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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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한 때는 '지知'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84쪽

당시 성서는 교회에서 사제가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한 지식의 독점이 교회의 위선적인 권력 구조의 온상임을 간파하고 지知를 되돌려주려고 한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본질입니다. ........

신과 일대일로 마주한다는 것은 성서를 통해 신 앞에 직접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엄격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다른 한편으로는 신(혹은 예수)과 일대일 대면이라는 엄격함과 중압감에 짓눌려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96-98쪽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성욕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민중을 지배하던 중세에는 표면적인 교리 및 원칙과 달리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꽤나 느슨한 편이었습니다. 중세의 성욕에 대한 느슨한 통제는 14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한데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이 갖고 있던 이러한 '느슨함'을 잃어버렸습니다. ....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를 필두로 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전통이 강한 유럽사회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성에 관해 발설하는 것이나 성적인 행위를 일절 금지했습니다. 그런 성적 도덕관념은 신분이 높아질수록 더욱 엄격해서 상류층에 속한 여성들은 철저한 금욕 생활을 강요받았습니다. ...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는 여성들의 히스테리가 너무도 심해서 그 원인을 프로이트를 비롯한 여러 정신분석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할 정도였습니다. -99쪽

칼뱅의 예정설에 따르면 신은 구제할 인간을 사전에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결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행을 쌓아도 바꿀 수 없습니다. 노력과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결과가가 정해져 있다면 힘써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에서 염세적이 되기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예정설의 신기한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히려 칼뱅파 프로테스타튼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선행을 쌓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전능하신 신이 끊임없이 선행을 이루는 인간을 구제하지 않을 리 없다.'는 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입니다. -103쪽

교회가 지식을 장악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교회가 허용하는 지식 외에는 접할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지식에 대해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근대가 되면서 지식은 교회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 남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거나 돈을 내고 책을 사지 않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121쪽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인 MIT의 강의도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 '정보의 무료화'는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도 당연히 증가하게 됩니다. .... 그 결과 그러한 딜레마를 극복한 사람은 엄청난 부와 막강한 힘을 거머쥐게 되지만 그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은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정보의 무료화'라는 공평해보이는 조건이 사실은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아이러니한 겨로가로 이어지는 것이죠.-122쪽

맛집 순례는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아로마테라피는 후각과 촉각을, 그리고 발반사요법foot massage은 촉각을 자극하는 것처럼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업신여겼던 신체적인 감각, 특히 시각 이외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125쪽

제국의 지배력이 약해지거나 착취가 정도를 넘어서면 잠자고 있던 '민족의 자긍심'이 눈을 떠 독립을 외치게 됩니다. -153쪽

이슬람제국의 경우 '알라 앞에서의 평등'이 제국 지배를 지탱해주었습니다. ... 그러나 7세기 후반 우마이야 왕조 Umayya, AD 661~750 시대가 되자 이민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해도 아랍인과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랍인과 이슬람교도는 세금이 면제되는 데 반해 피정복 민족은 개종과 상관없이 세금이 부과됩니다. 그러나 아랍인 중에서도 알라의 가르침에 반하는 이러한 강권정치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마이야 왕조는 무너지고, 750년 아부 알 아비스 Abu al-Abbas를 초대 칼리프로 하는 아바스 왕조가 드러섭니다. ...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이러한 평등한 세법이 이후의 이슬람 왕조에서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슬람교는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고, 제국은 번영을 유지하게 됩니다. -154쪽

제국은 물리적인 힘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카이사르 당시의 로마제국이나 전성기의 이슬람제국처럼, 제국을 오래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피정복민에게도 다소의 이점이 느껴지도록 하면서 지배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158쪽

일본의 상속세는 할아버지에서 아들, 손자로 내려가면서 세금으로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을 정도로 세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정치가는 2대, 3대 계속할 수 있습니다. -172쪽

이렇듯 문제가 많고 모순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기관차는 도대체 왜 멈추지 않는 걸까요? ...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인데 반해 사회주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179쪽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욕망'을 중시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여기에서의 욕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욕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 다양한 욕망들이 모여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며 시나브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180쪽

교육과 사회계급에 대한 고찰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사상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부르디외는 돈으로서의 '자본'뿐 아니라 '사회관계자본'이라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사회관계자본은 돈으로서의 자본 이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관계자본이란 간단히 말해 '인맥'을 말합니다. ... 또한 그는 '문화자본'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것은 계층에 따라 좋아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데 그는 '구별짓기'라는 책에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듣는 것은 계층이 높은 사람, 대중음악을 듣는 것은 계층이 낮은 사람, 하는 식으로 취미도 계층에 따라 차별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93쪽

사회주의의 실패를 러시아혁명(1919) 직후부터 예언한 인물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소개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ber, 1864~1920 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의 강연록을 바탕으로 출간된 '사회주의'는 1918년 6월 빈에서 오스트리아의 장교단에게 했던 연설을 정리한 것으로, 분량은 적지만 내용은 매우 탄탄한 양서입니다. 여기서 베버는 관료제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사회주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 라고 주장합니다.

==> 베버는 1920년에 죽고, 독일에서는 1919년 나찌가 집권하고, 소련은 1991년에야 망한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건가-204쪽

막스 베버는 '사회주의'에서 "관료제화는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도 공통적으로 흐르는 역사의 필연이자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 실제로 관료제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고착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실패로 귀결됩니다. 사회주의에서는 무엇이든 국영화하면 관료의 감독 아래 놓이고, 생산은 국가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므로 공산당정부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추진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에 대해 베버는, 관료제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는 경쟁원리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관려제에서는 능력보다 지위와 역할이 중시됩니다. 예를 들어 능력이 떨어져도 일단 어느 정도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의 부정은 사람들로부터 일할 의욕을 빼앗아갑니다. 노력하든 하지 않든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단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일에 골몰하게 됩니다. -208쪽

이 책의(사회주의) 마지막 장에 역자인 하마시마 아키라는 해설-'사회주의를 둘러싼 베버의 사상과 행동'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합리화는 관료제적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미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해 부자유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고유의 숙명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에 의해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 틀림 없다고 베버는 생각한다."-210쪽

소련에서도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5년 동안 달성해야 할 목표와 구체적인 방법을 정한 뒤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로는 5개년 계획이 대성공으로 끝났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하고 보고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처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숫자를 조작해 거짓보고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211쪽

자본주의를 자본가에 의한 착취라고 비난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상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결과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착취의 나라'로 만들어버렸으니 엄청난 모순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212쪽

소련도 북한도 한때는 자신들이 유토피아, 즉 꿈의 낙원을 지상에 건설하고 있다고 굳게 믿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고안해낸 '공산주의' 사상,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려 했던 레닌의 '사회주의'에서 목표로 내걸었던 평등은 인간사회를 위한 하나의 이상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정론'이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로부터 착취당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 이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못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할 여지도 없습니다. 바로 이 '잘못되지 않았는데도 결과가 잘못되어 버렸다'는 점에 사회주의가 가진 '개미지옥'으로서의 공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213쪽

(1차 세계대전 이후) 극도의 인플레이션은 독일 경제를 몰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중류로 살았던 사람들은 하류로 내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하층으로 밀려났어도 그들은 '우리는 하류층과는 다르다'라는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그 하류층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사회주의 혁명을 할 수 없다, 자신들은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 계층이다, 하며 하류층과 단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간층 특유의 계층의식을 간파하고 그 틈을 치밀하게 파고든 것이 바로 히틀러와 나치스였던 것입니다. -217쪽

히틀러의 선전에 관한 사고방식의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 다음과 같은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전은 모두 대중적이야 하며,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이 목표로 하는 대상 중 최하 부류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조정되어야 한다.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정해야 한다. 따라서 획득해야 할 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한 지적 수준은 그만큼 낮게 해야만 한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진지하고 냉철한 사고나 이성보다 감정적, 혹은 감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여성적 기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며 폐쇄적이다. .... 긍정 아니면 부정이며, 사랑 아니면 미움이고, 정의 아니면 불의이며, 참 아니면 거짓이다ㅏ.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든가, 혹은 일부분이 그렇다는 일은 없다.
-223-226쪽

근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런(자연 숭배 신앙) 고대인을 미개하다며 경멸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인류가 지구 환경을 무참히 파괴함으로써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된 지금 오히려 그런 위대한 힘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243쪽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 때로부터 불과 4,5천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근대 합리주의가 등장한 지도 불과 몇백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이 다시 종교로 돌아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릅니다.-243쪽

중세의 교회는 '신에 대한 죄'라는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의 성생활에 개입하고 최종적으로는 성을 단속하는 센터와 같은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또한 그것으로 사람들이 범한 죄를 고백하게 하는 묘한 시스템을 만들어 '중세 세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이러한 교회의 권력 침투 형태를 치밀하게 분석해 통렬히 비판합니다. 욕망이나 성적인 문제에서 가장 먼 곳에 있어야 할 성직자가 성적인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그것도 비밀리에 다양한 성생활을 고백 받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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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보았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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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벨은 주장했다.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를 가르치며 안 된다. 수화를 배우게 되면 구화법(口話法. 독순술. 입술 읽기. 입술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기술)이나 말하는 법을 익히지 않게 된다. 결국 청각장애인끼리만 어울리게 되고, 비장애인과는 영원히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된다. 말을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수화를 금지해야 한다.

벨의 반대편에는 ‘갤러데트’가 있었다. 청각장애인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이 워낙 힘들어서 1주일에 수십 시간을 쏟아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일반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말하기의 이점이 묻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기껏해야 말하는 법을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한 문맹자를 키워내는 꼴이 되지 않을까?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는 언어다. 수화로 그들에게 고등학문을 가르치면 청각장애인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두 명 모두 청각장애인 어머니를 두었고, 둘 다 수화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틀려 보이지 않는다. 두 의견의 절충적인 방법은 없을까? 혹시 절충을 하면 두 방법의 단점만 나타나진 않을까? 나라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청각장애인을 우리는 농아(聾兒)라고 부른다. 농(聾)은 귀머거리란 뜻도 있고 어리석다는 뜻도 있다. 영어의 deaf도 귀머거리와 멍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예언자나 점쟁이로 여기는 것과는 사뭇 다른 취급이다. 그 이유는 귀가 들리지 않으면 뇌에 ‘언어 영역’이 발달하지 못하게 되고 언어 없이 성인이 되면 청각장애인은 언어 없는 인간이 된다.

언어가 없다고 해서 인간이 머리가 없는 존재가 되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대신 생각의 범위가 심하게 제한되고, 자기 주위의 아주 작은 세계만 지각하며 살아간다. 성장기 때 언어를 접하지 못한 청각장애 어린이는 질문이나 의문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물의 명칭에만 집착한다. 즉, A사과, B사과를 각각으로 여길 뿐 사과라고 일반화시키지 못한다. 나아가 사과와 배는 과실의 일종이라는 상위의 범주로 도달하지 못하고 감각적인 세계에 머문다. 어제와 1년 전도 구분하지 못한다. 수화를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에게는 지금 이 순간에만 삶이 존재할 뿐이다. 시간적인 요소, 일반화, 범주화를 시키는 능력이 부족하니 가설을 만들지 못하고, 이는 자연히 인과관계를 정리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떨어지게 만든다.

 

수화는 언어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등한 언어다. 우리가 어떤 말을 들었을 때는 전후 상황을 파악해서 그 말의 의미를 판단한다. 특히나 어린 시절에는 의미를 대략적으로만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평생 이렇게 대략적인 이해만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를 통해 받는 교육은 다르다. 수화를 통해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뿐이다. 개념을 분석하면서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사용하는 선생님과 함께 개념을 분석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감각적인 개념에서부터 추상적인 생각으로 청각장애인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1880년대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주장이 승리하며 미국에서 수화 교육은 금지되었고, 청각장애인은 암흑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 1950년대가 되어서야 수화는 다시 청각장애인에게 허용되었고, 청각장애인 중에서 대학교 교수도 나오고 학장도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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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보았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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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바네사는 다른 아이들이 대화나 자유로운 독서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당장은 아무 필요 없는 잡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다. 바네사가 아는 것은 거의 모두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이었다. 이것이 들을 수 있는 아이들과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타고난 아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다. -35쪽

어떤 말을 들었을 때의 상황을 감안해서 말의 의미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에는 의미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평생동안 이렇게 대략적인 이해만으로 만족한다. 드 레페가 가르치는 청각장애인들은 다른다. 그가 학생들에게 감각적인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 뿐이다. 그런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학생들이 자신과 함께 분석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그는 감각적인 개념에서부터 추상적인 생각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드 레페의 행동언어가 우리 가정교사들의 소리 언어보다 얼마나 유리한지 우리가 직접 판단할 수 있다.-46쪽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이것은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말을 하지 않고 수화만 사용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랬다가는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로지 다른 청각장애인들하고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수화 대신 말하는 법(과 입술 읽기)을 가르쳐서 청각장애인들이 일반 사람들 속에 완전히 섞여 들어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을 하는데에 방해가 되지 않게 수화를 금지해야 하지 않겠는가?-51쪽

말을 가르치는 것이 워낙 힘들어서 1주일에 수십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일반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말하기의 이점이 묻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기껏해야 말하는 법을 한심하게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한 문맹자를 키워내는 꼴이 되지 않을까? 사회적 통합과 교육 중에 어느 편이 더 나을까? 말하기와 수화를 결합시킨다면 이 둘을 다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 두 가지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두 세계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만 끌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52쪽

개들은 언어를 모르는 자신들의 상태에 완전히 만족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실어증 환장들은 심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것은 조지프도 파찬가지였다. 조지프는 자시에게 뭔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 자신이 불구이며 결함 있는 존재라는 느낌에 괴로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 조지피는 질문이라는 '개념'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 조지프는 '하루 전'과 '1년 전'을 구분하지 못했다. ... 조지프가 생각하는 삶에는 자전적인 요소나 시간적인 요소가 없어서,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삶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70쪽

인간은 언어가 없다고 해서 머리가 없는 존재가 되거나 정신적으로 결함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의 범위가 심하게 제한되기는 한다. 사실상 자기 주위의 작은 세계만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72쪽

"생각은 말로 구현되는 순간 죽어버린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3쪽

마시외는 숲속을 걸으며 사물의 이름을 알게 됨으로써 세상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일반화의 힘을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셈이다.
==> 에덴 동산 아담과 이브 놀이?-82쪽

언어 능력의 습득에 완전히 실패해서 언어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잇을 수 있다. 기독교 교회가 우리에게 일께워주고 있듯이 언어는 단순히 재주나 기술이 아니라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고, 생각과 생각이 아닌 것을 구분해주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수단이다.
자신이 어떻게 언어를 '습득'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아름다운 신화일 뿐이다. -97쪽

혼자서 언어를 습득할 수는 없다. 언어 능력은 독특한 범주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특별한 선천적 능력이 없으면 언어를 습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능력을 활성화해줄 있는 것은 이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다른 사람 뿐이다. -98쪽

비고츠키는 이것을 "인접한 발달영역"이라고 불렀다. 아기는 어머니가 먼저 다음 단계를 차지하고서 전해주지 않는 이상 다음 단계로 앞장서서 나아갈 수도 없고, 다음 단계를 상상하지도 못한다.-99쪽

많은 청각장애 어린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도 질문을 금방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명칭에 집착하며, 자기들이 내놓은 답에 '핵심적인 의미'를 담지 못한다. 그들은 인과관계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놓을 때가 거의 없다.
많은 아이들이 이렇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
질문하는 능력의 뿌리, 활발하게 탐구하는 기질의 뿌리는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경험의 충격에서 직접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 뿌리는 대화에서 기인하며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자극을 받는다.-102쪽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직접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문화에 의해 조건화된다. 우리 언어가 우리의 세계관, 즉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구축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이것은 벤저민 리 워프가 내놓은 악명 높은 가설이다. -114쪽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일반 어린이들이 제1언어로 수화를 습득하는 경우, 소리가 들리는데도 시각이 놀라울 정도로 강화된다. 그들은 상당히 다른 형태의 두 가지 정신적 기능에 접근하거나 두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두 개의 언어만이 아니라 '두 개의 정신'까지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152쪽

슐레진저의 설명에 따르면, 기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청각장애인은 질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물건들만을 지칭할 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우발적인 일들을 상상하지 못하고, 가설을 만들지 못하고, 상위의 범주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개념이 생기기 이전의 감각적인 세계에 갇혀 있다. -154쪽

최근 메릴랜드 주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에서 교육실험이 있었다. 귀가 들리는 어린이들의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과 유치원 교육과정에 수활를 도입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금방 수화를 습득할 뿐만 아니라 즐거워한다. 그리고 수화의 습득과 더불어 읽기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도 실력이 크게 향상된다. 읽기 능력, 즉 단어와 글자의 형태를 인식하는 능력이 이렇게 향상되는 것은 수화를 학습할 때 나타나는 공간분석 능력의 강화에 동반되는 것일 수 있다. -158쪽

클레르크가 말하는 '하느님' '피조물' '자연'의 개념(겸손하고,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고, 온화하고 분노가 없다)은 아마도 그가 자신을 비롯한 청각장애인들이 남들과는 다른지만 그래도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반쯤은 끔찍하고 반쯤은 프로메테우스 같은 분노와는 크게 대조적이다. 벨은 언제나 청각장애를 속임수, 상실, 비극으로 보았으며 청각장애인의 '정상화', 하느님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 그리고 포괄적으로 자연을 '향상시키는 것'에 줄곧 관심을 보였다. 클레르크는 문화적 풍요로움, 관용, 다양성을 옹호했고, 벨은 기술, 유전공학, 보청기, 전화기를 옹호했다. 이 두사람의 유형은 완전히 정반대지만, 둘 다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몫이 있음은 분명하다. -210쪽

그 부소는 학생들에게 면접시험을 연습할 기회를 주겠다고 밝힌 곳이다. 원래 계획은 진짜 면접에 응해서 요령을 배우자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학생이 그 부서를 찾아가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 올렸다. 그 다음날 그 부서의 여직원이 전화해서 그에게 면접 약속을 잡고, 통역도 구하고, 그를 태워줄 차도 수배해두었다고 말했다. ... 그녀는 학생이 왜 자기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따.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면접을 신청한 것은 직접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법, 차를 구하는 법, 통역을 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인데 당신이 내 대신 그 일을 다 해줬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213쪽

178P 갤러데트 이사회는 엘리자베스 앤 진서를 총장으로 선임했다.
진서 박사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행동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다. 박사는 자신도 이사회도 이토록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시위가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진서 박사는 -214쪽

[갤러데트의 교수가 한 연설]
갤러데트에 청각장애인이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적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거의 모든 흑인 대학의 총장은 흑인이고, 이는 흑인들이 스스로를 이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거의 모든 여자대학의 총장 역시 여성이라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이끌 능력이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갤러데트는 청각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이끌고 있다는 증거로서 이미 오래전에 청각장애인 총장을 선임했어야 합니다.-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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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 시공 아크로 총서 7
조너선 글랜시 지음, 강주헌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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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도판과 사진으로 보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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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성서 시공 아크로 총서 8
존 보커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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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릿지대학교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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