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다면 적응하라”
- 『10년 후, 한국』 (공병호, 해냄, 2004년)


공병호의 글은 아주 쉽습니다.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신자유주의자 석학들의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학식이 높으며, 국내 굴지의 전경련 부설 연구소 소장까지 역임한 화려한 경력에 상관없이 그의 글을 아주 대중적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얘기도 대중의 눈높이에서 아주 쉽고 간결하게 풀어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그의 책을 접하게 되고, 그래서 쉽게 그의 얘기에 고개를 끄떡입니다.

공병호의 글은 현실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신자유주의가 무엇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 만큼 명쾌하고 자신감 있게 지적한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는 전공인 경제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 외교, 노사관계, 세대갈등 등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인용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강조합니다.
“살아남고 싶다면 이제 현실을 직시하라”

공병호의 글은 아주 비타협적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더욱 진취적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가야 하는데, 대중의 원시본능을 자극하면서 감성적인 대중선동을 일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사회에 아직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는 이런 시대착오적이며, 한국사회를 침몰로 몰아가는 소위 ‘진보진영’과는 일고의 타협도 없다고 강변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소수의 선각자들이 이론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럼 그가 지적하는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한 가지를 들어봅시다.

현대적 의미로 좋은 시절이란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곳을 향해 분출되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시장에서 기회를 읽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좋은 시절에 해당할 것이다. 그들이 감수한 위험의 대가로 여러 사람들이 혜택을 나누어 갖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그런 사회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반대로, 좋지 못한 시절이란 어떤 때일까? 행동한 적도 없고, 행동하고 있지도 않으며, 다만 입으로 선해(善行)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절이 그런 때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어려움을 감내할 만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축적한 부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들은 '욕먹어가면서 누구 좋으라고 사업을 하나'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 생산적인 활동 대신 투기 열풍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반복, 순환될 것이며 돈을 안전한 곳에 넣어둘지는 몰라도 사업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안정 지향적인 성향은 사업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직업 선택에도 나타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의대나 한의대를 최우선으로 친다. 나는 가끔 공급 과잉 때문에 한 집 건너 개인병원이나 한의원이 즐비한 동네는 상상하곤 한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나 공무원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고시와 자격증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리 사회가 안정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안정이란, 부를 나누어 갖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많은 변호사가 있다 해도 그들이 새로운 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들은 존재하는 부를 나누어 갖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이 위험을 피해 안정을 취하는 쪽으로 간다면 그 사회는 정체를 벗어날 수 없고, 나는 향후 10여 년 간 이런 추세가 계속 되리라고 본다.

정말 너무 분명하고 날카롭지 않습니까?
사회가 끝임 없이 부를 창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모두들 현실에 안주하면서 부를 나누어 가질 생각만 하니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가정신’을 활성화해서 사회의 창조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가 무엇이 문제인지 그가 적어놓은 소제목을 살펴봅시다.
‘주력산업이 흔들린다’ ‘떠나는 기업들, 사라지는 일자리’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약진하는 진보진영’ ‘제대로 된 시대정신이 없다’ ‘위험한 민중주의의 유혹’ ‘약진하는 노동조합’ ‘한국의 교육, 희망은 있는가’ ‘악화되는 재정적자’ ‘대미 외교, 감정만으로는 안 된다’ ‘시대를 거스르는 민족주의’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 ‘세계화, 결코 피해갈 수 없다’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차이나 쇼크’ ‘길어가는 세대간 갈등’
어떻습니까? 한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한때 ‘한강의 기적’이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니 하면서 칭송받던 한국사회의 현실이 왜 이 지경이 되어버렸을까요? 그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이성의 힘이 부족하고 감성에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원시 본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문명화된 나라라 하더라도 역사의 어느 기간은 사회주의화를 실험할 때가 있다. 바로 원시 본능이 집단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때이다. 시장경제와 관련된 지적 인프라가 척박한 이 땅에서 우리는 원시 본능의 화려한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생각처럼 우아할 수는 없다. 그곳에는 번잡함과 혼란스러움, 불평등과 비열함 등 온갖 종류의 악행들이 널려 있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세상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더럽기만 하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을 벗어나 완벽한 세계를 꿈꾼다.
그 같은 동경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상상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대개 단번에 모든 것을 일소하는 '싹쓸이'의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개량이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이상향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은 결코 시장경제와 함께 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체제에 감사하기보다는 상대적인 불평등에 불만을 터뜨리기 쉽다. 원하는 조건이 만족되지 못하면 그 원인인 제도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
부란 천부적인 권리가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체제 변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비롯해 보통 사람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고민하고, 문제 해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기 때문에 실용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반면 사회주의는 명분과 함께한다. 실용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직접 행동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나타낸다. 명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행동보다는 토론이나 담론을 즐기는 편이다.
......
주자학은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천보다 말이 무성하고,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쿠바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났지만, 그보다 훨씬 발전된 교조주의와 명분주의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북한을 봐도 알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는 집단주의적 색채가 곳곳에 배어 있다. 타인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성에 바탕을 두고 다른 의견을 비판하기보다는 폭력적 언어로 타인을 비방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게 일어난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 특정인을 ‘왕따’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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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개인주의가 중요한가?
시정경제는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삶의 방식이 자리 잡지 않는다면, 집단적 의사결정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피해에 이미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의 완전한 결별이란 쉽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갖추는 젊은 시절에 심취했던 사상과 세계관을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연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거나 찬양하지는 않지만 그들 중 다수는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언론에 전해지는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 사용하는 용어들을 보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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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좌파 지식인들은 몰락한 사회주의를 보면서도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론 사회주의가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기만 한다면 멋진 세상이 펼쳐지리라고 여전히 믿는 것일까.

성장이 정체되고 세계화가 급속해지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정의로운 분배를 실천할 수 있는 조직화된 권력에 대한 욕구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것은 정치 지형도 변모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좀더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성장 동인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축소지향형 악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심리에는 ‘이웃이 잘살기 때문에 내가 못산다’는 생각이 깔리게 된다. 그러니 ‘있는 자에게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은 언제든 제도화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는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할까요?

나는 세계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가능성의 문을 열어둔 세계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다만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지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던 경쟁은 점점 더 세계적인 규모로 확장되고 있다.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세계 어느 곳에 내일 당장이라도 유력한 경쟁자가 등장할 수 있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적응하고, 혁신하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구의 또 다른 곳에서 누구든지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 급변한다고 불평하고 저주해도 그것은 한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 변화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다. 함께 모여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고 고함도 치면 동지애를 굳히거나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자본과 세계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이런 저런 이유로 보호되었던 거의 전 영역이 개방에 노출될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변화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인다. 경쟁이란 개방과 경쟁 속에서만 곷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필요한 변화를 추진한다. 반면 우둔한 사람들은 애써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믿고 싶은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믿듣지 세상의 흚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삶의 철학을 얻었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끝임 없이 현실에 적응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일자리가 있는 분들은 그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현실에 적응하십시오. 기능도 끝임 없이 향상시키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회사의 성과와 자신의 성과를 끝임 없이 일치시키고, 변화되는 작업조직에 끝임 없이 적응하십시오. 현실을 바꿀 수 없으면서 대중을 현혹하는 노동조합이나 정치인들에게 현혹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헬스도 하고, 보약도 먹으면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과로사니 근골격계니 하는 것은 모두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노동조합에서 부풀려서 그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설혹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더라도 그런 현실에 한탄이나 하면서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거리의 노숙자처럼 삶을 포기하는 무능력자가 되지 말고, 자기 사업을 벌이거나 다른 직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전하는 삶의 자세를 보인다면 위기는 기회가 됩니다.
이런 삶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당신은 만 명 중의 빛나는 한 명이 될 것입니다.
그게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빛나는 삶의 자세입니다.
다시 한 번 삶의 철학을 가슴에 새겨두십시오.
“변화시킬 수 없다면, 철두철미하게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성공한 ‘만 명 중의 한 명’을 뺀 나머지 ‘만 명 중의 구천구백구십구 명’은 가슴에 새로운 철학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적응할 수 없다면, 철두철미하게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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