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장소/백두산

최남선과 이광수는 직접 백두산을 답사했고 여러 글을 쓰며 백두산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높였다. 식민지 조선의 슬픈 처지를 이겨내기 위한 상징으로 백두산을 활용한 것이다. 또 단군을 믿는 대종교 역시 큰 역할을 했다. 환인이 지상에 강림한 태백산이 백두산이라 주장했고 교인들에 의해 신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근거 없는 주장이다. 신화적 허구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민족의 역사에서 백두산이 강조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나 부여에 있어 백두산 일대는 그다지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발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마저도 멸망 이후 우리 영토에서 오랫동안 이탈하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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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인물/연개소문

연개소문(?~665년경)은 642년 영류왕을 제거하고 보장왕을 세우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었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안시 성주와 충돌하는 등 여러 갈등이 이어졌다. 김부식은 그가 잔악하고 권력을 전횡했다고 보았다. 국왕을 죽이고 권력을 독점했던 인물에 대한 유학자의 전형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 역사학자 신채호나 박은식은 그를 독립 자주정신의 상징처럼 받들었다.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 나라를 잃은 역사학자들에게는 큰 의미가되었던 것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당태종에게 승리를 거둔 연개소문이군대를 끌고 만리장성을 넘었다고 했지만 특별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집권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결국 644년 당태종이 쳐들어오지만 안시성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당나라 군대를 쫓아낸다. 당시의 일화가 중국인들에게 인상적이었는지 여전히 경극의 소재로 등장한다. 당태종을 괴롭히는 귀신같은 용장의 형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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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력과 도전은 어쩔 수 없이 그만둔 뒤에 무엇을 했느냐에 달려 있다. 불에 타고 난 잔해를 긁어모아 뭐가 됐든 뭔가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쌓아 올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일을 그만둬야 할 때 우리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은 무엇일까?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악명 높은 개념이다. 우리는 전성기의 테라노스처럼 90억 달러 가치의 기업을 설립하지는 못하겠지만, 깊은 관심을 가진 일에 시간과 돈과 노력과 희망을 쏟아붓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포기해야 함이 명확할 때도 포기를 망설이게 되고, 멈춰야 함이 아주 명확해진 상황에서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과 감정적 에너지를 회수하려 들기 때문이다.

에디슨에게 퀴팅은 실패가 아닌 성공의 수단이었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였다.
비록 그가 승리하지 못하고, 그가 사망한 뒤에 다른 사람들이 합성 고무를 발명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일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그가 보여준 모범은 누구나 따를 수 있다.천재가 아니더라라도 효과적인 퀴팅의 방법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진로와 관련해 미심쩍은 선택을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면, 결정할 당시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러분은 그때 주어진 정보로 최선을 다했다. 결정을 내릴 때 퀴팅도 언제나 선택지에 있음을 명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전직 페이스북 고위 간부 셰릴 샌드버그 덕분에 유명해진 표현을 사용하자면, 에디슨은 퀴팅에 ‘린 인lean in’했다. 린 인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끈기 있게 계속해 나간다는 뜻이다. 그는 연속으로 그만두는 기술까지 익혔다. 진정한 끈기는 절대 그만두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똑똑하게 그만두는 것임을 이해했다. 진정한 끈기란 가치 있는 탐구 과정에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견디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퀴팅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 없어서 그만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두면 모든 사람에게, 특히 자신에게 실망을 안길 것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세상은 포기가 나약함과 불안함의 징표라고 계속 주입한다. 그 와중에 우리는 퀴팅이 생존 본능이라는 사실을, 우리 뇌가 퀴팅을 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퀴팅을 도덕적 실패로 오도하는 문화적 서사 위에 새로운 것을 덧씌울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퀴팅이 여전히 극단적인 선택으로 비치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새뮤얼 스마일스가 어찌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든 그의 프로필을 보면 ‘내가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실패했는지 보세요’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중요한 것은 실패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얼마나 자의적으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랜 세월 동안 들어온 퀴팅의 단점에 대한 뻔한 말을 흘려듣기란 쉽지 않다. 리스트는 《스케일의 법칙》에 다음과 같이 썼다.
"실패로 인한 고통을 나중에 장기간 받는 대신 지금 그만둬서 강력하지만 짧은 고통을 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개인과 조직 모두가 갈고닦아야 할 기술이다.자신에게 이길 기회를 한 번 더 주려면 퀴팅을 택해야 한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직장에 다닐 기회가 어디에나 있듯, 그만둘 기회도 어디에나 있다. 그만두고 다른 것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끝이 비극적이지는 않다. 때로 끝은 어딘가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무는 정차역이 되곤 한다. 물론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그 어딘가가 더 나은 곳일 수도, 더 나쁜 곳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어디든 전과 다른 곳이라는 점이다.

일은 기대한 만큼 잘 풀리지 않는다. 또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마음속 에디슨에게 집중할 때다. 두려움이나 매몰비용 오류의 희생양이 되면 안 된다. 기회비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도 말자. 퀴팅은 끝이 아니다. 성공의 시작일 수 있다.

우리가 쏟아부은 것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돌이킬 수 없다. 우리는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두면 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원을 낭비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이유로 하던 일을 너무 오랫동안 계속한다.

전략적으로 그만두면, 정확성과 창의력을 발휘해 그만두면 중단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사업을 더 널리 확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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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사건/암태도 소작쟁의

갈등은 섬 전체로 번졌는데, 이 와중에 소작인회는 문재철 아버지의 송덕비를 부수었고 문재철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주모자들에게 폭력 행사를 하고 맞고소하는 등혼란이 야기됐다. 이때 경찰은 서태석을 비롯한 소작인회 핵심 인물 13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과감한 투쟁을 벌인다. ‘원정 농성‘
을 시작했는데 암태청년회, 암태소작회, 암태부인회의 남녀 400여 명이 범선 7척을 타고 목포로 건너가서 법원지청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집단농성을 벌인 것이다.
이로 인해 암태도의 투쟁은 전국에 널리 알려졌고 평양에서 35원, 완도에서 20원등의 모금이 이루어지는 등 전국에서 성원이 밀려들기도 했다. 수차례 투쟁을 통해 결국 소작인회는 소작료 4할제를 끝내 관철시키면서 투쟁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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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명문장/시일야방성대곡

지난번 이토 히로부미 후작이 한국에 왔을 때 어리석은 우리 백성들이 앞다퉈서로 이렇게 말했다.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이 세 발 달린 솔처럼 안정을 유지하도록 책임지고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이다. 오늘 내한한 것은 반드시 우리나라의 독립을공고하게 기반에 올려놓을 책략을 권고하려고 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원과 백성, 윗사람 아랫사람이 모두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의 일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많도다. 꿈에도 까마득히 생각하지 못한 오개 조약(을사조약)이 어디로부터 제출됐는가?
(...)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강경한 의지로 거절하기를 그만두지 않으셨으니 (...) 아! 저 개돼지만도 못한 이른바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는 것들은 영달과 이익을 바라고 공갈을 빙자한 위협에 겁먹어 우물쭈물 벌벌 떨면서 나라를팔아먹는 도적이 됐다).
(...) 오호라! 원통하도다! 오호라! 분하도다! 우리 이천만 남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사천 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갑작스레 멸망하고 말았는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 중

다만 내용에 중요한 오류가 있다. 을사조약을 강요할 당시 고종 역시 우물쭈물하면서 대신들에게 책임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완용과 을사오적만을 탓하며 고종이 면피되는 현실은 이러한 오보 때문이기도 하다. 또 민족정신을 단군뿐 아니라 기자에게서 찾는 것도 오늘의 입장에서는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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