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얼마 전에 읽은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라며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 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무 대가 없이 찾아온 이 계절의 즐거움을 나에게 선물해 주는 일, 그렇게 ‘내가 아는 행복’의 순간을 늘려 가는 일이 바로 제철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6개월은 참 길게 느껴지지만 정말 맛있는 수박을 먹고,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맛있는 포도를 먹으면 6개월도 금방이겠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정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일단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서 먹어야겠다.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행복이 정말 별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에 매우 협조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거절을 마음에 쌓아 두며 일일이 카운트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한 거절할 만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기꺼이 인터뷰를 허락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앞으로도 나는 백 명이 거절하든 천 명이 거절하든 그것을 카운트하는 데 마음을 쓰는 대신 인터뷰에 응해 줄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닐 것이다. 인터뷰를 거절한 거지 내가 거절당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피하거나 관계를 끊으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와 매일 마주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싫은 티를 내는 게 아니라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틀렸으니 고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러니 상대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 있는가. 이해가 안 되는 채로 그를 지켜볼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고. 우리는 그 공간에서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그날 저녁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큰 불운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이 나의 하루를 망치지 않게끔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면 그 말을 가슴에만 담아 두지 말고 그 사람에게 꼭 전했으면 좋겠다. 가깝든 가깝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해 주겠지 하며 그 말을 삼켜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여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멈춰 있는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지도 모른다. 관심과 애정이 담긴 좋은 말은 몇백 번을 들어도 좋은 법이다. 그러니 ‘나까지 그 말을 해 줄 필요는 없겠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힘내."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힘을 내야 하는 현실임을 더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는 것을…. 그 자각은 내겐 좋지 않았다. 눈물이 나는데도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얼른 울음을 그쳐야 했고, 괜찮지 않은데 억지로 괜찮은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그 상황 자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든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장례식장에 가서 남겨진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런 순간에 연락을 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애써 어떤 특별한 말을 해 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 순간 그 감정을 혼자 겪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면접에 떨어졌을 때나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모르면 ‘내가 뭐가 부족했던 걸까’ 곱씹으면서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들은 우리를 짓눌러 위축되게 만든다. 그래서 거절의 순간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은 단순한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불필요한 오해에 갇히지 않도록 돕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다.

우리는 장애나 병을 가진 사람들을 무력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바라보기 쉽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시선이 그들에게 병보다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긴 시간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우리의 일상을 채워 주고 있는 이웃들―세탁소, 정육점, 생선·야채·과일 가게, 슈퍼마켓, 빵집―의 존재를 말이다.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말했다. 절친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편의점, 카페, 분식집, 버스와 지하철, 아파트와 사무실 엘리베이터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사회적 경험이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상대가 오늘 하루 잘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소소한 말들과 작은 친절이 우리의 하루를 바꾸고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

모모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재주로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모모처럼 해 보면 어떨까. 단 섣부른 충고나 조언을 해선 안 되고, 멋대로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그저 가만히 온 마음을 다해 정성스럽게 잘 들어 주어야 한다. 그 전에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그를 위해 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 본다.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운이 좀 안 좋았던 것뿐이라는 그의 말이 병마와 싸우느라 지친 이들에게 꼭 가닿기를, 그래서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상대방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바란다. 하지만 때로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이제는 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그 마음을 다 담을 길이 없을 때, 내가 가진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그저 더 못 줘서 안달 나고 상대방이 그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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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가족 찾기에 평생을 바쳐 온 그는 은퇴 후 백석대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쉽게 수락하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느라 정작 자신의 가정은 잘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그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고, 그런 자신이 과연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 싶었다.

아이들이 필요로 했던 건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훌륭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아버지란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어느 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학생들도 내 자식처럼 가르쳐야 하는데 그 전에 너희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아이들이 너무 늦었다며 자신을 원망하고 거부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은 무릎까지 꿇어 가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만 챙기느라 자신들을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아버지도 참 힘들고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아버지에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용서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이 교수는 아이들이 자신의 용서를 받아 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을 쳤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못 할 말이 있을까 싶지만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겠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고맙다면 고맙다고 말해야 하고, 미안하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이 언제든 증오와 허세와 자만심과 특권 의식에 빠져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수 있음을, 그것이 우리 모두를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곧 사라지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지구 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지구를 망칠 권리는 현재 살아 있는 80억 명의 사람 중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말한다. 일단 일이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런데 하마구치 감독은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사람을 챙기라고. 바쁘다고 말하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나에게 묻는다. 정말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람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가. 하마구치 감독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챙기는 데 거창한 이벤트나 특별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요즘은 제삿상에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는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알고 있을까. 자녀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오늘 숙제는 다 했냐’는 말 대신 요즘 좋아하는 건 뭐냐고 물어본 적은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르면 더 늦기 전에 물어봐야 한다.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어떤 죽음을 바라느냐고….

배우 윤여정, 그녀는 자신의 과거사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지만 그에 대해 억울하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똑같이 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낯선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실수를 저지를까 봐 조심하며 살았다.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고 내 인생만 아픈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세상이 나를 배척하고, 부당하게 거부하는 듯한 날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뾰족해져서 누가 나를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에게 다 쏟아붓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라고 오늘이 쉬웠을까. 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 그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릴 적 나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거라고, 열심히 살면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내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때때로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다큐 3일’과 ‘유 퀴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들이 불행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끝내 버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라는 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날 그 말은 내게 깊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것이라고. 그리고 한번 믿어 보면 어떨까. 지금은 너무 춥고 힘들지만 겨울은 지나갈 테고, 그러면 따스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분명히 봄은 온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수를 ‘부끄러운 것’, ‘벌받아야 할 것’으로 배워 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와 실패를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될 텐데, 그럴 바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 기술 혁신을 이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히려 실패를 권장한다. 그들은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경험을 대기업에 취업한 경험 못지않게 좋은 경력으로 인정한다. 실수와 실패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취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역시 성공하려면 실패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견디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쉽게 바뀔 리 없다.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 또한 단번에 생기기 어렵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어려울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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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겪고 있는 시행착오들이 불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어쩌면 훗날 멋진 곳으로 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계일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로는 종종 돌아가고, 흔들리며, 예상과 다르게 펼쳐지지만 그 모든 경험은 결국 고스란히 쌓여서 의미를 갖게 된다고도 했다.

내가 초라하다고 느낄수록 나를 더욱 가혹하게 채찍질해 왔던 것이다. 애쓰고 있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격려하고 응원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데 말이다.
나는 그의 말대로 나한테 친절해지고 싶어졌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내미는 손, 나는 허준이 교수를 통해 그 손을 어떻게 내밀어야 할지를 배웠다. 내가 나에게 하는 부정적이고 가혹한 말들, 그 말들을 먼저 멈추어야 한다.

지금 삶은 보너스 게임이라고, 오늘을 살아 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며 일찌감치 그 누구도 믿지 않겠다 마음먹었다면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어울려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보면 마음이 쓰이고, 자꾸만 계산적으로 변해 가는 내가 싫고, 상처받더라도 다시 사람을 믿어 보고 싶은 게 아닐까.

세상에 손해 보며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지면 매사에 계산적이고 따지는 게 많아지며 그럴수록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된다. 즉,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나를 지켜 주는 게 아니라 나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살다 보면 나는 별것 아닌 작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기억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큰 따뜻함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당장엔 손해 같아 보여도 그것이 훗날 어떻게 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당장엔 이익을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이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전우익 선생이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혼자만 잘 사는 삶보다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길 바란다. 별것 아닌 것도 함께여서 즐겁고, 작은 것도 나누며 그렇게 나이 들어 가길 바란다.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한 심장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떤 순간에도 무서울 만큼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인간이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으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닐까. 그래서 나는 뭐든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보다 일단 포기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다. 내가 어느 만큼 버틸 수 있을지는 결국 부딪쳐 봐야 알 일이다. 나는 그렇게 지금도 강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굳게 믿어 보기로 한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김정자 할머니의 삶을 지켜보면서 ‘해야 할 일들’ 대신 ‘하고 싶은 일’을 늘려 나가야 할 명확한 이유를 발견했다. 그 일이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누가 뭐라든 내가 원하고 힘들어도 그 일을 할 때 즐겁고 살맛이 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내 마음에 귀 기울이며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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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쌓여 한 달, 일 년이 되고 미래가 됩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사실은 실패도 서서히 쌓이지만 성공도 서서히 쌓인다는 것입니다.

도덕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거창한 철학이 등장할 것 같지만 헤밍웨이가 정의하는 도덕은 의외로 심플합니다. 내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 결국 자신은 더욱 더 불쾌해진다는 것이 헤밍웨이가 말하는 도덕입니다. 정말 간결하고 명료하죠.
우리 역시 감정을 주체 못하고 내뱉은 말 때문에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쳐 일을 그르친 적은 얼마나 많은가요? 하지만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말하는 도덕, 즉 기분대로 행동하고 나서 후회했는지, 불쾌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런 후회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헤밍웨이가 제시한 이 가이드라인처럼,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서 훗날 스스로 불쾌해지지 않는 도덕적인 선에서 행동을 해 나가면 인생의 작은 해답이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 변명하지 말고, 나에게서 도망치지 말고 말이지요.

매일 같은 것이 반복되는 우리의 하루도 어떤 면에서는 시시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한 하루들이 모여 인생의 총합을 이루고 멋진 삶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무명시절부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까지도 스스로 다그치며 외웠던 만트라는 ‘하나의 진실된 문장(one true sentence)’이었습니다. 문학계에서는 ‘헤밍웨이=하나의 진실된 문장’이라고 정의할 정도로 그를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단어, 문장, 단락, 소설 전체가 진실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헤밍웨이의 작품은 그의 인생과 주변 사람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문장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했습니다. 비평가들이 칼날을 들이대기 전에 진실되지 못한 자신의 글을 스스로 도려내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기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상처와 충격을 이겨 내는 능력이었습니다.

인생에 어느 압박도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짓누르는 부담을 이겨 내는 일입니다. 사람은 압박에 취약합니다. 짓눌리다가 엉뚱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심적인 부담을 못 이기고 최악의 수를 두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럴 때 대개 나‘만’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진짜로 그런가요?

인간은 누구나 고독을 품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 온 이후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사실일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입니다. 세상이 눈부시게 변하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도, 모든 고독과 외로움을 문명의 이기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로 콕 집어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대신 드러내 말해 주고 있는 것이 헤밍웨이의 작품입니다. 이런 이유로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영원한 고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고독의 감정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몰입의 힘은 대단합니다. 몰입해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몰입하고 있는 분야에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내가 열고자 하는 문이 끝내 열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다른 문은 열리거든요. 또한 몰입하는 순간에는 결핍을 따질 겨를도 없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했듯 자신이 생각할 때 너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여겨질 때는 쓸데없는 일에 마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꿈과 목표 이 두 녀석들은 질투가 많습니다. 자신들에게 완전히 헌신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지요. 다른 데 신경 쓰는 것을 못 참고 떠나 버립니다. 때문에 재능만으로는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일관성과 노력이라는 진리에 의해서 인정받는 것이지요. 피츠제럴드의 몰락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도 목표와 노력 없이는 빛을 잃는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누구든 다리 하나로 설 수 없는 것처럼, 재능도 홀로 설 수 없습니다. 노력이라는 다른 다리가 꼭 필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틈틈이 뇌가 한숨 돌릴 틈을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지금 처한 일상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하고 동경합니다. 현재란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입니다. 항상 불만족스럽고, 내 현실이 아닌 것은 다 멋진 영화처럼 보이지요. 동경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가진 가치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되면 빈곤과 파산에 이릅니다. 자신이 가진 가치가 얼마인지 모르고 무언가를 계속 얻으려 하다 보면 정신적인 빈곤, 인간관계의 후회, 지식의 파산에 이를 수 있겠죠.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스로 반성할게 없다는 뜻인데 좋은 의미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한 준비로 무언가를 많이, 그리고 미리 채워 두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양한 재화를 사고파는 거대한 쇼핑몰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삶이 지겹고 지긋지긋할 때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기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도망친 그곳은 얼마나 천국 같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놀라지 마세요. "달아난 곳에 천국은 없습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도망친 그곳에서도 역시 새로운 걱정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금세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질 겁니다.

모든 인생의 이치는 ‘평균으로의 회귀’ 법칙을 따릅니다. 세상 모든 일이 평균에 맞춰지기 위하여 좋은 일은 나쁜 일을 끌어오고, 나쁜 일은 좋은 일을 끌어온다는 법칙입니다. 어쩌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그냥 그저 그런 하루를 걱정 없이 보내는 것이 최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메타인지(한 차원 높은 인지 과정으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라는 단어가 유행합니다. 스스로를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를 직시한다는 것은 위치, 한계, 본질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 안의 나는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심각한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이상 용서가 안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의 화해, 소통, 반성, 용서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메타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삶이 다르게 보입니다.

스스로를 진실하게 마주하고 넘치는 생각과 자기연민을 버리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자신에게 규율을 정해 보세요. 과도하게 생각하거나 자기를 연민할 틈이 생기지 않을 규칙을 만드는 겁니다. 헤밍웨이의 규칙은 하루에 쓰는 단어 수를 정해 놓고 매일 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봅시다. 자신을 하루하루 단련하다 보면 얇은 철사를 꼬아 두꺼운 철근이 되듯이 강인한 내면으로 자라날 겁니다.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내면에 남은 사람은 명랑하고 행복한 마음 근육이 짱짱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은 일하는 데 있어서 남들과 차별화되는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 살아가는 내내 자부심이 됩니다. 단편적인 지식이 주지 못하는 입체적인 행복은 이런 곳에서 나옵니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히 한도를 넘게 됩니다. 실패자가 아닌데도 생각이 부풀려집니다. 기분이 좋다가도 생각할수록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핵심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그 핵심 이유가 나도 모르게 떠오를 때는 생각 버튼을 바꿔 버려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루아침에’라는 표현 역시 이전에 수많은 과정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그 일은 사실 우리의 하루 속에서 천천히, 서서히, 조금씩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성격이나 인생을 사는 태도 등으로 이미 모든 조건이 마련된 상태에서 하나의 불씨로 인해 큰 불이 일어나자 마치 갑자기 불이 난 것처럼 보일 뿐인 겁니다.
우리는 변화의 신호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변화를 외면하면 현실에 머물게 되고, 현실에 머물면 적응에 실패하고 인생에 실패할 테니까요.

지금 차갑고 세찬 비를 맞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 혼자 서서 비를 맞으며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봄이 영영 오지 않을 듯 겨울이 기승을 부려도 결국 봄은 옵니다. 거센 폭풍 같은 압박 속에서 헤밍웨이의 글이 작은 우산이 되어 줄 거라 믿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봄이 곧 찾아오길 바랍니다.

일단 잘하든 못하든, 완벽하든 아니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시작한 후에는 완벽을 위해 다그치기보다는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거든요.

헤밍웨이가 인용한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가 더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헤밍웨이의 세대는 갔지만 지금 우리 세대 또한 또 다른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런 우리의 모습은 변하지 않으며, 영원히 세상은 그대로라는 사실이 말이지요.
태양은 또 다시 떠오릅니다. 그러니 불행할 필요 없지요. 21세기의 길 잃은 세대도 제이크처럼 자신의 삶에 책임을 느끼고, 인생이 달아나지 않도록 따듯한 시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지금 바로 여기가 괜찮은 곳입니다. 지옥 같아 보여도 본인의 현재에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봐야죠. 다른 곳으로 도망쳐도 똑같을 겁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청구서는 대부분 사람이 잘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당장 깨닫지는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무조건 깨닫게 되는 인생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고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죠.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호의 역시 대가를 치루지 않고 계속 받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청구서가 날아오기 마련입니다.

일을 잘 끝내려면 오히려 숨 쉴 틈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떠오른 영감을 다 짜내어 써 버리며 내일의 영감이 말라비틀어지도록 하면 안 됩니다. 체력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50퍼센트 또는 70퍼센트만 쓰고 완전히 방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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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5-12-03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밑줄쳐주신 문장들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내용들인 것 같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꼬꼬닭 2025-12-04 11:47   좋아요 1 | URL
아이고 꾸준히 하지 못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에요~
날씨가 너무 추워졌어요,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얼마남지 않은 올해도 무탈하게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12-04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날씨가 하루이틀 사이에 갑자기 추워졌네요 꼬꼬닭님도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밤새 울며 지내든 고요하게 즐기면서 지내든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무엇이 좋은 방법이겠습니까? 당연히 침착하게 즐기며 지내는 방법일 겁니다.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데 매순간 웅크리고 불평하며 지내는 것보다는 춤을 추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인생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까요?
훗날 생을 돌아볼 때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참 유쾌하게 잘 지냈어’라고 회상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 많아서 정말 고통스러운 인생을 보냈어’라고 회상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겠지요. 똑같은 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생각은 ‘이 상황 열받아’가 아니라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입니다. 폭풍우에 잠겨 있지 말고 해결 방법을 찾아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고 주체입니다. 내 반응은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전부 유한합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러니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찾아보세요. 우리 모두 각자 가치관에 따라서 매일매일 아주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감정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감정은 존재하는 이유이자 핵심이기도 합니다. 감정에 뒤따른 행동은 별개이지만요. 감정을 인정해 주고 옳다고 다독여 보세요. 반대로 생각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돕는다는 것은 의외로 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저 그의 감정에 포개어서 나도 그 감정을 긍정해 주면 되는 거니까요. 당신의 그 감정은 옳다고 공감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존재가 따듯한 집중을 받고 감정을 이해 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가집니다. 이는 스스로도 해 줄 수 있고, 또 상대방에게 해 주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섬일 때도 있고 육지일 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책을 읽는 것이 공감대를 확장시키고, 단단한 내면을 형성하며, 타인을 향한 배려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책을 읽는다고 신부님이 말한 ‘베푸는 사랑’과 ‘주는 사랑’이 단번에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읽은 책 한 권 한 권이 모여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만큼 훌륭한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방법이지요. 트라우마는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파괴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상처를 안 보이는 곳에 슬쩍 치워 두기 때문에 그곳에서 더더욱 손쉽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손쉽게 얘기할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몇 시간씩 수다할 수 있는 주제라면 아마도 큰 상처는 아닐 겁니다. 죽어도 말 못하고 꽁꽁 숨기는 것,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숨죽여 우는 것이 가장 큰 상처일 가능성이 높죠. 숨긴 트라우마는 나를 뒤흔들며 내면에서 강력한 파괴의 힘을 휘두르지만, 마음 밖으로 끄집어내는 순간 쪼그라들면서 힘을 잃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단 한순간도 멈춰 있거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계속 변화하고 또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매일매일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덧없기 때문에 벚꽃과 반딧불, 그리고 단풍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입니다. 벚꽃, 반딧불, 단풍 모두 아주 짧은 시간에 절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금세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고, 닥친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재건에 힘쓰는 것이 맞다고 하루키는 말합니다. 건물뿐만 아니라 도덕까지, 그 모든 것을요.

세상에 납득되는 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내가 상식적일수록 현실은 점점 더 불행하기만 합니다. 비상식적인 세상을 끌어안느라 버겁고 허덕이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갑자기 참아온 눈물이 봇물처럼 터질 듯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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