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케이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림출판사에서 나온 아이사랑 012 시리즈중 <동그란 게 맛있어요!>를 읽고 난 후다. 달콤해 보이는 동그란 도넛의 표지를 넘기면 동그란 모양의 색깔, 케이크,비스킷 쿠키, 김밥등 동그란 모양의 음식과 색깔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다.



오른쪽에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를 보고 '이건 뭘까요?"라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한 장 넘기면 동그란 모양의 초코 케이크가 나오는데 '동그란 게 맛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빨간색, 노란색,알록달록 색깔들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읽어주는 엄마는 꼴깔꼴깔 침넘기는 소리로 정신이 없다. 이 책을 읽은 후 곧바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빵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원하는 모양의 케이크를 고르게 한 후 집으로 돌아왔더랬다. '생일에만 먹을 수 있는 케이크지만 우리 한번 먹어볼까'라며 아이에게 책속에서 정말 달콤한 이야기를 우리가 읽었노라고 알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책에서 케이크만 나오면 좋아하는 아이는 케이크과 관련된 책들을 부담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버찌야, 생일 축하해><스팟이 케이크를 만들었어요><구리와 구라의 빵만들기>등등 생일이나 케이크와 관련된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스팟이 아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마트에 장을 보러가고 집으로 돌아와 식탁을 왕창 어질러 놓으며 케이크를 만드는 장면을 보면 아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즐겁다면? 자~ 우리 만들어 보자~~!!




특히 <구리와 구라의 빵만들기> 책을 좋아했는데 이유는 구리와 구라가 빵을 만든 후 큰 달걀 껍질을 기차로 만들어 타고가는 엔딩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밥솥으로 40분 쪘더니 케이크가 완성 되었다. 생크림을 얹어야 진짜 케이크 기분이 났을테지만 그냥 간단하게 초만 꼽아서 놀이를 했다. 그런데 잠깐 방심한 사이 초를 두동강이 낸 아이. 정말 우사인볼트 보다 빠른 행동에 깜짝 놀랐다.




어쨌거나 아이의 3살에 맞게 노래도 불러주고 만들기 놀이를 종료했다. 이후 확장할 수 있는 주제는 많았다. 색깔과 모양찾기, 초 덕분에 수세기 놀이도 할 수 있지만 <구리와 구라 빵만들기> 덕분에 잔디밭에서 버섯 찾기 도토리 줍기, 솔방울, 나뭇잎, 꽃들 구경하기등 확장하며 놀이를 많이 했다.



아이랑 책을 읽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을 자주 보게된다. 그럴 때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니라 속상할 수 있지만 아이 나름대로 그림책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생각하며 아이의 관심사로 따라가 주는 것이 최고의 놀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 아이는 '버섯'에 관심이 많아 잔디밭에서 버섯을 보물처럼 찾는 일을 즐기고 있다. 이제는 먹어도 되는 버섯과 먹으면 안되는 버섯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이럴때 자연관찰책이 도움이 된다. 60권에 2만원대. 중고책으로 들여놓은 자연관찰책도 요즘 톡톡한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한때 자연관찰 책을 굳이 사야 할까 생각했는데 사두는 편이 좋다는 것에 한

표 던진다.



우리 아이에게는 아직 글자를 읽어주기 버겁다. 워낙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고 좋아하는 것만 보는 아이라서 글자를 읽어주다 보면 그냥 가버리기 일쑤이니까. 그림만 토대로 말을 만들어주고 익숙하고 좋아하게 된 책은 글을 조금씩 읽어주면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데도 자연관찰 책을 산 이유는 실사 그림이 정말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버섯을 좋아하게 된 아이에게 버섯 자연관찰 책은 최고의 호기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사진(그림)만 보고도 아이와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책과 놀자의 핵심이 아닐까. 글밥이 많아서, 아이에게 어려울 것 같아서 미루는 것 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적재적소에 아이와 함께 꺼내 볼 수 있어야 오래도록 함께 그림책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요즘 많이 느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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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오마이스 영향으로 하루 종일 우리 집 보일러 연통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잘 잤다 + 밥도 먹었다 = 34개월 에너지 파워 충전.



이미 고점을 찍고도 넘쳐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어쩔 줄 몰라 애벌레처럼 몸을 베베꼬고 다니며 방안 가득 물건이란 물건은 넘어뜨리고 보는 이 녀석과 하루 종일 방에서 지내야 하다니! 깊은 한숨만 몰아쉬고 있어야 하는 슬픈 현실. 슬픈 현실?


아니지 나는 전혀 슬프지 않다. 비가 오는 날이 너무 좋다. 왜냐면 아이와 할 일이 무궁무진하니까! 공짜 워터파크를 개장할 수 있으니까!!



▣ 준비물

아이 : 분무기. 우비.

엄마 : 젖어도 뱃살이 드러나지 않을 옷, 우산, 분무기

인내심 10리터

육아 난이도 : ★★★★



준비물을 잘 챙겨 놀이터로 향했다.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리지만 천둥, 번개만 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페파피그 처럼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리기, 분무기로 물총을 쏘며 잡기 놀이하기, 미끄럼틀 슬라이딩하기, 빗방울이 떨어지는 풀들 관찰하기, 모래밭에서 개미 찾아보기 등등 1시간가량 우리는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서 까끌까끌 거리고 분무기를 시소 태운다고 양쪽으로 올렸는데 균형이 안 맞아 자꾸 떨어져 짜증도 냈다. 미끄럼틀은 정말 미끄러웠는데 몸이 가벼운 아이는 평소보다 멀리 날아가 깜짝 놀란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깔깔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 워터파크가 별건가? 공짜로 돈 안 들고 마음껏 놀 수 있는 덤까지 챙겨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집 앞 놀이터와 비가 최고의 놀잇감이지.










1시간가량을 신나 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니 할 일이 태산이다. 아이를 욕조에 집어넣고 물을 틀어 여기저기 붙은 모래를 털어준다. 아이 쫓아다니느라 젖은 내 티셔츠와 바지도 모래를 탈탈 털어내고 2차 물놀이를 시작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 아이가 좋아하는 거품 놀이, 물감으로 여기저기 색칠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젖은 옷을 손빨래하고 모래가 들어간 신발을 정리하는 등 분주해진다. 다시 1시간가량 놀이가 끝나면 아이의 간식을 준비해 서둘러 먹이고 나야 비로소 쉴 틈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육아 난이도는 4. 체력 소모도 많고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렇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는 그 웃음소리가 많은 것들을 단련시켜 준다.



간식을 먹고 한숨 돌릴 때쯤

비와 관련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들고 한곳에 모아둔다. 그러면 엄마가 뭐하나 궁금해하던 아이가 쫓아와 책을 살펴보다가 원하는 책을 가지고 온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살펴보면서 오늘 일을  간간이 섞어 들려주면 가만히 듣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아이가 씩 웃는다. 놀았던 순간이 기억났나 보다고 생각해 본다.




나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강요하지 않는 편이다. 읽히고 싶은 그림책이 있으면 가만히 잘 노는 공간에 둔다. 그러면 어느샌가 호기심을 보인 아이가 읽어달라며 책을 들고 오면 호들갑스럽게 읽어주는 편이다. 우리 아이 성향이 워낙 활발하고(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원하는 그림만 보고 지나가버려서 억지로 보여줘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다. 아이가 책장에서 책을 다 뽑아 난장판을 만들어도 인내라는 쓰디쓴 약을 복용한 덕분인지 평소 잘 보지 않던 그림책을 들고와 읽어달라며 내 무릎에 척 앉는다. 그럴 땐 만사 제쳐두고 환영하는 식이다. 아이의 부쩍 늘어난 체중이 온몸으로 느껴질때면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기다림이 약이란 것을.



표지만 봐도 시원해지는 그림책 두 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번 구매 땐 잊지 말고 꼭 구입해야지.










집에 있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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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친구나 가족에게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지금보다 더 별나 보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찾은 피난처는 책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독서 습관은 아주 어릴 적부터 배어 있었다. 내가 지루하다고 짜증 낼 때, 나를 인도네시아 국제학교에 보낼 여력이 없을 때, 애 봐줄 사람이 없어 나를 데리고 일하러 가야 할 때 어머니는 으레 책을 내밀었다. 가서 책을 읽으렴. 다 읽고 나서 뭘 배웠는지 말해줘.

p27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을 계속하며 내 동생 마야를 키우느라 나를 하와이에 보내 외조부모와 몇 년간 살 게 했다. 잔소리하는 어머니가 없어지자 예전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고 성적도 금방 표가 났다. 그러다 10학년 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 아파트 맞은편 센트럴 유니언 교회의 바자회에서 오래된 양장본이 담긴 통 앞에 서 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관심이 가거나 막연히 친숙해 보이는 책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랠프 엘리슨과 랭스턴 휴스, 로버트 펜워런과 도스토옙스키, D.H, 로런스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책들이었다. 중고 골프채를 눈여겨보던 외할아버지는 책 담은 상자를 들고 가는 나를 보고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서관 열 작정이냐?"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조용히 하라며 문학에 대한 나의 느닷없는 관심을 대견해하면서도, 언제나 실용주의자였던 분답게 <죄와 벌>을 파고들기 전에 학교 숙제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나는 이 책들을 모두 읽었다. 때로는 친구들과 농구하고 맥주를 마신 뒤 집에 돌아와 밤늦게, 때로는 일요일 오후 보디서핑을 즐길 후 외할아버지의 낡아빠진 포드 그라나다에 홀로 앉아 좌석이 젖을까 허리에 수건을 두른 채 책을 읽었다. 바자회에서 산 책을 다 읽고는 다른 벼룩시장에 가서 더 읽을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 때 읽은 것들 대부분은 막연하게만 이해했다. 낯선 단어는 동그라미를 쳐뒀다가 사전에서 찾아봤지만, 발음은 깐깐히 따지지 않았다. 20대에 훌쩍 접어들고도 뜻은 아는데 발음하지 못하는 단어는 많았다. 나의 지식엔 체계가 없었다. 운율도 패턴도 없었다. 나는 집 차고에서 낡은 브라운관과 볼트와 남은 전선을 모으는 꼬마 기술자 같았다. 이걸로 뭘 할지는 몰랐지만, 내 소명의 성격을 알아내는 날엔 쓸모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P28




¶ 메모


2021년 8월 23일

책이 정말 무겁다. 두 손으로 들고 읽으면 얼마 못가 팔 통증으로 내려놓게 되고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읽으면 자세가 구부정해서 그것도 얼마 못간다. 그래서 독서대에 올려두고 읽는데 진도가 많이 나가지 못해서 책이 쫙 펴지지 않고 기우뚱하다. 이러나 저러나 불편한 무게 실로 오랜만에 온몸으로 채감하며 읽는 맛도 나쁘진 않지만 다음 개정판이 나오거든 무게를 줄이는 방향은 어떠실런지.


읽은 페이지까지 정리하자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유년기 시절의 회고하는 이야기. 그 중에서 백안관 관저 안에 있는 로즈 가든에 관한 시선도 좋았는데 백안관 가든에서 일한지 40년이 되었다던 에드 토머스와 첫 만남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핏줄과 마디가 나무 뿌리처럼 굵은 그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토록 문학적인 사람이었단 말이야? 라는 감탄의 끝에 어린 시절 책을 참 열심히 읽었다는 회고에 의문을 풀게 되었다. 역시 '책'이었구나. 힘든 사람, 아픈 사람, 즐거운 사람, 기쁜 사람. 외로운 사람, 좌절한 사람 등등 어떤 사람에게나 공평하게  즐길 수 있는 바로 그것! 물론 본인이 원해야 얻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지만.


전직 대통령의 글이라 읽기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편안하게 읽고 있다.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또 열심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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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9일.

독서일기 #8


육아를 시작하기 전 독서 스타일은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육아를 하고 늘 잠과 시간에 쫓기다보니 독서 시간은 줄어들고 줄어든 독서시간에 비해 읽고 싶은 책들은 늘 넘쳐났다. 하루는 읽고 있던 책이 있음에도 너무 궁금한 책을 펼쳐들었는데 그만 홀딱 빠져서 읽게 되었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어가던 찰라 또 다른 궁금한 책을 펼쳐들었다가 또 빠져들어서 읽게 되었다. 결국은 약 두 달에 걸쳐 찝적거리며 읽던 책들을 모두 읽었고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굳이 한 권의 책만 읽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자유로운 독서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문학과 육아와 투자서라는 하나의 연결점도 없는 주제들 사이에서 매일 관심사로  찝적대며 책을 읽고 있다. 아이가 커가면 내게 '여유'가 조금 생길 줄 알았는데 얼마나 헛된 희망이었는지 뼈져리게 느껴가는 나날들이다. 아이의 요구 사항은 더욱 거세고 거대해지며 아이의 체력은 슈퍼맨과 아이언맨 그 경계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궁금했던 책들을 이 책 저 책 조금씩 맛을 봤더니 그만 이렇게 쌓이게 되었다. 모두 즐겁기는 하다. 단 하나 이언 매큐언의 <스위트 투스>만 빼고.



요즘 정말이지 거대한 이야기, 스토리가 나를 집어 삼켜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육아와 떨어져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세계가 나의 책장, 내 책들 사이 어딘가에 존재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 한때 라이트 노벨이라 불리우는 <알바뛰는 마왕님>이란 소설을 즐겁게 읽기도 했다.


<알바뛰는 마왕님>의 간략 스토리는 인간 세계에서 군림하던 마왕이 용사에게 쫓겨 게이트로 도망쳤는데 도망친 곳이 일본이라는 설정. 그런데 일본에 왔더니 마력을 쥐어짜야 겨우 나오는 수준이라 한마디로 무일푼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 할 수 없이 여러가지 일을 하며 겨우 돈을 마련해 작은 집세를 얻고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식 직원이 되는 꿈을 품고서 열심히 알바를 뛴다는 스토리. 내용이 참신하고 재미도 있고 일본 거리와 문화를 잘 표현해서 내쳐 4권까지 재밌게 읽었는데 아마도 4권 말인가 5권쯤 부터 스토리가 점점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어지는 김에  잠시 쉬기로 하고  그 늘어지는 부분을 잡아줄 다음 책으로 이언 매큐언의 <스위트 투스>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세리나'에게 너무 실망한 나머지 매 장을 넘기면서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질척거리다가 결국 중간 부분에 덮고야 말았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라면 <속죄>와 <칠드런 액트>를 읽었기에 그간 보여준 그의 저력을 의심하지 않았건만 세리나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변태적 욕망이 빤하고 저속해보여서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거기다 더해 영국의 과거사에 한톨의 궁금증도 없었던 내게 탁상공론만 이어지는 늙다리 요원들의 토론은 어느 곳에서 웃어야 할지 알 수 없기도 했다. 읽으며 화가 부글부글 차올랐고 눈을 비벼가며 읽어보려고 노력했던 헛된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날려버릴 책 한 권을 책장에서 뽑아들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읽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약속의 땅>이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첫 느낌은 표지를 보고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과 책의 두께 때문에 흉기로 느껴졌다.  책의 페이지가 무려 800쪽이 넘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자서전 2권이 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몇 페이지 못 읽었지만  백악관에서의 생활과 8년간 임기를 지내며 갖게 된 생각들 사상들 관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들어가는 글부터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직후이자 미셸과 함께 마지막으로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옮긴이)을 타고 서부로 날아가 오래 미룬 휴가를 보낸 뒤였다.

p11 첫 문장.



나이 들며 참 고맙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한 권의 책을 사면 한 사람의 인생관을 통째로 사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책장에 꼽아두면 언제 어느 때나 만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읽었던 책으로 꼽자면  강방천 저자의 <관점>이 피터 린치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이 그러했다. 버락 오바마의 저서 <약속의 땅>역시 그런 책으로 분류되길 소망한다.  800페이지 종주하는 그날까지 이 느낌 그대로 가져가기를.




'해바라기 씨앗 초콜릿'을 손으로 집어먹던 아이가 갑자기 책을 읽고 있던 내게 다가오더니 (막을 틈이 없었다)  손으로 덮석 책을 잡아 쥐고 빼앗으려 해서 책에 초콜릿 자국이 남아버렸다.



말해두지만 나는 정말 책을 깨끗하게 읽는 걸 좋아한다. 책에 대한 결벽증 내지 강박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책에 여기저기 흔적이 남게 되고 때론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많아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읽는 것은  꿈도 못꾼다.  이런 사정으로  훌쩍 늘어난 책 구입  덕분에 책장에  책이 넘쳐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지만 육아가 끝나는(그런 날이 오려나?) 그날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것임을 기록해두는 바이다.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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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말이 늦어요 - 집에서 직접 하는 엄마표 현실 언어치료
서유리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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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말이 솟아나올 것 같은 기분, 참 오랜만에 느낀다.

왜냐하면 책을 읽으며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 서유리' 님과 그녀의 아이 '꿈'이에게 화가 났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평균적이라고 말하는 영유아 검사 항목에 화가난 것이다. 대체 이런 기준은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예전에 딱 한번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 아이는 또래에 비해 발달 상황이 늦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발달이라는 것은 그것도 영유아 발달이라는 것은 아이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면 어느 정도 너그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영역에서 체크할 부분이 없던 아이였기에 그대로 제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간호사분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오시면서 이렇게 제출하면 점수가 너무 낮게 나온다면서 고쳐보라고 다시 돌려주시는 게 아닌가?  영유아 검진이라는 것은 아이의 발달 상황을 체크할 뿐 아니라 문제되는 상황은 없는지 체크할 수단이어야 한다. 혹시 언어적인 발달 지연이 자페적인 성향(혹은 또다른 발달상의 특정한 문제)의 문제는 아닌지를 관찰하는 '도구'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영유아 발달 영역이라는 틀에 끼워맞춰 아이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볼 문제다. 상담을 통해 아이에게 특별한 문제는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혹시 이후에 언어 발달이 늦는다면 그때는 전문 기관에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는 조언을 얻었을 뿐이다. 



33월 우리 아이의 언어 발달은 또래에 비해 꽤 늦은 편이다. 처음 엄마라는 단어는 정말 일찍 터졌고 꽤 오래 지나서 아빠라는 말을 하다가 다음 말이 오빠였다. 내가 신랑을 부르는 소리를 흉내내는 소리였는데 자동차를 밀고 다니면서 '엄마아빠오빠'라며 중얼중얼 매일 반복 되었다. 그러다 30개월이 넘어서야 '안해, 안먹어, 안가, 와봐'라는 단어를 표현하긴 하지만 아주 가끔 부정확한 소리로 말을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언어치료 센터를 다녀볼 수 있지만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언어가 발화되어 나오는 과정은 오직 '아이'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뜸을 들이는 심정으로 딱 아이의 세돌 까지만 기다리다가 그래도 발전이 없으면 여러 기관에 도움을 받아볼 생각이다. 



이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 포인트는 아이의 발달 상태가 이전보다 변화되고 있는 것인가를 체크하는 일이다. 한 달 전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되어 가고 언어를 이해하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면 수행할 수 있는 이해력이 향상되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사회성(상호작용)이 발달해가고 있는가를  체크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 아이는 꾸준한 변화가 보인다. 확확 눈에 띄게 보이진 않지만 그전에 표현하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에 소통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너무 활동적인 아이고 흥이 많은 아이라 눈마주칠 시간이 없었는데 요즘은 부르면 꽤 눈을 맞추고 입을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져간다. 그러면 단어를 말할 때 천천히 길게 말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의 언어가 자연 발화되어 빛을 보여주지 않을까.



나는 왜  책에 화가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책의 표지에 적인 "치료"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에 등장하는 아이 꿈이의 성장을 보면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인다. 엄마의 언어 개입이 아이의 발달에 자극을 주었고 더 많은 발화가된 힘이라고 판단된다. 24개월에 말문이 트이지 않아 걱정이었지만 33개월에는 표현하는 단어가 제법 되었다. 영유아 발달 검사를 토대로하자면 비교적 늦은 수준일지 몰라도 우리 아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꽤 발화가 된 상태였으며 엄마의 놀이 활동 덕분에 더 많은 표현이 가능하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굳이 '치료'라고 해야하나? 생각해볼 문제다. 차라리 '엄마표 언어놀이'라고 했다면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치료'라는 단어를 쉽게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직 작고 작은 씨앗 같은 아이를 대상으로 말이다.



 아동 복지과를 졸업하고 유아교육 기관에서 5년여 정도를 근무하며 참 다양한 아이와 부모님을 만났다. 다 꽃같이 이쁘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들이었지만 같은 연령 같은 개월 수라도 아이들의 발달 상황은 천차만별 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다들 각자만의 방식으로 성장을 해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보육 환경과 양육 시스템이지만 더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은 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어른들의 역할인 것 같다. 아이에게 특정한 발달의 문제점을 필히 체크하되 그게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기다려볼 수 있는 기다림, 그것은 양육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언어 발달이 느린보 같은 내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하는 말이자 지키고 싶은 다짐인지도 모르겠다. 기다리겠노라고. 네 스스로 빛처럼 환하게 발화되는 그 시간까지.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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