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문학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어쩌면 먹고 사는데 별 도움이 될것 같지 않아서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책을 읽어도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많이 읽는다.실제로 별로 도움은 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중요한 것을 찾겠지 하는 심정으로 읽는다.하지만 그런책도 계속 읽다보면 슬럼프에 빠진다.과연 저 책들이 주장하는데로 행동하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질까 하는 생각 말이다.그럴땐 책을 덮어놓고 다른 행동을 한다.TV를 실컷 본다거나,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이두가지 또한 잠시 뿐이다.그럴땐 문학을 읽는다.아니 장확하게 말하면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으 세계로 빠져든다.마치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한몸이 되어 세시간 이고 네시간이고 연속으로 읽는다.중간에 덮어 버리면 주인공이 책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읽는다.그러다 보면 다시 먹고 사는 책을 읽고 있다.

개밥바라기 별른 오랜만에 찾아간 본가 책상에 있었다.무슨 재미가 있었는지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그건 준이를 통해서 내 학창 시절을 생각 했기 때문이다.부모가 원하는데로 사는 수동적인 삶,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학교가서 부모님 처럼 고생 하지 않는것,그렇기에 학교에 지각하면 큰일나고,나쁜 친구는 사귀지 않으며,정해진 규율에 사는 삶 말이다.어쩌면 학교라는 규율과 틀이 싫어서 집과 학교를 나와서 무단 가출한 준이와 인호가 너무 부러웠다.그런 과정이 있기에는 중길의 죽음이 무관치는 않지만,알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준은 아마도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그렇기에 아무런 결론도 못 내리고 베트남으로 떠난 것이라 생각을 한다.준이의 성장통을 보면서 그러한 성장통이 짧았던 나로서는 준이의 무전여행과 동굴 생활이 흥미를 끌었다.내가 하지 못했던것들의 보상 심리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의 방황이 더욱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어쩜 준이의 방황이 어떤 결론을 내릴줄 알았다.그런데 아쉽게도 현재 진행형으로 끝나 버렸다.준이 샛별이 되었을지,개밥바라기가 되었을지는 상상에 맡기려나 보다.어떤 각도에서 보는냐에 따라서 샛별이 되기도 하고 개밥바라기가 되기도 하는것 아닐까? 준과 인호의 여행을 통해서 1960년,1970년의 시대 상황과 젊은이들의 고민을 알수 있었다.이제 할아버지가 되어린 유준은 요즘 청소년들의 방황을 어떻게 볼까?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해 주려는지 궁금 하다.성장통은 누구나 격는다.하지만 누구 빨리 끝내고 어던 결론을 내리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유준 어머니의 기다림을 보면서 내 자식이 방황을 하고 성장통을 격는다면 나는 그렇게 기다려 줄수 있을까? 책을 읽는내내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어김 없이 맞아들어갔다.자전적 소설의 한계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아마도 이런 특성은 먹고사는 문제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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