


어쨌거나 번역을 비교해본다는 핑계로 거의 30년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어봤는데 참 좋았다.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더 좋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정말 글 잘 쓴다. 명불허전이다.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여러가지 감정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좋은 작품은 당연히 좋은 번역으로 읽어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민음사에서 명성있는 번역가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듯 해서 당연히 최신 번역이 더 낫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서 충격적이었고 어떻게보면 성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여서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양억관이라는 번역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덕분에 기존의 유유정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취향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사유가 한가득 들어있고 탁월한 필력으로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아주 섬세한 터치로 그리고 있어서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는 재미가 정말 남다른데, 결론은 그런 잔잔한 감동과 디테일한 재미를 제대로 맛보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유유정 번역의 '상실의 시대'를 선택하면 되겠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iAO6Nxh-2Q&t=1103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28267451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읽어보는 해리 홀레 시리즈인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이 어느덧 시리즈 12번째 작품이었다. 1997년에 첫작품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평균 2년에 1편 꼴로 꾸준히 발표된 셈인데, 세어보니까 나는 이 책까지 포함하면 그 중에 8편을 읽었더라... 노진선씨가 번역한 작품들은 다 사서 읽었지만 중간에 번역가가 바뀐 이후로는 읽는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신작이 나와도 영 땡기지가 않아서 안 샀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호기심에 구매를 해봤다. 우리는 또 이런 '칼' 같은... 짧고 강하고 뭔가 느낌있는 이런 단어에 약하지 않나... 출간 기념으로 천원만 추가하면 작가의 사인이 들어간 버터나이프를 준다고 해서 또 얼른 신청해서 받았다. 천원짜리 치고는 괜찮은 것 같다. 덕분에 최근 마트에서 장볼 때 일부러 버터도 한 덩어리 사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시리즈 9탄에서 11탄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전작들을 안 읽었기 때문에 그동안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완성도와 재미를 충분히 보장하는지 또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하는 점에도 괜한 오지랖을 부려가면서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는 전작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한 편의 추리 스릴러로서 이 작품을 즐기는데 있어 그다지 큰 지장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작가가 이미 그런 부분 정도는 당연히 고려해가면서 쓰는 레벨이라서...


하지만 이 노련한 작가는 기존의 시리즈를 잘 알고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서도 특별하고 차별된 만족감을 주는 설정들을 확실하게 마련해 놓았다. 주인공 해리에게 라켈이라는 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이번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일 수 밖에 없다. 전작들을 읽어왔던 독자라면 당연히 해리 못지않은 충격과 상실감에 함께 아파하면서 디테일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레드브레스트'라는 작품에서 요 네스뵈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는지 보면서 정말 탄복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라켈의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을 꿈이라 생각하면서 꿈에서 깨지 않으려 애쓰는 해리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명불허전의 필력과 함께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관성까지도 놓치지않는 치밀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요 네스뵈의 이 해리 홀레 시리즈는 '후더닛'과 '하우더닛', 그리고 '와이더닛'이 골고루 잘 섞여있고, 의외의 범인이라는 반전이 있으면서도 범인은 무조건 초중반부터 등장해서 독자들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정통 추리소설의 규칙 또한 철저히 따르고 있는 등,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점이 굉장히 큰 매력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주인공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피해자라는 것 자체가 허탈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워낙 충격적인 설정이어서 이 정도 비중의 피해자라면 웬만한 범인으로는 그 상실감을 채울 수가 없다는게 문제였다.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범인 후보라고 해봐야 불과 서너명 뿐인데다가 그 중에 누가 범인으로 밝혀지든지 간에 아무래도 좀 미흡하고 찜찜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작가가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할 생각인지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이 작가는 소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무서운 저력을 보여준다. 피해자의 중요도에 걸맞는 범인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질 정도로 어떻게보면 거의 막장 수준으로 억지스러운 설정의 반전이기도 해서 이 시리즈를 사랑해온 팬들이라면 충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긴 세월을 이어져 온 시리즈의 마지막을 고하는 듯 하기도 하고 어쩌면 세대교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의 희생자와 범인, 그리고 주인공의 행보를 보면서 왠지 이것으로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마치 팬들을 위한 가슴 먹먹한 선물같은 작품이라고나 할까...


특히 '성민'이라는 한국계 형사의 등장은 사실 좀 뜬금없고 의외인데 작가가 한국 팬들에게 남다른 감사의 마음을 담은 나름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이 작가도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걸까... 어쨌든 만약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점점 더 비중있게 나올 것 같기는 하다.


번역은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무난했던 것 같다. 하지만 딱히 좋다는 느낌도 없어서 번역가가 바뀐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다.


참고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순위를 매겨본다면 '레드브레스트'와 '레오파드'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1,2등이다. 3등으로는 '스노우맨'... 그 다음으로 이번 작품 '칼'을 넣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는 'Eight Perfect Murders'이고 현지에서는 재작년인 2020년에 나왔던 소설이다. 이 작가는 2014년 데뷔작 이후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과 함께 지금까지 모두 8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그러니까 이 책 이후에도 작년과 올해 각각 1편씩 벌써 2편의 신작을 순식간에 썼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이번에 나온 이 책까지 포함하면 그 중 5편이 번역 소개된 상태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를 좋아하는 팬도 아니고 또 실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국내에 출간된 이 작가의 책은 모두 다 사서 읽었다. 아무래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임팩트가 컸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사람 작품 중에서는 그 책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에 발표했던 작가의 2번째 작품인데 외국 사이트를 둘러봐도 피터 스완슨은 대부분 'The Kind Worth Killing'의 작가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지에서도 확실히 그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사람 신작을 나올때마다 읽다보니까 지금껏 꽤 많은 리뷰를 했는데, 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이 사람이 결코 필력이 뛰어난 작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이디어가 좋은 작가라 생각할 뿐...


그가 소설을 창작하는 패턴은 이제까지 읽거나 보았던 책과 영화 등 다른 작품들에서 소재나 플롯에 대한 영감을 얻고 거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살짝 더해서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스타일일 것이라고 이전 리뷰에서 얘기한 바 있는데, 이번 신작은 그런 그의 창작 패턴을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매니아라면 누구나 알만한 8편의 유명한 고전 추리소설 리스트를 제시하고 각각의 작품들에서 사용한 범행수법을 모방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플롯인데, 어떻게보면 참신하지만 또 의외로 상당히 안일한 기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스트에 있는 작품들이 최소 30년에서 무려 100년전에 나온 책이라는 사실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 작품은 범행 동기나 개연성 등에서 흥미로운 도입부에 비해 갈수록 현실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고전 속 범행수법의 결과물만 대충 가져와서 모방범죄라고 억지만 쓰고있지 작가만의 창의적 아이디어나 고민한 흔적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마주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선배 작가들이 창조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너무 편하게 날로 먹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읽다보면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속내를 살짝 드러낸 것 같은 문장들이 나와서 재밌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좀 황당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소설가가 직업인 등장인물을 묘사하면서 자료조사를 싫어하는 터라 최근작을 쓰기 위한 준비라고는 영화 두편을 본 것이 전부일 거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것이 내게는 마치 작가 자신의 농담 속 진담이자 자학개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언급하면서 소규모의 가정 스릴러가 유행하는 요즘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하는데, 웃기는건 이렇게 분석하고있는 작가 본인도 결국 이 부류에 해당이 된다는 거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를 통한 간접 경험을 밑천삼아 창작활동을 하는 이런 작가들은 확실히 스토리를 전개함에 있어 깊이감과 스케일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취약한 전문지식을 굳이 수고스럽게 취재 등을 통해 보강하기 보다는 1인칭 시점 따위의 서술 테크닉과 같은 잔재주로 커버하는게 훨씬 편하기는 하겠지... 


그래서 등장인물도 주로 부부나 가족에 주변 이웃 또는 친구 몇명 해서 매우 단촐하고, 장소도 집과 근처 음식점, 카페 정도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수준으로 처리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로 판을 짜야하니까 스케일이 작을 수 밖에 없다. 사법시스템이나 관련 기관의 행정절차에 대해서도 전문지식이 딸리니까 경찰같은 법집행 공무원들이 나와도 딱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수준의 모습으로 겨우 등장해서는 대부분 기능적인 역할로 생색만 내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어설픈 작품들을 읽다가 예를들어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도입부 정도만 읽어보더라도 이제 막 FBI 신참요원이 된 스탈링과 상관이 나누는 디테일하고 수준높은 대화들과 사건을 맡음에 따라 펼쳐지는 전문적인 수사과정에서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의 실로 엄청난 수준차이와 함께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소재로 삼고있는 8편의 고전 추리소설들 중에 나는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과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읽었다. 특히 ABC 살인사건은 내가 중학생 때 아가사 크리스티로 추리소설에 입문하면서 최초로 읽었던 작품이라 감회가 남달랐고 잠시 추억에 젖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각 작품들의 간략한 줄거리와 핵심 트릭을 모두 언급하고 있기때문에 꼭 읽고싶었던 작품이라면 스포일러를 당하기 전에 미리 읽어두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리고 비록 8편의 리스트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크리스티의 또다른 대표작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스토리의 기본 뼈대로 삼고 있으니 혹시나 그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담해온 노진선씨의 번역은 여전히 믿음직했지만 이번에는 원작의 완성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냥 좀 쉽게 처리한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영화까지 똑같은 제목으로 이미 잘 알려져있는데 굳이 '장미의 이름으로'라고 번역한 부분은 좀 성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포와로라는 발음이 훨씬 보편적일 터인데 또 굳이 푸아로라고 한 것도 좀... 



여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벨기에 하면 와플이나 초콜릿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무조건 '엘큘 포와로'다. 스웨덴 하면 ABBA이듯이 벨기에 하면 포와로가 아니겠는가...


이 작품은 전설적인 고전 추리소설들에 대한 오마주의 컨셉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덕력을 아낌없이 과시한 점에서는 흥미로웠으나 작가의 한계 또한 여실히 드러났던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한 이 작가의 책은 더이상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