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윈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8 링컨 라임 시리즈 8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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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 영화를 인연으로 찾게된 '본 컬렉터'를 읽을 당시만 해도 이 링컨 라임 시리즈를 8편이나 읽게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코핀 댄서' 이후로는 그다지 큰 만족감을 준 작품이 없었음에도 이제는 거의 습관적으로 읽게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타성에 젖어간다고나 할까...

꾸준하게 일정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가에 대한 믿음도 믿음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라임 시리즈에 갖는 특별한 호감이라면 바로 번역가 유소영씨다. 이 시리즈가 여타 시리즈와 달리 유독 일관된 톤을 유지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이렇게 작가와 번역가의 궁합이 좋은 파트너쉽은 쉽게 찾아보기가 힘들다. 어쩌면 번역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외국소설의 경우 번역가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천양지차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굳이 다른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제프리 디버에만 국한시켜서 유소영의 라임 시리즈와 다른 번역가들의 스탠드얼론 작품들만 비교해도, 도저히 같은 작가가 쓴 글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그 느낌이 서로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본작 '브로큰 윈도'의 경우처럼 마치 잘 숙성된 술의 향취를 음미하듯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편안하고 기분좋게 몰입이 되는 것은, 번역가가 그만큼 작가의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잘 체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디버는 확실히 영리하고 빈틈이 없다. 전작 '콜드문'에서는 너무나 작위적인 반전이 거듭되어 실망감도 없지않았는데, 이번에는 역으로 트레이드마크였던 반전이나 의외의 범인에 연연하지않는 과감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오히려 이것이 반대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모습이다. 작가가 이런 부분에서 많이 고심한 것은 느껴지는데, 그래도 큰 임펙트가 없이 무난하게만 흘러가는 플롯은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다.

범인의 심리묘사나 장면전개의 노련함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시리즈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디버와 유소영 작가의 찰떡궁합이 계속해서 좋은 선례로 남길 희망해본다.

<사족> 색스일행이 SSD본사에 갔을때 요청에 의해 직원이 시디를 건네주는 장면에서 '보석케이스에 시디를 넣어서...'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것은 '주얼케이스(Jewel Case)'를 번역한 듯한데, 보석이 아니라 그냥 일반 플라스틱 시디케이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공시디 좀 구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단어일텐데...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애교스런 옥에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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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Medusa Collection 3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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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라 레빈의 작품은 오래전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죽음의 키스(A Kiss Before Dying,1953)'를 통해 처음 접한바 있다. 대학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얼추 20년은 지난듯 싶다. 이색적인 소재와 재미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얼마후 동네 비디오샵에서 당시 청춘미남스타로 손꼽히던 '맷 딜런'과 '숀 영'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도 빌려서 다시 한번 감상하기도 했다.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같은 소설을 두번째로 영화화한 리메이크작이었다.

첫만남 이후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본작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은 그의 5번째 작품이며 1976년작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대가들의 작품을 뒤늦게나마 찾아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묘한 설레임을 일으킨다.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줄곧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라인과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과연 레빈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차대전당시 유태인학살을 자행했던 나치전범들과 종전후 나치사냥꾼으로 활약했던 유태인학자와의 대립을 그린 작품인 만큼, 역사에 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죽음의 천사'로 악명을 떨쳤던 멩겔레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유태인학살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아이히만과 슈탕글 같은 실존인물들의 이름이 수차례 언급되기도 한다. (특히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화두를 이끌어낸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불미스러운 일로 친숙해져버린 줄기세포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놀라운 반전을 펼쳐보이는데, 작가가 치밀하게 구축한 주인공 멩겔레의 탁월한 캐릭터성과 맞물려 결코 잊을 수 없는 기막힌 마지막 장면을 연출한다. 이러한 독창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소재는 아마도 1994년 발표된 역작 '모레(The Day After Tomorrow)'를 탄생시킨 앨런 폴섬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무색케하는 감각적인 구성과 스릴감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며, 특히 한 천재의 광기어린 집착이 초래하는 아이러니한 비극은 슬픔과 연민이 느껴질만큼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 역시 1978년 영화화되었는데, '그레고리 펙', '로렌스 올리비에', 그리고 '제임스 메이슨' 같은 명배우들이 출연하고 '혹성탈출', '패튼 대전차군단', '빠삐용' 등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J. 샤프너'가 감독을 맡았다. 국내에는 '잔혹한 음모'라는 제명으로 소개되었지만, 탄탄한 출연진과 감독의 결과물치고 영화의 완성도는 생각보다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다.  


'로마의 휴일'의 영원한 훈남배우 그레고리 펙이 멩겔레역을 맡았다. 젠틀한 이미지의 그가 의외의 연기변신을 펼치는 모습은 훗날 '백경'에서 보여주던 집념의 사나이 에이하브 선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리베르만역을 맡은 로렌스 올리비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최고의 햄릿이자 불세출의 셰익스피어 전문배우이다. 한때 '비비안 리'와의 결혼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책에서는 비중이 적었던 자이베르트 대령역으로 제임스 메이슨이 가세해 영화에서는 좀더 무게감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아이라 레빈(Ira Levin,1929-2007)은 미국 뉴욕출신으로 모두 7편의 소설을 남겼으며, 그 중 5편이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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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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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전작 '캐비닛'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만으로 김언수라는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가늠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만큼 본작 '설계자들'은 스탠스가 약간 애매한 구석이 있다.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을 구분짓는 경계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말초적인 재미 이상의 어떤 깊이있는 주제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글쓰기의 테크니컬적인 측면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이 무엇이든 희미하게나마 그 구분선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이 작품은 킬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흥미로운 소재에 이끌려 구매목록에 넣었던 책인데, 실제로 읽어보니 액션스릴러나 하드보일드같은 장르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문학이라는 테두리에 넣자니 군데군데 대사처리나 상황묘사 등에서 격에 맞지않는 부분 또한 눈에 제법 들어온다. 묘하다.

회색빛 책표지와 같이 온통 우울한 잿빛으로 물든 세상을 보는 듯하다. 설계자, 트래커, 푸주와 같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소재와 고민이 묻어나는 대사들...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비정한 현실세계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듯한 뉘앙스도 감각적이다. 하지만 B급액션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발사니 헨켈식칼이니 뭐니하는 과잉스러운 면과 세련미가 떨어지는 결말부분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마디로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의 경계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가 영화화를 심각하게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신경숙 작가같은 분이 '양들의 침묵' 스타일의 서스펜스 스릴러물을 쓴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세월이 흐를수록 장르의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질 수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문학에도 그 수준차이는 있을지언정 장르 자체의 귀천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러한 흐름을 어렴풋이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면 분명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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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이동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2 미치 랩 시리즈 1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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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플린의 글은 전작 '임기종료'에서도 충분히 감지한 바 있지만, 이미 10년이나 지난 1999년작임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들지않고 여전히 무시무시한 속도감을 자랑한다.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FBI, CIA, 그리고 대통령경호실 등, 미국 특수기관들의 시스템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감넘치는 상황묘사와, 영화 시나리오를 방불케하는 드라마틱하고 직선적인 대사들은 이 작가의 독보적이면서도 차별화된 특징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전작에서 느꼈던 사소한 문제점이 이 작품에 와서는 심각한 수준으로 부각되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가 없다. 부패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적인 살인을 자행하던 주인공을 영웅화시켰던 전작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적어도 그런 순진(?)하고 위험천만한 발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너무나 도식적으로 굳어져버린 선악구도와 미국최고를 부르짖는 노골적인 우월주의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있다.

액션영화를 보다보면 당연히 주인공의 편에 서서 감정이입이 되어야함에도, 오히려 악인의 편을 들게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주인공이 부상을 당한다거나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는 정도의 진부한 장치 따위로는 무마되기 힘든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캐릭터와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향적인 시각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 악의 무리들이 상황을 장악하는 듯 보이지만, 남은 것은 결국 듬직한 미국의 초강력 주인공 무리들에 의해 무참하게 괴멸될 장면일 뿐이며, 그러한 영웅만들기에 집중하는 작가의 사고방식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부통령과의 갈등 등 곁가지를 치긴 했지만 이미 예상된 결말에는 전혀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미국국민들에게 델타포스니 대테러 특수요원이니 하는 세계최고의 인재들이 있으니 안심하시라는 홍보영화를 보는 듯하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별로 긴장이 되지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발전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퇴보하거나 작가의 한계가 보이는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단순하고 시원한 액션만을 원한다면 충분한 만족감을 얻겠지만, 작가의 스타일상 그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 듯 하다. 앞으로 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굳이 찾아 읽을것 같지는 않다. 

<사족> 이 작가가 FOX사의 인기드라마 '24'시리즈에 자문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는데, 24의 전시즌을 이미 감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몇몇 시즌에서 차용한 듯한 설정도 보인다. 백악관 공격은 시즌7, 부통령의 도발은 시즌6에서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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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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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아처'라는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데도 왠지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작가 프로필을 보면 영국출신으로 상원의원까지 거친 이색적이면서도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소개되어 있다.

다소 심심한 책표지 디자인과는 달리 초반 몇페이지를 읽는 순간 작가의 필력이 심상치않음을 느꼈다. 캐릭터 구축력과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이 좋고, 또한 대단히 스피디하다. 내용에 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미술품에 관한 고풍스런 스토리를 예상하다가, 초반부 9.11테러사건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이 작가의 글은 자연스럽게 '시드니 셀던'을 떠올리게 한다. 글쓰는 스타일이 너무나 흡사하다. 7~80년대를 주름잡았던 셀던의 작품들은 이후 수많은 소설가와 지망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데, 이 작가도 예외는 아닌듯 하다.

문제는 이미 셀던류의 스타일은 흘러간 트렌드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초중반부까지 짧게 끊어치는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와 드라마틱한 대사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하지만 마치 드라마의 하일라이트만 계속해서 보는 듯한 숨가쁜 전개에 오히려 감정이입이 안되고 점점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단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유불급이란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사전조사가 동반되었을 작가의 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또한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낼만 하다.  


이 작품의 모티프라 할 수 있는 붕대를 감은 반고흐의 두 가지 자화상

이 책에서는 특히 왼쪽에 있는 일본그림을 배경으로 둔 자화상을 둘러싼 암투를 그리고 있는데, 개인소장품이라고 한다. 덕분에 미술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자그마한 미덕이라 생각해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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