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어디에

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제목과 책 설명을 보고 SF소설을 기대했었다. 소녀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라는 말을 보면서도 지구의 이상현상과 관련된 내용일테니 아마 SF적인 요소가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춘기의 소녀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기는 하지만 배경이 남달라 작가가 어떻게 그려나갈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어 한숨에 다 읽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가 천천히 자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뉴스로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알린다. 지구는 이제 더 이상 일할 기운이 떨어져 천천히 움직이는 노인들처럼 그 움직임이 느려진다. ‘슬로잉’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이런 지구의 변화를 사춘기에 막 접어든 어린 소녀의 눈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지구의 슬로잉현상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현실세계에서도 백야현상이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으니 슬로잉은 별거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로잉 현상으로 중력에 변화가 생기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조금씩 시간이 늘어나던 것이 하루가 40시간, 72시간으로 자꾸만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낮과 밤의 길어진 현상과는 상관없이 하루 24시간 체계인 ‘클락타임’을 따르라고 발표한다. 깜깜한 밤에 등교하거나 출근하기도 하고 해가 떠 있을 때 잠을 자야하는 일이 벌어진다. 정부의 ‘클락타임’체제에 반대하고 자연현상을 따라 살아가는 ‘리얼타임’을 고수하는 집단이 생겨나 두 집단간에 갈등이 빚어진다.

새들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고, 고래는 바닷가로 몰려 나와 숨진다. 슬로잉현상이 심해지면서 사람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두통과 메스꺼움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완전히 기력을 잃고 숨질 수도 있는 ‘슬로잉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는다. 나무와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곡식도 모자라게 된다.

슬로잉현상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친구, 아빠의 외도, 슬로잉 증후군에 걸린 엄마, 지구의 변화, 다른 사람들의 이상행동 등의 주변 상황에서도 줄리아에게는 친구가 없는 학교생활이 힘든 것이 더 큰 두려움이고, 세스에 대한 짝사랑이 중요한 문제이다.

작가가 사춘기 소녀의 눈을 통해 어떤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단순히 소녀의 성장소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줄리아가 겪는 사춘기와 지구의 슬로잉은 다른 듯 닮아있다. 사춘기도, 슬로잉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하는 과정을 겪고,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 않는가

왜 기적의 세기일까? 지구는 슬로잉현상으로 자전주기가 길어져 힘들고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할텐데 어떤 점에서 기적일까? 상당히 의문스러웠다.

이 험난한 시기를 겪는 줄리아에게는 그 순간순간들이 전부 기적(Miracles)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