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살았던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 왔다.” -164쪽


부조리한 삶.

어쩌면 이 짧은 문장 하나가 까뮈의 ‘이방인’을 압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뫼르소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으로 표현되는데, 실제로 까뮈의 아버지도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게 된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경험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라본 삶, 그리고 세계는 부조리의 연속이었으리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세움 출판사의 이방인을 보게 된 것은, ‘25년간 속아왔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SNS상에서 번역과 관련 된 날선 비판과 또 다른 문제제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간략하게 개인적인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다른 번역보다는 매끄럽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전 번역들이 문제가 있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방인을 다시 읽게 되면서 이전에 이 소설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번역의 잘못, 미묘한 뉘앙스를 잘못 이해한 것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이방인의 중심 사상은 ‘실존’이다.


주인공 뫼르소에게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마리에 대해서도, 자신과는 다르지만 친구를 맺게 된 레몽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주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사형을 앞두고 자신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에서도 뫼르소라는 인물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중심 사상을 ‘실존’이라고 이야기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것을 솔직히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고 인간 본위적이며 투명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이성’적인 뫼르소 앞에 도덕과 종교는 그를 억압하는 가치로 표현된다.


사실이다. 인간은 부패했기에 정의보다는 부도덕을 사랑하고 선한 것보다는 악한 일을 행하는게 자연스럽기 마련이다. 신문의 사회면 기사만 보아도 이런 사실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한 까뮈의 능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지난번 이 소설을 읽고 남겼던 글의 종결부분을 인용할 수 밖에 없다


‘어쩐지 인간의 실존 자체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우리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대를 이해하고 소설을 읽는다면 뫼르소의 행동을 일부 받아들일 수도(?)있지만 우리는 이제 다른 인간상을 그려야 한다. 뫼르소와 같이 죽음앞에서 새로운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죽음앞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누구에게나 동의되는 ‘실존’이라고 볼 수는 없다)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반드시 낙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당시의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을 딛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더이상 '이인'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동인'으로서 살아갈 방법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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