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양치기에게 발견된 군신(軍神) 마르스의 아들들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세력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로마를 분할 통치하기로 하였다. ...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싸움이 벌어진다. 로물루스가 세력의 '경계' - 이것이 모두스의 두번째 의미이다 -를 나타내기 위해 팔라티누스 언덕과 아벤티누스 언덕 사이에 파 두었던 도랑을 레무스가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로물루는 모두스를 무시한 레무스를 죽였고, 팔라티누스 언덕 주변에 성벽을 쌓아 그것을 도시(civitas)로 만들었다.
==> 성경 창세기 아담의 아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추방되어 성을 쌓았고, 로물루스는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정복하여 성을 쌓고 로마의 시조가 된다.-44쪽
그러나 결국 그는(율리우스 카이사르) 루비콘 강을 건너기로 결심한다. 모두스를(modus 방법,경계) 파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모두스에 걸려 죽느냐, 아니면 자신이 새로운 모두스를 만드느냐뿐이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45쪽
로마인들은 행복했다. 자신의 몸을 바쳐 지켜내기만 하면 자신의 불멸성을 보장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제국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 거래를 통한 이익이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각인되었다는 것, 이 점이 로마를 지탱한 근본적인 힘이었다. 이러한 로마가 무너졌다는 것은 불멸성 보장체제가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이 붕괴는 한순간에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게 아닌데'라는 의심은 헌신의 감소를 낳고, 헌신의 감소는 또다시 체제의 허약함으로 귀결되고, 그러다가 로마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것이 더 이상 자신의 무상성을 보상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로마라는 도시 경계선을 벗어나 각자의 체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 국가를 이루고 살았냐는 듯이, 저마다의 섬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기존 체제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현실에 다시 체제를 세우려는 엄두를 쉽제 내지 못한다. 서양 중세에서는 더욱이 그런 시도가 쉽지 않았다. 현실에세 체제를 세우려는 의욕 자체를 어이없게 여기는 종교의 힘이 그들을 제압하고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 동양의 유교는 "족보"를 통해 충효 강조-52쪽
그러나 신비주의는 고작 허무주의로 귀결될 뿐이요, 중세는 어렵게 회복했던 이성을 '신성한 무지'의 제물로 바치게 되고, 합리주의적 과학은 경건한 믿음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리하여 파리 대학의 학장이었던 장 제르송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많은 사람들이 학문을 얻기 위해 힘들게 애쓴다. 그리고 나는 그것(학문) 또한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은) 정신을 힘들게 하는 일일 뿐이다. 이 세상 자체가 지나가버릴 터인데, 이 세상 만물에 대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마지막 날에는 네가 무엇을 알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행했느냐를 물을 것이며, 네가 가게 될 지옥에는 학문도 없을 터인즉 헛된 수고를 그치라.
==> 성경 구약 전도서 패러디.-60쪽
프랑스 혁명으로 상징되는 근대 이전에는 세계가 너무도 단순하고, 인간의 삶이 자연에 거의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텍스트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텍스트는 그저 귀족들의 여유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반면, 근대 이후의 세계는 너무도 복잡해지고 세계를 움직이는 힘 자체가 다양해져서 텍스트가 개입해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 이래저래 텍스트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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