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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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2008년도 작품으로, 최근 국내에 출간되고있는 장르소설치고는 꽤 최근작에 속한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이 구 소련 스탈린 치하의 1950년대로 설정되어 있다. 놀랍게도 작가의 나이를 보니 약 30세에 집필한 것으로 나온다. 믿을 수가 없다. 냉전시대를 전혀 경험해본적도 없는 신세대가 어떻게 이런 소재를 택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반신반의한 상태로 페이지를 넘기는데, 초반 프롤로그 부분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이 책이 결코 얼치기 작가가 쓴 글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독자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글솜씨가 경이로울 정도다. 게다가 일말의 의문도 품기 힘들만큼 자신감있게 펼쳐보이는 시대상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는, 놀라움을 넘어 작가의 나이를 몇번이고 재차 확인하게 만들었다.

특히 주인공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묘사는 국가와 개인, 그리고 역사와 이데올로기 같은 여러 외부 요소들까지 복잡하게 녹여넣었음에도,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무게감이 넘친다. 활자에서 곧바로 영상으로 투영될 듯이 생생한 캐릭터 구축력과 군더더기없는 대사들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정말 오랜만에 입맛에 꼭 맞는 작품을 접하니, 더할 수 없는 포만감에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기분좋은 여운에 취해있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너무나 기대가 되고 하루빨리 번역되기를 기다린다.

<사족>
1. 리들리 스콧 감독이 판권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IMDb의 검색결과로는 아직 이렇다할 정보가 없다. 언제쯤 영화로 나오게 될지...

2. 스티븐 킹과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 동시에 열광한 경이적인 걸작이라... 본인도 아니고 '팬'이 열광했다라... 이건 뭐 출판광고계의 새로운 유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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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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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가는 영화로도 몇차례 만들어진 그 유명한 '퍼니셔'의 원작자라고 소개가 되어있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것을 입증할 만한 검색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요즘 장르소설들이 허위 또는 과장광고를 심심치않게 해대는 통에 괜시리 뒷맛이 찜찜해진다.

사소한 우려와 달리 이 작품은 초반부터 상당히 밀도있는 글솜씨를 보여준다. 주인공 부부의 미묘한 갈등과 주변 캐릭터들의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심리묘사는 탄성을 자아낼만큼 치밀하다. 그 반작용으로 내용전개가 다소 늘어지는 면도 없지않으나, 딱히 지루하지는 않을 정도의 흐름으로 조절되어있다.

흥미로운 초반부가 넘어가면 아무래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내용이 펼쳐지는데, 이 책이 2003년도에 발표되었음을 되새겨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악질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고자하는 정의의 수호자들... 이것은 그야말로 액션영화와 만화들의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러한 플롯은 필경 예정된 수순을 밟아야만 하는 단점을 안고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결국은 똑같은 범죄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예상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중후반부에 가서는 내용의 집중도가 많이 떨어진다. 처단해야할 범죄자들을 선택하고 사전준비하는 과정은 과감하게 줄이고, 오히려 위원회 동료들간의 갈등구조를 좀더 긴장감있게 살리는 편이 좋지않았나 싶다. 통쾌한 액션도 치밀한 심리극도 아닌 어정쩡한 모양새를 취하는 바람에, 단순명쾌하고 거세게 몰아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이 역시나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반부 주인공이 위원회에 합류하면서 동료들에게 쓰는 어투가 죄다 높임말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것이 전직 특수부대출신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야할 주인공의 성격을 오히려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만들고있다. 특히 갈등의 중심이 되는 두 형제를 상대로한 대화체는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팀의 리더이고 형제가 그를 따르는 역할을 하고있는 이상 당연히 처음부터 반말로 갔어야 이후의 흐름이 매끄러워진다.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이런 번역의 문제는 제발 더이상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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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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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늦게나마 출간되어 많은 호평을 받고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읽기를 망설였던 작품이다. 오래전에 영화를 먼저 접해버려서, 내용을 훤히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을 하지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인 관심으로 인터넷에서 영화를 입수하고서 자막을 직접 만들어가며 감상했던 추억이 있다. 혹시나해서 검색해보니 아직까지도 내가 만든 자막이 돌아다니고 있는것 같다. 물론 자랑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족히 수십번은 보았을성 싶다. 적확한 해석을 위해 같은 장면을 수없이 되돌려보면서 만들었으니 말이다. 당시에 내가 재미삼아 만든 자막이 서너 편 되는데, 하필이면 이 영화가 그 중의 하나다.

영화를 먼저보고 원작을 읽을 경우, 언제나 그렇듯 쉴새없이 오버랩되는 배우들의 얼굴과 영화장면들 때문에 초반부에는 몰입이 쉽지않았다. 하지만 마이클 코넬리만의 치밀하고 감성적인 글솜씨는 곧 소설만이 가지고있는 풍부한 매력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흡입력이 좋아서 책장이 정말 빨리 넘어간다.

후반부에 깜짝 놀란 것은 이 책의 결말이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범인까지 달랐다. 내내 영화와 비교하다 마지막에 뒷통수를 제대로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재미를 빼앗지않기 위한 그만의 작은 배려일까... 물론 책의 결말 쪽이 훨씬 설득력있고 자연스러워 마음에 들긴 하지만, 영화에서 선택한 결말도 '시인'이나 '실종'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작가의 스타일(의외의 범인에 집착하는)에 오히려 더 가까운 느낌이라 약간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장에 있는 작가후기에 보면 'Thanks to'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도 있다. 아마도 그는 이 작품의 집필단계에서부터 관여를 해왔던 것 같다. 역시 거장은 하루아침에 그저 이루어진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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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먼트 -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
워렌 페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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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추럴 셀렉션'이란 어이없는 졸작보다는 그나마 약간 나은 수준이다. 적어도 전체적인 플롯은 나름대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니 말이다.

역시 한 편의 크리쳐물 영화를 만든다는 기분으로 쓰여진 듯, 대사들이나 상황이 거의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느낌이다. 문제는 그 영화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정작 자세한 묘사가 필요한 괴물들과 인간들의 사투는 생략이 많고, 아디다스 운동화니, 바나나리퍼블릭 셔츠니 하는 등장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의상따위에는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쓴다. 대사들도 억지로 짜넣은 듯 작위적이고 재미가 없다. DNA, RNA니, 갑각류와 지구의 역사 등에 관한 자료조사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이것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넣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보니 지루하고 부담스럽다. 

몇몇 액션시퀀스는 긴장감이 있고, 속도감도 좋다. 하지만 부족한 필력으로 인해 미지의 세계와 여러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히 그려지지 않고,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후반부에 인간들과 소통하는 괴물들이 등장하면서, 이 소설은 리얼리티를 거의 포기하고 환상소설 수준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어차피 이럴거면 그 복잡스런 학문적 자료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남녀주인공의 유치한 로맨스와 분위기를 깨는 여러 인물들의 어색한 대사들,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맥을 끊는 구성과 강약조절의 미숙함 등, 전혀 프로수준에 못미치는 작가의 한계가 눈에 보인다. 거기에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작업한 듯한 눈에 거슬리는 번역도 단단히 한몫 하고있다.

<사족>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공원'은 아예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고, 그나마 덜 알려진 '콩고' 조차도 얼마나 잘쓰여진 작품인지 다시한번 깨닫게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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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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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는 본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긴장감을 놓지않는 노련한 상황전개와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묘사 등은 트레이드마크처럼 믿음에 부응한다.

다만 '시인'에서 딱 한가지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던 마무리부분이 이상하게 이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외의 범인을 내놓기 위해 너무 무리한 설정을 한 듯, 뒷수습이 제대로 안되는 모양새다. 범인의 목적에 비해 그 방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작위적인 느낌마저 든다.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완성도를 이미 경험했기에 기대치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점도 있겠으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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